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스터 셰프-2화 (2/219)

<-- 2 회: 1-2 -->

'나 때문이야. 내가 저주하지 않았다면 수아는 그렇게 허무하게 죽지 않았을 거야.'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수아는 그로부터 2년 후에 위암으로 사망했다.

그런데 수아가 위암 말기 환자임을 몰랐던 지훈은 죽기 직전까지 그녀를 원망하고 저주했다.

이는 그녀가 자신을 배신하고 박현식의 여자가 된 점도 있었지만 자신의 레시피를 도용해서 그랬다.

사실 박현식과 김수아가 유명 셰프로 발돋움한 결정적인 배경에는 사고 전까지만 해도 최고의 요리기재로 평가받던 지훈의 레시피를 도용한 요리들을 만들어서 그랬다.

지훈의 땀과 노력으로 완성된 그 레시피들은 셰프가 될 때를 대비한 지훈의 장기 포석이었는데, 수아는 그것들을 허락도 없이 훔쳐가서 도용했다.

'바보! 죽기 직전에야 그 사실을 밝히다니, 조금만 빨랐다면 그토록 지독한 저주는 더 이상 안 퍼부었을 텐데.'

뒤늦게 수아의 죽음을 접한 지훈이 장례식장을 찾아갔을 때, 박현식은 그녀의 마지막 유언이라면서 수아의 사과를 대신 전했다.

아울러 자신은 그것들이 전부 수아가 만든 레시피인 줄만 알았다고 했다.

'나도 잘한 것은 없지만 날 버리고 갔으면 행복하게 오래 살 것이지, 뭐가 급하다고 그렇게 빨리 가?'

수아에 대한 원망은 그 얘기를 들은 순간 눈 녹듯이 사라졌고, 대신 그녀를 저주하고 원망했던 회한만 남았다.

하지만 사과 한마디 없이 자기는 아무 죄가 없다는 식으로 뻔뻔하게 나온 박현식과는 그날 이후 영영 틀어지고 말았다.

"뭐... 뭐야?"

생각만 하면 너무도 아파서 가슴속에 꼭꼭 묻어두고 있었던 수아의 일을 떠올린 지훈은 눈가를 때리는 두 개의 날카로운 불빛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두 개의 불빛이 자동차 헤드라이트임을 깨닫는 순간, 자신이 무단횡단을 하고 있음을 인지하고 급히 몸을 피하려고 했다.

하지만 미처 몸을 빼기도 전에 두 개의 불빛이 자신을 덮쳤고, 이내 커다란 충격과 함께 엄습해오는 고통에 스르륵 의식을 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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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스슥!"

"지훈아."

'누... 누구?'

누군가가 자신을 다급하게 부르는 소리에 지훈은 소리가 난 곳을 올려봤다.

대략 3미터 위쪽의 절벽 끝자락에는 한국 제일의 셰프로 명성이 자자한 박현식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외모가 2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것이 너무도 이상했다.

'뭐야, 꿈인가?'

지금과는 너무도 다른 박현식의 외모에 이어서 자신이 어린 가지를 붙잡은 채 절벽에 매달려 있음을 깨달은 지훈은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필 꿈을 꿔도 또 이런 꿈을 꿔?'

사고를 당했던 그날의 아찔한 기억은 평생토록 달라붙어서 20여년의 세월동안 지훈은 종종 악몽에 시달렸다.

그러기에 지훈은 지금도 자신이 그날의 악몽을 꾸고 있다고 여겼다.

"지훈아, 나 혼자서는 안 되겠어. 사람을 불러올게."

"맘대로 해."

20여 년 전, 지훈은 겁에 질려서 떠나는 현식의 이름을 애타게 불렀다.

하지만 지금은 꿈이고, 어차피 절벽 아래로 추락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그의 이름을 부르는 것도 귀찮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꿈이라고 해도 현식에게 매달리고 싶지 않아서 귀찮다는 식으로 대답했다.

'녀석은 내가 추락할 때까지 끝내 돌아오지 않았어.'

당시 추락을 당하면서 머리와 허리를 크게 다쳤던 지훈은 대수술을 했음에도 코마 상태에 빠졌다가 6일 만에 기적적으로 깨어났었다.

그러니 도와줄 사람을 불러오겠다며 자리를 벗어났던 현식이 얼마 만에 이곳으로 돌아왔는지는 지훈도 몰랐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가 돌아오기 전에 자신이 추락을 한다는 사실이었다.

'젠장, 이번에도 추락을 당하면서 깨어나려나? 가만! 아까의 자동차 사고는 어떻게 되었을까? 난 지금 병원에 있는 걸까?'

자동차 사고를 당했음을 뒤늦게 떠올린 지훈은 조금 전의 아찔한 고통이 떠오르면서 이번에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추락을 당한 이후에 꿈에서 깨어날 것이라고 확신을 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추락의 고통을 경험해야 이 지긋지긋한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아무리 꿈이라고는 하지만 이십여 미터 아래의 절벽으로 추락하는 기분은 너무 더러웠다.

게다가 추락 직후의 끔찍한 고통을 다시 경험하는 것은 가히 고문과도 같아서 이번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맞아! 발밑 아래쪽에 뭐가 있었어.'

실제로 그랬는지, 아니면 이십년 넘게 악몽에 시달리다 보니 자신의 무의식이 만들어 냈는지는 몰라도 절벽에는 사람이 들어갈 만한 작은 공간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래. 어차피 꿈인데 그곳으로 내려가서 몸을 피하는 거야.'

과거에는 어린 나무에 위태롭게 매달린 채 현식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다가 나무가 뽑히면서 함께 추락을 했었다.

하지만 그때의 고통을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지훈은 조심스럽게 절벽을 살피며 손과 발을 편하게 할 수 있는 지점을 찾기 시작했다.

'튀어나온 이 돌덩어리를 잡으면 나무에 쏠리는 부담을 줄일 수 있을 거야.'

나뭇가지 근처에서 튀어나온 작은 돌덩어리를 용케 발견한 지훈은 오른손을 뻗어서 그걸 붙잡은 후에 다리를 놓을만한 다른 지지물을 찾을 요량으로 발밑을 살폈다.

"옳지! 저기라면 괜찮겠다."

대략 1미터 아래에 돌덩어리가 살짝 튀어나와 있는 것을 발견한 지훈은 그곳을 목표로 가볍게 뛰어내렸다.

솔직히 꿈이기에 이리도 자신 있게 뛰어내렸지, 만약 현실이라면 겁이 나서 뛰어내리지 못했을 정도로 돌출된 바위의 면적은 그리 넓지 않아서 지훈의 두발로 꽉 찼다.

'바로 이 아래였던가?'

그간 꿈속에서 수없이 봤던 안정적인 공간이 바로 발밑에 있었음을 떠올린 지훈은 철봉을 하는 것처럼 돌덩어리에 매달렸다.

'역시 그랬어!'

나뭇가지에 뒤덮여 있지만 사람 서너 명은 충분히 들어갈 만한 공간이 있음을 확인한 지훈은 반동을 이용해서 몸을 날렸고, 목표했던 장소에 안착했다.

'그때는 왜 이런 생각을 못했을까?'

만약 사고 당시에 지금처럼 차분하게 생각하고 움직였다면 추락은 피했을 것이고, 그랬다면 자신은 박현식을 능가하는 한국 제일의 세프가 되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꿈을 꾸고 있는 것이 분명하니 후회해봐야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나저나 꿈은 언제 끝나는 거지?'

평소 같으면 추락을 당해서 끔직한 고통에 비명을 지르다가 깨어나는 경우가 많았는데 오늘은 추락을 안 당해서 그런지 여전히 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에이, 어차피 꿈인데 무슨 상관이야? 때가 되면 깨어나겠지.'

어차피 꿈이라는 생각에 마음 편하게 보내기로 마음먹은 지훈은 등을 절벽에 기댄 채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건 또 뭐야?'

왼쪽 허벅지 옆에서 오색 빛이 은은하게 도는 구슬을 발견한 지훈은 호기심에 그걸 집어 들었다.

그런데 꿈이라 그런지 오색의 구슬은 손에 닿기 무섭게 스르륵 녹아버렸고, 대신 지훈의 손이 오색으로 물들었다.

동시에 펄펄 끓는 가마솥에 들어간 것처럼 온몸이 뜨거운 열기에 휩싸이면서 가슴속에서 뭔가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더니 이내 온몸을 휘젓기 시작했다.

'큭! 결국은 악몽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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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음이 우거진 산자락은 물이 한껏 오른 나무들이 토해내는 신선한 공기로 하얀 안개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새들의 노랫소리에 정신을 차린 지훈은 투명한 햇살을 바라보며 늘어지게 기지개를 켰다.

"하~악! 한숨 잘 잤다."

몸이 날아갈 것처럼 가벼운 것이 절로 상쾌해진 지훈은 무심코 주위를 둘러보다가 자신이 낯선 곳에 있음을 깨달았다.

'뭐야, 아직도 꿈에서 안 깨어난 거야?'

자신이 여전히 20여 년 전의 지리산에 있음을 확인한 지훈은 지금도 꿈속에 있다고 여겼다.

그러다가 오색의 구슬을 집어 들었던 자신이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다가 혼수상태에서 어떤 영감과 얘기를 나누었던 사실을 떠올렸다.

'꿈속에서 또 꿈을 꾼 건가?'

흔하지는 않지만 꿈속에서 또 다른 꿈을 꾸는 경우도 있기에 지훈은 자신이 그런 경험을 했다고 여겼다.

'대자연의 정화가 집약된 음양오행의 기운을 내가 물려받았다고? 참나, 이제는 그런 맹랑한 꿈까지 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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