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텐 폭발! (2) >
“아, 완전 잊어버리고 있었네요.”
까맣게 잊고 잊었다.
박칠우가 신경 안 써도 된다고 호언을 한 터라, 정말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고 전권을 일임받은 박칠우는 해충박멸 세스코급 깔끔함으로 일을 처리했다.
‘이래서 비싼 변호사를 쓰는 건가?’
이런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일단 제가 들고 온 결과는 민사재판 1심 결과입니다.”
“민사요? 당연히 이기셨겠죠?”
“물론이죠~ 제가 이 바닥 능구렁이 아니겠습니까. 걸 수 있는 건 최대한 걸고, 일부승소 판결 나왔습니다. 민사는 항소 포기했으니, 1심 결과가 확정이라고 보시면 될 겁니다.”
“민사는···이라 하시면···”
“형사는 항소했다고 들었습니다. 뭐, 발버둥 쳐도 판결이 바뀔 것 같지는 않네요. 고법에서 끝날 겁니다. 대법까지는 가지도 못하는 사건이죠. 증거가 워낙 완벽하니까.”
박칠우는 소송에 관련된 굵직한 정보들만 간추려서 설명했다.
법알못 왕호도 박칠우의 친절한 설명에 절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듣고 보니 솔직히 운이 좋았다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아니, 애초에 방화를 당했으니 운이 없다고 해야 하나?’
일단, 대형 로펌을 써서 사건을 무마하려던 피의자의 시도가 박칠우에 의해 수포로 돌아갔다.
왕호가 세금 꼬박꼬박 내며 정직하게 장사했기에, 왕호의 포장마차가 ‘건조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피의자가 술을 마셔 심신미약으로 빠져나가려 했지만, 혈중알코올농도가 미미한 터라 인정되지도 못했다.
범행 도구뿐만 아니라, 목격자가 찍어놓은 촬영분도 확보했다. 고의성이 명백하게 드러나는 결정적인 증거였다.
이것만 본다면 운빨이 엄청나게 터진 거나 마찬가지였다.
“읽어보시면 알겠지만, 용어가 복잡할 테니 제가 그냥 알려드리겠습니다. 승소 액수는 총 5천만 원입니다.”
“헉! 5천만 원이요?”
왕호의 턱이 쩍 벌어졌다.
솔직히 상상한 것 이상의 거액이었다.
포장마차를 차릴 때 투자한 돈보다 월등히 많았다.
“하하, 이제는 별로 크게 안 느껴지시죠?”
“그럴 리가요··· 치킨을 무려 2,500마리나 팔아야 겨우 만질 수 있는 돈인데요.”
“포장마차 자체의 잔존가치뿐만 아니라, 정신적 피해보상과 장사를 하지 못함으로 인해 손실된 예상 소득이 전부 합쳐진 금액입니다. 걸어놓은 거 전부 인정됐으면 1억도 넘겼을 겁니다.”
“와······.”
“지급은 바로 될 겁니다. 피의자들이 불법으로 축적한 재산이 꽤 있었거든요. 뭐, 덕분에 검찰에서 탈세 혐의 까지 도매로 넘겨버렸지만.”
5천만 원.
솔직히 그 당시에 이 돈을 받았다면, 정말 크나큰 자금이었겠지만 지금은 그 정도까진 아니다.
그래도 정당한 대가를 되찾았으니 기쁘긴 했다.
하지만, 5천만 원보다 더 의미 있던 것은 저들이 정의의 철퇴를 제대로 얻어맞았다는 점이다.
“형사재판은 어떻게 된 거예요?”
“일단, 대형 로펌에서는 변호를 다 거부했고, 고의성이 워낙 다분한 사건이라 양형 되지도 않았습니다. 초범도 아니었고요. 실형으로 딱 2년 6개월씩 나왔습니다.”
“콩밥 제대로 먹게 생겼네요.”
“그들 입장에서는 운이 좋았다고 봐야 됩니다. 안에 사람이 없던 점도 좋게 작용했죠. 만약 사장님이 다치기라도 했다면, 상해까지 더해져서 더 길어졌을 겁니다. 일반 식당처럼 주거지로 인정까지 됐다면, 족히 5년은 넘겼을 테고요.”
“아저씨께서 정말 고생 많으셨겠습니다. 매번 도움만 받고 염치가 없습니다······.”
꾸벅-
왕호가 고마움에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하하, 저야 뭐 민사만 진행한 거고 콩밥은 검사님들이 알아서 한 거죠. 게다가, 수임료 받고 한 거 아닙니까. 맨날 회장님들 뒤치다꺼리나 하다가 오랜만에 제대로 된 정의구현 사건 맡은 터라, 제가 더 재밌었습니다. 정 고마우시면 보내주시는 반찬이나
계속 좀······.”
“그거야 물론이죠! 주말에 식당 오시면 아저씨는 전 메뉴 무료로 대접할게요! 사모님 모시고 한 번 들르세요! 오늘은 제가 힘 좀 발휘했으니, 맛있게 드시면 됩니다!”
“그럴 줄 알고, 일부러 위장 비우고 왔습니다. ···헉! 저걸 다 직접 차리신 겁니까?”
고개를 빼꼼 내밀어 상을 확인한 박칠우가 놀란 토끼 눈을 하며 물었다.
“예. 가진 재주가 저것뿐이니 이렇게라도 대접해야죠. 그나저나 정말 운이 좋았습니다. 덕분에 뜻밖의 큰돈도 다 만져보네요.”
“안 사장님은 이 결과가 단순 운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예?”
박칠우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며 왕호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그 당시, 절망한 왕호를 위로해줄 때의 그런 눈빛이었다.
“제가 볼 땐, 단순히 운이 아닙니다. 처음에 도와드린 것은 제가 사장님께 감동한 탓이었고, 사장님이 정직하게 장사하셨기에 재판 결과 또한 좋게 나온 것이죠. 우연이 아니라 필연입니다.”
“그런···가요···?”
“제가 누차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사장님에게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다고. 아! 맞다!”
박칠우가 무언가 생각난 듯이 박수를 한 번 짝- 내리쳤다.
‘매력’ 얘기를 하다 보니 갑자기 떠오른 듯싶었다.
“안 사장님. 제가 요새 대기업 변론하나 맡고 있는데, 거기 사장님이 안 사장님을 만나고 싶어합니다.”
“예? 저를요?”
난데없는 소리에 왕호의 표정이 궁금함으로 뭉뚱그려졌다.
재벌이 나를 왜?
“제가 안 사장님 소송 하나 맡고 있다고 하니까, 대신 말 좀 전해달라고 하더군요. 흘려듣는 얘기라서 까먹고 있었는데 이제 생각났습니다.”
“대기업 사장님이면 재벌 아닙니까? 재벌이 저를 대체 왜?”
“그··· 무슨 괴수미식회인가? 거기에 한 번 셰프로 초대하고 싶다나 뭐라나?”
“괴수미식회라···”
왕호가 고개를 기울이며 골똘히 생각했다.
어디서 들어본 말이다.
‘아!’
생각났다!
예전에, 몬스터 조리 라이센스 얻으러 식약처에 갔을 때 직원에게 들었었다.
왕호가 각성하기 까마득한 이전부터, 높으신 분들은 ‘괴수미식회’라는 지하동호회를 만들어 몬스터 요리를 즐겨왔다고 들었다.
이제는 왕호 때문에, 몬스터 요리라는 것이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되었지만 이 ‘괴수미식회’는 아직까지 모임 자체가 베일에 싸인 집단이었다.
그런 괴수미식회에 속한 한 재벌이 왕호에게 관심을 보인 것이다.
“음··· 제 요리가 궁금하면 직접 식당으로 오시면 될 텐데요. 주말에는 던전 밖에서 장사하니까요.”
“엉덩이 무거운 분들이 거기까지 직접 행차하겠습니까? 게다가 줄도 서야 할 텐데요. 그렇게 적극적이지는 않아 보였으니, 관심 있으면 저한테 연락 주세요. 제가 연결시켜드리겠습니다.”
“예. 한번 생각해볼게요.”
생각해본다고는 했지만, 그다지 매력적이진 않았다.
지금도 충분히 쭉쭉 성장하고 있다.
재벌과 엮이면 분명히 긍정적인 부분도 있겠지만, 괜한 부스럼이 생길 수도 있다.
지금은 굳이 리스크를 안고 갈 이유가 없다.
그렇게 칠우 아저씨와의 감동적인(?) 재회가 끝나자, 이번엔 종구가 벨을 눌렀다.
“하하하! 내 친구 킹왕호 갓왕호 대왕호 빛왕호! 이사 축하한다!”
“왜 이리 오바야?”
“여기 동수님도 오셨냐?”
“뭐야, 오자마자 동수님부터 찾네. 저~기 계신다. ‘큰’ 남자 좋아하구나? 취향은 존중하마.”
“뭔 개소리야! 그런 거 아니라고! 나 이번에 프로젝트 하나 하는데, 동수님 같은 인챈터 필요해서 그래. 동수님 섭외하기가 진짜 힘들다. 이따 네가 나 좀 도와주라.”
“크크 알았어 인마.”
종구는 어머니에게 살갑게 인사하고는, 곧바로 나동수가 있는 방향으로 향했다.
시간에 딱 맞춰 도착한 사람은, 문 PD였다.
“PD님은 못 오실 줄 알았는데··· 촬영 있지 않으세요?”
“에셰코 시청률 3%나 올려준 우리 우승자님 집들이한다는데, 조연출한테 맡기고 바로 달려왔죠!”
“하하,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배부르게 먹고 가세요!”
“음··· 아직 박하진 씨는 안 오셨나 봐요?”
문 PD는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도착한 사람들을 조심스레 살폈다.
“예. 영화 관련 행사 있대서, 조금 늦는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한 10분 후면 올 거예요.”
“그렇군요. 소속사를 통해 들어서 아시겠지만, 저희 방송국 쪽에서 요리 프로그램 2개 정도 섭외 요청이 갔을 겁니다.”
“예. 받았습니다. ‘내 식탁을 부탁해’랑 하나는 또··· 새로 하는 파일럿 프로그램이던데요?”
“내식부야 워낙 유명한 요리 프로그램이니 당연히 아실 테고, 새로 하는 프로그램은 제가 연출 맡았습니다. 급식 바꿔주는 프로그램이죠. 초중고 학교뿐만 아니라, 대학교 학식, 어르신들을 위한 무료급식, 군인들 급식까지 폭넓게 다룰 예정입니다.”
“좋은 취지네요? 게다가 문 PD님이 하신다니 더 끌리네요. 이따 박 대표님 오시면 다시 얘기 나누시죠.”
문 PD까지 도착하자, 초대한 인원은 이제 딱 세 사람 남았다.
여름이와 소속사 대표인 박하진.
마지막으로 미소가 아름다운 청년, 미소지기 박주혁.
세 사람은 던전 베테랑2 관련 행사가 길어져, 10분 정도 늦을 것 같다고 문자를 보내왔다.
그리고 정말로 10분 정도 지나자, 여름이가 두 사람을 데리고 헐레벌떡 들어왔다.
“오빠! 늦어서 미안해요··· 갑자기 행사가 길어져서······.”
“그럴 수도 있지, 추우니까 어서 들어와.”
박하진과 박주혁도 인사를 건넸다.
“왕호님 잘 돼서 집도 다 사시고 아주 좋습니다. 왕호님이 승승장구하시면, 자연스레 우리 회사도··· 크하하핫!”
“저까지 다 초대를 해주시고··· 정말 감사합니다!”
박주혁은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어쩔 줄 몰라했다.
아무래도 자신이 초대받을 거라 생각하지 못한 눈치였다.
“왕호님 그럼 저희는 샐러드 먼저 먹고 있겠습니다. ···야 박주혁! 어깨 펴 인마!”
박하진은 자신감이 잔뜩 결여되어 있는 박주혁을 데리고 새로운 사람들 틈으로 들어갔다.
슈퍼스타 박하진의 등장에, 네 명의 소녀들은 환호성을 내질렀다.
여름이는 무슨 연유인지, 어머니 옆에 다가가 자신의 싹싹함 레벨을 최고 수준으로 올리고 있었다.
“어머니임~~! 어쩜 이렇게 피부가 고우세요? 오빠가 딱 어머님 닮아서 요리두 잘하고 마음씨도 정말 좋은 것 같아요!”
“호호, 낯간지럽게시리··· 네가 여름이구나? 왕호랑 희영이한테 많이 들었어 배우라면서? 우리 아들이 여배우랑도 친하고 정말 오래 살다 볼 일이네~.”
여름이는 어머니에게 비글미를 마구 뽐냈고, 어머니도 그런 여름이의 싹싹함이 부담스럽진 않은 것 같았다.
귀여운 여배우가 착- 달라붙어 아들 칭찬을 마구 내뱉으니 어찌 좋지 않으리오.
여름이의 집안 스펙이 어마어마하다는 얘기까지 들었으면 아마 더 좋아하셨을 거다.
‘힘 빡! 주고 왔네······.’
여름이의 상태를 보니, 평소보다 외모에 공을 많이 들인 것 같았다.
평소의 왕호였다면, 영화 행사로 인해 잔뜩 꾸미고 왔다고 생각했을 테지만···
지원이의 의미심장한 얘기를 듣고 나자, 다른 꿍꿍이가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설마, 어머니한테 잘 보이려고?’
왕호는 피식- 웃고는 잡념을 떨쳐냈다.
아무래도 자신이 오버하고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오늘은 저들과 함께 즐거움을 나누기에도 시간이 모자라다.
‘탐정 놀이는 나중에.’
고개를 돌려 사람들을 하나하나 살폈다.
많기도 하다.
대학 졸업 후, 시궁창 같은 현실에 치여 사람들과의 인연을 거의 끊고 살다시피 했다.
그나마 종구와 가끔씩 연락을 주고받기는 했지만, 자주도 아니었고 종구를 빼면 아무도 없었다.
고독했다.
하지만, 각성하고 난 후로는 너무도 좋은 사람들이 주위에 몰려들었다.
마치 지금 이 현실이 꿈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아마 내가 각성하지 못했다면, 이런 일도 없었겠지.’
왠지 모르게 가슴 깊은 곳에서, 일장춘몽의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초대한 사람들이 다 모였다.
테이블 앞에 모인 사람들은, 왕호를 손짓하며 부르고 있었다.
“오빠! 빨리 와! 주인공이 있어야 축하를 하지!”
왕호는 이 쓸데없는 감정을 떨치기 위해, 양손에 고급 양주 두 병을 들었다.
각성.
그리고 오리진.
이것이 인생을 송두리째 뒤집어 놓았다.
왕호는 눈길을 돌려 한 사람을 쳐다보았다.
왠지 예전의 풀 죽어 있던 스스로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그 친구에게도 제대로 된 선물을 하나 해주고 싶었다.
그러면 인생이 달라지겠지.
‘최 영감님의 심정이 이러했을까?’
어제 힘들게 구한 아즈모데우스 살점.
그리고 이터블 감정을 통해 얻어낸 정보.
고급 요리 스킬의 능력.
어쩐지 가능할 것만 같았다.
왕호가 사람들 틈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갔다.
그의 손에는 두 양주가 들려있다.
하나는 오늘을 위해 준비한 발렌타인 30년 산.
하나는 박칠우가 집들이 선물로 가져온
‘씨바쓰 리갈 십팔 년···’
아니, 발음을 쎄게 하면 안 되지.
시바스 리갈 18년 산이었다.
< 포텐 폭발! (2) > 끝
ⓒ 신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