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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버프를 만들어 드립니다-134화 (134/149)

< 클래스가 다르다 1 (4) >

드넓은 잔디밭에 여고생들이 삼삼오오 무리 지어 앉았다.

비록 지금은 겨울이지만, 자연농원 전체가 마나석에 의해 온도가 컨트롤되고 있다.

마치, 구들장 따뜻하게 데워놓은 실내에 와 있는 것 같은 온도다.

희영이도 같은 반 친구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돗자리를 깔고 앉았다.

자고로 소풍의 묘미는 이렇게 야외에 앉아 서로 도시락 나눠 먹는 재미 아니던가.

“왜 이렇게 배고프지? 방금 츄러스 먹었는데?”

풀썩 주저앉은 혜진이가 주린 배를 움켜잡았다.

“신이 우리에게 저주를 내린 게 분명해. 세상에 맛있는 걸 이렇게 많이 만들어 놓고, 다이어트 때문에 못 먹게 만들었잖아!”

“맞아. 배는 항상 고프고.”

한창 잘 먹을 때지만, 대학 입학을 코앞에 둔 혜진이와 소미는 식이조절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빠가 그러는데, 맛있게 먹으면 0칼로리래.”

주섬주섬-

희영이가 에코백에서 도시락을 찾으며 말했다.

“나도 그런 줄 알고 맛있게 처먹었더니 뒤룩뒤룩 찌더라. 난 물만 먹어도 살찌는 체질인가 봐.”

“물을 하루에 100리터씩 먹은 거 아냐? 코끼리도 채소만 먹는데 뚱뚱하잖아.”

“아니거든! 같이 먹어도 희영이 넌 안 찌잖아!”

“그런가? 하긴 오빠 요리만 먹으니까 안 찌긴 하더라.”

“좋겠다 이 가시나야 엉! 그 맛 난 걸 맨날 먹고······.”

“일단, 오늘은 다이어트 생각 말고 많이 먹자! 오빠가 너희 것까지 엄청~ 많이 쌌대!”

“앗싸! 살어리 살어리랏다~ 내 몸에 살오르리랏다~”

“야들야들마시썽 얄라리얄라~”

“가을은 천고마비의 계절, 겨울은 천고마블링의 계절~”

희영이는 잔뜩 흥이 오른 친구들 사이로, 도시락을 자신있게 꺼내올렸다.

턱-

“응? 뭐야? 왜 이렇게 작아?”

“셋이 먹다 두 명은 굶어 죽겠는데?”

소미와 혜진이가, 조막만 한 도시락통을 보더니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무슨 교과서에서나 보던 추억의 양은도시락 크기 정도였다.

희영이는 도시락의 비밀을 설명하려 입을 열었다.

“아, 이거 사실은 마도···”

“꺄하하핫! 희영이 너 도시락 클라스가 그게 뭐니? 너네 오빠 셰프라고 하지 않았어?”

하지만 설명하기도 전에, 조현아가 말을 끊고 끼어들었다.

조현아는 이때다 싶었는지, 희영이의 도시락을 극딜했다.

“조금 유명해졌다고 동생은 안 챙기는 거야? 아님, 챙긴 게 겨우 그 정도?”

“너 왜 또 시비냐? 이거 챙긴 거야. 사실 마도···”

“꺄하하 챙긴 거라고? 밥 위에 후라이 하나 깔아 놓은 거 아냐?”

“말 좀 끊지 말아 줄래?”

희영이의 도시락을 한껏 무시한 조현아는, 자신이 가져온 ‘특제’ 도시락을 꺼내기 시작했다.

“워우~”

“역시 현아야! 도시락도 클라스가 어마무시하잖아!”

두 친구의 오버액션에 현아의 표정이 득의양양해진다.

그녀가 꺼낸 도시락은 꽤나 무거워 보일 정도의 대단한 크기였다.

케이스부터가 남달랐다.

L과 V모양의 이니셜이 교차되어있는 로고가, 도시락 겉면을 휘황찬란하게 장식하고 있다.

명품!

반 친구들의 모든 시선이 조현아의 도시락으로 향했다.

“헐··· 루이비똥 케이스야?”

“루이비똥이 뭐니 촌스럽게. 뤼이븨토옹~ 이라고 해야지.”

명품 전문가답게 발음에도 허세를 가득 넣었다.

“너희들 미슐랭 가이드라고 들어봤지?”

“응! 엄청 유명한 식당만 소개해준다지? 별 따기가 말 그대로 하늘의 별 따기라는데.”

“대박! 난 처음 들어! 에셰코 우승보다 더 대단한 건가?”

“뭐, 모를 수도 있지. 에셰코는 아마추어들이나 나가는 곳이고 이 미슐랭 별은 모든 요리사들의 종착역이라고 할까나?”

현아는 마치 희영이보고 들으라는 식으로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근데 갑자기 미슐랭은 왜?”

“이 도시락이 바로 미슐랭 투 스타 셰프님 께서 직접! 만들어 준 거거든.”

“헐! 실화야?”

“와, 조현아 오졌다······.”

“레알이야? 그렇게 유명한 셰프가 왜 네 도시락을 싸 줘?”

“우리 아빠가 그 셰프님이랑 친하거든. 백제호텔 수석 셰프님인데 우리 아빠가 거기 단골이야.”

“대애박! 나 한입만 먹어봐도 돼?”

친구들이 하나둘 관심을 보이자, 조현아는 어깨를 쓰윽 올리며 아무렇지 않다는 식으로 답했다.

“그래, 먹어먹어. 같이 먹으려고 많이 싸 왔잖아. 크기 보이지?”

“디따 무거워 보이네··· 들고 오느라 힘들었겠다.”

“무려 5단 도시락이야.”

“우와··· 난 김밥 두 줄 싸 왔는데······.”

“너희들이 언제 이런 요리 먹어보겠니. 평생에 한 번 먹을까 말까 할 건데. 나니까 나눠주는 거야.”

무척이나 재수 없는 말이었지만, 그것보다 미슐랭 요리에 궁금함이 더 컸기에 친구들은 조현아의 곁으로 모여들 수밖에 없었다.

“으, 저 재수탱이. 언제 철 들라나?”

혜진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됐고, 우리도 배고프니까 빨리 먹자.”

“이거 마도구 맞지? 아니면 이렇게 작을 리가 없지.”

“맞아. 오빠가 너네 주말에 고생한다고, 새벽부터 일어나서 요리하드라.”

“오, 진짜 기대된다. 오늘은 배 터지게 먹어야지. 다이어트는 내일부터!”

“빨리 뚜껑···”

소미의 말은 마침표를 찍을 수 없었다.

조현아가 있는 곳에서 하이톤의 감탄사들이 귀를 찌를 듯이 들려왔으니까.

“어머머! 완전 고급스러워! 대박!”

“헐, 레알 호텔 레스토랑 온줄?”

“우와아아! 진짜 맛있어 보인다!”

여고생들은 손으로 입을 가린 채,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각자 핸드폰을 들어 도시락의 위용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조현아는, 5단 도시락을 분리해 돗자리 위로 차례차례 펼쳤다.

도시락 한 단 한 단이 전부 5성급 레스토랑에서 판매하는 하나의 디쉬를 방불케 했다.

여고생으로서는 도통 정체를 알 수 없는 프랑스 요리들이다.

유일하게 알아볼 수 있는 것은 두툼하게 잘 구워진 스테이크뿐이었다.

“와, 스테이크가 무슨 세 덩이나 들어있어!”

“후훗, 립아이라고 꽃등심 구운 거야 미디움레어로 구워달라 했어.”

“개쩐다··· 이건 뭐야?”

“이건 달팽이 요리야. 프랑스에서 가져온 식용 달팽이로 만들었어.”

“윽··· 달팽이? 뭔가 먹기가 좀 그런데······.”

“없어서 못 먹는 고급요리야. 한 마리에 5만 원!”

“미, 미친! ···먹어봐도 돼?”

“먹어 봐~”

용기 있는 여학생 한 명이 조심스레 젓가락을 움직여, 소스에 마리네이드 된 달팽이 하나를 집어 들었다.

아암-

우물우물-

“음··· 쫄깃쫄깃하고 맛있어! 있는 집 사람들은 이런 걸 먹는구나···”

여고생들에게, 조현아가 가져온 도시락은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요리의 예술적인 플레이팅은 마치 고미술품을 보는 것처럼 아름다웠고, 생전 처음 들어보는 요리는 마치 동화에서나 나올 법한 용궁 속 음식 같았다.

신기하긴 했지만, 공감하기엔 조금 무리가 있었다.

“이런 거 먹고 싶으면 말만 해~ 레스토랑 한 번 데려가 줄게~ 괜히 희영이한테 붙어서 미슐랭 별도 못 딴 왕호네 식당 가지 말고.”

“야! 우리 오빠 요리가 더 맛있거든? 미슐랭 별 그거 일부러 안 따는 거야! 그거 별 주는 사람이 한번 먹어보면 바로 별 다섯 개 줄걸?”

“풋, 미슐랭 별은 세 개까지야.”

“어쨌든!”

지속적인 현아의 무시에, 결국 희영이가 발끈했다.

왕호였으면 웃으며 넘길 법한 귀여운 도발이었지만, 아직 여고생인 희영이는 오빠를 자꾸만 무시하는 걸 참지 못했다.

게다가 아까부터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기에 더더욱 짜증이 올라왔다.

“그냥 무시하고 우리끼리 맛있는 거 먹자. 달팽이 요리가 뭐냐, 불고기가 훨씬 맛있겠다.”

소미는 그렇게 말하고는 도시락 뚜껑에 달린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우웅- 치킨-

마치 변신로봇 트랜스폼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도시락의 크기가 점차 변하기 시작했다.

“헉! 뭐, 뭐야!”

“저것 봐봐! 졸 신기해!”

“와~ 마도구야?”

단숨에 친구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변신을 완료한 도시락은 그 넓이가 마치 학교 급식 식판처럼 넓어져 있었다.

하지만 아직 높이는 그대로 얇은 상태였다.

소미도 깜짝 놀랐지만, 예상하고 있던 터라 금세 가슴을 추스르고 뚜껑을 오픈했다.

“와······.”

“샐러드다!”

“색감 진짜 이쁘당!”

“세 종류나 있는데?”

두 개의 칸막이로 세 등분 된 1단 도시락에는, 각기 다른 샐러드가 예쁘게 담겨 있었다.

왕호는 도시락의 첫 번째 층을 입맛을 돋우기 위한 에피타이저로 채워놓았다.

여고생들이 좋아하는 상큼한 샐러드로 말이다.

첫 번째는, 구운 애호박과 아보카도를 넣은 리코타 치즈 토마토 샐러드.

두 번째는, 구운 닭가슴살과 치즈 퀘사디아를 더한 타코 샐러드.

세 번째는, 참치와 래디쉬 그리고 당근을 넣고 오리엔탈 드레싱으로 마무리한 아시안 튜나 샐러드를 담았다.

물론, 왕호의 설명을 중간에 잘라먹고 온 희영이는 이 샐러드가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는 없었다.

알 수 없어도 전혀 상관없었다.

보기만 해도 아름답고 상큼상큼해 보였으니까.

다른 사람도 아니고 동생이 먹을 도시락이다.

왕호는 샐러드에 들어가는 채소들을 깨끗이 씻고, 예쁘게 다듬었다.

보기도 좋은 떡이 먹기에도 좋다고, 채소들의 색감을 맞추어 마치 꽃꽂이하듯 조화롭게 담아냈다.

그렇다고, 조현아가 가져온 도시락처럼 레스토랑식 플레이팅을 하지는 않았다.

여백의 미를 강조하고 소량의 음식과 소스만으로 플레이팅하는 레스토랑 디쉬와는 다르게, 많이들 먹으라고 듬뿍듬뿍 집어넣었다.

마치 장미 1,000송이를 넣은 꽃다발처럼 푸짐하면서도 기풍이 흘러넘쳤다.

게다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소미야 설마 샐러드만 있지 않겠지?”

혜진이의 물음에, 소미는 샐러드가 담긴 1단을 조심스레 들어 올렸다.

슈웅-

그러자, 새로운 층이 지하에서 올라오는 것처럼 도시락이 새롭게 채워진다.

그리고 새로이 나타난 2단은 밥이 가득 담긴 도시락이었다.

한국인은 밥심이라며, 밥으로 꽉꽉 채운 층이다.

하지만 그 모양새는··· 여고생들이 보기에 가히 충격적일 정도의 광경이었다.

2단을 확인한 여학생들이 갑자기 꽥꽥-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꺄아아아아악!!!”

“우와아아아!!! 귀여워어~~~!!!”

“어머머멋! 심쿵해쪄!”

“이건 무조건 찍어야 해!”

찰칵- 찰칵-

조현아 도시락을 찍을 때의 거의 다섯 배 속도로 핸드폰 플래시가 터져 나왔다.

도시락에는 주먹밥과 볶음밥뿐이었지만, 그 형태가 일반적이지가 않았다.

동글동글 귀엽게 웃고 있는 테디베어 주먹밥.

그 테디베어와 나란히 누워있는 아기상어 주먹밥.

두 귀여운 주먹밥들이 도시락의 한쪽을 옹기종기 채우고 있다.

반대쪽은 더 귀염귀염했다.

노오란 황금 볶음밥이 빚어내는 형태는, 하나의 귀여운 캐릭터를 완성하고 있었다.

피카츄.

피카츄가 깜찍하게 윙크하고 있다.

피카츄의 검은색 귀는 조미김으로, 붉은 홍조는 둥근 햄으로, 하얀색 눈동자는 치즈, 마지막으로 핑크색 혓바닥은 베이컨으로 장식했다.

생기가 가득하다.

당장이라도 살아서 백만볼트 전류를 쏠 것만 같았다.

피까~ 피까~

친구들이 감탄해 마지않는다.

“아기 상어~ 뚜루루뚜루~”

“저 곰돌이 주먹밥 그냥 집에 가져가서 내 침대 위에 올려놓고 싶오!”

“피카츄가 길 가다 담배를 주우며 하는 말은? 피까?”

“와, 희영이 오빠 완전 금손이다~ 너무너무 귀엽잖아~”

“저 정도면 금손이 아니라 완전 다이아 손이잖어~”

“저 귀요미들을 어떻게 먹어! 히잉···”

여고생들은 엄마미소를 지은 채, 도시락을 마치 강아지 바라보듯 바라봤다.

하루 묵는데 3,000만 원이 넘는 두바이 최고급 호텔의 음식이 와도, 아무리 화려한 플레이팅을 수놓더라도, 여고생들이 보기엔 이 귀여운 주먹밥에 마음이 더 끌릴 수밖에 없다.

친구들의 격한 반응에 조현아는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뭐, 뭐야!!!’

잔뜩 무시하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마도구였다.

게다가 이제 겨우 2단밖에 나타나지 않았다.

저 안에 도대체 얼마나 들었을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솔직한 현아의 심정도 친구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진짜 귀엽잖아······.’

< 클래스가 다르다 1 (4) > 끝

ⓒ 신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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