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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버프를 만들어 드립니다-119화 (119/149)

< 괴수미식회 (1) >

왕호는 지금 트랜슬레이션 마법이 걸려 있는 상태다.

일명, 통역 마법.

상대가 어떤 언어를 사용하든지 간에, 완벽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언어 속에 담긴 억양, 피치, 템포, 뉘앙스.

모든 것이 의사소통하는 이의 기준으로 이루어진다.

프랑스인과 대화하면 불어가, 멕시코인과 대화하면 스페인어가, 영국인과 대화하면 정통 브리티쉬 영어가 튀어나오는 것이다.

아직 오리진에도 보고되지 않은, 전례 없는 마법!

우리 귀여운 덕구가 걸어준 마법이다.

스스로 성장하는 건지 아님 본래의 힘을 점점 되찾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덕구의 마법 실력이 날이 갈수록 향상된다.

허나, 힘이 성장하는 것만큼 잃어버린 기억이 돌아오는 것은 아니었다.

아직은 스스로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상황.

심지어 강아지의 본능 또한 그대로였다.

정말로 마법을 사용하는 돌연변이 토킹 강아지인지, 아니면 강아지의 탈을 쓴 자칭 위대한 존재인지는 도통 알 수가 없다.

무엇이 진실이든, 아직 세상은 덕구를 받아들일 만큼 유연하지 않다.

‘예쁜 누나들이랑, 먹을 걸 좋아해서 다행이지.’

덕구도 지금의 상황에 무척이나 만족하니, 천천히 알아보면 된다.

시간이 더 흐르면, 스스로 깨달을 수도 있고.

어쨌든, 덕구가 통역 마법을 걸어주면서 왕호의 상황도 많이 바뀌었다.

물론, 상당히 긍정적으로.

카셀과 대화를 나눈 것처럼, 이제 어떠한 외국인과도 무리 없이 의사소통할 수 있다.

‘덕구만 있어도, 통역사로 굶어 죽을 일은 없겠네.’

이 통역 마법은 외국인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이성을 되찾은 몬스터.

이 녀석들에게도 통했다.

그리하여, 왕호네 농장에 있는 농사꾼 고블린들과도 직접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하게 됐다.

그들은 지능이 떨어질지언정, 의사소통까지 못 하는 건 아니었으니까.

고블린과의 본격적인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해지면서, 왕호는 농장의 규모를 더 늘렸다.

각종 새로운 채소와 구황작물을 심고, 과육이 열리는 나무들까지 심었다.

왕호네 농장에 이은 왕호네 과수원까지 탄생한 셈이다.

고블린과 의사소통이 된다?

레드혼 카우와도 안 될 것이 뭐 있나?

그래서 만들었다.

왕호네 목장.

여기서 우유를 공급한다.

이 우유로 수제 버터를 만든다.

수제 생크림도 만든다.

치즈도 만든다.

요거트도 만든다.

덕분에 요리의 맛과 마나 캐퍼서티가 한층 더 상승했다.

레드혼 카우를 처음 봤을 때, 과연 저 녀석의 젖을 짜낼 수 있을까라고 상상한 적이 있었다.

덕구 덕에, 그 상상이 현실이 되었다.

덕구 만세!

복덩이도 이런 복덩이가 없다.

‘맛있는 특식 많이 만들어 줘야지~.’

한강 둔치에 산책도 자주 데려가야겠다.

같이 마실 나온 예쁜 누나들도 구경시켜줄 겸 말이다.

그리고···

카셀같은 외국인과 유창하게 소통을 나누다 보니, 가슴 깊은 속에서 오랜시간 잠들어 있던 ‘욕심’ 하나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진짜 가고 싶네······.’

유학.

양식을 전공한 요리사의 입장에서 평생의 꿈이었지만, 지독한 현실에 일찌감치 포기했었다.

그래서 이 욕심을 심연의 깊은 감옥에 꽁꽁 가둬두었다.

하지만, 상황이 변했다.

많이 변했다.

충분히 욕심을 낼만한 상황이다.

지금은 지갑도 두껍다.

언어를 배우지 않아도 된다.

물론, 장사를 하는 입장이라 외국으로 나가기가 꺼려지는 것은 사실이다.

자리를 비우면 그만큼 수입도 줄고, 오래 지속되면 단골들도 떨어져 나간다.

허나, 생각해보니 이것도 해결할 구멍이 있다.

산이의 실력이 일취월장하니, 주말에 옵티머스를 맡기고 간단히 떠나도 된다.

외국에 오래 체류하지 않아도 되니까.

<이터블 감정>

고급 요리사가 되면서 업그레이드된 이 스킬.

절대미각으로 인해, 먹기만 해도 들어간 재료와 레시피를 파악할 수 있다.

스승을 따로 둘 필요도, 로컬 레스토랑에 들어가 배울 필요도 없어진 거나 마찬가지다.

그러니 오래 체류할 필요가 없다.

주말에만 잠깐 다녀와도 무방하지 않을까?

맛집 투어 위주로 말이다.

생전 처음 먹어보는 재료가 아닌 이상, 먹기만 해도 충분하다.

장금이처럼 홍시맛을 바로 캐치해낼 수 있다.

뭐, 이건 시간적 여유가 좀 더 생기면 그때 생각해도 늦지 않겠지.

지금은 현재 상황에 집중할 때다, 어차피 산이에게 가르칠 것도 많이 남았고.

요리에 대한 설명이 끝나자, 카셀은 품속에서 빨간색 수첩을 꺼냈다.

그리고 무언가를 끄적였다.

‘평론가 습관인가?’

카셀은 매번 식당에 들를 때마다, 저렇게 뭘 적어간다.

메모를 끝낸 카셀은 왕호와 악수를 나눴다.

“아주 잘 먹었소. 다음에 또 오리다.”

“예! 살펴 가세요~!”

“나중에는 좋은 소식으로 찾아오겠소!”

카셀은 의미심장한 말을 날리고는, 식당 입구로 몸을 돌렸다.

입구에 서 있던 희영이는 나가는 카셀을 향해, 활짝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Au revoir~!”

‘안녕히 가세요’의 불어버전.

어색한 불어였지만, 최대한 뉘앙스를 살린 흔적이 느껴졌다.

희영이에게는 통역 마법이 걸려있지 않았다.

즉, 사전을 뒤적여 발음까지 연습했다는 뜻이다.

가끔 오는 카셀을 생각해서 말이다.

“하하하, 캄사함미다!”

그런 귀여운 희영이의 모습에, 카셀도 호탕하게 웃으며 어색하게나마 한국어로 인사했다.

카셀이 식당을 나가며 생각했다.

‘직원들도 친절하군.’

그의 빨간 노트에, 한 줄이 더 추가됐다.

맛만 뛰어나다고 해서는 감히 좋은 식당이라 말할 수 없다.

식당 구성원들 모두가 손님들의 즐거운 식사를 위해 노력할 때, 비로소 좋은 식당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곳은 좋은 식당임이 분명했다.

카셀이 떠나자, 왕호는 다시 주방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고개를 돌리자 낯익은 중년 아저씨의 모습이 다시금 눈에 들어온다.

‘진짜 어디서 본 거 같은데··· 티비에서 봤나?’

미간을 찌푸리며 기억을 끄집어내려는 찰나,

“셰프님?”

등 뒤에서 한 남성의 음성이 들려왔다.

“네?”

몸을 돌려 확인하니, 포멀한 수트를 멀끔하게 차려입은 남성이었다.

수트의 핏과 길이가 딱 맞는 걸 보니, 아무래도 맞춤 정장이 아닐까 싶다.

그것도 이태리 장인이 한 땀 한 땀 정성 들여 만든 명품.

인상은 차갑지만 무척이나 지적여 보인다.

신뢰감을 절로 불러일으키는 얼굴이다.

“안왕호 셰프님 맞으십니까?”

남자가 방긋 미소를 지으며, 확인차 물었다.

발성 교육을 따로 받았나?

국어듣기평가에 나올 법한 젠틀한 목소리였다.

“예. 맞습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황룡그룹 비서실에서 나온 김강률이라고 합니다. 편하게 김 비서라고 불러주세요. 아니면, 김 실장이라고 부르셔도 됩니다.”

왕호는 김 비서가 건넨 명함을 어색하게 받아들었다.

황룡 그룹?

CF라도 맡기려고 그러나?

아니야··· 소속사에 연락하면 될 텐데, 굳이 여기까지 올 리가 없지.

“무슨 용무시죠?”

“하하, 용무라기보다··· 방금 한 접시 뚝딱 해치웠습니다. 소문대로 정말 맛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래서 말인데··· 한 가지 제안드려도 되겠습니까?”

김 비서의 태도는 상당히 정중했다.

의외였다.

재벌을 생각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오만함’이다.

이것은 비단 왕호만의 생각은 아니다.

메스컴에 비춰지는 이미지가 이러했으니까.

물론, 재벌이 아닌 비서가 왔기에 정중한 것일 수도 있다.

그래도 명색이 재벌가의 비서인데, 상위 1%의 엘리트급 스펙은 지니고 있지 않겠나.

그런 김 비서가 마치 상전 모시듯이 정중하게 제안을 건넨다.

“혹시, 셰프님의 시간을 저희가 살 수 있을까요?”

“예? 제 시간이요?”

시간을 산다?

뚱딴지같은 소리에, 왕호의 얼굴에 물음표가 마구 떠올랐다.

“다음 주 수요일에 저희 회장님께서 어떤 모임에 가십니다. 그곳에서 요리를 만들어 주실 수 있나 해서 여쭙니다. 보수는 섭섭지 않게 챙겨드리겠습니다. 여기 식당의 한 달 매출이면 적절할까요?”

“한나절 시간 빼는데, 한 달 매출을 주신다구요?!”

왕호의 동공이 삽시간에 커진다.

하루 투자하는 것으로, 한달 매출을 준단다.

그것도 ‘순이익’이 아닌 ‘매출’을.

아마 대부분의 셰프라면 거절하지 못할 거다.

“그 모임 혹시 ‘괴수미식회’ 맞습니까?”

왕호가 확신을 가지고 묻자, 김 비서가 호오- 하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조금은 놀란 눈치였다.

왕호는 김 비서의 말을 듣자마자, 그 모임이 괴수미식회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평소였으면 몰랐을 테지만, 바로 어제 박칠우에게 괴수미식회에 관한 내용을 들었기에 뚜렷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관계자가 아니면 잘 알려지지 않은 모임인데, 알고 계셨군요. 좀 놀랐습니다.”

“이래 봬도 제가 몬스터 조리사 1호 자격취득자 아닙니까. 예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시군요. 그럼 단도직입적으로 요청하겠습니다. 이번 달 미식회 주최자가 저희 회장님이십니다. 셰프님으로 사장님을 초빙하고 싶어하십니다.”

“보수는 여기 식당 한 달 매출로 맞춰주시고요?”

“보통 다른 셰프님들 초빙할 때도 그렇게 합니다만··· 꺼려지시면 조금 더 얹어드리겠습니다.”

“흐음······.”

왕호는 미간을 찌푸리며,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렸다.

솔직히 거절할 이유는 딱히 없다.

이성적으로 따져봤을 때 확실히 이득이다.

직장인의 기준으로 따졌을 때, 연차 내고 알바 한번 뛰면 월급에 해당하는 보수를 받는다는 얘기다.

그 어떤 직장인이 이런 개꿀 알바를 포기할까?

게다가 세전 금액으로 말이다.

하지만··· 굳이 해야 할 이유도 딱히 없다.

지금 왕호는 예전처럼 돈이 ‘몹시’ 궁하지 않다.

하루 매출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하는 상황.

물론, 돈이야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것이 왕호의 지론이긴 하다.

짠돌이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자존심도 뭐고 이것저것 도맡아서 해왔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상대는 “재벌”이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비춰지는 이미지처럼, 악취미를 가진 재벌이 딴지라도 건다?

환상의 똥꼬쇼라도 보여줘야 할지 모르는 판이다.

게다가, 그럴 일은 없겠지만 자신의 요리에 실망이라도 하게 되면 무슨 불이익을 줄 수도 있지 않겠나.

재벌을 만나본 적 없는 입장에서, 꺼려지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할 수도 있었다.

지금은 굳이 ‘리스크’를 안고 갈 이유가 없다.

‘그래도 보수가 많으니까 나가는 것도 나쁘지 않아.’

결론은 쉽사리 나지 않았다.

왕호가 계속해서 고심에 빠져있자, 김 비서가 말을 덧붙였다.

“처음이라서 되게 걱정되시나 봅니다. 다른 셰프님들도 비슷했습니다. 뭐, 이상한 걸 시키거나 그러진 않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냥 가볍게 인사 나누시고 눈앞에서 요리하시고 요리에 대한 설명만 간단히 해주시면 됩니다.”

“다들 미식가시겠죠? 괴수미식회라는 걸 따로 조직하실 정도니······.”

“그럼요. 초밥 드시러 일본, 와인 마시러 프랑스, 초콜릿 맛보러 벨기에, 고급 코스요리 즐기러 두바이로 가시는 분들입니다. 그렇기에 항상 최고의 셰프님들만 초빙하죠.”

“음······.”

“하하, 안 셰프님은 돈만 보고 움직이는 셰프님은 아닌 것 같습니다.”

왕호처럼 고민하는 셰프들을 많이 봐왔는지, 김 비서가 익숙하게 말을 돌렸다.

“저희 괴수미식회에서는 최고의 설비 하에서, 최고의 재료를 신선한 상태로 제공합니다. 셰프님께서 여태껏 한 번도 요리하지 못한 재료들을 다루게 해드리겠습니다.”

“몬스터 재료 말입니까?”

“그럼요. 원하는 재료는 다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베히모스도요?”

“물론입니다.”

그렇지!

이제야 구미가 팍팍 당긴다.

베히모스는 현재 한국 던전에서 잡을 수 있는 최고 레벨의 몬스터.

현재 왕호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구할 수가 없는 재료다.

물론, 다희에게 부탁한다면 어째어째 구할 수는 있다.

허나, 단순 호기심 충족을 위해 레이드에 지친 다희를 떠밀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구한다고 해도, 지금 실력으로는 해독 자체가 불가능하다.

아즈모데우스 살점을 겨우 제독한 것만 봐도 각이 나온다.

그렇다고 해독된 고기를 구입한다?

돈 엄청 깨질 텐데, 짠돌이 입장에서 그것만큼 가슴 아픈 것도 없다.

“하겠습니다.”

해야지.

암, 당연히 해야지.

거액의 보수도 받고, 해독된 초고레벨 몬스터를 조리할 기회도 생기는 셈이 아닌가.

환상의 똥꼬쇼, 까짓거 한 번 해보지 뭐.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럼, 미식회 나가기 전에 저희 회장님 좀 잠시 뵐 수 있겠습니까?”

“아, 예.”

“혹시, 오늘 저녁 바로 시간 되십니까? 장사 마무리하시면 모시러 가겠습니다.”

“음··· 그러죠.”

“좋습니다. 시간 맞춰서 리무진 보내드리겠습니다.”

리무진까지 보내준단다.

아침에 장사를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재벌을 만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것도 재계 순위 4위의 황룡그룹 회장을 말이다.

< 괴수미식회 (1) > 끝

ⓒ 신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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