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맛있는 버프를 만들어 드립니다-95화 (95/149)

< 주방의 규율 (2) >

왕호는 “의인이다!”라는 소리를 지속적으로 들으며, 재빨리 장사 준비에 들어갔다.

이 수많은 사람들의 위장을 돈독히 채워주려면, 몸이 세 개라도 모자랄 것 같았다.

그러나, 왕호는 각성자다.

그것도 요리사를 위장한 칼잡이··· 아니, 칼잡이를 위장한 요리사다.

근접 클래스답게, 민첩 스탯이 높다.

게다가 수많은 노가다로 스탯이 더 올라갔다.

힐링 요리를 만들면서 더더 올라갔다.

레벨도 이제는 낮은 편이 아니다.

그래서 민첩 스탯이 깡패다.

후다닥- 휘리릭-

왕호가 재빨리 몸을 움직였다.

쏜살같이 움직였다.

지금 강남역 9번 출구 앞에 모여있는 이 수많은 사람들은, 왕호의 요리 한번 맛보고자 몇 시간을 기다린 사람들이다.

심지어, 오픈 시간에 맞춰 계속해서 사람들이 불어나고 있었다.

‘아무리 오픈빨이라고 해도 너무 심하잖아!’

오픈빨이 아니라 그랜드 오픈빨이라고 해야 할 듯싶었다.

어쨌든, 최대한 빨리! 그리고 많이 만들려면 신속하게 움직여야 했다.

.

.

.

“크으윽!”

왕호의 입에서 신음이 절로 새어 나왔다.

벌써 몇 시간째 요리를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원래는 일반 메뉴로 개발한 것을 죄다 팔려고 했으나··· 빠른 회전율을 위해 몇 가지 메뉴로 제한했다.

그럼에도 한계가 있었다.

휘리릭-

왕호는 순식간에 포장을 마치고, 기다리는 손님에게 요리를 건넸다.

“자, 다 됐습니다.”

“어머머, 되게 금방 나오네요. 기다리는 건 두 시간이었는데.”

“헉! 그렇게나 오래 기다리셨습니까? 죄송합니다······.”

“사장님이 죄송할 게 뭐 있나요. 인기가 많아서 그런 걸요.”

장사가 성황리에 진행됐지만,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다.

1분도 채 안 돼서 메뉴 하나를 뚝딱 만들었지만, 두 시간을 넘게 기다린 사람들이 허다했다.

이 페이스라면,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음식을 다 제공하지 못할 것 같았다.

게다가, 여유 있을 때는 기다리는 손님들과 도란도란 대화도 나누는데 지금은 그럴 짬도 없었다.

마음의 여유가 없으니, 요리의 퀄리티를 완벽히 신경 쓸 수도 없었다.

그렇게 쉬지도 못하고 몇 시간을 팔았을까?

재료가 다 떨어졌다.

주재료가 떨어진 것이 아니다. 그건 대형 냉장고에 가득 차 있다.

손질된 재료가 떨어졌다.

‘비상이다!’

왕호는 재빨리 손질이 안 된 재료들을 꺼냈다.

마늘, 양파, 그리고 생고기.

마늘을 다져야 하고, 양파도 다져야 하고, 다진 고기도 필요하다.

왕호는 오른손엔 장미칼을, 왼손엔 바나듐강 중식도를 들었다.

쌍칼이다.

그리고 미친듯한 속도로 재료를 다지기 시작했다.

쾅- 쾅- 쾅- 쾅-!

왼손의 중식도로는, 마늘을 으깼다.

옆면으로 마늘을 사정없이 강타했다.

마늘이 짜부되며 깔끔히 다져진다.

오른손의 장미칼로는 양파를 다졌다.

탕- 탕- 탕- 탕-!

양파도 순식간에 다져진다.

지켜보던 사람들이 감탄한다.

“우오오! 저게 에셰코에서 봤던 그 칼질!”

“진짜 매드무비네. 저 칼질로 몬스터를 도륙하니, 몬스터들이 꼼짝 못 하지.”

“근데, 혼자서 되게 힘들어 보이신다.”

마늘과 양파가 어느 정도 다져지자, 살코기를 꺼내 다지기 시작했다.

양손을 동시에 움직여, 살코기를 난도질한다.

두다다다다다-

복싱선수의 뎀프시롤 기술 저리가라였다.

그리고 바로 그때,

띠링-!

[중급 다지기의 숙련도가 100%로 상승하였습니다.]

[중급 다지기가 고급 다지기로 업그레이드됩니다.]

[고급 다지기의 생성으로, “웨폰 마스터리 검 劍” 특성이 2단계로 업그레이드됩니다.]

[웨폰 마스터리 특성이 2단계로 업그레이드되면서, 민첩 스탯이 20% 상승합니다.]

왕호의 표정을 밝게 만드는 알림이 떠올랐다.

특성의 업그레이드!

식칼을 쥔 손의 감촉이 조금 달라졌다.

지금도 손에 착착 감기지만, 더욱더 촥! 감기는 듯했다.

마치 아나콘다가 먹이의 숨통을 조이는 그런 느낌이었다.

이제는 웨폰 마스터리 특성이 2단계가 되면서, 검술의 숙련도가 좀 더 빨리 올라갈 거다.

하지만 지금은 이러한 사실보다는, 민첩 스탯이 20% 올랐다는 사실이 더 반가웠다.

1단계 특성을 얻었을 때는 손재주가 20% 올랐고, 지금 2단계를 얻자 민첩이 20% 올랐다.

호재였다.

왕호는 스킬과 특성의 설명을 확인할 새도 없이, 계속해서 손을 놀렸다.

민첩이 2할이나 상승해서 그런지, 몸동작에 확실히 스피드가 더 붙었다.

좀 더 빠르게 요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와, 사람 진짜 드글드글하네요.”

놀러 온다던 여름이가 수많은 인파를 헤치고 다가왔다.

왕호는 여름이를 슬쩍 쳐다보며 말했다.

“놀러 온다더니 진짜 왔네? 사람들이 그동안 많이 궁금했나 봐. SNS 타고 많이 온 것 같아.”

“그러게요. 페이지에 댓글 엄청 많이 달려서 혹시나 했는데······. 이거 다 감당할 수 있을까요?”

“하는 데까지 해봐야지.”

“제가 도와드릴게요!”

여름이가 소매를 걷어붙였다.

“응? 괜찮아.”

“뭐가 괜찮아요. 엄청 바빠 보이는구만. 계산이라도 제가 할게요. 손 하나라도 거들면 더 빨라지겠죠.”

“고마워. 부탁할게.”

한여름이 왕호를 돕기 시작했다.

뒤이어, 수능이 끝나 한가해진 희영이, 왕호의 요리와 사람들의 모습을 담으러 온 상문이, 심심해서 마실 나온 다희까지 왕호를 거들기 시작했다.

주방에서 도울 것은 없었다.

이들은 요리를 배운 적이 없고, 여러 사람이 왔다 갔다 할 만큼 넓은 주방도 아니다. 여긴 푸드트럭이다.

그래도, 계산이나 번호표 배부 그리고 마지막 포장 같은 경우는 이들이 충분히 도와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으로 온 사람들에게 전부 요리를 나눠주지 못했다. 늦게 온 사람들은 되돌려보내야 했다.

아쉬웠다.

설거지와 트럭의 청소를 마지막으로, 장사가 마무리됐다.

해는 진즉에 저물어, 강남역의 가로등과 네온사인 그리고 차들의 헤드라이트만이 거리를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다들 도와줘서 고마웠어.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몰릴지 몰랐네.”

“와 진짜 무슨 타워 디펜스 게임하는 줄 알았어요! 리얼 좀비 떼가 따로 없던데요?”

촬영본을 살피던 상문이가 혀를 내둘렀다.

신상문의 표정은 무척이나 밝았다.

이렇게 인기가 폭발하는 장면을 그대로 담을 수 있었다. 편집해서 홍보할 생각에 입꼬리가 쓰윽 올라갔다.

설거지를 도와줬던 희영이도 얼굴에 웃음꽃이 가득했다.

“오빠 이렇게 장사 잘 되는데, 그냥 던전 말고 여기서 계속 장사해!”

“오늘이 던전 밖 첫날이라 그래 오픈빨이야. 게다가 주말이기도 하고.”

“그럼, 주말만이라도 밖에서 장사하는 게 어때?”

“오늘 상황 보니까 그래도 될 것 같다.”

“오! 그럼 나 여기서 알바해야지! 수능 끝나서 과외하려고 했는데, 굳이 그럴 필요 없을 것 같아. 이렇게만 장사 잘 되면, 나 알바비 팍팍 줘도 되겠는데?”

“알바는 무슨 알바야. 그냥 놀아. 수능 끝난 지 얼마나 됐다고. 그리고 내일 되면 사람들 줄어든다니까?”

“에이, 절대 안 그럴 거 같은데? 오히려 입소문 퍼져서 더 올 거라는 데 한 표!”

희영이가 외치자, 가만히 듣고 있던 다희도 슬며시 손을 들었다.

동의한다는 의사표시였다.

다희가 말했다.

“내일도 여기서 장사할 거예요? 저도 일찍 와서 도울게요. 어차피 할 일도 없고. 끝나고 바로 같이 도장 가면 되니까요.”

“음··· 자리를 옮겨야 하나 고민이야. 사람들이 많이 몰려서 괜히 피해 주는 것 같아. 다른 푸드트럭 손님도 내가 다 뺏는 게 아닌가 싶고······.”

“그건 절대 아닌 거 같은데요?”

“응?”

“저기 사람들 표정 좀 봐봐요.”

유다희가 같이 마감을 끝낸 다른 푸드트럭들을 가리켰다.

그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해맑았다.

왕호도 그들의 모습을 자세히 살폈다.

주위의 많은 트럭들을 보니, 하나같이 SOLD OUT이라는 표시를 달고 있었다.

왕호의 요리를 맛보러 왔다가, 긴 줄을 참지 못한 손님들이 다른 트럭에 몰렸기 때문이다.

반사이익이었다.

마침, 한 푸드트럭 사장님이 눈을 마주쳤다.

중년의 사장님은 아무 말 없이 쓰윽 웃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따봉!

왕호도 얼떨떨해하며, 엄지를 올려 화답했다.

고개를 돌리니 이번엔 다른 사장님과 눈이 마주친다.

그 사장님은 더욱 가관이었다.

뿅뿅-

왕호를 향해 손가락 하트를 날렸다.

그것도 양손으로.

아마 내일도 오라는 뜻인가보다.

*

왕호의 요리를 먹고 간 사람들은 500명이 넘었다.

그들은 대부분 SNS를 한다.

SNS를 했기에 왕호가 장사한다는 정보를 빨리 얻을 수 있었고, 글을 올릴 기대감에 부풀어 두 시간 이상을 기다릴 수 있었다.

그들이 SNS를 뜨겁게 달궜다.

개중에는 영향력 있는 블로거들도 있었다.

<오늘 드디어 에셰코 안왕호의 왕호네 트럭에 갔다 왔아요!

아유, 이웃님들 오늘도 안녕하셨는지용?? 왕호네 밥차가 던전 밖으로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아침 일찍 강남역으로 튀어나갔답니다? 진짜 케빈솊이나 각성자들 말대로, 넘흐 맛나더라구요! 양도 낭낭하니 넘넘 좋았어요! 포장해서 우리 랑이랑 딸램 주려고

했는데, 제가 다 먹어버린 거 있죠?(신랑한텐 비밀!) 자세한 건 아래 사진이랑 같이 보아요~!···

···아참! 저는 플라톤 호텔 레스토랑도 가봤는데, 여기가 훨씬 맛있었어용! 대신, 트럭이라 분위기는 플라톤이 더 좋았더랍니다~!>

[댓글]

[-어머 언니이이~ 넘나 부럽다아!]

[-어머멋! 종이 포장인데 왜 이리 고급스럽죠? 우리 영준이 얼집 보내고 저도 함 가봐야겠어요!]

[-동감해요! 저도 플라톤 호텔이랑 오늘 왕호네 밥차 둘 다 가봤는데, 왕호네 밥차가 훨씬 맛났어요.]

쾅-!

플라톤 호텔의 수석 셰프가 테이블을 강하게 내려쳤다.

내려친 주먹의 손이 빨개질 정도였다.

“아니, 고작 푸드트럭 요리가 우리 5성급 호텔 요리보다 맛있다고?”

분노하는 수석 셰프가 김성오를 세차게 노려보았다.

그 강렬한 눈빛에 김성오는 말을 더듬어야 했다.

“마, 맛있긴 진짜 맛있습니다. 그, 근데, 셰프님 요리보다 맛있다는 건 저도 인정 못 하겠습니다.”

“하, 내일도 장사한다고 했지? 사람 시켜서 하나 포장해와야겠어. 도대체 얼마나 맛있으면 저러는 거야? 아니면, 돈 주고 파워 블로거들 고용한 거 아냐?”

“그, 그럴 친구는 아닙니다.”

“그래? 그럼 정말 맛있다는 소리지? 뭐, 그건 내일 먹어보면 알겠지. 댓글 알바를 쓰는데도 여론이 도통 바뀌질 않네. 더 심해지면 방송국에서도 입 싹 닦을 가능성도··· 에잉! 우리가 성오 너 우승시키려고 얼마 투자한 줄 알아? 넌 도대체 제대로 하는 게 뭐

야!”

“크흑! 저, 저도 열심히 하는데······. 아! 그럼 저희가 파워 블로거를 고용하는 게 어떨까요?”

“우리가?”

“우리 요리랑 왕호 요리를 비교해서, 우리 요리를 더 추켜세우는 거죠. 맛칼럼니스트도 섭외하면 더 좋을 거 같습니다.”

“하, 이때까지 투자한 게 얼만데 또 써야 돼? ···좋은 전략이긴 하네. 내일 요리 먹어보고, 여론이 더 심해지겠다 싶으면 고려해보지.”

말을 마친 수석 셰프는, 김성오를 향해 쯧쯧- 혀를 차고는 호텔을 빠져나왔다.

“그래 함! 너도 처먹어봐라! 네 꺼 보다 맛있을걸?”

김성오는 사라진 직장상사를 향해 욕설을 내뱉기 시작했다.

*

다음 날.

왕호는 더욱더 만반의 준비를 하고 나왔지만···

결과는 같았다.

‘어째, 손님이 더 많아졌어?!’

여름이는 촬영 때문에 도와주지 못했지만, 다희와 희영이가 장사를 도와줬다.

수군수군-

왕꿈틀이처럼 긴 줄에서 사람들이 숙떡거렸다.

“와, 저기 알바생들 진짜 예쁘다.”

“쟤는 귀엽고, 저 여자는 진짜 연예인보다 예쁘네··· 츄릅!”

“야! 침이나 닦고 말해라. 요리 맛보러 온 거야? 쟤네들 보러 온 거야?”

“뭐, 겸사겸사지.”

이상하게 남자 손님들이 더 늘어났다.

그리하여, 오늘도 늦게 온 사람들을 돌려보내야만 했다.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다.

‘크흐윽! 내 돈줄들이······.’

특단의 조치가 필요해 보였다.

그들은 모두 다음 주에 온다고 예고까지 한 상태였다.

지금은 민첩 스탯을 아무리 올린다 해도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공간의 한계 때문이다.

지금도 충분히 빠르다. 거의 다섯 명이 할 일을 혼자서 하고 있다.

모든 주방 도구는 300% 활용한다. 놀리는 공간은 전혀 없다.

그럼에도, 수요가 공급보다 많았다.

주방이 너무 협소해서다.

이대로라면, 손님들을 계속 기다리게 해야 한다.

손님들도 고역이지만, 왕호에게도 손해다. 손님을 많이 놓치게 된다.

돈을 버리는 거랑 매한가지다.

해결책은 딱히 없어 보였다.

주방을 늘린다면 모를까···

주방을 늘려?

“아!”

갑자기 좋은 생각이라도 떠올랐는지, 왕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핸드폰을 두드려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 주방의 규율 (2) > 끝

ⓒ 신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