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드무비 (1) >
방송은 녹화일과 방영일의 텀이 상당하다. 왕호가 갑작스레 늘어난 인기를 확인한 것은, 첫 녹화를 진행한 지 무려 한 달 후였다.
한 달 동안 왕호는 세 번의 녹화를 더 진행했다.
왕호에게 에셰코 녹화란, 이젠 그냥 가끔 있는 이벤트에 불과했다.
많으면 일주일에 1번, 혹은 2주에 1번꼴로 녹화를 하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초심을 곱씹은 후에는 정말로 즐기기 위해 녹화장을 찾았다. 덕분에 녹화하는 것이 정말 재밌었다. 요리를 업으로 삼는 사람들과 함께 살을 맞대며 서로의 요리를 뽐냈다. 실로 오랜만에 느끼는 감정이었다.
속설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기지 못한다.>
예전의 왕호는 요리를 즐김과 동시에 노력하는 자였으나, 포창마차를 차릴 즈음 해서는 단순히 노력하는 자에 불과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세 가지 덕목 모두를 지니고 있다.
노력하며 즐기는 천재.
미션들의 결과가 좋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는 상황이다.
-타짜네. 타짜야.
케빈 오가 왕호에게 한 말이다.
심지어 녹화가 끝나고, 자신의 레스토랑에 올 생각 없냐고 제안했다. 수 셰프 자리를 내어준단다. 엄청나게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물론, 거절했다. 지금은 몬스터를 요리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흥미로운 일이었다. 게다가 작지만 푸드트럭이라는 자신만의 레스토랑도 소유하고 있다. 레스토랑이라고 부르기엔 무척이나 초라하지만 그래도 오너 셰프다.
월급 받고 남 밑에서 일하느라 스트레스받지 않아도 된다는 소리다. 직장 스트레스는 이미 5년 동안 받은 걸로 충분하다.
그리하여 왕호는 앞선 세 번의 미션에서 모두, 2등이란 쾌거를 얻어낼 수 있었다.
심사위원들은 맘 같아서는 세 번 다 왕호에게 1등을 몰아주고 싶었지만, 위에서 내려온 압력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세 번의 1등은 김성오에게 돌아갔다.
왕호는 2등을 받았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등수에 의미를 크게 두지 않았다.
그냥 신나서 으스대는 김성오의 모습을 귀엽게 바라볼 뿐이었다.
룰루랄라-
오늘도 어김없이 던전으로 향하는 길이다.
어젯밤에 에셰코 1화가 방영됐다고 들었다. 하지만 본방사수는 굳이 하지 않았다. 자신의 모습이 미디어에 어떻게 비칠지 궁금하긴 했지만, 그거 볼 시간에 더 생산적인 일을 하는 것이 이득이었다.
‘뭐지?’
트럭을 모는 왕호의 고개가 살짝 기운다.
빵빵-!!
몇몇 차들이 1차선으로 추월하며 아는 체를 한다.
창문을 내리고 손을 마구 흔들더니, 이제는 사진까지 찍어낸다.
그뿐만이 아니다. 신호대기를 하고 있자니, 횡단보도에 서 있는 사람들도 트럭을 가리키며 웅성웅성거린다.
‘아직 던전에 도착도 안 했는데?’
일반인들이 이렇게나 아는 채를?
이상했다.
던전에서는 조금 인지도가 쌓였다.
레벨 3, 400대의 고랭커들 사이에서는 아주 가끔 언급되는 정도지만, 1, 200대의 각성자들 사이에서는 버프를 한 번 먹어본 사람들의 칭찬이 자자했다.
앞으로 고레벨 던전에도 진입한다면, 고랭커들 사이에서도 자연스레 입소문이 돌 거다.
하지만 일반인 사이에서는 이 정도까진 아니었다. 페이지의 팔로워 숫자가 5만 가까이는 됐지만, 대한민국 전체 인구에 비했을 때 5만은 그저 조족지혈에 불과했다.
그런데···
지금은 길을 가는 100명 중에 2명 정도가 알아보는 꼴이다. 2, 30대로 표본을 줄이면 20명 중에 1명은 무조건 알아보는 수준.
얼떨떨했다.
“방송의 힘인가? 사람들이 그렇게나 많이 보나? 그래도 악마의 편집은 안 했다고 했으니까 다행이네.”
왕호는 덕구의 머리를 한차례 쓰다듬고는 다시 악셀을 밟았다.
왕호가 도착한 던전은 ‘나일드보어 던전’. 무시무시하게 생긴 야생 돼지 몬스터들이 우글거리는 곳이다.
나일드보어의 평균 레벨은 200. 왕호의 레벨은 지금 무려 180이다. 무지막지한 성장 속도.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의 기네스급 렙업 속도였다.
그것이 가능했던 주요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함무라비 스킬들.
-호오 갑자기 칼에 대한 이해가 늘었구나?
허용은 왕호가 웨폰 마스터리 특성을 얻어낸 것을 빠르게 눈치챘다. 말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귀신이다 귀신. 천하의 해병대도 피해가야 하는 특급귀신.
덕분에 더욱 빡세게 스킬을 익혀야 했다.
한 달 전에 새로 익힌 스킬은 쾌검 제2 초식인 “섬광 발도 閃光拔刀”. 말 그대로 발도술이다.
-이눔아! 싸울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 줄 아느냐? 바로 선빵이다 선빵! 비겁하다고 생각하지 말거라. 함무라비 검식은 비겁과 효율로 잔뜩 무장한 검식이니 말이다. 상대가 방어하지 못한 상태에서의 기습보다 좋은 공격은 아마 없을 거다.
기습하거나, 첫 타를 때릴 때 이것만큼 효율적인 스킬도 없었다.
섬광 발도를 숙달하는 데는 채 3주가 걸리지 않았다. 웨폰 마스터리 특성 덕분이었다.
그래서 지금은 새롭게 배운 스킬의 숙련도를 올리고 있었다.
바로 유검 제1 초식인 “호접난무 胡蝶亂舞”.
-원래는 매우 어려운 초식이라 네 식견이 더 늘었을 때 가르치려 했지만, 검에 대한 이해가 갑작스레 늘어서 빠르게 알려주는 것이다.
관장님의 말에 의하면, 유검 流劍은 말 그대로 물 흐르듯이 상대를 공격하는 검술이다.
검을 휘두르는 모습이 부드럽고 순하다 하여, 유하다 의 유검 柔劍이라고도 불린다.
-유검의 심득은 쾌검이나 중검보다 더욱 이해하기 어렵고 깊다. 상대의 힘까지 이용하는 사량발천근 四兩撥千斤
시간을 주겠다.
검술 스킬의 숙련도를 더 빨리 올릴 수 있어 좋아한 것도 잠시.
더 어렵고 힘든 초식들을 익혀야 했다.
웨폰 마스터리 특성을 얻었다고 해서, 결코 좋아할 일이 아니었다.
‘뭐, 덕분에 레벨은 빨리 올리게 된 걸 다행으로 여겨야지.’
삐삑-!
트럭의 문을 잘 잠군 왕호는, 재료 조달을 위해 게이트를 넘었다.
여기 나일드보어 던전이 재료를 쌓을 수 있는 마지노선이라고 보면 된다. 레벨 200대 이후로는 B형 던전이 대부분이라 재료를 쌓는 것이 불가능하다. 본격적인 ‘레이드’가 시작되는 구간이다.
A형 던전처럼 많은 수의 몬스터가 튀어나오는 것이 아니다. 보통 적게는 30명 많게는 200명 이상까지도 공격대를 이루어 레이드 한다.
그러기에 재료를 조달하는 데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물론, 혼자 잡을 수 없는 건 아니다. 동레벨의 B형 괴수일 경우, 왕호의 능력이라면 여유 있게 잡을 수 있다. 하지만 애초에 괴수의 숫자가 적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그렇다고 A형 던전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아마네 거미’나 ‘호라드 오크’ 같은 경우 레벨 300대임에도 A형 던전이다. 하지만 이들은 식재료로 쓰기에 적합하지 않다. 외형이 흉측하기 짝이 없어, 혐오음식 매니아가 아니라면 찾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고로, 지금 많이많이 재료를 쌓아놓는 것이 좋을 듯싶었다. 나중엔 하루살이처럼, 그날그날 판매할 양만 구할 수 있을 거니 말이다.
슈웅-
왕호가 던전 안으로 들어오자, 던전에 미리 자리를 잡고 있던 많은 파티들이 왕호를 신기한 눈으로 응시했다.
원래 이런 시선은 왕호에겐 익숙했다.
요리사 복장을 하고 몬스터를 사냥하니 신기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지금처럼 오랜 시간 관심을 가지지는 않았다.
다들 자기 사냥에 다시 집중했었으니까.
‘뭐지··· 은근 신경 쓰이네.’
뒤통수에 눈이 달린 것도 아닌데, 사람들의 시선이 뒤에서도 느껴진다. 무지 따갑다.
왕호는 고개를 한 번 저어 신경을 떨쳐내고는, 괜찮은 나일드보어를 찾기 시작했다.
왕호의 레벨보다 나일드보어의 레벨이 20가량이나 높지만, 지금은 3:1로도 대적이 가능하다. 그 이상은 생채기가 생길 수 있다. 그럼 곤란하다.
두리번두리번-
‘좋아!’
옹기종기 모여있는 나일드보어 트리오를 발견한 왕호.
탓-
그대로 몬스터들을 향해 튀어나갔다.
꾸익-!!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왕호를 보자, 나일드보어가 흥분한다.
빨간 눈동자로 왕호를 노려본다. 커다란 돼지코에서는 콧김이 씩씩- 뿜어져 나온다. 갈색 털은 모두 곤두서있다. 화가 잔뜩 올라와 있는 상태!
드드득- 드드득-
맨 앞에 있는 나일드보어가 뒷다리로 땅을 벅벅 긁는다.
당장에라도 튀어나갈 기세.
이윽고,
탓-! 두다다다-
땅을 박차고 왕호 쪽으로 달려나갔다.
그 속도가 어찌나 빨랐는지, 마치 F1 그랑프리의 포뮬러 차량을 보는 듯했다. 제로백 1초! 탄환 같은 속도!
쌔애앵--
500kg의 거대한 몸집이 왕호를 몸을 찢어버릴 듯 달려온다. 거침없다. 나일드보어의 공격은 단순 그 자체다. 몸통박치기.
그냥 빠른 속도와 육중한 몸으로 들이받는 것도 충격이 어마어마할 텐데,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마나를 잔뜩 실은 두개골로 상대방을 들이받는다.
마치 박치기하는 공룡, 파키케팔로같은 공격메커니즘이다.
그 공격이 어찌나 강력한지, 브레이크가 고장 난 8톤 덤프트럭이 시속 300km의 속력으로 들이받는 것과 맞먹는 충격량이다.
일반인이 얻어맞으면 몸이 그대로 으스러지며 즉사. 시체는 아마 100m 떨어진 곳에서나 발견될 거다.
단순한 공격이니 몸을 비틀어 공격을 피할 수도 있다. 스페인 세비야의 투우사처럼 말이다.
하지만, 나일드보어의 레벨은 200대.
마작해서 딴 레벨이 결코 아니다.
피하는 순간, 몸을 꺾어 그대로 따라간다. 절대로 피할 수 없다. 물리법칙 따위는 무시한다. 마나를 잔뜩 품고 있는 몬스터라 충분히 가능한 몸동작이다.
왕호는 나일드보어가 달려오는 것을 보고도,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그대로 앞으로 달렸다. 이대로 가다간 박치기를 얻어맞고 저 멀리 성층권으로 날아갈 것이 분명해 보였다.
‘지금!’
나일드보어의 박치기가 닿기 직전,
휙-
왕호는 스탭을 밟아 방향을 꺾었다.
팟-!
그러자, 나일드보어도 같이 방향을 꺾는다.
그대로 따라오는 나일드보어!
하지만, 이제는 왕호가 움직이는 속도보다 나일드보어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이윽고, 나일드보어의 박치기가 정확히 왕호를 가격한다.
틱-
‘퍽-!’소리가 아니라 ‘틱-’소리다.
그것도 자세히 들어야 들리는 미세한 소리.
왕호는 결코 날아가지 않았다.
나일드보어의 두개골이 몸에 닿는 순간!
왕호가 자신의 몸을 빙그르- 회전시킨 것이다.
덕분에 나일드보어는 왕호의 살에 머리를 맞댄 채, 왕호를 따라 빙빙- 돌 수밖에 없었다.
왕호의 움직임은 태극권의 그것과 흡사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심오하다는 사량발천근의 묘리를 응용한 움직임 말이다.
빙그르르-
나일드보어는 왕호를 따라 몇 바퀴를 돌고 나서야 겨우 멈출 수 있었다.
꾸이-?
나일드보어가 당황했다.
분명 몸통박치기는 완벽히 적중했다. 하지만 머리로 느껴져야 하는 충격의 맛이 하나도 없었다.
그럼 자신이 쏟아낸 마나와, 체중을 가득 실은 그 가공할 속력은 어디로 간 것인가?
그것은 왕호에게로 소유권이 넘어간 상태였다.
왕호는 나일드보어의 충격량을 그대로 흡수했다. 그 힘을 그대로 담은 채, 몸을 회전시켰다. 엄청난 원심력이 왕호의 몸에 생성됐다.
왕호는 그 힘을 그대로 역이용했다.
거기에 자신의 마나까지 더했다.
‘검기 발현!’
쌔애액-!
바람이 찢기며, 왕호의 장미칼이 나일드보어의 목덜미를 향한다.
이것이 바로 유검의 가공할 위력!
자신의 힘에 상대방의 힘까지 더해버린다.
내 힘도 내꺼, 네 힘도 내꺼!
푹-!
칼날이 그대로 나일드보어의 가죽을 찢는다.
제아무리 두꺼운 가죽, 두터운 마나로 보호해도 소용없다.
칼에 담긴 힘이 월등했다.
가죽을 찢었음에도, 칼은 속력을 잃지 않았다.
찌지직-!
그대로 모세혈관을 찢는다. 근육도 찢는다.
티라미수 케익 자르듯, 지방도 뚫고 나간다. 목뼈도 산산조각난다.
울대 옆에 위치한 경동맥을 찢어발기고는 그대로 반대편으로 칼날이 튀어나왔다.
꾸이이이이이익---!!!
단말마가 던전을 강하게 울린다.
왕호가 완벽히 멱을 따버렸기에, 자연히 돼지 멱 따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렇게 왕호에게 달려들었던 나일드보어는 이승을 하직하고 말았다. 칼질 한방에 즉사.
이젠 맛있는 식재료로 전락해버렸다.
원래라면 왕호의 힘만으로는 한 방에 보낼 수 없다. 하지만 호접난무 스킬로 힘을 증폭시켰기에 가능해졌다.
꾸에엑---!!!
죽어버린 놈의 동료 둘이 잔뜩 화가 났다. 괴성을 지른다.
두다다다-
그리고 분에 못 이겨 왕호에게 달려든다.
이제, 결과는 보나 마나 뻔하다.
먼저 다가온 놈은,
빙그르르-
돌더니,
푹-!
“꾸이이이익--!!!”
아까 그놈처럼 멱을 따이며 죽었다.
아까 죽은 놈까지 해서 더블 킬.
뒤따라 달려온 놈도,
빙그르르- 푹-!
“꾸에에에엑--!!!”
즉사.
트리플 킬!
뜨헉-!
왕호의 사냥을 관심 있게 지켜보던 이들의 턱이 몹시도 벌어졌다. 경악하고 또 경악했다.
그러나 왕호는 그들의 반응을 살피지 못했다.
그냥 별생각이 없었다.
‘하, 이 스킬은 진짜 숙련도가 더디게 올라가네.’
그저, 아직 어설픈 이 유검 초식을 좀 더 많이 사용해야겠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숙련도가 올라가면, 움직임이 더 간결해질 거다. 지금처럼 힘들게 빙빙- 돌지 않아도 된다.
주섬주섬-
사람들이 경악스런 눈으로 지켜보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한 채, 왕호는 나일드보어의 시체를 배낭 속으로 집어넣었다.
경악하는 눈으로 왕호를 지켜보는 사람 중엔,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앳된 남자도 존재했다.
“혀, 형님들 방금 보셨습니까?”
그는 혼자임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와 대화하듯 말을 더듬거렸다.
그의 손에는 셀카봉에 끼워진 작은 카메라 한 대가 들려있었다.
< 매드무비 (1) > 끝
ⓒ 신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