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방의 규율 (3) >
뚜루루루- 딸깍-!
연결음은 그리 길지 않았다.
-오~ 에이스님!
종구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흘러나왔다.
“응? 에이스? 뭔 소리야?”
-당연히 에이스님이지 이제 곧 우승하실 몸인데.
“뭔 놈의 우승이야. 설레발 금지다.”
-방송 봤다 인마. 아주 감동의 도가니던데? 성오도 완전 개박살 났고. 성오 아주 설레발 여기저기 뿌려놨던데, 완전 꼬시다 크크크.
“그니까 설레발은 필패라니까? 그래도 아직은 성오가 우승 가능성이 젤 높아.”
-응? 난 이미 너 오지게 자랑해놨는데? 근데 왜 전화했어?
“아, 뭣 좀 물어보려고.”
-뭘 또 도와드리면 됩니까? 네 트럭 승승장구하는 거 보니까 내가 다 뿌듯하다.
“트럭 관련한 거야.”
-트럭? 바꾸게?
“아니 바꾸는 건 아니고 업그레이드 좀 하려고.”
-마나석 엔진으로 업그레이드하게? 하하, 내가 기똥차게 하는 업체 사장님이랑 친하···
“헛다리 짚었네. 엔진은 아니야.”
왕호가 종구의 말을 도중에 끊었다.
마나석 엔진은 지금 상황에서 굳이 필요가 없다.
아우토반 질주하려고 업그레이드하는 게 아니다.
그거 말고도 돈 쓸 곳이 얼마나 널렸는데······.
당장 시급한 것은 주방의 확장.
-엔진 업글 아니면 뭔데?
“주방 공간 좀 업그레이드하고 싶은데 가능해?”
-주방 공간? 인테리어 말하는 거야?
“아니, 공간 확장 말하는 거야. 마나석 냉장고에 달려 있는 공간 확장 같은 거 말이야.”
-아, 주방 크기를 늘리겠다고? 트럭에 마나석 박아서?
“그렇지!”
-와 장사 진짜 잘 되나 보다? 흠··· 이야기 길어질 거 같으니까 만나서 얘기하자.
그렇게 왕호와 종구는 한 카페에서 만났다.
종구가 먼저 말을 꺼냈다.
“냉장고는 애초에 만들 때부터 공간확장을 염두에 두고 하드웨어를 설계한 건데, 이 트럭은 그게 아니란 말이지? 게다가 경량화까지 달아야지.”
조금은 난감하다는 표정이었다.
“힘들어?”
“힘들긴 한데 불가능한 건 아니야. 하드웨어는 내가 인테리어 업체 잘 아니까 리모델링하면 되는데, 문제는··· 인챈트야.”
“인챈트?”
“응. 꽤나 고레벨 인챈터가 필요할 것 같다. 내가 저번에 알려준 마도구 업체에 전화해서 티파니 스케줄 좀 알아볼게. 걔 정도면 충분히 할 수 있을 거야. 대신 단가가 좀 쎄다.”
“그러지 말고. 고렙 인챈터 한 분 내가 아는데, 그분한테 부탁하면 되겠다. 우리 단골이라 아마 싸게 맞춰줄 거야.”
“고렙 인챈터? 티파니보다 고렙이야?”
“그럴걸?”
왕호의 대답에 종구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진짜? 티파니보다 잘한다고? 몇 없을 텐데? 누구야?”
“동수 님이라고 있어.”
“동수? 어디서 많이 들어봤는데··· 흠, 누구더라···”
아메리카노를 쪽쪽 빨며 생각에 잠긴 종구가, 갑자기 손가락을 탁-! 튕겼다.
“아! 나동수?! 나동수 맞지?”
“응. 아는 사람이야?”
“알다마다! 근데 개인적으로 아는 건 아니야. 나도 인챈트 업계 조금 아는지라 이름만 들어봤지. 이야~ 너도 점점 레벨 올라가니까, 별의별 사람들이 단골로 온다? 야, 그럼 나도 부탁 하나 하자.”
“무슨 부탁? 또 여자 소개···”
“그런 거 아니야!!! 여자 말고, 그 나동수 씨 소개 좀 시켜주라. 자리 한번 만들어줘.”
“동수님? 어려운 건 아니지. 어차피 이 작업하려면 한두 번 마주칠 테니까. 근데 동수님은 왜? 너 설마 취향이···? 하긴, 동수 님이 좀 우람하긴 하지. 별명이 힘법사니까. 분명 다른 곳도 크고 우람···”
“야! 뭔 개소리야?!”
왕호의 농담에 종구가 발끈했다.
그리고 손사래를 마구 치며 부정했다.
“나 여자 존나 좋아한다 인마! 특히 베이글녀!!! 에효··· 나 법인 대표됐잖아. 마도구 사업에도 진출해야 하는데, 인맥 좀 넓혀보자.”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는데··· 하하, 알았어.”
“좋아, 트럭만 업그레이드하면 되냐?”
“아니, 하나 더 있어. 이건 내가 예전부터 생각한 건데···”
왕호는 종구에게 한 가지 계획을 더 설명했다.
오래전부터 생각한 건데, 종구를 만난 김에 주저리 털어놓았다.
왕호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종구가, 물개 박수를 치며 감탄했다.
짝짝짝짝-
“이야~ 진짜 신개념이긴 하다. 그런 식당은 내 들어본 적이 없다.”
“가능할까?”
“가능은 하지. 초고렙 인챈터도 도와주고 말이야. 근데··· 돈은 상당히 많이 깨지겠네.”
“요새 장사 잘 돼서, 모아둔 돈 꽤 있다. 원래 희영이 수능 끝나면 이사가려고 모아둔 건데, 물 들어올 때 노 팍팍 저어야 되잖냐.”
“그럼 상가 레스토랑은 완전히 포기한 거냐?”
종구의 물음에, 왕호는 카페 창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창가 너머 주차되어 있는 푸드트럭이 눈에 들어왔다.
왕호네 밥차.
“이젠, 저 녀석이 내 레스토랑이다.”
“목소리 완전 애틋하다? 기왕 할 거면 트럭에 이름이라도 붙여줘. 내 애마는 붕붕이다.”
“붕붕이? 큭, 완전 귀여운데?”
“그치? 귀엽지? 너도 하나 생각해 봐. 와, 근데 발상 진짜 대단하다. 식당을 트럭에 매달고 다닌다니······.”
그렇다.
왕호가 종구에게 털어놓은 계획은 “식당 트레일러”였다.
대형 트레일러를 트럭에 매달아서 이곳저곳을 누빌 생각이다.
목적지는 던전이 될 수도 있고, 강남역 같은 번화가일 수도 있다.
트레일러에도 공간확장 마법을 인챈트하고 내부 인테리어를 고급스럽게 한다면, 그야말로 달리는 레스토랑의 완성이다.
테이크 아웃이 아니라, 먹고 갈 사람은 먹고 갈 수 있다는 소리다. 현재는 조악한 플라스틱 의자로, 고작 다섯 명 정도만 식사가 가능하다.
그리고 계획대로만 된다면, 고오급 레스토랑처럼 코스요리의 제공도 가능하다.
종구는 수첩을 꺼내 왕호의 주문사항을 모조리 적었다.
“얌마, 넌 진짜 운 좋은 줄 알아. 내가 저번에도 강조했는데, 저 푸드트럭 엔진이 미국놈들 머슬엔진이야. 주방 확장하고 트레일러 식당까지 매달면, 아무리 경량화 마법을 인챈트 한다고 해도 웬만한 엔진으로는 힘들다. 저놈은 진짜 마력 깡패 녀석이라 아
마 가능할 거다.”
“그러게. 될놈은 뭘 해도 되나 보다.”
“근데, 너 마나량은 충분하냐? 다른 건 모르겠지만, 식당 트레일러는 대기 중에 있는 마나로는 마나석에 마나 공급이 쪼금 힘들 것 같은데······. 마나를 많이 잡아먹을 것 같아서 말이야. 아님, 진짜 최고급 마나석을 사용하던가. 고렙 보스몹 코어석 같은 걸
로.”
“괜찮아 나 마나 지루야.”
왕호는 현재 마기 흡수 스킬로 마나통이 계속계속 오르는 상태다. 그것도 영구적으로.
설령 마나석의 마나가 떨어진다 해도 공급에 지장이 없다.
“좋아! 트럭 업그레이드는 하루 정도면 충분하겠는데, 식당 트레일러는 내부 인테리어까지 깔끔하게 해야 되니까, 아마 좀 더 걸릴 거다.”
“부탁한다. 견적 나오면 문자로 찍어줘.”
쓰담쓰담-
종구가 떠나고, 왕호는 주차되어있는 트럭의 본넷을 손으로 어루만졌다.
처음엔 그저··· 조금만 장사하고 중고로 되팔려고 했다.
최종 목표는 레스토랑의 오너였으니까.
그런데 어찌 된 운명인지, 이 녀석 덕분에 인생이 180도로 달라졌다.
이 녀석 덕에 던전에 갈 수 있었다.
아니,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금자탑이 다 이 녀석 덕분이라고 감히 얘기할 수 있겠다.
이제 내가 성장한 만큼, 이 녀석도 성장시켜 줘야지.
“이러다 평생 가겠네······.”
팡팡-
왕호는 본넷을 애정어린 손길로 두들겼다.
정말로 이 녀석과 평생 함께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평생 갈 수도 있는데, 이름 하나는 지어 줘야지.
“앞으로 네 이름은···”
왕호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드리웠다.
어린 시절 보던 고전 시리즈 트랜스포머.
그 속에서 오토봇들을 이끄는 태산 같은 존재.
우람한 화물 트럭의 위용을 보여주던 바로 그 존재.
자신의 트럭을 보자 마치 그 거대한 존재가 투영되는 것만 같았다.
“잘 부탁한다 옵티머스!”
*
주방이 넓어졌다.
그 전에는 그냥 비좁은 푸드트럭이었다.
지금은 어느 호텔의 주방이라고 해도 될 만큼 공간의 여유가 생겼다.
왕호는 넓어진 공간 속으로, 각종 조리 도구를 추가했다.
‘이제야 진짜 주방 같네.’
옛 생각이 풀풀 났다. 레스토랑에서 일하던 시절.
수많은 동료 요리사들과 함께 땀을 뻘뻘 흘리며 요리했던 바로 그 시절.
비록 그때는 중간 직원이었지만, 지금은 내가 대빵이다.
오너 셰프.
물론, 직원은 아직 없다.
그 직원을 하겠다고 지금 두 친구가 줄을 서고 있다.
옵티머스 안으로 들어온 희영이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우와! 오빠 여기 되게 넓어졌다. 짱 신기해! 마법의 힘이야 이게?”
“신기하지? 공간확장 마법이야. 이제 사각지대도 생겨서, 덕구가 대놓고 도와줘도 문제없겠다.”
“해리포터 고전 시리즈에 나오는 마법 텐트 같아! 좋아! 주말엔 여기서 알바를 하겠어!”
희영이는 그렇다 쳐도, 얘는 왜······.
“저도 도울게요.”
다희도 알바를 하겠다며, 껌딱지마냥 착! 달라붙었다.
“저번에 하루 도와준 건 고마운데, 왜 다희 너까지 하려고 난리를···”
“저도 경제활동 해야죠. 시급 만 원 이상은 챙겨주겠죠?”
“그 정도는 당연히 챙겨주는데··· 근데 넌 레이드 뛰면 시급 50만 원 이상 아니야?”
“요새는 프리랜서가 불황이에요. 그리고 이제 레이드는 재미가 없어요. 게다가 전 각성자니까, 던전에서도 알바 가능! 요리도 재밌을 거 같구요!”
“재밌지만은 않을걸? 설거지시킨다?”
“레이드보단 재밌겠죠. 설거지도 레이드보단 재밌을 걸요?”
결국, 지속적인 다희의 요청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주방이 넓어진 만큼 사람도 더 있으면 좋다.
심지어 자기가 저렇게 하고 싶다는데······.
희영이는 무척 싹싹한 성격이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도 이야기를 잘 나눈다.
그에 비해 다희는 낯을 많이 가린다. 차갑기 그지없다.
차도녀라는 별명이 그 누구보다도 잘 어울린다.
해서, 희영이에겐 계산과 포장을 맡겼다. 줄이 길어지는 번호표를 배부하는 것도 맡겼다.
식당 트레일러가 붙는다면, 손님 응대와 서빙도 맡길 거다.
다희는 칼을 잘 쓴다.
식재료 손질하는 것은 다르겠지만, 칼만큼은 왕호보다 잘 다룬다.
달빛여제라는 별명이 괜히 생겼겠는가.
무려 레벨 400 후반대에 무려 한국 랭커 5위의 칼잡이다.
재료 손질하는 법만 알려준다면, 기본적인 식재료는 맡겨도 충분할 것 같았다.
거기에 막내의 전유물이라는, 설거지까지 시켜서 주방보조로 부려먹을 생각이었다.
‘길게 보면, 제대로 된 셰프가 필요해······.’
던전에서는 혼자서도 충분하지만, 수요가 많은 일반인들 상대로는 주방을 도울 셰프가 필요해 보였다.
그리고 왕호의 머릿속에 괜찮은 인물 두 명이 딱! 떠올랐다.
실력과 인성을 두루 갖춘 사람들이다.
그들도 마침 일자리가 필요한 상황.
이건 나중에 제안하기로 하고,
일단은···
이 두 직원들의 교육이 우선이다.
왕호는 두 사람을 불러모았다.
“안희영! 유다희 씨! 일루 오세요.”
“뭐야 그 말투는? 오글거리게 키키.”
희영이가 썩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비웃음이 따로 없었다.
오냐, 그 웃음 이제 곧 사라질 거다.
“다들 아나 모르겠지만, 주방의 규율은 매우 엄격합니다.”
일순간에 왕호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평소에 보던 훈훈함과 사람 좋은 넉살이 사라지고,
엄격 근엄 진지의 카리스마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첫째가 안전! 주방은 화기와 온갖 흉기가 난무하는 곳입니다. 항상 도구들은 제자리에 위치해 있어야 하며, 한시라도 긴장을 놓치면 안 됩니다. 알겠습니까?”
왕호가 살벌한 눈빛으로 희영이와 다희를 노려보았다.
두 사람이 흠칫한다.
“왜 대답이 없습니까? 알겠습니까?”
“···예.”
두 사람은 얼떨떨한 모습으로 대답했다.
당연히 목소리는 모기가 기어들어 가는 듯했다.
“목소리가 왜 그럽니까!!!”
“아, 알겠습니다!”
왕호의 논산훈련소 조교급 복식호흡에, 두 사람은 귀신에 홀린 것 마냥 큰 목소리로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둘째가 청결! 주방은 언제나 깨끗해야 합니다. 주방이 더러우면, 요리 또한 깨끗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그리고 자신이 위치한 그 공간은 언제나 깨끗하게! 알겠습니까?”
“알겠습니다!”
원래 요리업계의 군기는 엄청나다.
주방의 규율은 그 누구도 어겨선 안 된다.
왕호도 10년을 주방에서 구르고 구른 인물이다.
꿀꺽-
왕호의 급격하게 달라진 모습에, 두 여인네는 마른 침을 삼켜야 했다.
“마지막입니다. 셋째가 진심! 주방의 일은 무척 힘듭니다. 바쁠 때는 대충대충 하고 싶어지는 게 사람의 본능입니다. 힘들고 바쁘면 요리의 퀄리티가 살짝 줄어들 수 있습니다. 더 예쁘게 담을 수 있는데 그러지 못할 때가 있죠. 물론 요리사도 인간인 이상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요리에 담긴 맛과 진심은 절대 변하면 안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대접한다는 생각으로 언제나 집중하십시오. 알겠습니까?”
“알겠습니다!”
주방의 세 가지 덕목을 알려준 왕호는, 살짝 뜸을 들이더니 이번에는 반말로 소리치기 시작했다.
방금까지가 훈련소 입소 첫날, 훈련생들을 존중해주는 대대장의 모습이었다면,
지금부터는 진정한 주방의 일원을 만들기 위한 악마 조교의 모습!
“이제부터 주방의 규율을 알려주겠다. 간단하다. 한 가지 원칙만 알고 있으면 된다. 바로··· 셰사부일체다!”
“셰사부일체?”
“셰프와 스승과 아버지는 하나다! 셰프는 하늘이다! 셰프가 말하면 무조건 1초 안에 대답한다. 대답은 항상 우렁차게! 주방에선 셰프가 시킨 것 이외, 일절 어떤 것도 해선 안 된다. 아니, 그냥 생각 자체를 하지 마라. 시킨 것만 제대로! 완벽하게! 알겠나?”
“예······.”
“대답 봐라! 그래가지고 어디 김밥이라도 말 수 있겠어? 엉?!”
“예! 셰프!”
우렁찬 대답에 그제서야 왕호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유다희는 생각했다.
‘이 남자 뭐야? 검술 배울 때는 그렇게 불쌍했는데······.’
지금은 카리스마가 미친 듯이 뿜어져 나온다.
마치 XY염색체가 4제곱으로 불어난 것 같았다.
상남자.
검술을 나눌 때는 한 없이 작아 보였지만, 주방에서만큼은 마치 히말라야 14좌보다 더 거대한 존재로 느껴진다······.
기분 탓인가?
< 주방의 규율 (3) > 끝
ⓒ 신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