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맛있는 버프를 만들어 드립니다-105화 (105/149)

< 고오급 (2) >

“조각칼?”

“갑자기 조각칼은 왜···? 방망이라도 깎을려고 저러나?”

“데코레이션 하려는 거겠지.”

국민 심사위원들이 웅성거린다.

맞다.

고급 요리는 4가지 요소가 융합되어야 비로소, 눈탱이 때리는 가격으로 등쳐먹을 수 있다.

고급 재료, 고급 식당, 고급 셰프.

그리고···

고급 플레이팅.

왕호는 에피타이저서부터, 플레이팅에 힘을 실었다.

메인 요리에 힘을 더 빡세게 주는 것은 자명한 일!

치킨을 달랑 두 조각만 내어주면, 그 누가 거금을 주고 사 먹겠나.

보는 것만으로도 뿌려댄 돈지랄을 아깝지 않게끔 만들어야 한다.

스윽-

재료를 꺼낸다.

흰색의 무.

“크으, 역시 치킨엔 치킨무지!”

“사장님! 반반 무 많이요!”

지금 접시 위에 올려져있는 치킨은 두 조각이다.

하나는 프라이드. 남은 하나는 양념.

즉, 반반 치킨이다.

그렇다면 반반엔?

반반무많이.

진리다.

왕호가 꺼낸 무는 그냥 생무가 아니다. 통으로 절여놓은 무.

거기에 날이 바짝 선 칼을 가져다 댔다.

서걱- 서걱-

왕호의 손이 움직인다.

칼날이 춤을 출수록, 잘려진 무 조각이 후두둑 떨어져 나간다.

빠르다.

거침없다.

그리고, 아름답다.

“우와······.”

“빨라··· 무슨 얼음조각 장인같아!”

“근데, 저 모양은?”

“···새?”

무가 뭉텅뭉텅 잘려나갈수록, 점점 모양의 형태가 갖춰진다.

통통했던 무는 어느새, 새의 형상을 갖추고 있었다.

왕호의 손이 살짝 느려진다.

이제는 디테일을 표현해야 한다.

스윽- 스윽-

그리고 왕호의 칼이 계속해서 지나가자, 새의 형태가 완벽해진다.

“닭?”

“닭이라 하기엔 너무 화려한데?”

그냥 새가 아니다.

그냥 닭도 아니다.

봉황 鳳凰.

전설 속 새가 왕호의 손에서 탄생한다.

마치, 이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이 봉황으로 만들어진 것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

사람들은 숨죽이며 왕호의 조각을 지켜본다.

카메라들도 오직 왕호의 손길만 클로즈업할 수밖에 없었다.

김성오는 완전히 관심 밖이었다.

그만큼 왕호의 퍼포먼스가 상상을 초월했다.

카빙 데코레이션Carving Decoration.

푸드 아트food art의 종류 중 하나로, 식재료를 아름답게 조각해 꾸미는 방식이다.

왕호는 이번 미션의 주제를 듣고, 카빙 데코레이션을 따로 연습했었다.

그렇게 왕호의 손에서 순백의 봉황이 완성되자, 방청석에서 탄성이 터져나왔다.

“세상에!”

“저정도로 금손이었다니······.”

“이러다 달빛도 조각하겠는데?”

앞서 보았던 부케 샐러드의 아름다움이 채 가시질 않았건만, 지금 보여주는 것들은 클래스가 다른 아름다움이다.

아니, 아름다움을 넘어선 예술이다.

금손도 이런 금손이 있을까?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았는데, 완벽할 정도로 깔끔하게 조각을 마쳤다.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왕호의 손재주 스탯이 매우 높아서도 있었거니와,

썰기 스킬이 고급으로 진화했다는 점도 크게 작용했다.

고급 요리를 만드는 데 고급 스킬 정도는 사용해야 하지 않겠나.

선천적으로 타고난 손재주,

각성하면서 계속해서 올라간 스탯,

그리고 고급 칼질 스킬이 합쳐 이뤄낸 걸작이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지.’

왕호는 치킨 무 봉황에서 만족하지 않았다.

그 봉황이 거닐 풀밭.

오이를 사용해 녹음을 장식한다.

풀밭 사이사이로 흐드러지게 핀 주황빛 꽃.

당근을 사용해 피어냈다.

그 꽃잎 위를 날아다니는 노란 나비.

단호박을 사용해 창조해낸다.

그렇게 하나의 화폭이 탄생한다.

그 중앙엔 반반 치킨이 놓여 있었다.

완성된 접시는 곧장 심사위원들에게 전해졌다.

“이걸 어떻게 먹어······.”

“그래도··· 심사는 해야겠지.”

케빈 오가 먼저 나섰다.

그가 나이프를 들어, 양념된 치킨 한 조각을 반으로 갈랐다.

치킨을 칼로 잘라 먹는 사람이 있었을까?

고급 요리인만큼 격식을 차리는 모습이다.

그 광경이 메스컴을 통해 전국으로 퍼져나간다.

슥슥-

스테이크 자르듯 치킨을 자르니, 갈라진 틈 사이로 치킨의 육즙이 주르륵 흘러나온다.

포크로 잘라진 조각을 푸욱- 찍어 입으로 가져가니,

우물무울-

“으으음~.”

환상이 따로 없다.

익숙하지만 그 익숙함 중에서는 단연코 최고.

케빈 오는 이어서, 치킨 무 봉황의 꼬리를 잘라서 입으로 가져갔다.

아삭아삭-

치킨 무의 새콤함이 느끼함을 확! 잡아준다.

한국인들이 완성한 치킨 밸런스의 완벽함이라고 해야하나?

‘이 친구, 결국 해냈군······.’

케빈 오는 시종일관 미소를 잃지 않으며, 치킨을 음미했다.

맛과 비주얼을 모두 잡았으니, 결과는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 것이다.

왕호가 여태까지 쌓아온 이미지를 생각했을 때, 김성오의 몸에 대장금의 영혼이 빙의하더라도 뒤집는 것은 불가능하다.

왕호는 심사위원들의 극찬에 힙입어, 마지막 디저트까지 깔끔하게 완성했다.

각성하면서 체력과 지구력이 엄청나게 상승했지만, 왕호의 이마에는 땀 방울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그만큼 엄청난 집중력을 소모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전국으로 생중계되는 방송이고 유종의 미를 거둬야 하는 만큼 최선의 최선을 다하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고급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개똥철학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정말로 두배 세배로 노력해야만 했다.

‘노오력 하나만큼은 가장 자신있지.’

그렇게 디저트까지 고급스럽게 만들어내자, 의도치 않았던 일이 벌어졌다.

[프리미엄 최고급 코스 요리 “걸작! 에셰코 안왕호 고오급 코스 요리”를 제작했습니다.]

[레시피 데이터베이스에 “고급 코스 요리” 목록이 형성되었습니다.]

[고급 코스 요리의 특성상 버프가 기본 1.5배로 적용됩니다.]

[중급 요리의 숙련도가 100%로 상승하였습니다.]

[중급 요리가 고급 요리로 업그레이드됩니다.]

[고급 요리를 익히셨습니다. 해금 조건이 갖춰진다면, 클래스 특유의 스킬을 습득할 수 있습니다.]

[클래스 “힐링 요리사”의 능력이 더욱 개방됩니다.]

[고급 요리사의 반열에 오르셨습니다. “이터블 감정”스킬의 “포식” 능력이 개방됩니다.]

[“이터블 감정”스킬을 사용해, 파악되지 않은 재료의 알맞은 레시피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터블 감정”스킬을 사용해, 완성된 요리의 레시피를 알아낼 수 있습니다.]

[이터블 감정의 영향으로 섭취 불가능한 재료를 포식할 수 있습니다.]

[조건이 갖춰진다면, 다른 스킬들의 능력도 개방됩니다.]

채워지지 않던 1%의 숙련도가 느닷없이 채워졌다.

아니, 느닷없는 게 아니라 고급 요리를 만드니, 고급 스킬이 생겨난 건가?

어쨌든···

뿌듯했다.

이정도라면 생각했던 유종의 미를 제대로 거둔 것 같다.

결과물이 좋다.

이번 에셰코를 통해 명성을 얻고,

좋은 사람들도 얻고,

스킬의 향상도 얻었다.

입가에 미소가 저절로 맴돌았다.

.

.

.

심사위원들의 심사가 모두 끝나고,

결과지를 받아든 케빈 오가 스테이지 중앙으로 올라왔다.

케빈 오의 표정은 무척이나 홀가분해 보였다.

그는 어떠한 미사여구도 붙이지 않았다.

그저, 담백하게 말을 시작했다.

“올해의 에이스 셰프가 될 요리사는···”

두구두구두구-

긴장감을 높이려는 음악이 스피커에서 웅장하게 흘러나왔지만, 하나도 긴장되지 않는다.

‘김성오겠지.’

김성오의 이름이 호명되면, 웃으며 축하해주면 된다.

그것이 바로 대인배의 모습!

하지만 그런 왕호의 예상과는 다르게, 케빈 오의 눈동자는 정확히 왕호를 응시하고 있었다.

“안왕호 씨입니다. 축하드립니다!”

케빈 오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번쩍-!

설치된 조명장치에서 강렬한 빛이 흘러나오고,

펑-! 펑-!

바닥에 설치된 무대장치에서는 화려한 폭죽이 터지고,

훈훈한 음악과 함께, 공중에서는 인공 벚꽃잎이 휘날렸다.

“어라?”

왕호는 어리둥절함을 감출 수 없었다.

이곳에 있는 그 누구도 왕호의 우승을 의심하지 않았다.

왕호만이 김성오가 100% 우승하리라 확신했다.

그리하여··· 어리둥절하고 있는 사람은 오직 왕호 뿐이었다.

“우와아아!!!”

우르르-

그동안 왕호와 함께 출연했던 탈락자들이 왕호를 향해 달려간다.

그리고 원을 빙 둘러서 왕호의 몸을 하나둘씩 잡더니, 하늘로 행가레친다.

부웅-

‘뭐가 어떻게 된 거야?’

공중에 뜬 왕호는 아직도 어리벙벙했다.

분명 김성오가 우승해야 하는데 내가 왜?

혹시, 전산 오류인가?

아니면 공동 우승?

아니면 우승 번복?

‘아니지.’

공중에 두어 번 뜬 상태에서,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아니었다.

우승자를 호명한 케빈 셰프 부터가 조작에 관여되어 있는 인물이다.

자신의 이름을 실수로 호명했을 리가 없다.

‘그럼 정말 내가 우승?’

어째서?

“안왕호! 안왕호! 안왕호!”

더 이상 생각할 틈도 없이, 사방에서 왕호의 이름이 터져나왔다.

순식간에 행가레가 끝나고, 넋이 나가있는 왕호를 향해 케빈 오가 마이크를 들고 다가왔다.

“축하드립니다. 안왕호 참가자. 아니, 이제는 셰프라고 불러야 하겠군요. 안왕호 셰프. 아직도 어리둥절하신 것을 보니, 하나도 예상 못 한 것 같군요.”

“아, 예······. 제가 우승할지 정말 몰랐습니다.”

진짜 몰랐다.

진심에서 가득 우러나온 말이었으나, 믿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들의 입장에서 왕호의 우승은 기정사실화였으니까.

그저, 왕호가 표정 연기를 잘한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럼 우승 소감 부탁드립니다.”

케빈 오가 마이크를 건넸지만, 말이 쉽게 튀어나오지 않았다.

우승 소감?

그딴 걸 생각해왔을 리가 없지.

“가, 감사합니다······.”

왕호의 어색한 한 마디에, 스튜디오가 순식간에 정적으로 물든다.

그 모습을 본 문 PD의 얼굴에는 ‘저럴 줄 알았으면, 미리 말해 줄 걸’이라는 글씨가 후회막심하게 떠올랐다.

케빈 오가 재빨리 상황을 수습했다.

“하하, 감사하다고요? 특별히 감사한 분이 계시나요? 전국에 생중계로 진행되니까, 고마움을 표할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을 것 같네요.”

감사한 분이라······.

한둘이 아니다.

그래도 케빈 오의 질문에, 곰곰이 생각할 기회를 얻었다.

“이 때까지 함께 달려온 우리 참가자들 특히, 김점례 아주머니, 우리 산이··· 그리고 옆에서 항상 응원해준 다희, 희영이, 여름이···”

고마운 사람들의 이름이 구구절절하게 흘러나왔다.

미리 짜놓은 수상소감이 아닌, 가슴에서 우러나온 순도 100% 애드립이었다.

그렇게 자신을 응원해준 사람들의 이름 하나하나가 흐르고··· 마지막 사람의 얼굴 하나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더불어, 가슴 깊은 곳에서 모태의 감정 하나가 울컥울컥 솟아오른다.

“···마지막으로 청주에 계신 우리 박희란 여사님······. 저에게 처음으로 요리를 가르쳐 주시고, 또 제가 요리를 할 수 있게 모든걸 주고도··· 더 주지 못해 미안해 하는 우리 여사님. 당신이 없었더라면 저는 이 자리 까지, 아니 태초에 세상 빛을 보지 못했을 겁

니다···”

희영이에게 줄 디저트를 설명할 때도 흐르지 않았던 눈물이, 뺨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왕호는 입술을 한번 꾹 깨물며 간신히 오열을 참아냈다.

그리고 다시 말을 이었다.

“···처음 당신을 만나자마자 저는 울었더랬죠.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마 기뻐서 울었을 겁니다. 그때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마지막 당신의 모습은 영원토록 기억할 겁니다. 저에게 세상을 선물한 당신을 정말로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엄마!”

대학 졸업 이후로, 한번도 사용하지 않았던 ‘엄마’라는 호칭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왕호의 눈은 억지로 참아낸 눈물로 인해 무척이나 새빨개져있었다.

미리 소감을 준비해오지 않아서였을까?

왕호의 진심어린 맘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냉혈한이라고 소문난 케빈 오 조차도 자신의 어머니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마지막으로 방송을 마무리하기 위해 케빈 오가 마이크를 들어올렸다.

“올해의 우승자 안왕호 씨께는 우승 상금 3억과 함께 다이나믹 해치백을 드립니다~!”

케빈 오의 힘찬 외침과 함께 마무리 영상이 틀어지며 방송은 마무리됐다.

그리고···

왕호의 눈은 우승자가 발표되었을 때보다 더 휘둥그레져 있었다.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았던 그것!

전혀 기대하고 있지 않았던 그것!

그것이 케빈 오의 마지막 말을 듣고 머릿속을 강타한다.

방금까지만 하더라도, 어머니 생각에 눈이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는데,

이제 그 빨개진 눈이 슬슬 반달을 그린다.

활짝-

지금까지 에셰코를 찍으면서 가장 행복해 보이는 웃음꽃이 왕호의 얼굴에서 피어났다.

3억!!!

< 고오급 (2) > 끝

ⓒ 신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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