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클래스가 다르다 1 (2) >
*
왕호는 요새 ‘진후안’ 스킬을 마구 사용 중이다.
이유는 별거 없다.
오지랖도 아니고 그냥 숙련도 올리기다.
숙련도야 높으면 좋기도 하지만 왕호에겐 또 다른 꿍꿍이가 있었다.
바로, 희영이······.
희영이의 원인 모를 두통의 근원을 알아내려는 목적이었다.
CT를 찍어도 MRI를 찍어도 뭐가 나오질 않는다.
유일하게 드는 약이라고는, 독일 바이엘 제약사에서 나오는 약뿐이다.
비보험이라, 예전엔 이것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
지금이야 약값 걱정은 안 하지만 그래도 병이 더 커지기 전에 도려내고 싶었다.
원인을 알아내야 도려낼 것이 아닌가.
레벨 400대 힐러의 힐도 소용이 없다.
무언가 근본적인 치료가 필요해 보였다.
다행히, 증세가 악화되지 않은 지 오래고 약을 먹으면 일상생활에 전혀 문제가 없다.
진찰 스킬의 숙련도가 올라갈수록, 보이는 것도 많아진다.
계속해서 올라간다면 두통의 원인도 알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왕호가 한 카페에 도착했다.
피해자 모임에 참석한 왕호는 그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했다.
희소식에 피해자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정말입니까?”
“플라톤에서 프랜차이즈 식당을 런칭하는데, 저희를 요리사로 쓰겠다고요?”
“어머나, 세상에!”
믿을 수 없는 나머지, 사람들은 입까지 틀어막고 발을 굴렀다.
왕호가 웃으며 재차 확인시켰다.
“셰프님들이 원하면 아마 다 채용할 겁니다. 사장님한테 약속까지 받았거든요. 실력도 좋고, 식당을 크게 키워본 경험도 있으시니 다들 잘 하실 겁니다.”
“아이고! 고마워서 어쩌나······.”
“그동안 우리 받아주는 곳도 없어서 서러웠는데···”
“역시는 역시나 역시군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구먼! 역시 왕호 씨야!”
피해자들은 왕호의 손을 꼬옥 잡으며 고마워했다.
자신들의 외로운 싸움을 끝내게 해줬을 뿐만 아니라, 이렇게 재기의 발판까지 마렸해줬으니 어찌 고마워하지 않으리오!
왕호도 어색하지만 기분 좋은 웃음을 지었다.
저들이 안쓰러운 것도 있었으나 그것만으로 채용을 할 만큼 어리숙하진 않다.
기본적으로 저들은 식당을 크게 키웠을 만큼, 손맛과 경영에서 흠잡을 곳이 없다.
왕호라는 이름에 먹칠하지는 않을 거라 판단했다.
‘진후안!’
왕호는 숙련도가 다시금 오른 진찰 스킬을 사용했다.
눈동자가 보랏빛으로 바뀌며 사람들의 몸속이 투영되기 시작한다.
마지막으로 이들을 만난 것이 2주 전.
그동안 숙련도가 오른 탓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스트레스로 인한 간단한 이상증세는 진후안 스킬로 원인을 파악하고, 버프 요리로 충분히 치료가 가능했다.
보다 복잡한 질환은 발견되지도 않았고, 원인을 몰라 치료도 힘들었다.
몇몇 사람들의 장기가 검붉은 색으로 빛난다.
저게 좋은 증세인지 나쁜 증세인지, 병인지 아닌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아마, 아직 숙련도가 낮아서겠지.
그래도 저번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일 만큼, 스킬은 성장하고 있었다.
[진후안 스킬의 숙련도가 상승하였습니다.]
또 올랐다.
‘이러다 정말 가정의학과 야매의사로 활동해도 되겠는데?’
왕호는 장기에서 검붉은 빛이 흘러나오는 김 씨 아저씨에게 다가갔다.
“아저씨 요새 피곤하시죠?”
“응. 나야 뭐 매일 피곤하지. 그래도 우리 안 셰프님 덕에, 요즘엔 덜 피곤혀!”
“아무래도 간이 안 좋으신 것 같아요. 한번 병원 가셔서 정밀검사 받아보세요.”
“으잉? 간? 가게 망하고 나서 맨날 술독에 빠져서 살았긴 한데··· 안 셰프 만나고는 바로 끊었어~”
“간이 조금 안 좋으신 것 같아요. 피로는 간 때문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간 때문이라··· CM송 하나가 생각나는구먼. 역시 나 걱정해주는 건 안 셰프님밖에 없네. 당장 검진받으러 가야겠으이!”
왕호가 박씨를 물어다 준 제비마냥 희소식을 가져왔기에, 모임은 화기애애하게 끝났다.
허나, 한 사람의 표정은 그리 밝지만은 않았다.
왕호는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한 사람을 향해 다가갔다.
“라이언 셰프님. 무슨 고민 있으세요?”
“아··· 티 납니까?”
라이언 셰프.
그는 왕호가 직영점의 채용을 약속했을 때, 다른 사람들처럼 크게 기뻐하지 않았다.
그저 덤덤히 피해자들을 축하할 뿐이었다.
왕호도 그걸 느꼈다.
“셰프님은 기쁘지 않으세요? 좋은 기회잖아요. 자본금도 필요 없을 테고···”
“좋은 기회긴 한데··· 솔직히 다시 요리를 해도 되나 하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왕호는 그게 무슨 소리냐고 반문하려고도 했으나, 그냥 라이언의 말을 계속 듣는 게 낫겠다 싶었다.
“처음엔 억울했고, 자존심이 너무 상해 이 피해자 모임을 만들었죠. 나락으로 떨어져서 한참을 지내다 보니까, 많은 걸 되돌아보게 되더군요. 진짜 요리를 했더라면··· 하는 생각이요.”
“진짜 요리요? 셰프님께선 스타 셰프셨잖아요.”
“하하, 스타 셰프라··· 그때의 저는 이미 초심을 잃은 상태였습니다. 그냥 장사꾼에 불과했죠.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관심을 얻을 수 있을까 하고, 화려하고 새로운 요리만을 개발하는 데 몰두했죠. 안 셰프님처럼 먹는 사람의 입장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
다.”
창공에서 나락으로.
지독한 절망감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었지만, 라이언은 시궁창 속에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봤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이 팔 수 있을까 하고, 대중들이 좋아하는 메뉴를 찾아 사업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덕분에 전 유명해졌고, 장사도 대박이 났죠. 이 사건만 없었더라면, 전 아직도 사업 구상에 열심이었을 겁니다.”
“그게 잘못된 건 아니잖아요.”
“만약 제가 요리를 처음 시작했을 때처럼 요리하는 것 그 자체에 애착을 잃지 않았더라면, 방송국의 타겟이 되지도 않았을 겁니다.”
“그렇다고, 이렇게 되신 게 셰프님 잘못은 아니잖아요. 방송국에서 잘 나가는 셰프님 물어뜯은 거지.”
“그렇죠. 근데 말입니다. 제가 홍보차원에서 제 아이스크림에는 100% 유기농 생우유가 들어간다고 광고했었습니다. 사실은 맛이 더 좋은 아이스크림믹스를 사용했는데 말이죠. 어차피 이것도 우유라 별 문제 안 될 줄 알았는데, 어쨌든 거짓은 거짓이겠죠.
나중엔 이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더라고요. 다른 억울한 조작들도 이것 때문에 묻히고 말았습니다.”
라이언의 눈에는 후회가 가득했다.
“저를 받아주는 곳도 없어서 요리를 한동안 접고 나니, 다시 요리 그 자체에 대한 애착이 생기덥니다. 잃고 나서야 비로소 다시 보게 된 것이죠. 그리고··· 지난 몇 주간 안 셰프님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초심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반성 많이 했죠.”
“예? 저를 보고요···?”
“손님을 배려하는 그 마음! 요리 자체를 즐기는 그 열정! 감동을 주려는 그 의지!”
라이언의 눈동자가 활활 불타올랐다.
한때 대한민국 최고 셰프라는 소리까지 듣던 라이언이지만, 그의 눈에서는 셰프 업계의 초짜라고 할 수 있는 왕호에 대한 존경이 물씬 느껴졌다.
쉽게 가지기 힘든 자세였다.
부담스럽기까지 한 그의 이글거리는 눈빛에, 왕호는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덥석-!
하지만 라이언이 뒤로 물러나려는 왕호의 손을 꼭 잡았다.
“그리고! 저희 피해자들을 위해 만들어주신 그 보양식! 아픈 곳 하나하나 세심하게 살피는 안 셰프님의 모습에 정말이지··· 크흑······. 요리··· 아니, 삶의 진정한 의미를 곱씹어볼 수 있었습니다.”
왕호가 당황했다.
‘아니 그건 그냥 숙련도 올리려고 한 건데···’
단단히 착각한 라이언의 입에서는 삶의 진정한 의미까지 튀어나왔다.
꾸벅-
경력 30년 차, 요리 대선배가 왕호에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 압도적 감사···!”
또르르-
흘러내리는 눈물 한 방울이 화룡점정을 찍었다.
“라이언 셰프님······. 이제 그만 손 좀···”
“크흑, 아이고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여줬네요.”
눈물을 훔친 라이언은 마지막으로 왕호에게 부탁 한 가지를 건넸다.
“저는 가맹점에 들어가지 않겠습니다. 전 아직 자격이 없습니다.”
“아니요. 충분하십니다.”
“절··· 왕호네 식당 요리사로 받아주십쇼!”
“헉!”
왕호가 난색을 표했다.
축구로 치자면, 떠오르는 신성에게 호날두가 와서 축구 좀 배우겠다는 셈이다.
“안 셰프님 덕에 영국에서 요리 배울 때의 그 초심 되찾았습니다. 설거지부터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저보다 요리 잘하시는 분께서 무슨 설거지를···”
“잘하다뇨··· 저는 안 셰프님의 그 버프 요리! 그 몬스터 요리! 정말 충격 많이 받았습니다. 전 아직 배울 게 많습니다.”
“게다가 제 식당은 금토일만 장사를 하는데······.”
일반인들 사이에 인기가 많아진 터라, 금요일까지 밖에서 장사한다.
월화수목은 던전, 금토일은 던전 밖.
이런 식이다.
“괜찮습니다. 많이 쉬고 좋지요~!”
라이언은 집요했다.
“···알겠습니다.”
라이언의 눈빛이 호랑이마냥 강렬했던 탓에, 왕호는 그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어차피 점례 아주머니도 곧 나가야 돼서, 일손이 필요했다.
라이언 셰프라면 거의 3인분급의 인물.
다만, 자신이 써먹을 수준의 인물이 아니다.
지금이야 무슨 콩깍지가 씌였는지 저러지만, 일하다 보면 다시 자신감 되찾고 나갈 거라 판단했다.
그렇게, 왕호네 식당에 새로운 수 셰프가 들어왔다.
‘산이한테 라이언 셰프님 계실 동안 많이 배워놓으라 해야겠다.’
*
괴수미식회의 영향력은 왕호가 생각하던 것 이상이었다.
왕호가 부탁하지도 않았건만··· 왕호를 예쁘게 본 사장들이 왕호에게 각종 CF를 제안해왔다.
제안은 고마웠으나, ‘요리사’라는 이미지에 어울리지 않는 것들은 소속사와 상의해 전부 고사했다.
국내 1위 전자회사를 맡고 있는 송 사장은, 왕호에게 고급 냉장고의 모델을 제안했다.
이건 냉장고라서 굳이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와, 이건 모델료가 어마어마하네······.’
에셰코 우승하고 찍은 자잘자잘한 CF와는 클래스가 달랐다.
이래서 다들 재벌에 연줄을 대려고 뇌물을 바치나 싶었다.
뇌물이 얼마나 비싸던, 연결만 된다면 더 뽑아먹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또 하나 바뀐 건, 고레벨 몬스터 재료들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김 비서에게 요청만 하면, 하루 만에 도축과 해독이 완료된 살코기를 구할 수 있다.
물론, 합당한 가격은 지불해야 한다.
이건 좋기도 했지만 마냥 좋은 면만 있진 않았다.
일단, 레이드를 뛸 필요성이 크게 줄어들었다.
때문에 허용이 가르치는 함무라비 스킬의 숙련도를 올리기가 힘들었다.
‘숙련도 못 올리면 맞아 죽을 텐데······’
또한, 레이드 실황 방송이 줄어드니 팬들의 아쉬움도 커져갔다.
요리 방송이나 먹방은 늘었지만, 왕호의 유튜브 채널 팬의 대부분은 레이드 실황을 통해 유입된 사람들이다.
해서, 왕호는 다시 레이드 시간을 더 늘릴 생각이었다.
일차원적으로 생각했었는데 해야 할 필요성도 충분했다.
단순 팬서비스를 위해서가 아니다.
왕호에겐 ‘강함’을 키워야 할 이유가 있다.
‘분명, 두유노우 길드에서도 날 주시하고 있다고 했지.’
대한민국 규모 1위의 길드.
그곳에서 왕호의 뒷조사를 하고 있었다.
황 회장이 귀띔해줬다.
악의가 담겨 있는지는 아직 모른다.
아마 저번 아즈모데우스 레이드 때문에 알아보는 것이겠지.
만약, 이들이 프레이 길드처럼 위협을 가해 온다면?
이제는 든든한 배경이 있기에 법적으로는 걱정할 것이 없다.
하지만 저들은 각성자들.
만에 하나라도 무력으로 위협을 가해온다면 어쩔 도리가 없다.
오직 강해지는 수밖에······.
“오빠! 오빠! 무슨 생각해?”
왕호가 미간을 찌푸리며 고민하고 있자, 희영이가 다가와 말을 건넸다.
“응? 별거 아니야.”
“요새 점점 바빠지던데 좀 쉬엄쉬엄해! 놀러도 다니고!”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지.”
“그런 것 치고, 너무 많이 저은 거 같은데?”
“너야말로 많이 놀아 둬. 대학 입학하면 공부해야지.”
“노는 것도 이제 지겨워. 그리고 1, 2학년 때는 공부 안 하고 막 논대! 아직 2년 더 놀 수 있음!”
희영이가 코를 찡긋하며 웃었다.
살판났다 아주.
“좋겠다. 장학금만 끊기지 마. 끊기면 이제 밥 안 해줌!”
“헐! 알았어! 적어도 3.5는 받을 거야! 그리고 그 말투는 뭐임?”
“너한테 배운 거임!”
“헐! 대박 어색··· 문찐같다.”
희영이는 거의 벌레 쳐다보는 눈빛으로 왕호를 쳐다봤다.
“문찐··· 그게 뭐니?”
“몰라도 돼. 아! 나 내일 학교에서 야유회 간대! 졸업 전에 마지막으로 놀러 가는 거야!”
“야유회?”
“응! 그래서··· 도시락을 좀 싸 오라는데··· 요새 오빠 바쁘니까··· 엄마랑 같이 내가 쌀까? 아님, 김밥헤븐에서 그냥 김밥 사 가도 되니까···”
“아냐아냐. 잘됐네. 내가 싸줄게. 아, 그럼 소미랑 혜진이도 같이 가겠네?”
“응!”
“그럼, 걔네들 먹을 것까지 같이 싸줄게. 친구들한테는 도시락 안 싸 와도 된다고 말 해줘.”
“정말? 그럴 시간 있어···?”
“오빠 손 빠르잖아. 그리고 손도 커서 1인분 만드는 게 더 힘들어. 게다가 대량으로 만들어야 맛도 더 좋다는 건 요리의 핵심 아니겠냐.”
“앗싸! 고마워~!”
잔뜩 신나하는 희영이를 왕호가 부드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잘 됐다. 안 그래도 버프 요리 먹여야 했는데.’
동생을 바라보는 왕호의 눈은 어느새 보랏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 클래스가 다르다 1 (2) > 끝
ⓒ 신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