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클래스가 다르다 1 (3) >
희영이에게 진찰 스킬을 사용하자, 드디어 무언가 보이기 시작했다.
동생의 머리. 즉, 뇌에서 황금빛 오오라 같은 것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처음 보는 종류다.
그리고 그 빛은 우윳빛깔 반투명 막에 막혀, 제자리에서 맴돌았다.
‘약 때문에 막혀 있는 건가?’
다행인 점은 검붉은 빛은 아니라는 것이다.
피해자 모임의 김 씨 아저씨의 간에서는 검붉은 빛이 흘러나왔다.
검진결과 알콜성 간염으로 확인됐다.
다행히, 초기에 발견한 터라 위험한 상황까진 치닫지 않았다.
왕호가 일찍이 알려준 덕분이다.
이것으로 유추해 보았을 때, 검붉은 빛은 좋지 않은 증세를 나타내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저 영롱한 황금빛은 처음 본다.
왕호는 피해자 모임의 사람들을 진단, 치료해주고 김 비서의 소화불량까지 고쳐놨다.
덕분에 진후안 스킬의 숙련도가 많이 올랐고, 저 빛도 포착하게 됐다.
저것이 아마 두통의 원인이겠지.
다만 그 빛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나오지 않아, 치료는 요원해 보였다.
치료 방법을 모른다?
그럼,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쏟아부으면 된다.
왕호는 희영이에게 버프 요리를 먹일 생각이었다.
버프 요리는 병원에서 처방하는 약과는 다르다.
부작용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힐링 버프를 만들어 먹일 거다.
계속 먹일 거다.
엄청 많이.
각기 다른 종류로 말이다.
계속 먹이다 보면, 하나쯤은 얻어 걸리겠지하는 심산이다.
지금 왕호의 실력으로는 힐링 버프의 2중첩이 가능한 상태.
섭취한 힐링 버프가 2개 이상으로 넘어가게 되면, 가장 최근 것들 위주로 적용된다.
만약 스무 개의 힐링 버프를 한 번에 섭취하게 되면, 가장 나중에 먹은 두 개만 적용된다는 뜻이다.
물론, 받아들이는 용량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둘 중 하나는 보조 옵션으로 적용된다.
능력을 좀 더 키우면 100% 효과로 적용 가능할 거다.
‘나중엔 3개 4개도 중첩되겠지.’
그리고 혹시 아나, 힐링 버프 간의 시너지 효과가 생길지.
안 그래도 희영이에게 힐링 버프를 잔뜩 멕여야 하는데, 도시락을 싸달라고 하니 좋은 생각이 절로 떠오른다.
‘그러고 보니 요새 신경도 많이 못 써줬네.’
수능이 끝나니, 막상 자식을 다 키운 것마냥 홀가분해졌다.
동생에게 소홀해진 것도 사실이었다.
주말에 놀지도 못하고 홀 서빙을 도와주는데, 도시락이야 못 싸줄까?
그리고 원래 소풍 도시락은 빵빵하면 빵빵할수록, 기가 팍팍 살지 않나.
중학교 때부터 항상 김밥헤븐 김밥만 먹어온 왕호는 누구보다도 그 설움을 잘 알고 있다.
희영이에게는 그런 설움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았다.
한참 민감한 사춘기 아닌가.
아, 고3이면 볼빨간사춘기 끝났나?
‘뭐, 그래도 친구들이 부러워하면 기 팍팍 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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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날이 밝자마자
“자, 이거”
왕호는 완성된 도시락을 희영이에게 건넸다.
“응? 이거 도시락이야?”
“어.”
“근데, 왜 이렇게 작아? 3인분 아니야? 소미랑 혜진이 것도 만들어 준다며.”
“마도구라서 그래, 안에 엄청 많이 들었어. 동수 형님이 만들어 준거니까 잃어버리면 큰일 난다. 남기지 말고 다 먹어.”
평범한 도시락 크기로 생겼지만, 저래 보여도 마도구다.
공간 확장이 걸려 있으며, 보존 마법 덕에 내용물의 온도를 알맞게 보존할 수 있다.
따뜻한 층은 따뜻하게, 차가운 층은 차갑게.
“오! 반찬은 뭐야?”
“일단 1단으로는 에피타이저로 샐러드를 넣었어, 샐러드는 총 세 가진데 하나는···”
“엄청 많다는 소리네? 그냥 이따 가서 확인해볼게.”
희영이가 왕호의 말을 도중에 잘랐다.
가만히 놔뒀다간 교장 선생님 훈화말씀처럼, 길어질 것 같았으니까.
“그래. 소풍 잘 다녀와~.”
“소풍 아니라 야유회라니까.”
“그게 그거 아냐?”
“소풍이라 하니까 뭔가 초딩느낌나잖아.”
“내 눈엔 아직도 초딩이다.”
왕호가 희영이의 머리칼을 헝클어뜨리며 말했다.
애써 빗은 머리가 헝클어진다.
짜증 날 법도 한데, 희영이는 다시 머리를 다듬더니 왕호를 향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갔다 올게!”
왕호는 멀어져가는 희영이의 뒷모습을 빤히 바라보았다.
‘기죽지 마라.’
역대급 정성을 넣었으니까.
*
안희영이 다니는 고등학교는 강남 8학군에 위치한다.
희영이가 공부를 제법 잘했기 때문에, 왕호는 동생을 좋은 학군으로 보내기 위해 무리를 해서 집을 얻었다.
반지하로 옮기면서까지 말이다.
여느 학부모가 그렇듯, 좋은 대학에 보낼 수만 있다면 그 정도는 크게 상관없었다.
잘 사는 애들이 모인 곳인 만큼, 희영이가 다니는 학교에도 졸부집 자식들이 많았다.
잘 산다고 해서 인성이 글러 먹었다던가, 아님 교육을 잘 받아서 인성이 훌륭하다거나 하진 않는다.
어느 집단처럼, 또라이 보존법칙에 입거해 또라이가 있으며 그렇지 않은 인성갑 또한 존재한다.
“에바야! 겨울에 무슨 야유회야.”
거의 미니스커트처럼 치마를 짧게 줄인 한 여학생이 투덜거렸다.
희영이의 같은 반 학생인 조현아다.
조현아는 또라이까진 아니지만, 질투심이 많고 항상 관심을 얻고 싶어 하는 전형적인 관종 소녀다.
“놀이공원 간대잖아. 거기 전체에 마법 걸려 있어서 따뜻하대.”
“어차피 졸업도 얼마 안 남았는데, 학교에서 빈둥대는 것보다는 낫지 않아?”
조현아의 단짝인 두 여학생이 그녀를 살살 달랬다.
조현아는 돈이 많다.
정확히 말하면 그의 아버지가 돈이 많다.
국내 1위 전자 회사의 부사장이다.
아무리 졸부집 자식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도, 대기업 임원 딸은 흔치 않다.
조현아의 단짝들이 그녀의 툴툴대는 성격을 참아가며 옆에 붙어 있는 이유도 그녀의 용돈 때문이다.
거의 한도가 없다시피 한 카드를 들고 다니는 터라, 조현아와 같이 놀러 다니면 공짜로 먹고 논다.
“놀이공원 갈 거면 오사카에 있는 유니버셜 정도는 가야지. 자연농원이 뭐야 클래스 후지게.”
“그래도 T익스프레스 그거는 재밌다던데?”
“맞아. 그것만 타고 우리끼리 오사카 놀러 가자 현아야.”
“그럴까?”
두 친구가 달래자, 그녀의 마음도 금세 풀어졌다.
참으로 단순하다.
야유회를 향한 투덜거림은 멈췄지만, 그녀의 눈은 곧바로 다른 먹잇감을 향했다.
버스를 향해 다가오는 세 명의 인영이 눈에 들어온다.
“저것들 요새 왜 이렇게 꼴 보기가 싫지?”
“수능 잘 봐서 나대는 거잖아. 네가 이해해.”
“맞아. 쟤네들한테는 수능이 인생의 전부잖아.”
조현아의 눈이 향한 곳은 바로, 안희영이 있는 곳이었다.
안희영은 항상 전교 1, 2등을 놓치지 않았지만, 수능이 있기 전까지 모든 관심은 항상 조현아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매번 관심이 고팠던 조현아는, 온갖 수를 다 동원해 관심을 쟁취해왔다.
신상 명품을 들고 와 자랑한다던가, SNS에 연예인과 찍은 사진을 마구 올린다던가, 아이돌 기획사에 지원한다던가 하는 짓들 말이다.
유행에 민감한 또래 학생들 사이에서 이러한 조현아의 행동은 관심을 끌어모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안희영이 수능 만점을 받은 이후로는 확연히 달라졌다.
관심의 축이 안희영 쪽으로 돌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수능 만점.
이것만으로도 관심을 빼앗기기에 충분한데, 그녀의 오빠까지 아주 세간의 중심에 있었다.
2, 30대였다면 덜 했겠지만, 레이드 개인방송을 자주 보는 10대들 사이에서 왕호의 인기는 실로 엄청났다.
자연스레 학교 내에서 안희영의 인기도 상승했다.
조현아는 그것이 못내 불편했다.
‘쳇, 그래 봤자 요리사지 뭐.’
대기업 임원인 아버지에 비하면, 우주의 먼지 수준이다.
아예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신분이 다르다 신분이.
‘도시락을 싸 오라 해서 다행이네. 오늘 진짜 클래스 차이를 보여줄게.’
안희영의 오빠는 요리사다.
요리사를 음식으로 압도한다?
그것만큼 임팩트 줄 수 있는 것도 없다.
오늘 특별히 주문한 도시락은 부러움의 정점을 찍어줄 거다.
안희영의 것과 비교해서, 그녀를 쪽 주는 건 덤이고.
희영이의 오빠가 경연대회 우승자이긴 하지만, 그래도 미슐랭급은 아니지 않나.
2부 리그를 우승해본들, 1부 리그 챔피언에게 비빌 수는 없는 법이다.
오늘이 지나면, 다시 관심의 중심에 자리 잡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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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 바이킹 핵꿀잼! 또 타자!”
막 놀이기구에서 내린 혜진이가 잔뜩 신나 소리쳤다.
“안 돼! 시간 없어. 다른 것도 타야지. T익스프레스는 줄만 2시간은 서야 된다더라.”
“헐··· 에바 참친데? 그렇게 기다릴 정도로 재밌나?”
희영이는 바람에 의해 산발이 된 머리를 추스르며 말했다.
“딱 봐도 재밌게 생겼잖아. 지금 빨리 가서 줄 서자. 그거 타고 점심 먹으러 모이면 얼추 시간 맞겠는데?”
“좋아! 고고!”
소미는 희영이의 손을 붙잡고, 롤러코스터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같이 가 이것들아!”
그녀들의 뒤를 혜진이가 쫓았다.
세 사람은 꼬리를 물고 늘어진 줄에 꼬리를 더했다.
“기다릴 만 하겠는데? 생각보다 짧으니까, 한 시간이면 되겠다. 노가리 까면서 기다리자!”
“끝말잇기 할래?”
“콜! 딱밤 걸고 하자.”
떨어지는 낙엽만 봐도 깔깔거리는 그녀들에게, 한 시간 줄 서는 거야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 먼저 한다? 바이킹!”
“킹코브라!”
“라듐!”
“듐···? 아나······.”
희영이의 공격에 소미의 얼굴이 굳어진다.
딱-!
약속대로 강력한 딱밤이 보상으로 주어졌다.
“악!”
오고가는 딱밤 속에 싹트는 우정!
“야, 다싀 해! 이븐엔 븐대방향으르!”
소미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
살기가 물씬 느껴졌다.
“자연농원!”
“원숭이!”
“이리듐!”
이번에도 듐이다.
“듐··· 뭐? 이리듐이 뭐야?!”
“원자번호 77번의 원소야.”
“아나··· 누가 이과 1등 아니랄까 봐··· 주기율표 그 자체시네······.”
이번 희생자는 혜진이다.
딱-!
이번에도 강력하다.
“커억! 으으··· 다시 해!”
“얼마든지!”
하지만, 소미와 혜진이도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
둘은 희영이 모르게 눈빛을 살짝 교환했다.
“이상해!”
“해질녘! 키키키···”
“녘··· 야! 너네 짰지?!!!”
“이마 대라! 딱 대라!”
혜진이의 가운뎃손가락이 아치를 그린다.
마치, 활시위를 당기는 듯한 모습!
시위를 튕기자,
따악-!
“아악!”
“꼬시다 이것아!”
이마를 직격당한 희영이가 두 손으로 이마를 벅벅 문질렀다.
그리고 마침 그때.
지끈-
갑자기 머리 깊은 곳에서 찌릿하는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으으······.”
희영이가 예상보다 고통스러워하자, 친구들의 표정이 걱정으로 물들었다.
“괜찮아? 내가 너무 심하게 때렸나···”
“그런 거 아니야. 두통 또 도졌다.”
“약 먹어야겠네. 자, 여기 생수 까줄 게.”
소미가 생수병의 뚜껑을 따서 건넸다.
주섬주섬-
희영이는 교복 주머니에 넣어 놓은 약통을 꺼내려 더듬거렸으나, 만져지는 것이 없었다.
“어? 약통이 없다······.”
“헐? 가방에 있는 거 아니야?”
“아냐, 아침에 먹고 주머니에 분명히 넣었는데···”
“그럼 바이킹 타면서 빠졌나 봐! 어떡해···”
“지금 찾으러 갈까?”
약을 안 먹으면 통증이 지속되는 걸 알기에, 소미와 혜진이는 발을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다.
“괜찮아. 줄 많이 섰잖아. 어차피 오늘 자고 가는 것도 아니니까, 쫌만 참다가 저녁에 집 가서 먹으면 돼.”
“괜찮겠어? 줄이야 다시 서면 되는 거고.”
“괜찮아. 돌아간다고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걱정 마. 그렇게 안 심해. 한나절 정도는 그냥 버틸 수 있다구!”
“힘들면 말해. 그냥 조퇴하게.”
희영이는 환한 웃음으로, 친구들의 걱정을 무마시켰다.
두통은 점점 심해졌지만, 희영이는 내색하지 않았다.
‘참을 수 있어. 졸업 전 마지막 야유회인데 나 땜에 흥이 깨지면 안 되지······.’
그렇게 하하호호하며 줄을 기다리는 세 친구 옆으로, 우연찮게 조현아 패거리가 지나갔다.
“너희 여기서 뭐 하냐?”
갑자기 말을 건네는 조현아.
조금은 무시하는 투다.
“우리? 줄 기다리잖아.”
“아~ 줄 기다리는 구나아~ 우리는 슈퍼패스 끊어서 안 기다려도 되는데~ 뭐, 돈 없으면 기다려야지.”
“야, 나도 돈 많거든? 학교에서 단체로 가는 건데 굳이 그걸 또 끊은 네가 더 대단하다.”
“호홍, 어쨌든 이따 점심 때 보자~”
조현아 패거리는 키득키득거리며, 슈퍼패스라 써진 지름길로 들어갔다.
“우씨! 우리도 끊을 걸 그랬나?”
“됐어. 돈 아깝잖아. 저거 한 번 타는 데 10만 원 넘어. 쟤네야 원래 돈 지랄 많이 하는 애들이고.”
“맞아. 씀씀이 헤프게 쓰다가 나중에 큰일 나. 그 돈으로 차라리 소고기 사 먹는 게 이득임. 인정?”
“노인정! 나는 왕호 오빠 요리 사 먹을 거임.”
“헐! 그 생각을 못 했네.”
소미와 혜진이네 집도 부유하면 부유했지, 못살지는 않는다.
슈퍼패스야 충분히 끊을 수 있다.
허례허식하기 보다는, 아낄 때 아낄 줄 아는 친구들이다.
희영이는 친구 잘 만났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골은 자꾸 당겨왔지만, 이번엔 억지 미소가 아닌 진짜 미소가 절로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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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진짜 미쳤다. 올라갈 때 완전 심장 떨렸어.”
“키키, 내려올 때 우리 사진 찍힌 거 봤어? 완전 웃김.”
“흑역사로 두고두고 저장해야지~”
무려 한 시간을 기다려 롤러코스터를 탄 세 사람은, 점심시간에 맞춰 모이기로 한 장소에 모였다.
같은 반 친구들은 돗자리를 깔고 이미 모여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조현아의 표정은 왠지 모를 기대감으로 부풀어 있었다.
< 클래스가 다르다 1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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