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웅은 가까운 곳에 있다 (3) >
아직 브레이킹 타임이지만, 눈앞의 히어로를 위해 기꺼이 요리해줄 생각이다.
방금 해체를 마친 양고기를 꺼내,
슥- 슥- 슥-
미트볼 크기 정도로 두툼하게 깍뚝썰기했다.
달그락-
새로 제작한 예쁜 마나석 냄비도 꺼냈다.
살짝 넓은 형태의 스튜용 냄비다.
이 마나석 냄비에서 전부 조리해, 그대로 제공할 거다.
한 냄비에서 모든 조리과정이 끝나는 간단한 모로코식 요리법이다.
딸깍-
스스로 달궈지는 기능이 있기에, 버튼 한 방에 순식간에 냄비가 달궈진다.
그 위로 올리브유를 슉슉- 뿌린다. 올리브유 또한 순식간에 뜨거워진다.
이제 냄비 속으로 썰어놓았던 양고기를 투하!
치이이익-
뜨거운 올리브유로 양고기가 빠르게 구워진다.
신선한 양고기는 겉면이 갈색이 되도록, 살짝만 구울 생각이다. 어차피 스튜 요리다. 나중에 다시 끓일 거다.
왕호는 양고기를 뒤집어가며 골고루 데치기 시작했다. 육면 六面이 살짝 익게끔 말이다. 그러면서, 정찬우에게 말을 건넸다.
“많이 힘드셨겠습니다. 그럼, 시간 날 때마다 저향력 올리시려고 여기 오시는 겁니까?”
“예. 오늘도 비번이라 짬 내서 왔습니다. 레벨도 올리고, 저항력도 올리고 일석이조입니다. 일부러 화염 계열 몬스터만 찾아다니고 있죠. 게다가 마나석 팔면 돈 좀 만질 수 있잖습니까. 이걸로 소방관들 장비 바꿔주고 있습니다.”
“와아, 진짜 대단하십니다. 어쩌다 소방관 일을 하시게 된 겁니까?”
“하하, 처음엔 그저 멋있어서 지원했었습니다. 공무원이기도 해서 고민할 게 없었죠. 공무원은 철밥통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근데, 막상 들어가 보니 상황은 열악 그 자체였죠. 사이렌이 울리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불구덩이로 출동합니다. 산소통과 방화
복 장비를 다 착용하면, 몸에 짊어진 무게만 30킬로가 넘죠. 방화복을 입어도, 불길 속으로 들어가면 피부 표면이 40도가 넘어갑니다.”
왕호는 정찬우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찌푸려지는 미간을 통제할 수 없었다. 말로만 들었음에도 힘들기 그지없었다. 상상만 해도 땀이 절로 흐를 정도다.
정찬우는 왕호네 밥차 특유의 손님들처럼, 계속해서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1,800도의 불타는 구덩이에 들어가 보신 적 있으십니까? 저희도 빨리 나가고 싶습니다. 우리도 사람입니다. 무섭습니다. 어쩌다 소방관 일을 하게 됐냐고 물으셨죠? 그 지옥 같은 불구덩이 속에서도, 작고 희미한 외침이 들려옵니다.
[아저씨, 살려주세요] 살고자 하는 이 작은 생명을 가까스로 구했을 때 느껴지는 안도감이, 제가 소방관을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구하지 못할 때도 있을 것 같은데, 그때는 어떻게 버팁니까?”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죠. 메케한 연기로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상황에서, 갓난아기를 구해야 했습니다. 손을 더듬어가며 아기를 꽉! 움켜쥐었죠. 재빨리 현장을 빠져나와서 확인해보니, 이미 불에 타서 새까매져 있더라고요. 제 아이도 아닌데 억장이 무
너져내리덥니다. 조금만 빨랐다면··· 조금만 빨리 왔더라면··· 구해낼 수 있었을 텐데 하고요. 소방관들 중에 이런 트라우마 없는 사람은 아마 찾기 힘들 겁니다. 하지만 그 트라우마보다, 구해냈을 때 다가오는 안도감이 훨씬 크기에 뿌듯한 마음으로 불길에 다
시 뛰어드는 것이죠. ···생명은 말입니다. 그 뜨겁다는 화마보다도 더 뜨겁습니다. 그 뜨거운 생명을 등에 업을 수만 있다면, 연옥이라도 망설임 없이 뛰어들어갈 겁니다.”
왕호는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눈앞에 있는 이 소방관이야말로 구도자라고.
구도자의 마음가짐으로 임해야지만 버텨낼 수 있는 것이, 이 소방수라는 직업 같았다.
리스펙respect!
이 말은 힙합 할 때가 아니라, 지금 써야 딱 맞을 듯싶었다.
치이이익-
양고기가 다 데쳐졌다.
살짝 구운 양고기들은 따로 빼놓았다.
고기를 빼내자, 냄비 속에는 올리브유와 양고기에서 나온 양기름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왕호는 이 기름을 다시 사용할 생각이다.
적양파 하나를 꺼내 도마 위에서 썰기 시작했다.
탕- 탕- 탕- 탕-
적양파가 아름답게 채썰린다.
이 양파는 ‘왕호네 농장’에서 수확한 몬스터양파다. 마나 캐퍼서티가 가득할 뿐만 아니라, 맛과 향도 훨씬 뛰어나다.
채썬 양파는,
치이익--
냄비에 있는 기름 위에 넣는다. 그리고 그대로 볶는다.
그 위로 기깔나게 시즈닝을 한다. 소금을 솔솔- 뿌리고, 다진 마늘을 넣는다.
양고기 특유의 잡내를 잡기 위한 향신료 가루도 뿌린다. 생강 가루와 코리엔더 가루를 넣는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파프리카 가루도 솔솔솔솔- 뿌린다.
다음으로는 허브 큐민 씨, 회향 씨, 시나몬 스틱, 월계수 잎을 넣는다.
마지막으로 샤프란을 살짝 넣어주면 모든 향신료가 다 들어간다.
지글지글--
재료의 향이 듬뿍 우러나오도록 휙휙- 잘 볶아준다.
쭈우우욱-
여기 위에 만능 토마토 퓨레 소스를 듬뿍!
‘양고기만 있으면 심심하니까.’
슬쩍-
왕호는 농장에서 가져온 또 다른 작물을 꺼냈다.
큼지막한 고구마다.
그것도 그냥 고구마가 아닌 호구마··· 아니, 호박고구마다.
껍질을 감자칼로 슥슥- 벗겨낸 다음,
탕- 탕- 탕-
깍둑썰기로 예쁘게 썰었다.
엄마표 카레에 들어갈 만한 큼지막한 크기로 썰어냈다.
후두둑-
보글보글 끓고 있는 토마토소스 위로, 깍뚝썬 고구마와 아까 데친 양고기를 거침없이 넣는다.
달콤한 식감을 위해 두툼한 건포도와 말린 프룬도 함께 넣어준다.
그리고 육수를 콸콸- 부어준 뒤, 뚜껑을 닫고 2시간 정도 푸욱 끓이면 완성이다.
참고로 이 육수는 포션 육수와 레드혼 사골 육수를 1:1 비율로 넣은 육수다.
2시간 푹 끓이면 맛도 좋아짐은 물론이거니와, 요리의 향 또한 더 풍부하고 깊어진다.
무려 2시간을 우려야 하지만, 지금 이 냄비는 보통 냄비가 아니다. 마도구 냄비다. 시간단축 기능이 달려있다.
시간을 빨리 돌려버리는, 말도 안 되는 방식은 아니다. 그런 기술은 아직 상상 속 이야기에 불과하다. 그저, 냄비 속 재료의 성분을 빨리 우릴 수 있게 만들 뿐이다.
이렇게 해서, 두 시간 걸릴 작업을 10분이면 끝낼 수 있게 만든다.
왕호는 요리가 잘 끓기를 기다리며, 다시 말을 붙였다.
“아까 사비로 장비를 교체한다고 하셨죠? 왜 이렇게 지원이 미비할까요? 사람들의 관심이 부족한 걸까요?”
“그건 아닙니다. 국민들의 93%가 가장 신뢰하는 직업 1위로 소방관을 뽑았더라고요. 구해주면 감사 인사도 많이 받습니다. 물론, 가끔가다 이상한 분들도 계시긴 하지만요···. 그냥 탁상행정의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거룩한 직업이다, 봉사하는 마음가짐으로
임해라 하면서 소방관들 목숨은 파리 취급하죠. 생명수당은 오르고 있긴 한데, 아직 10만 원도 채 안 됩니다. 매년 6명이 죽고, 300명이 넘게 부상당하는 데 말이죠. 덕분에 평균수명은 60세도 못 찍습니다.”
“하, 저도 세금은 꼬박꼬박 내는데 쓸데없는 곳에나 좀 안 썼으면 좋겠네요. 이런 곳에 팍팍 투자해야지 원···. 미국만 보더라도, 군인이나 소방관 대우는 끝장나게 해주지 않습니까.”
“하하, 그러게나 말입니다. 소방관들이 염원하는 게 있다면, 낡은 사다리 하나 바꾸는 것일 겁니다. 소방용 장갑도 대부분이 낡아서 위험한데 어쩔 수 없이 계속 쓰고 있죠.”
정부에서 잘 바꿔주지 않으니, 정찬우도 직접 발품 팔아서 사비로 바꾸고 있는 수준이었다.
처우는 열악하기 그지없었지만, 그래도 정찬우는 소방관이라는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무척이나 대단했다.
“가끔 이런 말도 듣습니다. 무모하다고. 자기 목숨 아까운지 모르고 불나방마냥 불길 속으로 뛰어든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그건 진짜 하나도 모르고 하는 소립니다. 우리 소방관들은 누구보다도 자신의 목숨을 중요시합니다. 매번 출동할 때면 이렇게 기도
합니다. ‘두 사람’을 구할 수 있게 해달라고 말이죠. 내 등에 업은 ‘한 사람’과, 그리고 ‘나 자신’을. 내 목숨을 잃으면 다른 사람을 구하지 못하니까요.”
그렇게 자부심 넘치게 말한 정찬우는, 왕호에게 자신의 탁자 위에 올려놓은 시 한 구절을 읊어주었다.
<신이시여!
아무리 강렬한 화마 속에서도
한 생명을 구할 힘을 저에게 주소서!
늦기 전에 어린아이를 감싸 안게 하시고
공포에 떨고 있는 노구를 구하게 하소서!
그리고 신의 뜻에 따라 제 목숨이 꺼진다면
남은 아내와 가족에게 은총을 내려주소서!>
영웅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언제나 우리 곁에 같이 숨 쉬고 있었다.
어느덧, 요리가 다 완성됐다.
왕호는 다 끓은 양고기 스튜 위에, 신선한 파슬리 가루를 데코레이션 해서 요리를 마무리 지었다.
모락모락-
뜨거운 김이, 선선해져 가는 가을 공기를 따뜻하게 적신다.
고구마를 곁들인 환상적인 모로코식 양고기 요리, 모로칸 램 스튜Moroccan Lamb Stew가 완성됐다.
특성 버프 부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러자,
띠링-!
[힐링 요리 “불길을 제압하는 모로칸 플레임 램 스튜”가 완성되었습니다.]
[전 스탯이 1씩 상승합니다.]
[지금까지 완성한 힐링 요리의 숫자 : 7]
[경험치가 대폭 상승하였습니다.]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불길을 제압하는 모로칸 플레임 램 스튜-
[각성 소방관 “정찬우”을 위한 요리. 뜨거운 불길을 제압하고 사람들을 안전하게 구하라는 요리사의 기특한 마음이 담겨있다.]
[갓 도축한 신선한 플레임 양고기를 사용했다. 잡내를 완벽히 잡았다.]
[두 시간 동안 끓여 맛이 한층 깊어졌다. 육질 또한 매우 부드럽다.]
[마나가 듬뿍 담긴 양파와 달달한 호박고구마를 곁들였다.]
[마나 캐퍼서티가 가득한 육수를 사용했다.]
[포션 육수를 사용해, 치유 효과가 강화됐다.]
[효과 : 특성 ‘불 친화력’의 영향으로 불에 대한 면역력이 올라갑니다. 화상을 잘 입지 않습니다. 뜨거운 불에서도 장시간 버틸 수 있습니다. 맷집이 15% 상승합니다. 지구력이 15% 상승합니다. 최대체력의 10%가 1분 동안 상승합니다.]
[버프 : “힘을내요 불꽃파워”가 발동됩니다.]
[힘을내요 불꽃파워 – 버프가 발동되면, 화염 저항 오오라가 생성됩니다. 오오라가 미치는 범위에는 화염이 잘 들어오지 않습니다. 오오라의 반경은 5미터입니다. 매우 강력한 화염 공격을 받을 경우, 오오라가 깨질 수도 있습니다. 버프의 지속시간은 한 시
간이며, 원할 때 발동할 수 있습니다. 한 번 해제하면 다시 발동시킬 수 없습니다. 24시간 동안 발동되지 않으면, 이 버프는 자동으로 사라집니다.]
특성이 부여된 힐링 요리가 만들어졌다.
왕호는 활짝 웃으며, 요리를 냄비 채로 정찬우에게 제공했다.
“와아아···”
맛있어 보이는 비주얼을 보자, 정찬우가 감탄한다.
버프에 대한 기대감뿐만 아니라, 맛에 대한 기대감도 잔뜩 올라올 정도였다.
정찬우는 수저를 들어, 자글자글한 국물을 살짝 떠올렸다.
그 위에, 부드럽게 잘 익은 양고기 한 점과 달달한 호박고구마 한 점을 더했다.
그리고 그대로 앙-!
우걱우걱-
양고기의 맛깔나는 육향이 그대로 전달된다. 특유의 잡내는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다. 입으로 같이 들어오는 고구마와 살짝 씹히는 건포도의 식감 또한 기가 막힌다.
‘으어어 맛있어···!’
주르륵-
정찬우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맛의 감동도 감동이었지만, 적용되는 버프를 보자 도저히 눈물을 쏟지 않을 수 없었다.
화염 저항력이 상승하고, 화상을 잘 입지 않는단다. 불에 대한 면역력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이 버프만 있으면··· 사람들을 좀 더 안전하게 구하고, 동료들이 다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지금 당장에라도, 불길에 휩싸인 곳으로 뛰어가고 싶었다.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하는 바로 그곳으로 말이다. 이번엔 맨몸으로 들어가도 멀쩡할 것만 같았다.
“사장님! 정말로··· 버프가 걸렸습니다! 그것도 불에 대한 버프가요!”
“저도 혹시나 했는데 정말 다행입니다. 과자로 만들면 힐링 버프는 아니더라도, 화염 저항 버프는 충분히 부여할 수 있을 겁니다.”
“오오오! 만들어만 주시면, 제가 일주일마다 와서 잔뜩 사가겠습니다! 전국 소방관들에게 아주 큰 힘이 될 겁니다.”
“살 필요 없으십니다. 제가 그냥 제공하겠습니다. 전국 소방서에 다 나눠주려면 여유 있을 때마다 만들어놔야겠네요.”
“헛! 저, 정말이십니까?”
“뜨거운 불길 속에서 고생하시는데, 이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죠.”
“그럼 제가 사장님 시민상이라도 받게끔 강력히 추진하겠습니다!”
“아뇨아뇨!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찬우님께서 다른 분들에게 따로 전해주세요. 제가 줬다는 사실은 이야기하지 마시고 익명으로요. 부탁드립니다.”
왕호는 절레절레- 손사래 치며 말했다.
“아니 이 좋은 일을 어찌···”
정찬우의 눈에서 감동이라는 것이 뚝뚝 떨어졌다.
왕호가 익명으로 부탁하는 이유는 별거 없었다. 원래 좋은 일은 남몰래 해야 마음이 편하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이 그냥 나왔겠나.
그리고 괜히 소문나면, 베베 꼬인 사람들 때문에 괜히 오해받을 수도 있다. 홍보용이라고 폄하받는다.
“이참에, 소방관 헌정 메뉴를 따로 만들어야겠습니다. 수익금 절반을 장비 교체하는데 기부한다고 하면, 좋은 사람들이 많이 사 먹을 겁니다. 요리 받으러 오실 때, 이것도 모아서 드리겠습니다.”
“허허허, 아직도 이런 청년이 있다니, 세상 사는 보람이 있습니다.”
“아닙니다. 이건 매출도 같이 올라가는 거니 그리 띄워주지 마세요. 제 사리사욕 채우려는 겁니다. 엇, 음식 퍼지겠습니다. 일단 맛있게 드세요!”
“예. 고맙습니다. 아주 맛있습니다. 제가 여태까지 먹은 요리 중 으뜸입니다. 그럼, 잘 먹겠습니다!”
정찬우는 왕호를 기특한 눈으로 한 번 바라보고는, 맛있는 양고기 스튜를 마구 흡입하기 시작했다.
왕호는 모르고 있었지만, 정찬우는 이 좋은 일을 어찌해서든 널리 알릴 생각이었다. 그것도 임팩트가 가장 커질 때 말이다.
‘좋은 일은 남모르게 하는 게 아닙니다 사장님.’
우적우적-
그나저나 진짜 맛있는 요리다.
< 영웅은 가까운 곳에 있다 (3) > 끝
ⓒ 신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