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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버프를 만들어 드립니다-120화 (120/149)

< 괴수미식회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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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을 마친 왕호는,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던 고급 리무진에 탑승했다.

차가 좋다.

상당히 좋다.

문짝도 특이하게 반대 방향으로 열린다.

궁극의 럭셔리함에, 왕호의 눈이 보름달처럼 휘둥그레진다.

“와, 차가 되게 비싸 보이네요.”

왕호가 자신의 옆자리에 앉아있는 김 비서를 보며 말했다.

김 비서는 딱히 할 일이 없는지, 차 안에서 왕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영국 롤스로이스사에서 나왔죠. 당연히 비쌉니다.”

“아, 들어본 건 같네요. 1억은 당연히 넘겠죠?”

“이 모델은 10억이 넘습니다.”

헐······.

상식을 뛰어넘는 가격에, 왕호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쩍 벌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겨우 정신을 다잡은 왕호가 말을 이었다.

“TV 보니까 회장님들은 국산 차 타고 다니시던데······.”

“아무래도 매스컴의 이목 때문이죠. 사치 부리는 건 서민들이 싫어하거든요. 뭐, 따지고 보면 사치는 아니죠. 사치라 하기에는 돈을 어마어마하게 많이 버시니······. 회장님 수입으로 따지면 이 차는 아반떼 느낌이랄까.”

서민이라는 단어를 직접 들으니, 왠지 마음이 싱숭생숭해진다.

김 비서가 그런 왕호의 눈을 읽었는지, 너털웃음을 지었다.

“하하, 너무 그런 눈으로 보지 마세요. 저도 서민입니다. 셰프님 덕에 이 차는 저도 오랜만에 타보네요. 셰프님 같은 귀빈이나, 비공식 행사 같은 곳에 참석할 때는 이런 차를 보통 애용하시죠.”

“그냥 모범택시만 보내주셔도 되는데······.”

뭐, 돈이 썩어 넘쳐날 테니 이러는 거겠지만······.

왕호가 고개를 휙휙 돌리며, 차 내부를 살폈다.

솔직히··· 자신의 방보다 좋았다.

차는 도로 위를 쌩쌩 달리고 있었지만, 진동하나 느껴지지 않았다.

“어디로 가는 겁니까?”

“한남동 회장님 자택으로 갑니다.”

“집으로 직접이요?”

“요리를 무척이나 좋아하십니다. 원래 외부 인사는 잘 초대하지 않으신데, 셰프님은 집에서 보고 싶다고 하시더군요.”

진짜 먹을 거 좋아하나 보다.

덕분에 드라마에서나 보던 대저택을 구경하게 생겼다.

“따로 조심해야 할 거는 없나요?”

‘드라마 보면 성격들 괴팍하시던데.’

이 말은 굳이 꺼내지 않았다.

왜 그런 거 있지 않나, 조선 시대 보면 왕을 알현할 때 하지 말아야 할 행동.

가령, 절대 등짝을 보이지 말라는 것들.

지독한 자본주의 사회인 이곳에서는, 황룡그룹 회장 정도면 왕이나 마찬가지 아니겠나.

“하하, 아까도 말했듯이 너무 긴장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른 회장님들에 비하면 상당히 개방적이십니다. 동네 어르신 대하듯이 대하시면 됩니다. 예의만 지켜주세요.”

“예······. 개방적이라는 뜻은, 다른 재벌 중엔 괴팍한 사람도 있다는 말씀이시죠? 드라마에 나오는 사람 같은?”

“없진 않죠.”

김 비서는 살짝 긴장한 왕호에게, 재벌에 관한 에피소드를 이것저것 이야기해줬다.

덕분에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그나저나 김 비서 아저씨··· 일 진짜 잘한다.

상대방의 기분 맞춰주는 영업 솜씨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러니 꽤나 젊은 나이지만 실장 직책을 단 것이 아닐까?

왕호가 탑승한 차는 어느덧 재벌들이 모여 산다는 한남동 부촌에 진입했다.

창문 너머 보이는 광경이 무척이나 이질적이다.

땅값 비싸다고 소문난 서울이지만, 거대한 저택들이 쭈욱 늘어져 있다.

대저택 앞에 멈춰진 차는, 집에 딸린 차고의 문이 열리자 그곳으로 쑤욱 들어갔다.

차에서 내린 왕호는, 김 비서의 안내를 따라 정원을 가로질렀다.

저벅저벅-

정원은 수려하게 꾸며져 있었다.

황금 잉어들이 꼬물꼬물 돌아다니는 분수대까지 있었다.

정원까지 딸린 대저택을 보고 있자니, 정말로 다른 세계에 온 것만 같다.

신천지다.

확실하게 와닿는다.

이 집에 사는 이와 나는 온전히 다른 차원의 사람이구나······.

마치 보이지 않는 신분의 벽이 서 있는 것만 같다.

이곳의 주인장은 귀족, 나는 불가촉천민.

고작 집 정도만 보았음에도, 그 압도적인 위용에 절로 주눅 들었다.

‘쫄지 마 안왕호! 내가 꿀릴 게 뭐 있어!’

왕호는 한쪽 입꼬리를 스윽 올리면서 마음을 다잡았다.

쫄릴 게 뭐 있겠나, 부탁하는 입장은 저쪽이다.

마음만큼은 나도 재벌이다.

“문은 열려있을 테니 그냥 들어가시면 됩니다.”

김 비서는 현관까지만 왕호를 안내했다.

묵례로 가볍게 김 비서를 보낸 왕호는,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갔다.

끼이익-

신발장을 지나자, 슬리퍼 하나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슬리퍼를 신고 멀뚱히 서 있자, 1층에 있던 문 하나가 열리며 나이든 노신사가 걸어 나왔다.

“허허, 자네가 안왕호 셰프이신가?”

180cm의 다부진 키.

넓은 어깨 골격.

위풍당당한 풍채.

독립군의 후예이자, 전쟁통 사이에서 굴지의 기업을 일궈낸 황룡의 후손.

대 황룡 그룹 회장, 황종팔.

TV 청문회에서 본 모습 그대로였다.

편안한 활동복만 입고 있다는 사실만 빼고.

왕호는 예의를 갖춰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요리사 안왕호라고 합니다.”

회장이라는 신분을 떠나, 자신을 이곳에 초대해준 사람이다.

세월의 무게도 자신보다 두 배 이상 겪었으니, 예의를 갖추는 것이 인지상정.

고개를 숙여 예의를 표했다.

“기다리고 있었네. 좋은 손님이 왔는데, 그냥 있을 수 없지. 내 미리 상을 차려 놓았네 껄껄.”

황 회장은 왕호를 데리고 서재로 향했다.

방금 황 회장이 나왔던 그 방이었다.

서재에는 정말로 상이 마련되어 있었다.

헌데, 상의 상태가 평범하진 않았다.

술잔 딱 두 개와, 그사이에 놓인 담금주 한 병.

그게 다였다.

길쭉한 호리병 속에는, 시커먼 뱀 한 마리가 똬리를 틀고 앉아있었다.

뱀 담금주다.

분명 죽은 뱀일 테지만, 왠지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앉게나. 좋은 손님 오면 따려고 아껴놨던 것이네.”

왕호는 황 회장의 반대편에 앉았고,

황 회장은 곧바로 담금주의 뚜껑을 개봉했다.

그러자, 독한 향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솔직히 아껴놨다고 들었지만, 아마 집에 저런 담금주 100병은 넘게 있을 거다.

황 회장이 술에 관해 설명했다.

“자네 킹스네이크라고 아나?”

“킹스네이크요? 뱀 중에 왕인가요?”

“어미에 ‘킹’이 붙었다는 뜻은 뱀을 잡아먹는 뱀이라는 말이지. 지금 요녀석의 뱃속에는 또 다른 뱀이 먹혀 있다네.”

“와, 신기하네요.”

“정력에 그리 좋다는 뱀술이네. 돌아가신 내 친부께서는 ‘비암주’라고 불렀지 껄껄. 자, 받게나.”

졸졸졸-

왕호는 주도에 걸맞게 두 손으로 회장의 술을 받았다.

비어 있는 회장의 술잔까지 채워준 왕호는, 고개를 돌려 단숨에 술잔을 비워냈다.

크으--

왕호와 회장의 입에서 거친 음성이 동시에 새어 나왔다.

“크, 꽤 독한 술입니다.”

“독하지 않으면 술이 아니지. 안주는 따로 준비하지 않았네. 사실 양놈들은 술을 마실 때 안주를 따로 즐기지 않지. 나는 그 방식이 술의 맛을 제대로 느끼게 해준다고 보네.”

황 회장은 초면부터 하대하듯 말을 내뱉었지만, 그다지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왕호를 무시해서 그러는 것이 아닌, 습관에 의한 말투임이 피부로 느껴졌으니까.

왕호가 막내아들뻘이기도 했고, 평생을 하대 위주로 살아왔기에 어찌 보면 당연하기도 했다.

황 회장은 말하는 걸 좋아하는지 쉴 새 없이 말을 내뱉었다.

매스컴에 비춰진 진지한 이미지와는 무척이나 상이했다.

“사람들은 뱀술이 정력을 올려준다고 믿지. 허나, 과학적으로는 아무런 효능이 입증되지 않았네. 이런 것만 보더라도 인간이란 존재는 참으로 단순하지 않나?”

“혹시··· 괴수미식회와 관련된 말입니까?”

“허허, 예상보다 훨씬 똘똘하구먼. 맞네. 사실, 몬스터 고기가 다른 고기에 비해 더 맛있다고는 볼 수는 없지. 서민들은 접하지 못하기 때문에, 별미라고 애써 말하며 즐기는 것이지. 이 괴수미식회는 자네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있어온 모임일세.”

언중유골 言中有骨.

황 회장이 툭툭 내뱉은 말 속에는 단단한 뼈가 자리 잡고 있었다.

“사실, 이번 달 모임의 셰프는 자네가 아니었네. 내 일찍이 섭외해놓은 일본의 초밥 장인이었지. 미슐랭 쓰리스타를 받은 식당의 셰프였네. 그자가 갑작스레 입원하게 되면서, 부득이하게 자네에게 부탁하게 되었구만. 들리는 소문으로는 자네의 몬스터 요

리는 무언가 특별하다고 들었네만.”

“운 좋게 얻은 재주로 밥벌이하고 있습니다.”

“허허허, 특별함도 좋지만 이 늙은이들에게는 맛이 더 중요하지. 세계의 거의 모든 진미를 먹어본 자들 아니겠나. 제대로 된 푸아그라 요리 즐기러, 전용기 타고 프랑스까지 날아가는 친구들이네.”

“음··· 그런 분들이 제 요리를 먹으려 할까요? 고작 길거리에서 파는 음식인데.”

“김 비서 말로는 맛은 보장한다고 들었네. 중요한 건 ‘인식’이지. 자네 우려대로 그 노인네들은 자네의 요리를 천대할 수도 있다네. 아마 손도 대지 않는 이들도 있겠지.”

그럴 만도 하다.

세계 유수의 셰프들, 미슐랭 별은 우습게 달고 있는 셰프들을 초빙해서 한 달에 한 번씩 모임을 가진다.

그런 품격 넘치는 회장님들이 길거리 푸드트럭에서 파는 요리를 과연 먹으려고 할까?

맛을 떠나서, 이건 황 회장의 말대로 인식의 문제였다.

“그럼, 저를 왜 쓰시려는 겁니까? 당장 백제호텔만 가셔도 미슐랭 셰프님이 계시잖습니까.”

“지루해진 노인네의 모험이라고 해두지. 그 친구들의 인식을 내가 박살 내고 싶구만 껄껄.”

호방하게 웃던 황 회장의 눈빛이 갑자기 진중해졌다.

눈빛이 꼭 호리병에 담긴 독사의 매서운 눈초리 같았다.

“멍석은 내가 깔아줄 테니, 자네는 자네의 실력을 맘껏 뽐내기만 하면 되네. 내가 뒤에 있으니 문전박대는 당하지 않을 걸세. 그래도 그 친구들의 못된 공격들은 감내해야겠지만서이. 다들 나처럼 개방적이지는 않으니 말일세.”

못된 공격이라 함은, 아마 인격적인 모독? 멸시?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유쾌하지는 않을 거다.

그리고 과연 이걸 겪으면서까지 하는 게 이득일까, 다시 한번 고민이 생겨났다.

“여기까지 와서 제가 하지 않겠다고 하시면 어쩌실 겁니까?”

“어쩌다니? 그냥 쫑 나는 거지.”

“막, 보복하신다거나···”

“하하하하, 내가 그리 졸렬해 보이는가? 그럴 거였으면 애초에 자네를 젠틀하게 데려오지도 않았을 걸세 껄껄.”

황 회장의 독사 같았던 눈빛이 다시 풀어졌다.

그 자리는 터져 나오는 웃음이 대신했다.

듣고 보니, 황 회장의 말이 맞다.

지금이야 황 회장 같은 사람이 먼저 관심을 보였기에 망정이지, 더 유명해진 다음에는 정말로 고약한 재벌이 접근할 수도 있다.

그럴 거면 차라리 선수 치는 게 낫다.

“하겠습니다.”

“잘 생각했네. 자네의 요리가 그 괴팍한 노인네들의 마음까지 움직인다면, 자네에게도 큰 힘이 될 걸세. 뭐, 그 친구들 코를 납작하게만 해주면 당장 나부터 자네의 부탁을 거절할 수가 없지 않겠나.”

이번 말에도 뼈가 있었다.

그것도 상당히 의미심장한 말.

부탁을 들어준다?

지금 왕호의 눈앞에 있는 노인은, 단순히 돈만 많이 쌓아두고 식도락을 즐기러 다니는 사람이 아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닌 사람이다.

권력은 자리에서 나오며, 황 회장이 앉은 자리는 대한민국의 최상층.

그의 한 마디면, 대한민국 자체가 경천동지한다.

“저를 굳이 불러서 이런 얘기까지 해주시는 이유가 뭔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자네의 시간은 돈을 주고 잠시 빌릴 수 있지만, 마음까지 어찌 돈으로 살 수 있겠나. 이 뱀술 한 잔으로 자네가 진심을 다한다면, 만나는 거야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지.”

소름이 돋는다.

이것이 바로 수십만 명의 임직원을 발밑에 두고 있는 자의 혜안인가?

막내아들로 태어났지만, 회장 자리를 괜히 꿰찬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구렁이다.

그것도 100년 묵은 능구렁이.

‘그래, 기왕 할 거면 1류의 마음가짐으로 가자!’

힘들 때 우는 자는 3류다.

힘들 때 참는 자는 2류다.

힘들 때 웃는 자가 1류다.

지금은 비록 힘든 상황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2류 보다는 1류의 마인드가 낫지 않겠나?

마음을 되새김질하자, 해야 할 일이 머릿속으로 물밀 듯이 쏟아져 내렸다.

괴수미식회.

지금은 이 일원 중에 자신의 편은 오직 황 회장뿐이다.

늘릴 수 있으면 늘려야 한다.

그리고 왠지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신에겐 다른 회원과 접촉할 구멍이 있으니까.

< 괴수미식회 (2) > 끝

ⓒ 신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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