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웅은 가까운 곳에 있다 (2) >
변태남은 왕호에게서 도저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우지끈-!! 풀썩-
콰자작-!! 털썩-
까앙-!! 풀썩-
촤아악-!! 털썩-
공격이 얼마나 강했던지, 레벨 160대의 몬스터들이 한 방 한 방에 추풍낙엽처럼 쓰러진다.
‘고, 고랭커인가?’
레벨 2, 300대라면 아마 가능할법한 위력이다.
하지만 굳이 왜?
고랭커가 중급 던전에 와서 양학을 한다?
그럴 이유가 전혀 없다.
게다가 자세히 살피니, 아까 던전 앞에서 버프 요리를 만들어 팔던 푸드트럭 사장님이 분명했다.
아무래도 고랭커는 아닌 듯 싶었다.
그렇다면, 그냥 전투 센스와 힘이 엄청난 걸로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화염 공격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받아내고 있어!’
이건 솔직히 납득하기 힘들었다.
자신은 모종의 이유로 화염에 저항하고 있었고, 충분히 그럴만한 능력도 가지고 있었다
허나, 단순 요리사가 이토록 뜨거운 화마를 아무렇지 않게 견뎌낸다?
‘분명 어떤 비법이 있을 거야!’
변태남의 눈이 불꽃처럼 불타올랐다.
반드시 그 비법을 알아내야 한다.
알아내기만 한다면··· 수많은 사람들을 구해낼 수가 있다.
“흣챠!”
왕호는 쓰러진 몬스터들을 배낭안에 차곡차곡 쌓고 있었다. 변태남이 자신을 주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후후, 순조롭군.’
관장님과 약조한 3주의 시간도 거의 끝나간다. 중검의 숙련도를 빨리 100%까지 올려야 하는 상황.
-브로드 스마이트는 독일의 카츠발게르 검식을 베이스로, 하북팽가의 오호단문도 도법 刀法의 묘리를 융합한 초식이다. 열심히 수련해서 3주 안에 숙련도 100%를 만들어 오도록!
관장님의 이 단호한 목소리를 3주 내내 잊어본적이 없다.
미션을 완수하기 위해 무조건 이 초식만을 사용했다. 버프 요리로 마나를 꽉꽉 아껴고, 프라이팬까지 휘둘러가며 말이다. 이번에도 다희가 많이 도와준 터라, 오늘에서야 드디어 해낼 수 있었다.
[“중검 – 브로드 스마이트”의 숙련도가 100%로 상승하였습니다.]
‘예쓰!’
하지만 해냈다는 기쁨도 잠시, 새로운 초식을 또 익혀야 한다는 공포감이 왕호의 머리를 장악했다.
“에이씨, 돌아가서 요리에나 집중하자.”
왕호는 고개를 절레절레 휘저으며, 던전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그런 왕호의 뒤를 변태남이 조심스레 좇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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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장 발골!’
슥- 슥-
아주 뛰어난 고유 스킬 덕에, 양고기가 깔끔하게 해체된다.
살의 손실률은 지극히 적었으며, 작업도 지저분하지 않고 깔끔했다. 숙련도가 오르면 오를수록 좀 더 정교하고 좀 더 빨라진다.
‘혹시 살아있는 몬스터에게도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도 해봤다.
불가능하지는 않아보였다.
이렇게만 되면 살아있는 몬스터의 뼈와 살을 분리해내거나, 살만 잘 발라낼 수 있을 거다.
‘하지만 굳이 그럴 이유는 없잖아?’
그냥 함무라비 스킬들로 깔끔하게 보내버리는 게 낫다. 불편하고 비효율적인 방법을 힘들게 사용할 필요는 없으니까. 내가 무슨 변태도 아니고 말이다.
해체하다보니, 어김없이 마나석도 튀어나온다. 얻어낸 마나석은 따로 보관했다.
많이모으면 모을수록 좋은 마도구를 제작할 수 있다.
‘칼도 한번 바꿔볼까?’
오래된 발골용 칼을 바라보고 있자니, 충동구매 욕구가 강하게 인다.
아니지.
요새 돈 좀 만진다고, 허튼 곳에 돈을 쓸 수야 없지.
지금은 장미칼로도 충분하다.
사실 마나석 뚝배기 같은 것도 굳이 필요 없지만, 일단 구입은 해놓았다. 에셰코 나가서 사용할 수도 있으니까.
시간단축 기능이 달린 육수용 냄비는, 사골 우릴 때 요긴하게 쓰고 있다.
엊그제는 무려 2주간 모아놓은 마나석을 탈탈 털어, 오븐도 바꿨다. 인챈트 비용도 거하게 투자했다. 이제는 사은품으로 받은 하급 오븐이 아닌, 제대로된 기능 빵빵하게 갖춘 마나석 오븐으로 환골탈태했다.
나동수가 도와줬기에 그나마 이 정도로 싸게 맞출 수 있었다. 업체 통해서 직접 주문제작 했으면, 아마 두세 배는 더 들었을 거다. 게다가 퀄리티 부분에서도 훨씬 떨어질 것이 자명하다. 나동수보다 뛰어난 인챈터는 존재하지 않으니까.
그렇게 잡생각에 빠져 재료 손질에 열중하고 있을 즈음,
저벅저벅-
누군가가 트럭 앞으로 찾아왔다.
왕호는 인기척을 느끼고는, 아직 고개를 들지 않은 채 말을 꺼냈다.
“죄송하지만 아직 영업 준비중입니다. 30분만 기다렸다가 오시겠습니까?”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들자, 뜻밖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
방금 보았던 그 변태남이다.
변태남은 굳은 표정을 지으며, 왕호의 말에 대답했다.
“사실은···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다른 이였다면, 양해를 구하고 재료 손질에 집중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눈앞의 사람은 호기심이 한 번 일었던 존재다.
“어떤 것이 궁금하십니까?”
왕호는 재료손질 속도를 살짝 늦추며 되물었다.
이런 가벼운 멀티태스킹이야 이제 일도 아니다.
“방금 사장님이 사냥하시는 모습을 우연하게 목격했습니다. 정말 대단하시더군요.”
“제 사냥을요?”
‘그쪽이 더 대단하던데요?’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겨우 참아냈다.
“예. 한가지 이해가지 않는 점이 있어서 이렇게 찾아오게 됐습니다.”
“어떤 건가요?”
‘중검의 초식을 알아본 건가?’
몬스터들을 아주 끔찍하게 때려잡다시피 했으니, 예사 스킬이 아닌 것을 눈치 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변태남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왕호의 예상 밖이었다.
“어떻게 그렇게 화염 공격을 잘 버텨내시는 겁니까?”
“네? 화염 공격이요?”
“예. 무슨 비결이 있으신 거 같은데, 혹시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저한테 꼭 필요한 겁니다. 아니, 저 말고도 필요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변태남이 한층 절박해진 목소리로 애걸했다.
화염 공격을 잘 버티는 비결을 알고 싶다?
그리고 그 비결이 필요하다?
굳이 왜?
그렇다면, 아까는 면역력을 키우기 위해 일부러 불을 얻어맞고 있던 건가?
“비결이요? 그럼, 플레임 쉽의 공격을 그냥 받아내고 있던 것도 혹시··· 아! 저도 우연치 않게 목격했습니다. 오해하진 마세요.”
“아, 보셨습니까? 맞습니다! 화염 저항력을 올리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계속 견뎌내고 있다보면 오르거든요.”
“저항력이요?”
“예. 제가 가지고 있는 특성입니다.”
화염 저항력 특성?
왕호의 관심이 더욱 짙어졌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불 친화력’ 특성과 비슷했지만, 이것은 친화력이 아닌 ‘저항력’이다.
“고렙 레이드 대비해서 올리고 계신 건가요? 화염 계열 레이드 뛰시려구요?”
“레이드 뛰려는 목적은 아닙니다. 저는 사실··· 구로소방서 정찬우 소방위입니다.”
변태남의 정체는 소방관이었다. 그것도 각성한 소방관.
“헙! 그럼 화재 진화를 위해 저항력을 올리고 계셨던 겁니까?”
“예. 저는 그나마 각성했기에 저항력을 올릴 수라도 있지, 다른 소방관들은 꿈도 못꾸는 일입니다. 그저 장비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죠.”
왕호는 정찬우 소방관을 죄송스러운 눈으로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 숭고한 사정도 모르고 변태남이라고 오해를 했으니······.
“각성하셨는데, 아직도 소방관으로 일하시는 거예요? 대우가 그리 좋지 않다고 들었는데···”
“하하하, 안 그래도 마누라가 당장 때려치고 길드에나 들라고 구박합니다. 어차피 위험한 건 매한가지라나? 헌데, 그럴 수가 있나요. 소방관으로 죽기로 다짐했으니, 두 다리 붙어있는 한 불길 속으로 뛰어들어야죠. 제가 각성했다고 딴 길로 새면, 시민들은
누가 지킵니까.”
“와··· 존경스럽습니다.”
왕호는 정찬우를 존경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었다.
각성을 했음에도, 입신양면 마다하고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고 있지 않나.
좀 더 대화를 나눠보니, 많은 사정을 들을 수 있었다.
정찬우의 클래스는 그래플러.
기본적으로는 탱커이지만, 딜을 어느정도 할 수 있는 딜탱포지션이다. 그러니, 플레임 쉽의 척추도 단번에 꺾어버릴 수 있었던 것이겠지.
그래도 정찬우가 레이드를 뛰는 목적은 단 하나다. 뜨거운 화마 속에서 국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더 안전하게 지키기 위함이다.
레벨을 올리면 체력이 오른다. 체력이 오르면, 불길 속에서도 더 오래 버틸 수 있다.
몬스터에게 맞다보면 맷집이 오른다. 맷집이 오르면 더 단단히 버틸 수 있다.
힘이 오르면 30키로가 넘는 출동 장비를 거뜬히 짊어질 수 있다.
민첩이 오르면 더욱 빠르게 사람들을 구할 수 있다.
그리고 딜탱 포지션으로 얻게 된 이 특성.
[화염 저항력]
이 특성이 있었기에, 섭씨 1,800도가 넘는 불길에서도, 오랜시간 굴복하지 않을 수 있었다.
.
.
“불 친화력이요?”
왕호의 말을 듣고 정찬우가 놀랐다.
1단계의 수치만으로, 플레임 쉽의 브레스를 아무렇지 않게 버텨냈다? 왕호의 설명만 들었을 때는, 저항력보다 상위의 특성인 듯싶었다.
아무래도 저항하는 것보다 친해지는 것이 더 상위개념일 테니 말이다.
“예. 해서, 제가 딱히 알려드릴 수 있는 비법은 없네요··· 죄송합니다.”
“아이고! 아닙니다. 염치불구하고 물어봤는데, 대답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정찬우가 손사래치며 말했다.
왕호의 마음이 왠지 모르게 조금 무거워졌다.
저렇게 애 쓰시는데, 뭔가 도와드리고 싶었다.
‘아!’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이 일자, 자연스레 기막힌 방법 또한 떠올랐다.
“소방관님! 제가 지금 버프 요리를 팔지 않습니까. 이걸로 작게나마 도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 음··· 체력 버프나 힘 버프가 있으면, 도움이 되긴 하겠네요. 하지만 저희는 평균 30분마다 출동해야 합니다. 매번 이 요리의 효과에 기댈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사장님은 던전에서 요리를 팔잖습니까.”
“걱정 마세요. 디저트로도 버프가 걸리니까요. 과자를 만들어서 출동 전에 드시면 될겁니다. 버프의 평균 지속시간도 6시간 정도 되니, 미리 드셔놓으면 아마 요긴할 겁니다. 그리고 이게 가장 중요한 건데··· 사실, 스탯만 올려주는 버프만 있는 게 아닙니다.”
“예?”
“아직 만든 적은 한 번도 없는데, 불 친화력 특성을 버프에 적용할 수도 있습니다.”
“헉! 그게 정말입니까?”
정찬우의 눈이 희망으로 가득 빛났다.
사실이다.
왕호의 버프 부여 스킬 중에는, “특성 버프 부여”도 존재한다. 지금 왕호가 가진 특성은 두 가지. 불 친화력과 독 친화력.
즉, 이 두 가지 특성을 요리에 부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친화력 자체가 부여될지는 확실히 모르겠다. 한 번도 만들어 본 적이 없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제가 우리 영웅님을 위해, 제대로된 특성 버프 요리를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아이고, 영웅이라뇨.”
“선생님께서 영웅이 아니면 누가 영웅이랍니까. 자신의 소중한 목숨 바쳐가시며, 위험에 빠진 사람들을 구해내지 않습니다. 영화에 나오는 슈퍼 히어로들은 멀리 있는 게 아닙니다. 선생님 같은 분들이야말로, 저희들의 어벤져스나 다름 없습니다.”
왕호의 말에, 정찬우가 몹시도 뿌듯해 했다.
아마 이 뿌듯함 때문이라도, 소방관을 관둘 수 없었을 거다.
‘모로코식으로 만든 양고기 요리가 좋겠네.’
갓 해체한 신선한 양고기와 고블린 농장에서 가져온 몬스터채소를 이용해, ‘모로칸 램 스튜’를 만들 거다.
불 친화력 특성 듬뿍 넣어서 말이다.
만약 이 새로운 버프 요리로 인해, 불에 대한 저항력이 크게 생길 수만 있다면···
정말로 두고두고 먹을 수 있는 버프 과자를 만들어, 전국 소방서에 제공할 용의가 있다. 그리고 이건 당연히 무료 봉사다. 자선 사업가는 아니지만, 베풀 때는 확실히 베푼다.
‘왜 이런 생각을 진작 못했지? 너무 나만 바라봤구나.’
스스로에게 여유가 생겼음에도, 주변에 있는 이러한 영웅들을 챙길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왕호도 소방관에 대한 처우를 얼핏 들은 적이 있다.
책정되는 세금은 적디적어서, 장비들은 죄다 낡은 상태라고 들었다. 바꾸려면 사비를 통해 바꾸는 정도라고 말이다.
매년 엄청난 순직자들과 낮은 평균수명만 보더라도, 얼마나 힘든 직업인지 간접적으로 깨달을 수 있다. 그렇게 목숨바쳐 봉사함에도 대우가 이정도라니···
씁쓸한 마음을 도저히 감출 수가 없었다.
자신이 무슨 정치적으로 처우를 바꿀 수 있는 힘은 없지만, 버프 요리 정도는 충분히 해줄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꽈악-
식칼을 쥔 왕호의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그래! 특성 요리 한번 기깔나게 만들어 보자!’
< 영웅은 가까운 곳에 있다 (2) > 끝
ⓒ 신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