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맛있는 버프를 만들어 드립니다-106화 (106/149)

< 고오급 (3) >

*

3억.

누군가가 느끼기엔 참으로 대단한 숫자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기껏해야 푼돈으로밖에 느껴지지 않는 액수다.

어린 시절부터 쪼들리며 살아온 왕호에게 이 3억은 무척이나 거대한 액수였다.

지금은 장사가 술술 풀리는 터라 모으고자 하면 충분히 모을 수 있는 액수지만, 어쨌든 큰돈은 큰돈이다.

‘3억으로 이제 뭘 하지?’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이처럼 행복한 상상이 있었을까?

마치 로또에 당첨되면 무얼 할까 망상에 잠긴 사람들마냥, 저절로 입꼬리가 히죽거린다.

돈지랄?

요플레를 사서 뚜껑을 핥지 말고 쿨하게 버려?

쭈쭈바의 입구를 쪽쪽 빨지 말고 쿨하게 버려?

아님, 응원하는 엘지 트윈스의 유광잠바를 쿨하게 사버려?

절레절레-

왕호는 고개를 저어 망상을 떨쳐냈다.

돈지랄은 성격에 맞지 않다.

필요한 곳에 사용해야 한다.

돈이 부족할 때는 부족한 만큼 채우며 살았는데,

막상 3억이라는 돈이 생기니 들어갈 구멍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먼저, 지금 사용하고 있는 장비의 교체.

장인은 도구를 가리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지금의 장비로도 충분히 몬스터 레이드와 요리가 모두 가능하긴 하지만, 같은 장인이면 장비빨이 좋은 사람이 짱먹지 않겠는가?

장비뿐만 아니라, 옵티머스 식당의 업그레이드도 필요하다.

벌어놓은 모든 돈을 식당에 투자하긴 했지만, 그래도 자금이 부족했던 터라 식당을 완벽하게 꾸밀 수가 없었다.

‘허나, 이것들은 원래 돈을 벌면 천천히 하려고 했던 것들······.’

전혀 급할 것이 없다.

급할 것이 없으니 투자?

은행에 전부 집어넣어 이자를 받아먹을 수도 있고,

투자 전문 펀드 매니저를 만나 자금을 맡길 수도 있다.

아니면,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샘성같은 우량주에 주식 투자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주식은 패가망신의 지름길 아니던가.

아무리 안전한 주식에 투자하더라도, 인간의 욕심이 종국엔 찌라시 정보에 홀라당 넘어가게 만든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항상 같은 실수를 반복하니 말이다.

아니면···

모든 사람들의 최종 목표라는 건물을 구입해서, 월세를 받아 먹을수도···

‘아, 이건 너무 비싸지.’

고작 3억으로 무슨 건물주를······.

건물주의 꿈도 잠시,

씨익-

갑자기 왕호가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건물주까지 상상의 나래를 펼치니, 무엇을 해야 하는지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집 또한 건물의 한 종류가 아니겠나.

오랫동안 하려고 마음먹고 있던 그것.

내 집 마련이다.

사실, 옵티머스의 업그레이드 전에 하려고 했지만 그때는 식당을 오픈하는 것이 더 우선이었다.

결과적으로 식당을 오픈했기에, 우승이라는 월척을 낚아낼 수 있었다.

훌륭한 선택이었다.

지금은 내 집마련보다 우선시 되는 것이 없다.

진정 이사를 가야 할 때다.

‘지긋지긋한 반지하 반전세도 이제 안녕이다!’

지금 희영이와 함께 사는 이 집은 월세다.

보증금이 시세보다 비싼 곳이니 반전세라고 하는 게 맞겠다.

다달이 빠져나가는 월세가 그렇게나 아까웠으나 어쩔 수 없었다.

중학교 때부터 똘똘했던 희영이를 좋은 학군으로 보내기 위해 강남 8학군 근처로 집을 얻어야 했다.

강남, 서초, 잠실······.

수억을 요구하는 전세는 언감생심 꿈도 못 꾸는 것이 당연했다.

그나마 레스토랑 시절 열심히 모은 돈과 어머니가 보태준 돈으로, 이곳 반지하라도 얻을 수 있었다.

보증금이 상당했지만, 그래도 월세가 평균보다 낮아서 망설임 없이 계약했다.

‘3년을 버텼으니 잘 버텼다!’

이제 희영이의 수능도 끝났으니, 더 이상 이곳에 머물 이유가 없다.

‘드디어 전세로 간다!!!’

월세보다는 반전세.

반전세보다는 전세.

전세보다는 전전전세···

아무튼, 이제 다달이 피 같은 헛돈을 뽑히지 않아도 된다.

전세로 옮겨 빠져나가는 월세만 막아도, 투자하는 것보다 더 이득인 셈이다.

건물주를 해서 월세를 받아먹나, 전세로 옮겨 빠져나가는 월세를 막나.

같은 맥락이다.

물들어올 때 지금 노를 젓고 있으니, 건물주도 마냥 헛된 꿈만은 아니다.

생각을 마친 왕호는 대기실을 빠져나왔다.

그러자···

펑-! 펑-!

생일케이크를 사면 딸려오는 싸구려 폭죽이 왕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축하합니다~!!!”

“억! 깜짝아!”

화들짝 놀란 왕호가 놀란 눈으로 확인하니, 익숙한 얼굴들이 우승을 축하하기 위해 모여 있었다.

먼저 희영이.

“진짜 약속 지켰네? 자, 여기 꽃다발.”

“고마워.”

한창 바쁠 거라 생각했던 여름이도 와 있었다.

“오빠! 우승 축하해요~!”

“하하, 고마워. 바쁠 텐데 와줬네. 촬영은?”

“운 좋게 어제 촬영 다 끝났어요! 개봉은 한 3개월 뒤에 하니까, 그때 동안 계속 놀러 갈 거예요!”

“나 레벨 많이 올라서 위험할 텐데 이제는.”

“그럼, 게이트 밖에서 덕구랑 놀고 있을게요 헤헤.”

그리고 다희

“우승 축하해요. 상금도 많이 받았는데, 그 돈으로 주방보조 더 구하는 거 어때요?”

“응? 너 있는데 굳이? 설거지 재밌다며.”

“재밌긴 한데, 디저트 만드는 건 언제 가르쳐 줄 거예요? 가르쳐 준다며요!”

“껌딱지마냥 붙어있는 이유가 그거였네. 그렇게 단 것만 자꾸 찾으면 당뇨 걸린다? 그리고 원래 막내는 설거지만 1년 해야 겨우 칼 잡을 수 있는 거야.”

“후~ 대련할 때 봐요. 이제 안 봐줄 거니까.”

“내일부터 알려주면 되는 건가?”

상문이도 마치 자기가 우승한 것마냥 흥이 잔뜩 올라와 있었다.

“형! 핵대박! 생방송 덕에 오늘만 구독자 수 2만 명 늘었어요! 오졌다 진짜······.”

“내가 우승한 게 기쁜 거야, 구독자 수 늘어난 게 기쁜 거야?”

“겸사겸사죠. 이제 B형 던전에서 본격적으로 레이드 뛰어야 되는데, 인지도 많이 올라가서 다행이에요. 솔플 뛰어도 크게 마찰 없을 거예요. 공격대 들어가야돼도 잘 받아줄 거구요.”

“요리대회 우승한 건데 레이드에 영향이 있을까?”

“준우승보다는 낫겠죠.”

문 PD도 안심한 듯한 미소를 지으며 서 있었다.

“왕호 씨가 우승해서 다행입니다. 시청률도 기록 경신했고, 잡음도 안 생길 거고요.”

“저야, 우승해서 좋긴 한데··· 제가 왜······?”

“여기는 듣는 귀가 많아서 하하, 왕호 씨의 그간 행적이 상황을 뒤집었습니다. 팬들의 힘이 대단하더라고요. 우승하셨으니, 조만간 방송계에서 또 볼 수 있겠군요.”

“방송이요?”

“벌써 섭외전화 몇 통 나갔을 겁니다.”

그리고··· 뜻밖의 얼굴도 있었다.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린 박하진이 호탕하게 웃으며 축하 인사를 건넸다.

“하하하, 저도 우승은 기대 안 했는데 이거 뜻밖입니다. 정말 축하드립니다.”

“바쁘실 텐데 배우님··· 아니, 사장님이 여긴 어쩐 일로······.”

“바쁘긴 한데, 우리 왕호님 축하해줄 짬은 있습니다. 그리고 전해줄 소식도 있고요.”

“소식이요?”

“아까 문 PD님이 얘기하셨는데, 정말로 방송 섭외 전화가 여러 통 왔습니다. 아직 왕호님 담당 매니저가 없어서 제가 직접 알려주려고 왔습니다.”

뜻밖의 소식에 왕호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벌써요?”

“벌써라기 보단, 우승하길 기다렸다고 하는 게 맞겠습니다.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연락 왔거든요. 요리 프로그램도 있고 예능 프로그램도 있습니다.”

“예능은 굳이 나갈 이유가 없겠죠?”

“그렇죠. 자세한 건 한 번 회사로 오셔서 이야기 나누시죠. 바쁘시면 보고서를 메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아뇨. 한번 가야죠.”

우승만으로도 충분히 기분이 째질 것 같은데, 그 우승을 통해 얻어낼 수 있는 효과가 벌써부터 나타나고 있었다.

“그리고 이건 방송 섭외보다 더 좋은 소식인데······.”

“헉! 호재가 또 있나요?”

더 찢어질 입도 남아 있지 않거늘······.

“CF광고가 몇 개 들어왔습니다.”

“CF······.”

평생을 일반인으로 살아온 왕호에게 CF광고는 별나라 이야기였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다.

“CF는 굳이 가릴 이유가 없을 겁니다. 지금 컨택온 곳은 대부분 괜찮은 메이저 회사거든요.”

“메이저라면···”

“오늘 치킨을 사용해서 그랬는지 몰라도, 치킨 광고 문의가 들어왔습니다. 게다가 레토르트 식품도 있고 그리고··· 장미칼 회사에서도 컨택이 왔습니다.”

“장미칼 회사요?”

“원래 미디어 광고는 잘 안 때리고 홈쇼핑이나 대형마트 프로모션을 주로 진행했는데, 이번에 왕호님께서 쓴 장미칼 덕분에 매출이 많이 상승했다고 하더군요. 그 남은 마나석 장미칼의 재고도 거의 소진됐다고, 꼭! 정식 모델로 쓰고 싶다고 거기 사장님

께서 직접 연락하셨습니다.”

“음··· CF면 광고료가 꽤 되죠?”

“그렇죠. 방송 프로그램 출연료보다야 훨씬 쎕니다.”

흐뭇-

왕호의 미소가 더욱 진득해졌다.

그렇다면,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당연히 해야죠. 이상한 회사만 아니면 괜찮습니다.”

“하하, 이상한 회사면 저희 측에서 다 거릅니다. 한창 좋은 왕호님 이미지 깎아 먹으면 오히려 손해죠.”

“그럼, 지금 들어온 CF 다 찍으면 얼마나 나올까요?”

“흐음··· 아직은 그렇게 광고료가 높진 않습니다. 식당이 좀 더 성공하거나, 요리 프로그램에서 인지도를 더 쌓으면 광고료도 올라가겠죠. 그래도 서너 개는 들어왔으니··· 정산하면 큰 거 한 장 이상은 나올 것 같습니다?”

“회사에서 떼는 수수료 다 제외하고 말씀하시는 거죠?”

“예. 방송이랑 CF 광고는 계약서에 써진 비율로 정산될 겁니다. 대신, 모든 케어는 저희 쪽에서 하니까 스케줄만 정해주시면 됩니다. 몸만 가지고 오세요.”

“와··· 이게 다 무슨 일인지······. 근데 한 장이라 하시면···”

왕호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의 경제관념에서는 큰 거 한 장의 액수는 100만 원이다.

근데 CF 서너 개를 찍고 고작 100만 원?

그럴 리가 없다.

그렇담 혹시 천만 원?

천만 원으로도 히죽거리는 왕호의 귀로, 박하진의 입술이 천천히 다가왔다.

‘한 장’이라는 액수의 정확한 개념을 알려주기 위해서다.

수군수군-

“···입니다.”

귓속말로 소곤거리는 터라 다른 이들은 들을 수가 없었다.

“흐억! 이, 일억이요?!!!”

하지만, 왕호의 입에서 곧장 반문이 튀어나온 터라, 귓속말의 의미가 없어졌다.

“···예. 아마 1억도 넘지 않을까 싶습니다.”

“······.”

“우와!!! 오빠 완전 부자 됐네! 졸부다 졸부!”

희영이가 신나서 폴짝 뛰었다.

왕호는 너무 놀라 한 마디도 내뱉을 수 없었다.

“졸부? 졸부가 무슨 뜻이야? 졸라 부자?”

상문이가 진짜 모르겠다는 눈으로 희영이를 쳐다봤다.

“헐, 대박 무식! 졸라 부자가 아니라. 벼락부자라는 뜻이야. 한자라고 한자!”

“아아~ 한자였구나. 새로 나온 인터넷 용어인 줄?”

“상금도 3억 받으셨는데 어디에 사용하실 계획이십니까? 따로 사용할 계획 없으시면, 좋은 자산관리 매니저 한 분 소개시켜 드리겠습니다.”

박하진이 넋 나간 왕호에게 다시 물었다.

“아, 아뇨. 전셋집으로 이사가려고 생각했습니다. 상금 3억은 따로 정산하지 않는 거 맞습니까?”

“예. 상금이니, 저희 회사에서는 손 안 댈 겁니다. 대신 제세공과금은 떼어야겠죠. 그나저나, 요새 집값이 금값이라··· 지금 사시는 동네는 조금 힘들 것인데···”

맞다.

왕호에게 3억의 가치는 상상을 초월하는 액수였지만,

서울의 금싸라기 아파트를 사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액수다.

괜히 서민들이 집 사려다 가랑이 찢어지는 게 아니다.

이놈의 부동산 거품은 100년이 지나도 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3억이면 부족하지만, 방금 들어온 CF 계약까지 합치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그 3억에, 지금 살고 있는 월셋집 보증금이랑, 그 CF광고료 다 더하면 좋은 아파트 한 채는 살 수 있겠죠?”

“그 정도면 충분히 가능하죠. 대출까지 끼시면 마포쪽 역세권도 가능할 겁니다. 물론, 소형 평수를 기준으로요. 동생분이랑 두 분이서 거주하실 겁니까?”

“아뇨. 이제는 셋이서 살아야죠.”

이제는 박희란 여사를 모시고 올 때가 됐다.

안정적인 수입.

그것도 상당한 수입이 계속해서 들어오니, 어머니를 더 이상 고생시키지 않아도 된다.

자식들을 멀리 보내고, 급식 아주머니로 일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어찌 편할 수 있겠나.

어머니의 희생.

어머니의 헌신.

이제는 충분하다.

이제는 도리어 자식들이 베푸는 사랑을 받기에도, 인생의 남은 시간이 모자라다.

‘물론, 우리 여사님 성격상 놀고 있지는 않을 테지만······.’

일을 하더라도, 한집에 살면서 하는 게 낫다.

“와, 그럼 오늘 진짜 두 배로 축하해야 하는 날이네!”

“맞아맞아. 오빠! 한턱 쏘시오!”

“왕호 형이 아무리 짠돌이라지만, 쏠 때는 쏘지 않겠어?”

기대에 가득 찬 눈빛들이 왕호를 향해 쏟아졌다.

그래! 나 안왕호! 쏠 때는 쏘는 남자다!

“좋아! 회식이다!”

“앗싸! 어디로 가요? 비싼 거 먹나요?”

“그럼~! 무한리필 고깃집으로 간다!!!”

“······.”

무한리필 고깃집이라는 말에, 찬물 끼얹은 것마냥 분위기가 싸해진다.

고작?

방금까지 아파트 산다고 ‘억’ ‘억’ 거리던 사람이 고작?

고작 1인당 9,900원 하는 그 무한리필 고깃집?

“세상에··· 아무리 짠돌이라지만 이건 에바···”

“하하, 장난이야. 참치회 먹으러 갈까?”

“헐~ 콜!”

“참치 콜!!!”

“나이쓰! 오늘 참다랑어의 씨를 말려주겠어!”

왕호는 정말 쏠 때는 쏘는 남자였다.

< 고오급 (3) > 끝

ⓒ 신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