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차원 요리 (2) >
거대한 덩치의 괴물이 쓰러지자, 채팅창도 녀석의 브레스처럼 뜨거워졌다.
[-이걸?]
[-아니 저게 죽어?]
[-일부러 브레스 유도해서 시야 가려버렸네. 클라스~]
[-어이없으면짖는개 : 왈왈왈왈!!! 크르르릉-!!!]
덩달아 후원금도 마구 터져 나왔다.
-트로피카나빌런 님이 달풍선 2,000개를 후원하셨습니다.
-5분킬미션 님이 달풍선 1,500개를 후원하셨습니다.
-세체미끼 님이 달풍선 1,004개를 후원하셨습니다.
확실히 요리나 먹방보다는, 레이드 실황에서 후원금이 잘 터진다.
“후원금 감사합니다~!”
남들처럼 오글거리거나 오버스러운 리액션은 하지 않았다.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처럼 후원금만을 위해 방송하지는 않으니까.
그래도 감사의 인사는 표하는 것이 예의.
순식간에 용돈 두둑하게 번 왕호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쓰러져있는 사체로 다가갔다.
몬스터를 잡았으니, 이제 해야할 일은 괴물의 해체.
스윽-
장미칼을 허리춤의 가죽칼집에 꼽고는, 발골도를 새로이 꺼내 들었다.
이제는 모두가 인지하고 있는 사실이지만,
마나석 빼고도 몬스터의 사체는 버릴 곳이 단 한 군데도 없다.
가죽, 뼈, 피, 살코기, 심지어 내장까지!
각종 마도구나 포션의 재료로 사용된다.
오죽하면, 몬스터 사체만을 직접적으로 매입하는 업체가 따로 있을 정도일까.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살코기는 굳이 필요치 않은 부위였지만, 조리 합법화에 이어 유통 합법화 법안까지 통과되면서 정말 돈 되지 않는 부위가 없어지다시피 했다.
심지어 비릿한 맛을 즐기는 이들은 내장까지 따로 찾을 정도였으니 말 다 했다.
이제는 식재료로써도 기능을 하게 된 것이다.
허나, 복어에 독이 있듯이 몬스터 고기에도 마기가 있기 때문에 완전히 해독된 고기만이 유통 가능하다.
그리고 마기가 해독된 고기의 값은 상당히 비싸다.
고급 인력인 힐러가 동원되기 때문이다.
물론, 왕호는 자급자족하니 별 상관이 없다.
‘마장 발골!’
왕호의 발골도가 거침없이 움직였다.
쭈아아악--
순식간에 가죽을 벗겨내고,
푸욱-!
심장을 찔러 피를 빼낸다.
서걱-!
관절을 잘라 부위도 나누고,
스윽- 스윽-
뼈와 살을 매끄럽게 분리한다.
당연히 배를 갈라, 내장도 따로 제거했다.
그렇게, 피를 비롯한 각종 부산물과 해체된 재료들을 마법 배낭 속으로 집어넣었다.
쓰러진 녀석의 덩치는 황소 열 마리를 합쳐놓은 수준이었지만, 이 작업을 모두 마치는 데는 고작 30분 남짓 걸릴 뿐이었다.
[-크으, 나는 이 해체타임이 제일 꿀잼이더라.]
[-보면 볼수록 마장동 업자 같음.]
[-손놀림 빠른 것 좀 보소······.]
시청자들은 익숙한 나머지 그리 놀라지 않았으나,
“아니 저 사람 대체 정체가 뭐야······.”
“요리사라고 해도 저건 너무하잖아!”
“애초에 요리사가 저 정도 몬스터 솔플한다는 게 더 너무하지 않냐?”
“오늘부터 왕호님 팬 한다.”
다음 차례를 기다리던 공격대는 2차 충격을 얻어맞아야만 했다.
이것이 바로 마장 발골의 위엄!
더 놀라운 사실은 숙련도가 아직 중급 99%밖에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발골까지 다 마친 왕호는 고민에 빠졌다.
‘원래 두 마리만 잡고 나가려고 했는데······.’
그럴 수 없게 됐다.
신생 길드가 다음 순번을 기다리고 있다.
상위 던전에 올라갈수록 요즘 경쟁자가 많아지는 추세라, 일부러 한가하다는 월요일 오전에 맞춰서 왔다.
점심쯤 되면 사람들이 더 많아질 게 자명한 일.
‘이제 솔플로는 한계점이 온 건가?’
각성자협회에서 관리하는 상위던전에 예약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솔로잉은 대부분 허락해주지 않는다.
즉, 이제는 왕호도 공격대에 들어가야 한다는 말이다.
아니면, 지금 잡은 몬스터보다 약한 놈들만 잡거나, 독점 던전을 많이 가진 길드에 들거나···.
뭐, 찾아보면 다른 방법도 있겠지만 지금 생각나는 것은 이 세 가지다.
길드에는 얽매이기 싫으니, 마지막 건 제외.
복잡한 건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이거라도 일단 쓰자.’
왕호는 넋이 빠져 있는 공격대를 뒤로하고는, 상문이와 함께 던전을 빠져나갔다.
공격대원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오함마로 후두부를 얻어맞은 듯한 표정이었다.
“어? 왜 벌써 나와요?”
덕구와 함께 놀고 있던 다희가 의아해하며 묻는다.
왕호가 생각 외로 일찍 나왔다.
“공격대 하나가 이미 와 있더라고, 아직 오전 8신데······. 경쟁자가 늘어나서 점점 솔플이 힘들어지네.”
“흠··· 생각보다 한계점이 빨리 왔네요. 어떡할 거예요?”
“나도 레이드 공격대에 끼거나, 아님 기존 재료들만 구해서 써야지.”
“전자가 낫겠네요. 답보보단 진보가 나으니까.”
다희 말이 맞다.
낮은 레벨의 몬스터로는 언젠간 성장의 한계를 경험하게 될 거다.
스스로의 실력이 오르는 만큼, 그에 걸맞은 재료를 사용하는 것이 최선이다.
“일단 한 마리는 잡아 왔으니까, 이것부터 쓰고 나서 생각하자.”
“그럼, 굳이 여기서 장사할 필요는 없겠네요.”
“그러네?”
생각해보니, 이렇게 되면 이곳에 더 이상 머물 이유가 없다.
어차피 상위던전에서 공격대를 꾸릴 거면, 그곳에 가서 장사하는 것이 이득이다.
장사를 하면서, 그쪽 사람들과 친분을 쌓아야 공격대에도 잘 끼워주지 않겠는가.
“어디가 좋을까?”
왕호가 다희를 지긋이 바라보며 물었다.
상위 던전에 대한 정보는 아직 파악하지 못했다.
대신, 왕호에겐 고랭커 다희가 있다.
“아즈모데우스 던전이 좋을 것 같네요.”
“음··· 이름은 들어본 것 같은데. 엄청 뚱뚱한 놈 맞지?”
“네. 레벨 300대 레이더 30명 정도가 모여서 사냥하니까, 지금 실력이면 쉬울 거예요. 덩치도 엄청 커서 1/n로 나눠도 양은 많을 거고요.”
왕호는 다희의 제안을 듣고, 망설임 없이 네비에 던전을 입력했다.
트럭으로 30분 정도의 가까운 거리였다.
가는 도중 다희에게 아즈모데우스에 대한 정보와, 레이드 팁들을 얻어냈다.
도착 시간은 나쁘지 않았다.
가까웠던 탓에 빨리 도착했다.
브런치와, 런치까지 충분히 팔 수 있는 시간대다.
일단은, 방금 구해온 자이언트 플레임 오거를 어떻게 요리할 것인가를 파악하는 것이 먼저다.
굽는다? 튀긴다? 찐다? 삶는다? 생식한다? 볶는다? 숙성한다?
왕호는 일일이 해보지 않아도 된다.
먹어보면 안다.
-“이터블 감정”스킬을 사용해, 파악되지 않은 재료의 알맞은 레시피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요리 스킬이 고급으로 업그레이드되면서 이러한 정보가 새롭게 업데이트됐다.
왕호는 방금 해체한 살코기 하나를 새끼손가락 크기만큼 잘라, 날 것 그대로 입으로 가져갔다.
질겅질겅--
비린내가 살짝 느껴졌지만 이내,
[“이터블 감정”으로 섭취한 재료를 파악합니다.]
[홍염의 기운이 많이 담겨있습니다.]
[마기가 제거되어 있습니다.]
[마기를 제거하지 않고 섭취하면, “포식” 능력이 개방됩니다.]
[새로운 차원의 요리를 만들 수 있습니다.]
[가장 적절한 레시피는 잘게 다진 후, 볶아서 스튜로 만드는 것입니다.]
[매운 재료를 같이 사용하면, 홍염의 기운을 좀 더욱 증폭시킬 수 있습니다.]
꿀꺽-
머릿속으로 밀려드는 뜻밖의 정보에 놀라, 그대로 날고기를 삼켜버렸다.
‘포식 능력? 새로운 차원의 요리? 홍염의 기운?’
완전히 처음 듣는 개념이다.
듣기만 해서는 도통 뭐가 뭔지 알 수가 없다.
왕호는 곧바로, 요리에 들어갔다.
새로운 차원의 요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너무나 궁금했다.
주섬주섬-
요리에 들어갈 각종 재료들과 향신료들을 꺼낸 왕호는 주방보조인 다희에게 손질을 맡겼다.
“고기는 내가 다질 테니까 피망, 양파, 고추, 마늘은 네가 다져 줘.”
“예! 솊!”
다희가 힘차게 대답했다.
다희의 우렁찬 대답에 왕호의 미소가 짙어진다.
역시 주입식 교육이 최고다.
주방 안에서만큼은, 왕호의 말이 곧 법.
탕탕탕탕-
다희는 식칼을 빠르게 움직여, 할당받은 채소를 자비 없이 다지기 시작했다.
다희와 마찬가지로 몬스터 고기를 잘게 다진 왕호는, 통조림 콩 2캔을 꺼냈다.
하나는 레드빈, 하나는 노란 병아리콩 통조림이다.
통조림을 오픈하고, 체에 밭쳐 물기를 모두 제거했다.
제거한 콩들은 물에 한 번 헹궜다.
화르륵-
널찍한 냄비를 불 위에 올리고는, 다진 고기를 넣어 볶는다.
지글지글-
물기가 다 사라질 때까지 볶는다.
치이이익-
고기가 잘 볶아지자, 다희가 다져놓은 양파, 피망, 고추, 다진마늘을 넣고 계속 볶는다.
이제 향신료 타임.
‘매운 재료를 넣으면 홍염의 기운이 증폭된댔지.’
설탕, 소금, 후추 같은 기본 향신료에서 그치지 않고,
각종 파우더를 꺼내 마구 뿌리기 시작했다.
칠리가루, 큐민가루, 오레가노, 마지막으로 카옌페퍼가루까지 솔솔솔-!
킁-!
순간, 매운 향이 확! 살아서 코를 강하게 찔렀다.
후두둑-
거기에, 아까 헹궈놓은 콩을 쏟아 넣었다.
주르륵-
그 위로 홀 토마토, 토마토 퓌레, 만능 토마토소스를 재료가 잠길 정도로 넣었다.
이제 약불로 끓여주기만 하면 끝.
보글보글-
스튜가 꾸덕꾸덕해지자, 체다치즈를 갈아올리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새로운 차원의 버프 요리 “홍염숨결flamebreath 칠리”를 제작했습니다.]
[레시피 데이터베이스에 “4차원 요리” 목록이 형성되었습니다.]
[4차원 요리의 특성상 버프가 기본 1.5배로 적용됩니다.]
[4차원 요리 특유의 마법 버프가 적용됩니다.]
[경험치가 대폭 상승하였습니다.]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홍염숨결flamebreath 칠리-
[강력한 홍염의 소유자, ‘자이언트 플레임 오거’로 만든 맵디매운 서부정통 칠리 요리.]
[곁들여진 구운 바게트 위에 올려 먹으면 딱이다.]
[여태까지의 요리와 궤를 달리하는 4차원 요리.]
[진짜 사나이들을 위한 요리다.]
[홍염의 기운이 가득 담겨있다.]
[매콤하며 고소할 뿐만 아니라, 든든하기까지 하다.]
[맛이 일품이다. 다만, 위가 좋지 않은 사람에겐 추천하지 않는다.]
[효과 : 특성 ‘불 친화력’의 영향으로 불에 대한 면역력이 올라갑니다. 화상을 잘 입지 않습니다. 뜨거운 불에서도 장시간 버틸 수 있습니다. 힘이 18% 상승합니다. 맷집이 15% 상승합니다. 최대체력이 15% 상승합니다.]
[버프 : “홍염숨결”이 발동됩니다.]
[홍염숨결 – 홍염의 기운이 몸속에 깊이 자리합니다. 입으로 홍염숨결을 뿜어낼 수 있습니다. 플레임 브레스를 뿜어낼 때마다 마나가 감소합니다. 적과 근접할수록 위력이 증가합니다. 오래 뿜어낼수록 마나 소모량이 급격히 늘어납니다. 이 버프는 두 시간
동안 유지됩니다.]
아니 이건 대체······.
고급 요리사로 올라서니, 요리의 한계를 넘어선 마법 요리가 탄생했다.
‘이것이 고급 요리사의 위력?’
고급 요리 스킬에 고레벨 특수 재료가 합쳐져 나타난, 정말이지 4차원 요리였다.
‘플레임 오거처럼 입에서 화염 브레스를 뿜는다고?’
우리가 매운 요리를 먹으면 흔히, 입에서 불난다고들 표현한다.
하지만, 이 요리는 정말로 불을 뿜는단다.
시전자의 마나를 소모하긴 하지만, 그래도 화염계열 스킬 하나가 더 생긴 거나 다름없다.
비록, 두 시간짜리긴 하지만.
‘이거 화염 드레이크로 만들면 “용숨결dragonbreath 칠리”라도 나오겠는데?’
오리진의 알람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띠링-!
놀라워하는 왕호의 귓가로 또 다른 알람이 울려 퍼졌다.
[홍염의 기운을 다루는 데 성공했습니다.]
[“불 친화력” 특성이 2단계로 업그레이드됩니다.]
[불 친화력 특성이 2단계로 업그레이드되면서, 마나와 불의 치환이 가능해집니다.]
[마나를 소비해, 직접적인 불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불은 요리사의 친구이자 적이다.
그런 불을 이제 만들어낼 수 있단다.
‘엥? 이거 완전 마법사 아니냐?’
얼마 전까지 경쟁하느라 부대꼈던 김성오는 불을 직접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
예전에 파스타 배틀 할 때,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
하지만 그건 김성오가 마법사 클래스이기에 가능한 일.
왕호는 “요리사”다.
정확히 말하면 “힐링 요리사”지만······.
‘뭐, 어쨌든 좋은 일이네. 갑자기 가스 끊겨도 문제없고.’
검에 불을 입히고 다니는 마검사 클래스도 있으니, 사람들이 그리 놀라지도 않을 거다.
중얼중얼-
신메뉴를 완성한 왕호는, 이번 메뉴에 대해 간단한 설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상문이가 요리 과정을 모두 찍고 있었기 때문에, 시청자들에게 친절하게 알려주는 것이다.
[-먹으면 입에서 불 뿜는다고요?]
[-그럼 저거 먹고 나이트가서 불쇼 공연하면 될듯!]
[-예전에 했던 고전 게임이 생각나는 군요··· 호드를 위하여!]
[-느낌상 오크들이 먹으면 딱 어울릴 것 같네요.]
[-그럼 우리들이 처먹어야겠네. 생긴 거 딱 오크아님?]
새로운 차원의 요리가 나오자 채팅창이 다시 시끄러워졌다.
시청자들의 말대로 표현하자면, 이번 요리는 정말로
이 세상 요리가 아니었다.
< 4차원 요리 (2) > 끝
ⓒ 신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