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맛있는 버프를 만들어 드립니다-98화 (98/149)

< 빛이 있으라 (2) >

*

강산이는 요리사다.

아니, 요리사였다.

‘난 요리사가 아니야······.’

지금은 스스로가 인정을 못 한다.

두 눈이 멀었다.

당연히 다니던 레스토랑에서도 짤렸다.

억울했다.

위로금이라도 받았으면 덜 억울하겠다.

하지만, 산업재해가 어디 인정받기 쉽나?

망했다.

쫄딱 망했다.

어느 누가 눈먼 요리사의 음식을 사 먹을 수 있겠나.

맛은 보장한다.

혀는 생생하게 살아있으니, 기존에 배웠던 기술과 지식으로 요리하면 맛은 똑같다.

허나, 만드는 속도가 매우 느려졌음은 물론이고 이제 플레이팅은 언감생심 꿈도 못 꾼다.

요리를 업으로 하는 요리사로서는 자격 박탈임이 틀림없는 것이다.

스스로에게 자격은 부여하지 못했으나, 요리를 멈추진 않았다.

도저히 그만둘 수 없었다.

요리마저 포기하게 된다면 인생의 모래시계가 그대로 멈출 것만 같았다.

목적을 잃은 인생은 살아갈 가치가 없다.

무엇보다도··· 아직 한 줄의 희망이 남아 있었다.

‘고칠 수 있어!’

시력을 잃자마자 강산이는 여러 대형 병원을 찾았다.

서울대 병원, 세브란스, 아산, 삼성, 성모 등등······.

하지만 하나같이 고개를 절레절레 휘저었다.

-메탄올에 의한 시신경의 손상입니다. 아직 현대의학으로는 회복시킬 수 없습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 치는 것이 이러할까?

심지어 스스로의 잘못도 아니었다.

주방에서의 끔찍했던 사고.

9할의 잘못이 레스토랑에게 있었다.

굳이 자신의 잘못을 꼽자면 재수가 없었다는 정도?

하지만 사고는 이미 벌어졌고, 법적으로는 증거가 불충분해 산재는 받을 수 없었다.

현대의학으로 치료가 불가능하지만, 강산이는 지푸라기 하나라도 놓칠 수 없었다.

‘그들이라면!’

강산이는 각성자 의사들을 찾았다.

마법사로 각성한 의사, 힐러로 각성한 의사들을 말이다.

그러지 않아도 대학 병원의 의사들은 사회적 지위가 엄청나게 높다.

기본적으로 상위 0.1%의 사람들이다.

거기에 각성까지 했다?

0.1%만이 선택받는다는 각성자.

0.1%와 0.1%가 만났다.

상위 100만분의 1의 사람들이다.

기본적으로 교수 직함은 그냥 달고 있을뿐더러, 만나려면 몇 개월 전부터 예약해야 한다.

그만큼 진료비도 하늘을 찌른다.

강산이는 남은 돈을 탈탈 털어, 힐러로 전직한 의사를 만날 수 있었다.

무려, 8개월이나 기다리고 나서 말이다.

-제 실력으로는 회복시킬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헛돈썼다.

이들이 아무리 각성을 했다지만, 본업은 의사다.

레이드를 뛰지 않으니, 레벨을 높게 올릴 수가 없다.

강산이가 만난 각성자 의사도 레벨이 고작 77이었다.

의학적 지식은 엄청났지만, 회복 스킬의 퀄리티가 낮았다.

-고레벨 힐러를 한 번 찾아가 보세요. 혹시 모르잖습니까. 너무 기대하진 마시고요.

고렙 힐러의 힐링 스킬.

‘그래! 그거라면 시신경을 회복시킬 수 있을 거야!’

희망.

아카시아 벌꿀처럼 달콤한 이 희망에 강산이는 중독될 수밖에 없었다.

힐러는 힐링 스킬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힐링 스킬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누구나 의료인의 자격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힐링 스킬로 암이나, 에이즈를 치료할 순 없다.

그저, 체력을 올리는 것. 그리고 외상에 탁월할 뿐이다.

그러나 힐링 스킬로 치유할 수 없는 병을, 현대의학으로는 치료할 수 있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드물게나마 존재했다.

현대의학으로 치료할 수 없는 병을, 힐링 스킬로 치유할 수 있었다.

그래서 각성한 의사들이 엄청난 대우를 받는 것이다.

그렇다고, 힐러들에게 마구잡이로 의료인의 자격을 부여할 순 없다.

허가받지 않는 이에게 진료를 받으면 불법이요, 당연히 의료보험 적용도 어불성설이다.

강산이는 대출까지 받아가며, 레벨 200대의 힐러에게 겨우 부탁할 수 있었다.

돈은 중요치 않았다.

앞이 안 보이는데 그깟 돈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만약 이 희망이라도 없었으면, 당장 한강 물 온도 재러 나갔을 거다.

그러나,

-제 스킬로도 차도가 없네요. 제 생각엔 레벨 400대 정도의 랭커를 찾아보셔야 할 겁니다.

이미 돈이란 돈은 탈탈 쏟아부었는데, 어찌 랭커 힐러를 만날 수 있겠는가.

못해도 수억 원은 필요하다.

그래서 에셰코에 지원했다.

요리가 삶의 마지막 즐거움이기도 하였거니와, 유명해진다면 분명 자신을 후원해 줄 누군가가 나타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런 쓸모도 없고, 헛된 희망에 사로잡혀 있는 나를 고용하겠다고?

“저, 저를 왜······?”

“미각이 뛰어나잖아요.”

그래.

그나마 긍정적인 점을 하나 찾자면, 미각의 상승이었지.

눈이 먼 대신 다른 감각들이 증폭됐다.

요리사로서 미각이 올라갔다는 사실에 기뻐해야 할까?

너무도 역설적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지금의 융숭한 대접은 사고 이후 처음이었다.

아무 쓸모 짝에 없는 놈인 줄 알았는데, 누군가에게는 소금 같은 존재일 수도 있다니······.

울컥했다.

가슴 속에서 뜨거운 감정이 솟아올랐다.

랭커 힐러에게도 불치 판정을 받으면, 아마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지도 모른다.

꾸역꾸역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다가올 고통을 회피할 것인가.

극단적인 양자택일.

마약 같은 희망이 사라진다면 자연스레 금단현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설령 불치 판정이 나온다고 해도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눈앞의 남자··· 아니, 코앞의 남자 때문이다.

아직 얼굴은 본 적이 없지만, 분명 따뜻한 마음씨만큼 훈훈하게 생겼을 남자.

왕호.

*

강산이의 눈을 고칠 수 있겠다는 생각은, 문 PD에게서 그의 스토리를 듣고 난 후였다.

-레벨 200대의 힐러까지 만나봤지만 소용없다더군요. 그 이상은 돈이 없어서 만나지 못했고요. 시청률만 오른다면 저희 방송국 측에서 랭커 힐러를 소개시켜 줄 생각도 있습니다. 비록 수억 원의 비용이 깨지겠지만, 그만큼 감동코드도 얻어낼 수 있겠죠.

하지만, 결국 상부의 반대로 이뤄지진 않았다. 감동코드를 얻어내기엔 소모되는 비용이 너무 많았다.

왕호는 그동안 강산이와 많은 대화를 나눴다.

왕호는 강산이가 마음에 들었다.

강산이 덕분에 초심을 찾을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요리를 좋아하는 그의 진심은 ‘진짜’였다.

앞이 보이지 않음에도 그가 보여준, 희망, 집녑, 의지, 끈기, 열정은 왕호에게도 깊은 성찰을 하게끔 만들었다.

그래서 함께하고 싶었다.

눈이 먼 상태인 지금, 그가 엄청난 도움은 되지 않을 거다.

그래도 함께하고 싶었다.

강산이의 미각은, 절대미각 스킬을 가진 왕호가 보기에도 경이로울 정도다.

비록, 강산이가 칼질을 빠르게 할 수도 없고 뜨거운 냄비도 잘 다룰 수는 없지만,

신메뉴 개발하는 것이나 간을 맞추는 것만큼은 왕호를 200% 돕기에 충분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강산이의 눈을 고칠 수 있다는 것은 2차적인 요소였다.

물론, 눈을 다시 뜰 수 있다면 천군만마를 얻게 되는 셈이긴 하다.

‘구사일생 버프는 소용이 없었어.’

체력을 100%나 올려준다는 구사일생 버프를 강산이에게 한번 먹여봤다.

죽어가는 한 생명을 구한 요리였지만, 그렇다고 강산이의 눈을 고칠 순 없었다.

‘체력적인 문제는 아니니까.’

신경의 회복에 관한 문제다.

아무래도 구사일생 버프가 아닌, 다른 힐링 버프가 필요할 것 같았다.

지금 자신의 능력으로 회복시키지 못할 수도 있다.

아니, 영영 회복시키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도 계속 시도할 거다.

힐링 버프의 끝은 아직 보지 못했으니까.

“마지막 한 상 메뉴는 제가 대접하고 싶습니다 왕호네 밥차 셰프님들!”

“호호홍. 이제 사장님이라 불러야 쓰겄구마잉.”

“편하신 대로 불러주세요.”

“셰프라고 불러야 쓰나? ‘예! 셰프!’ 오호홍 드라마 보면 요로코롬 외치던디 맞는가 모르겄네요.”

왕호는 아주머니의 구수한 웃음에 환한 미소를 지으며, 재료들을 주섬주섬 꺼냈다.

왕호가 꺼낸 재료는 모두 옵티머스 냉장고에 있던 것들.

즉, 몬스터 재료들이다.

‘만든다! 힐링 요리!’

메뉴는 집밥 한 상.

곤드레밥과 황태콩나물국, 그리고 두부조림과 각종 정갈한 반찬들이다.

.

.

.

“엄니! 곤드레밥만 좀 지어주세요!”

“호홍, 그라고 불러주니 꼭 우리 막둥이 같구만! 나만 믿으쇼 사장님!”

“저, 저는 도울 거 없습니까?”

강산이가 물었다.

“산이 씨는 맛있게 먹어주고, 고칠 부분만 알려주세요. 간 안 맞거나 하는 부분요.”

“예······.”

도와주고 싶었지만, 솔직히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일일 거다.

강산이는 두 눈을 살포시 감았다.

뜨고 있으나 안 뜨고 있으나 보이는 것은 없지만, 머리로라도 요리 과정을 느끼고 싶었다.

버릇이다.

달그닥-

냄비 하나가 불 위에 올라간다.

휘리릭-

걸쭉한 액체가 냄비 속을 적신다.

특유의 구수한 향!

참기름이다.

후두둑-

뒤이어 무언가가 냄비 속으로 쏟아진다.

향기로 봐서 황태포가 분명했다.

‘아마 물에 불려 찢은 거겠지.’

지글지글-

볶아지는 황태포 사이로 무언가가 또 떨어진다.

다진마늘이다.

계속 볶는다.

후두두둑-

이번엔 넓게 썬 무가 쏟아진다.

살짝 더 볶다가,

콸콸콸-

물이 냄비를 가득 채운다.

‘이제 팔팔 끓이겠지.’

보글보글-

물이 끓자 뚜껑을 열어 콩나물을 쏟아 넣었다.

이쯤 되면 아마 무가 투명하게 익었을 거다.

쪼르르-

국간장을 살짝 넣는 소리가 들린다.

많이 넣으면 국물 색이 까매지기 때문에 살짝 넣는 것이리라.

이어서 간을 맞추기 위해 소금이 솔솔- 들어간다.

마지막으로 대파가 들어간다.

시원한 황태콩나물국 완성.

‘다음은? 두부조림?’

달그락-

또 다른 식기 꺼내는 소리가 들린다.

소리의 형태로 보았을 때, 사기그릇이다.

‘양념장을 만들려나 보네.’

주르륵-

액체가 그릇 속으로 들어간다.

코를 킁킁거려 맡으니, 왕호가 직접 만든 만능간장이 분명했다.

한 번 먹어봐서 안다. 진짜 맛있다.

만능 간장 위로,

설탕이 스르르-

고춧가루가 솔솔솔-

참기름이 주우욱-

다진 마늘이 풍덩-

다진 파가 수북하게 올라간다.

슥슥슥슥-

숟가락으로 양념을 잘 비벼준다.

두부조림의 조림장 완성.

‘진짜 빠르다! 내가 눈이 보인다고 해도 못 쫓아갈 속도야.’

새로운 냄비가 불 위에 또 올라간다.

서걱- 서걱-

양파가 크게크게 썰린다.

양파의 매운 내와 큼지막하게 썰리는 소리로 단번에 파악했다.

냄비 안으로 크게크게 썬 양파를 깔고, 그 위에 두부가 포개진다.

그리고,

주아아악-

만들어진 양념장이 그 위에 올라간다.

콸콸콸-

물이 자박하게 채워지며 끝.

이제 물을 팔팔 끓여서, 두부 속까지 간이 배게 잘 졸이기만 하면 된다.

일련의 이 모든 요리과정이 강산이의 머릿속에 하나의 화폭처럼 그려졌다.

비록 눈이 보이지 않을지언정, 요리하는 즐거움을 모르진 않는다.

강산이는 계속해서 집중했다.

코로,

귀로,

피부로,

머리로,

그리고 가슴으로.

시금치 무침이 맛있게 무쳐지고, 무 생채도 시원하게 무쳐진다.

푸욱-

밥 푸는 소리가 들린다.

뒤이어 국 푸는 소리, 두부조림을 조심히 담는 소리, 반찬을 정갈하게 세팅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코로는 뜨뜻, 달달, 구수한 향이 절로 느껴진다.

한국인의 밥상.

강산이의 머릿속에 하나의 밥상이 올라왔다.

눈으로는 보지 못해도, 머리로는 볼 수 있다.

상상 想象.

그 옛날 선조들은, 코끼리의 뼈만 가지고 보지도 못한 코끼리의 형태를 상상했겠지.

그에 비해 자신은 한국인의 밥상을 누구보다 잘 안다.

매일 매일 어머니의 밥상을 먹어왔으니까.

‘따뜻하다.’

어린 시절부터 먹어오던 어머니의 아침밥상이 그대로 투영됐다.

강산이는 뜻 모를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손을 더듬거려가며, 숟가락을 집어 들었다.

“잘 먹겠습니다!”

*

조심스레 숟가락을 움직이는 강산이의 모습을, 왕호가 지긋이 바라보았다.

이제는 이 조심스런 모습을 볼 수 없으니, 마음속에 담아두려는 것이다.

‘이제 세상의 빛을 다시 볼 때입니다.’

사람들은 빛의 소중함을 모른다.

공기, 어머니, 빛.

항상 곁에 있기에, 모른다.

없어지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강산이는 그 소중함을 다시 되찾을 자격이 충분했다.

적어도 왕호가 느끼기에는 그러했다.

요리를 완성하고 왕호는 뜻밖의 결과에 아무 말 못하고 놀라야만 했다.

한 방에 힐링 버프가 생성된 것도 그러했지만, 새로운 형태의 요리가 완성됐으니까.

< 빛이 있으라 (2) > 끝

ⓒ 신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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