< 벼락스타 (3) >
또각또각-
김성오와 같이 온, 트로피 여친의 하이힐 소리가 식당을 울린다.
그 모습을 본 광수가 똥 씹은 표정을 하며, 종구에게 만 원을 건넨다.
김성오는 왕호의 대각선 자리에 자신의 엉덩이를 거침없이 들이밀었다.
그리고는 잔뜩 신이 난 표정으로 말을 쏘아붙였다.
“안왕호 오랜만이다? 너 원래 이런 데 안 오잖아?”
“너 보려고 온 건 아니지.”
“흐흐, 너 듣자 하니 다니엘 킴 레스토랑에서 쫓겨났다며?”
“하, 보자마자 또 시비냐? 나한테 관심 많나 보다? 쫓겨난 게 아니라 내 발로 나온 거거든? 내 장사 하려고.”
“네 장사? 아, 그럼 저~기 주차되어 있던 ‘왕호네 밥차’가 진짜 천하의 안왕호가 모는 푸드트럭이었어? 야, 그런 똥차 몰려고 그 좋은 레스토랑 나온 거냐? 하하하하.”
누가 보더라도 눈살 절로 찌푸려지는 행동이었지만, 왕호는 이런 장난에 장단 맞춰 줄 만큼 어리숙하지 않았다.
김성오가 저러는 것은 뻔한 이유니, 굳이 맞장구쳐줄 필요가 없다.
대학 다닐 때부터 왕호에 대한 열등감에 시달려 온 김성오다. 거의 8년을 억눌려 있다가, 각성자가 되어 저렇게 거드름 피우는 거다.
왕호와 왕호의 절친인 종구, 광수는 왕호의 그런 심정을 잘 아는 터라 별로 상관하지 않았으나···
사건은 이상한 곳에서 발생했다.
“야! 김성오! 너 각성자 돼서 플라톤 호텔 들어갔다고는 들었는데, 그렇다고 네가 왕호 무시할 정도는 아니잖아?”
“뭐?!”
김성오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소리가 들려온 곳은 수지가 있던 곳. 수지가 잔뜩 성난 표정을 지으며 김성오에게 말을 쏘아붙이고 있었다.
“실력도 모자란 주제에 각성자 됐다고 라인 타서 들어가는 것보다, 자기 장사 하는 왕호가 훨씬 낫지 않아?”
“아놔··· CC였다고 쉴드 치는 것 좀 봐라. 각성했으니, 이제 내가 훨씬 낫지. 길거리에서 음식 파는 거랑, 호텔에서 코스 대접하는 거랑 같겠냐?”
김성오의 콧대는 하늘을 찌를 것 같이 올라가 있었다.
“왕호도 각성했어. 마음만 먹으면 플라톤 호텔 같은 곳이야 그냥 들어갈 수 있는데, 자기만의 비전 꿈꾸며 나온 거잖아. 너 같이 허영심 가득한 애가 어찌 그 마음을 알겠니.”
“뭐, 뭐? 안왕호가 각성했다고?!”
뜻밖의 소리에 김성오가 놀라 자지러진다. 어찌나 놀랐는지, 손이 살짝 떨릴 정도. 김성오는 왕호 쪽으로 고개를 휙 돌렸다.
왕호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을 대신했다.
아무래도, 김성오는 왕호가 각성한 사실을 모르는 듯 보였다.
‘새끼, 얼마나 인간관계 그지같이 하고 다녔으면 친구들끼리 소문난 사실도 모르냐.’
김성오와 연락을 깊게 주고받는 친구들이 없다는 방증이었다.
김성오가 당황하자, 여기저기서 김성오를 고깝게 보던 친구들이 소리쳤다.
“왕호, 천만배우 박하진이랑 호형호제하는 사이야.”
“너 박하진 인스타 못 봤어? 왕호 요리 졸라 맛있다잖아!”
“왕호네 밥차 팔로워 2만 가까이 됐다. 네가 무시할 수준은 아닌 것 같다.”
자존심 강한 김성오가 그 소리에 발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야 안왕호! 각성했다고? 너 레벨 몇이야?”
다짜고짜 레벨부터 쳐 묻는다.
“레벨? 레벨은 왜?”
“너 호텔도 안 들어가고 혼자 장사하지? 보나 마나 레벨 1일 거다. 스킬도 기초 스킬밖에 없지? 그냥 운 좋아서 각성했나 본데, 나처럼 빽 있어야 쩔 받고 레벨 50까지 올릴 수 있어. 나는 어제 50 찍었다 인마!”
“50? 나는 60 넘는데?”
“뭐, 뭐?! 뻥치지마!”
“뻥 아니야. 응비봉사!”
왕호는 쾌검 스킬을 사용해, 숟가락으로 김성오의 이마를 재빠르게 내리쳤다.
어찌나 빨랐는지, 눈으로 좇을 수 있는 이가 하나도 없었다.
따악-!
김성오의 이마에서 청량한 소리가 울렸다.
“으악!”
김성오가 두 손으로 자신의 이마를 움켜잡았다.
그다지 쎄게 때리진 않았으나, 아픈 건 어쩔 수 없다.
만약 왕호가 힘을 가득 싣고, 마나까지 듬뿍 넣었다면 뚝배기가 깨져 피가 철철 흘러나왔을 거다.
“아프냐? 미안하다. 스킬 직접 보여주려면 이 방법밖에 없었다.”
“으으··· 그, 그래도 내가 푸드트럭 따위 모는 애랑 수준이 같다고? 천만에! 나 한 달에 얼마 버는 줄 알아?!”
친구들의 이목이 쏠리자, 김성오의 얼굴이 홍시마냥 붉어졌다.
결국, 연봉 이야기까지 나왔으나, 김성오를 따라온 모델 여친이 그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아, 왜!”
속닥속닥-
“오, 오빠. 저 남자가 입고 있는 옷. 청담동 명품 편집샵에서만 파는 거야. 돈은 충분히 많이 버는 거 같은데······.”
“헉! 정말이야?”
“내가 명품 하나는 기가 막히게 보잖아. 확실해. 백프로야.”
“크흠······.”
연봉 공격은 하지 않는 것이 좋아 보였다.
김성오가 다시 한번 소리쳤다.
“우리 호텔 요리 얼마나 맛있는지 다들 몰라? 인터넷 잠깐만 검색해도 알 텐데? 레벨 높은 거랑 요리 실력이랑 비례하는 건 아니지! 고작 푸드트럭 요리사랑 5성급 호텔 요리사랑 만드는 요리 수준이 같겠냐?”
“하, 네 맘대로 생각해라. 근데, 너 학교 다닐 때도 실기에서 나한테 맨날 지지 않았냐?”
왕호의 묵직한 팩트폭행에, 김성오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때는 그때고! 지금 나는 호텔 셰프라고! 안 되겠다. 지금 당장 뜨자?”
“맞짱 뜨자고? 뭐로?”
“뭐긴 뭐야? 요리지! 대학 때 실기한 것처럼, 요리 해서 블라인드 테스트받자고!”
“요리를? 여기서? 여기 주방이라도 빌리게? 너무 민폐 아니냐?”
“밖에 네 트럭 있잖아. 거기서 요리하면 되잖아!”
푸드트럭 소리가 나오자, 왕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거, 판이 너무 커지는데?’
솔직히 더 이상 장단 맞추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이런 애들 장난해서 이긴다고 해도, 얻는 것은 하나도 없다. 지면 엄청나게 쪽팔리는 거고.
“아, 됐다. 우리가 무슨 학생이냐? 유치하게시리···”
“쫄았냐? 네 홈그라운드에서 해준다는 데도 꽁무니 빼네. 수지가 네 쉴드 쳐줬는데, 그냥 내빼는 거냐? 쯧쯧, 수지 보기 쪽팔리지도 않나 보네.”
빠직-
왕호의 이마에 핏줄 하나가 솟아오른다.
김성오의 거드름이 예전과는 급이 달라질 정도로 심해졌다.
수지까지 꺼내며 저러니, 나서지 않을 수가 없다. 안 나서면 진짜 호구 취급받을 것 같았다.
“알았다. 지고 나서 내 트럭 때문이라고 변명이나 하지 마라.”
“흐흐, 네 주방에서 해도 내 마법 요리면 네까짓 요리는 그냥 쌈 싸 먹지.”
왕호는 한심한 눈으로 김성오를 쳐다보았다.
‘나이 먹어도 철이 안 드냐 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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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좋은 구경거리가 생겨났다.
식당에서 1차를 마친 친구들은, 왕호네 밥차 앞에 우르르 몰려나와 있었다.
빅 매치의 사회는 종구가 맡았다.
“둘 다 전공이 이탈리아니까, 주제는 파스타. 두 명이 합의 본 거고, 재료는 요 앞 마트에서 사 오는 걸로 하자. 공평하지?”
끄덕끄덕-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여 찬성을 표했다.
“기타 재료랑 도구는 트럭에 있는 걸로 쓰기로 합의 봤고, 요리 시간도 통일할까?”
“난 상관없어.”
왕호는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나야말로 전혀 상관없지! 오히려 5분 더 줄 수도 있다!”
김성오도 지지 않고 소리쳤다.
“오케이! 그럼 블라인드 테스트로 진행할 거고, 우리는 보면 안 되니까 따로 방 잡아서 들어가 있으면 될까?”
합리적인 제안이었지만, 김성오가 거부했다.
“아니, 나는 얘 못 믿지. 따로 신호를 줄 수도 있으니까, 미리 만들어 놓고 길거리 손님들한테 물어보자.”
“의심도 많네. 나는 상관없어.”
친구들의 입장에선 김성오의 제안이 오히려 더 반가웠다.
“오오, 그럼 요리과정 다 볼 수 있잖아. 앗싸, 개이득~!”
“이야, 진짜 재밌겠다. 나는 왕호한테 한 표!”
“그래도 호텔 셰프인데 이번엔 성오가 이기지 않을까?”
친구들의 응원을 뒤로 한 채, 두 사람은 원하는 재료를 구입하러 마트에 들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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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호가 가져온 재료는 너무도 간단했다. 파스타 면과, 레몬 하나, 그리고···
“명란젓?”
종구가 놀랐다.
“금요일이라 시식해보라고 하더라고, 명란젓이 탱탱하니 실하던데?”
“오~ 그럼 명란젓 파스타인가?”
그에 반에 김성오는 일반적인 크림 파스타 재료를 사 왔다.
“성오는 까르보나라?”
“흐흐, 제대로 된 까르보나라 맛을 보여줄게. 꼭, 후달리는 애들이 저런 무리수를 둬요. 지고 나서 재료 탓 할려고 저러지 쯧쯧.”
‘어휴, 저놈의 주둥이를···’
실로 꿰매버리고 싶지만, 유치한 대결을 이기면 자동으로 닫힐 게 뻔하니 그냥 놔뒀다.
트럭은 좁았지만, 둘이서 요리할 정도로는 충분하다.
요리가 시작됐다.
왕호는 냄비를 꺼내 물을 콸콸 붓고, 가스불 위에 냄비를 올렸다.
솔솔솔-
물속에 소금을 집어넣고, 팔팔 끓인다.
보글보글-
물이 끓자, 파스타 면에 탄력을 살짝 넣어 부채꼴 모양으로 펼쳤다.
김성오도 면을 먼저 삶아놓는 순서는 똑같았지만, 한 가지가 달랐다.
“파이어!”
마법으로 불을 뿜어, 파스타를 삶았다.
화르륵-
마법사 스타 셰프들이 무조건 보여준다는 퍼포먼스다.
“우오오!!!”
“와, 성오 지린다.”
“완전 다니엘 킴 뺨치는데?”
구경하던 몇몇 친구들이 물개 박수를 보냈다.
왕호는 그런 쓸모없는 퍼포먼스에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명란젓을 꺼냈다.
통통하게 잘 익은 명란젓을 도마에 올리고는, 식칼로 스윽- 껍질을 가른다.
그리고 칼의 옆면으로 알만 삭삭 긁어내어, 보울에 담았다.
거침없지만 부드러운 손놀림!
빠르지만 결코, 대충대충 하지 않는다.
“와~ 왕호 칼솜씨 오지네······.”
“원래 저 정도였나? 더 는 거 같아.”
“미쳤네··· 우리 가게 수 셰프보다 잘하잖아?”
왕호가 칭찬세례를 받자, 김성오가 이를 바득바득 갈며 요리에 집중했다.
왕호는 프라이팬을 달구고, 버터 한 조각을 팬 위에 올렸다.
치이이-
버터가 순식간에 녹는다.
녹은 버터 물을, 명란이 담긴 보울 속으로 투하! 주르륵-
만능 간장도 살짝 뿌렸다.
그리고, 도마 위에 싱싱한 레몬을 올린다.
서걱-!
반으로 자른다.
반으로 잘린 레몬을 그대로 손으로 쥐어짜, 레몬즙까지 뿌려 넣었다.
이제, 재료들이 잘 섞이게 스푼으로 슥슥- 비빈다.
끝.
너무도 간단하게 명란 소스가 만들어졌다. 이제 여기에 삶은 면을 버무리기만 하면 요리가 완성된다.
9할의 요리를 마친 왕호는, 면이 삶아지길 기다리며 팔짱을 꼈다. 그리고 느긋하게 김성오의 요리 장면을 지켜봤다.
“헉! 왕호 벌써 끝낸 거야?”
“쟤 손 왜 이렇게 빨라?”
“아니, 무슨 자취 요리 만들어? 드라마 중간광고 끝나기도 전에 만들어버리네.”
지켜보는 친구들뿐만 아니라 김성오도 엄청나게 당황했다.
“야! 너 어차피 질 거 대충 만드는 거 아니지?”
“됐고, 네 요리나 신경 써라. 이마에 흐르는 땀이나 좀 닦고. 마법으로 면을 익히니까 땀이 나지. 마나 안 모자라냐?”
“시, 신경 꺼!”
김성오의 손이 빨라진다. 계란 노른자와 치즈를 베이스로 한 정통 까르보나라 소스를 만들고, 베이컨도 빠르게 볶았다.
그래도 호텔 짬이 있는 터라, 요리 과정이 나쁘진 않았다.
적탐안을 통해 본 면이 잘 삶아지자, 왕호는 김성오에게서 신경을 거두고 요리의 완성에 집중했다.
집게로 면을 건져내, 명란 소스가 있는 보울 위로 집어넣었다.
그리고 슥슥- 잘 버무렸다.
예쁜 그릇을 꺼내 파스타 면을 둥글게 잘 올리고, 플레이팅에 들어갔다.
탕탕탕탕-
도마 위에서 쪽파가 송송 썰린다.
조미 김도 얇게 썰었다.
완성된 파스타 위에 아기자기한 쪽파와 잘려진 김을 올려 데코레이션을 마무리했다.
버프를 부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일반 재료만을 써도, 피로회복같은 아주 기본적인 버프는 걸린다. 여기에는 만능 간장도 살짝 들어갔다.
입맛을 돋우는 버프를 걸어버렸다.
‘쟤도 마법 썼으니, 반칙은 아니겠지 뭐.’
< 벼락스타 (3) > 끝
ⓒ 신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