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텐 폭발! (3) >
*
“안 사장님 댁의 승승장구를 위하여!”
“위하여!!!”
순식간에 잔칫상 분위기를 휘어잡은 박칠우가 건배사를 외쳤다.
이 중에서 유일하다시피 한 직장인이라, 분위기의 주도는 박칠우가 거의 도맡았다.
수많은 회식 짬에서 나온 바이브가 장난 아니었다.
게다가, 콧대 높은 대기업 임원들을 주로 상대하니 이 정도 분위기 띄우는 거야 아마 식은 죽 먹기 아니겠는가!
쩝쩝쩝쩝-
건배사가 끝나자, 사람들의 젓가락이 식탁 위를 빠르게 수놓았다.
미뢰세포를 원투펀치로 갈겨버리는 맛에, 먹자마자 각종 미사여구가 튀어나온다.
“와, 미쳤다 미쳤어! 세상 행복해!”
“너무 맛있어서 우심방 우심실이 미쳐 날뛰고 있어!”
“난 남자지만··· 이런 요리를 매일 먹을 수만 있다면···”
“방송 켰으면 분명 채팅 창에서 이랬겠지, 오졌따리 오졌따 쿵쿵따리 쿵쿵따!”
“맛있어서 눈물이 다 나오네··· 군대에서 탄피 잃어버리고 행보관한테 뺨 맞을 때도 안 울었는데······.”
맛있게 먹어주니, 왕호의 입가에서는 미소가 마르지 않았다.
제대로 된 요리의 대접을, 집들이라는 기회를 통해 대접하는 것은 성공했다.
허나, 예상외로 차린 것보다 받은 것이 더 많았다.
몸만 오라고들 했는데, 한국 정서상 어찌 그럴 수가 있겠나.
각종 집들이 선물이 방에 한가득 쌓여 있었다.
소녀들이 사 온, ‘잘 풀리는 집’부터 시작해서
식기 세트, 시바스 리갈 18년 산, 고급 와인 잔, 도깨비방망이, 다이아몬드 코팅 팬 세트, 에스프레소 머신 등등···
음식으로 준비한 재료값보다 선물의 값이 더 나갈 정도였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왕호를 통해 처음 마주한 사람들도 서로서로 친해지기 시작했다.
시바스 리갈 덕에 잔뜩 취기가 오른 세 사람.
허용, 박칠우, 나동수.
진한 수컷 아재의 기운을 풀풀 풍기고 있었다.
“야~~~!! 이,,, 씨커먼시키들아!! 이 할배가,,, 왕년엔 한따까리,, 하던 넘이여,,! 이 쎄리덜아,,,~~!”
“할배라뇨 행님,,, 아직도 정정하심다~~~! 행님으로 모시겠씀다~~~!!!”
“똥수라고 혔냐? 고놈,,, 참,,, 떡때가 야무지구만~~! 칠우는,,, 벼노사라며~~~? 쓰댕~~ 나도,,, 겅부에 전념해쓰믄,,, 법대는 찜쪄먹었을 건디,,, 쒸,,,뿔,,,!”
“크으~ 형님 지금도 늦지,,, 아났씀니다~~! 저도 삼수했으요~~~!”
나동수를 설득해야 하는 종구는, 아재향 풀풀 풍기는 그 자리에 어색하게 끼어있었다.
“네넘은 종구라고 혔냐? 우리,,, 왕호 부랄친구,,,라며~~?”
“아, 예! 한 잔 받으십쇼!!!”
“크~ 우리 왕호맨키로,,, 장유유서를,,, 기똥차게 지키는구만~~~! 이눔아~! 낚씨,,, 좋아하느냐~~~?”
“나, 낚시요?”
“낼 칠곡저수지,,, 낚시 갈건디,,, 네넘도,,, 토달지,,말구,, 따라오거라~~!”
“헉! 호, 혹시 동수님도 가십니까?”
“용이 행님,,, 가시는데,,, 당연히 따라가야지! 칠우 행님도,,, 가신단다~~~!”
“크으~~!!! 낚시 좋지~~~!! 끝나믄,,, 잡은걸루다,,, 해물탕을,,, 칼칼하게,,, 막걸리,,, 한잔 더해서 크으으으으으~~~!!!”
“생각만해두 크으으으~~~!!”
“그, 그럼 저도 가야죠······.”
종구가 한숨을 푹 내쉬며 말끝을 흐렸다.
네 명의 소녀들은 독한 양주 대신, 탄산을 홀짝거렸다.
“와, 먹어도 먹어도 줄지가 않아! 상다리 부러질 거 같아!”
‘문과’ 만점자 희선이가 감탄했다.
그러자, ‘이과’ 만점자 희영이가 딴지를 건다.
“희선아! 상다리는 그렇게 쉽게 부러지지 않아. 이 테이블은 하드 우드 멀바우 원목과 스틸 프레임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약 1,980kg의 무게를 견딜 수 있어. 상다리를 부러트리려면 네 다리에 가하는 하중을 최대로 해야된다구! 벡터량을 고려하더라도, 중
앙 부분에 적어도 1.5t의 무게를 배분해야 해!”
“희영아! 상다리 부러질 거 같다는 말은, 언어에서 의미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메타포metaphor 방식이야. 이 표현은 고려 시대 후기 사대부 문학에서 주로 나타나는데, 고려말 집권 세력인 권문세족에 항의하여 나타난 지방···”
별 그지 같은 이유로 토의를 하고 있자, 지켜보던 혜진이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아주, 둘이서 개 염병을 하고 앉았네. 누가 문과 이과 1등 아니랄까 봐······.”
왕호는 문 PD와 박하진 사이에서 TV프로그램에 관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럼 두 프로그램 다 출연하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확답을 들은 문 PD의 표정은 상당히 밝아 보였다.
두 프로그램의 섭외 요청은 왕호에게도 나쁜 제안이 아니었다.
이미지도 올리고, 출연료도 받고.
도랑치고 가재 잡고가 따로 없다.
이미지가 올라가면 덩달아 CF도 들어오니, 말 그대로 일거양득!
“뭐, 내식부야 원체 나가고 싶었던 프로그램이고, 급식 바꿔주는 파일럿은 문 PD님이 연출하신다니 무조건 나가야죠.”
“둘 다 아마 다음 달 넘어야 촬영 들어갈 겁니다. 내식부는 촬영 시간이 정해져 있는데, 파일럿 프로그램은···”
문 PD가 박하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건 제가 왕호님과 상의해 스케줄 알려드리도록 하죠.”
“하하, 고맙습니다.”
“그럼, 저희 영화 개봉하면 내식부 게스트로 한여름 씨 넣어주는 거 맞죠?”
“물론이죠!”
비즈니스에 관한 얘기가 끝나자, 왕호는 희선이를 호출했다.
“희선아! 잠깐 여기 좀 와볼래?”
“네!”
왕호는 희선이를 문 PD에게 소개시켜 줄 생각이었다.
희선이에게 처음으로 생긴 꿈이 방송 PD란다.
문 PD라면 방송계에 관한 이야기, PD가 되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 같은 조언들을 충분히 알려줄 수 있다.
게다가 유명 프로듀서인 문 PD와의 인연을 유지하는 것만큼 좋은 것도 없을 것이고.
“희선아 인사해! 여기는 PJ방송국 문 PD님!”
“어? 안녕하세요!!!”
희선이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TV에서 가끔 보던 유명 PD가 코앞에 있으니, 긴장할 법도 하다.
하지만 긴장감과 더불어 기대감 또한 가슴을 타고 스멀스멀 올라왔다.
“피디님! 여기는 수능만점자 구희선이에요. 방송국 PD 되고 싶다는데, 피디님이 조언 좀 해주세요.”
“오~ 이번 수능 어려웠다는데 대단하네! 대학은 당연히 서울대로 갈 거고? 그럼, 내 후배 되겠네. 팍팍 밀어줘야겠어~!”
그렇게 다들 재밌게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지만, 한 사람만은 잔뜩 움츠려 있었다.
미소지기 박주혁이다.
왕호는 박주혁 옆에 다가가, 조용히 말을 건넸다.
“주혁 씨, 요리는 입에 맞아요?”
“···아, 예! 당연하죠! 태어나서 먹은 요리 중에 단연코 최고입니다. 무릉도원입니다 진짜! 맨날 편의점 도시락만 사 먹는데, 오늘은 혀가 아주 호강하네요.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하, 제가 더 감사해야죠.”
“예···?”
박주혁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주혁 씨가 없었으면, 저도 여름이도 아마 계약 못 했을 겁니다. 하진 씨가 대표님한테 저희 얘기를 해줬잖습니까.”
박주혁이 던전 베테랑2 보조출연자로 있던 때, 왕호의 요리를 먹고 박하진에게 왕호의 얘기를 꺼낸 적이 있다.
물론, 박주혁이 따로 얘기하지 않았더라도 인과는 바뀌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래도 세상일을 한낱 인간이 어찌 내다볼 수 있을까.
그날, 박주혁이 조연출의 명령대로 왕호를 쫓아내려 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거다.
박주혁은 눈부신 미소만큼 가슴 속도 아름다운 청년이었다.
“미소지기 일은 아직도 하십니까?”
“아, 엔터테인먼트와 계약하고 그만뒀습니다.”
“배우 일은 할 만해요?”
왕호의 질문에, 박주혁의 표정이 떫은 감을 먹은 것마냥 씁쓸해졌다.
“하~ 대표님이 거둬주셔서 배우 타이틀은 달긴 했지만··· 각성자도 아닌데, 자리를 잡을 수나 있겠습니까? 비중 없는 조연만 뺑뺑이로 돌고 있습니다. 돈 안 되는 독립영화도 찍고 있구요.”
그래서 자신감이 바닥을 기고 있었군.
신안 천일염급 지독한 짠내가 풀풀 풍겨왔다.
“그래도, 영화관 알바시절보단 낫지 않나요?”
“낫다면 낫다고 볼 수 있죠. 솔직히 말하면 수입 면에서는 영화관 알바시절이 더 많습니다. 그래도 배우 대접 받고, 희망이라도 생겼으니 지금이 더 낫겠죠? 우리 대표님··· 아니, 애초에 안 사장님 없었으면 아직도 알바인생으로 지내고 있었을 겁니다.”
“주혁 씨는 재능이 있으시니, 언젠간 성공할 겁니다.”
“재능이라······. 연기과 수석으로 졸업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재능이 있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영화판에 들어오니 재능은 쥐뿔도 없더라구요.”
한예종 연기과 수석이 재능이 없다니 이 무슨 개 풀 뜯어 먹는 소린가.
박주혁은 울상짓는 표정을 지우지 못한 채 말을 이었다.
“지금 이 바닥에서 재능은 ‘각성’입니다. 제아무리 발연기를 한다고 해도, 각성자나 아이돌을 쓰는 게 티켓파워가 훨씬 좋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재능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죠······.”
왕호는 박주혁의 눈동자를 지긋이 응시했다.
느껴진다···
절실함이,
간절함이,
그리고 얼핏 보이는 비참함이.
왕호는 그 누구보다도 박주혁의 마음을 잘 이해한다.
예전의 자신이 그랬으니까.
Boys be ambitious!
소년들이여! 야망을 가져라!
‘재능은 없는데, 야망을 품으라는 것만큼 비참한 것도 없지······.’
하지만, 체념하던 왕호에게 손을 뻗어준 사람이 있었다.
최 영감님······.
이제는 그 얼굴도 가물가물하지만···
최 영감님은 무슨 생각이셨을까?
무슨 연유로, 나를 각성시킨 것일까?
박주혁의 모습을 보아하니, 조금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어제저녁.
왕호는 아즈모데우스 살점으로 색다른 요리를 할 수 없을까 하여, 이터블 감정을 사용했다.
날 것 그대로의 고기를 질겅질겅 씹었을 때, 충격적인 알림이 들려왔다.
[“이터블 감정”으로 섭취한 재료를 파악합니다.]
[현재의 실력으로 요리할 수 있는 가장 강한 재료입니다.]
[마기가 제거되어 있습니다.]
[가장 적절한 레시피는 “뵈프 부르기뇽Boeuf Bourguignon”입니다.]
[요리사의 마음에 따라 알맞은 힐링 버프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이 요리에 가장 알맞은 힐링 버프는 “포텐 폭발!”입니다.]
[포텐 폭발! – 억눌려 있는 잠재력을 폭발시킵니다. 조건이 맞아 떨어질 경우, 각성하게 됩니다. 각성 유전자가 없는 경우, 효과가 발동하지 않습니다. 각성 가능성 85% 미만일 경우, 효과가 발동하지 않습니다. 각성 가능성 85% 이상일 경우, 일정 조건을
만족하면 각성합니다. 각성 가능 확률은 평균 50%입니다. 이 버프는 오직 1회, 즉시 발동됩니다.]
최적의 레시피를 알려주는 것은 물론이요, 처음으로 힐링 버프의 종류까지 정해주는 예고 알림이 튀어나온 것이다.
이때까지 왕호가 요리한 재료 중 가장 마나 캐퍼서티가 가장 높았던 재료는 ‘자이언트 플레임 오거’였다.
이 아즈모데우스 살점은, 오거의 것보다 ‘월등히’ 뛰어난 재료.
현재의 실력으로 겨우 조리할 수 있는 재료이기에, 이터블 감정의 기능이 최대로 발휘된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리고 정말 우연히도, 왕호는 박주혁의 각성 가능성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과연 이것이 우연일까?
왕호의 머릿속에 칠우 아저씨께서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우연은 쉽게 일어나지 않습니다. 모든 것에는 인과관계가 있고, 인과 因果 에는 반드시 응보 應報가 존재하는 법입니다.
‘최 영감님! 당신 말대로 감동 한번 제대로 줘보렵니다!’
왕호는 저울을 들었다.
50%의 확률.
저울 위에 박주혁을 올려놓는 것은 왕호의 몫이고,
그다음은 오로지 그의 몫이다.
< 포텐 폭발! (3) > 끝
ⓒ 신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