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 회: 1-5 -->
"쌩뚱 맞게 건강검진이 왜 나와?"
"건강은 젊었을 때부터 관리해야해."
"그러는 오빠는?"
"나도 함께 가서 받으면 되지."
"오빠가 함께 하겠다면, 좋아!"
"약속했다."
수아의 건강이 염려스러운 지훈은 틈만 나면 그것과 관련된 얘기를 했는데, 그사이 민박집 앞마당에서는 1조부터 자신들이 채취한 나물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다른 조가 채취한 나물은 달래나 도라지처럼 널리 알려진 나물뿐이어서 푸드 테라피스트로 거의 모든 종류의 나물을 알고 있는 지훈의 관심을 끌만한 것은 없었다.
"오빠, 우리 차례야."
"갖다올게."
8명의 조원을 대표해서 앞으로 나선 지훈은 다른 조가 채취한 나물과 중복되는 나물은 간략히 이름만 열거하는 선에서 설명을 끝내고 그 밖의 나물을 집중적으로 소개했다.
그런데 홑잎나물부터 시작해서 돌나물과 물레나물 그리고 기름나물까지 낯선 나물이 줄줄이 나오자 다른 조원들은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지훈을 바라봤다.
"지훈 선배, 그것도 나물이에요?"
"이건 원추리나물이라는 것으로 물에 살짝 데친 후에 된장과 고추장을 베이스로 다진 파와 마늘을 곁들여서 먹으면 깔끔한 맛이 일품이야. 그리고 우울증에도 좋은 효능이 있어."
"그렇구나, 몰랐어요."
"지훈 오빠, 그러면 그 옆에 있는 줄기가 하얀 것은 뭐에요?"
"이건 바위취라는 것인데 잎과 줄기에서 나오는 즙은 화상과 동상치료에 탁월한 효과가 있고, 쌈 채소로 사용하면 은은한 향이 입안에 퍼져서 고기의 기름진 맛을 경감할 수 있어."
"와~우! 선배, 그런 것까지 알고 있다니 대단하네요."
"선배는 그런 것을 어떻게 배운 거예요?"
"관심이 있어서 독학했어. 우리가 요리사를 꿈꾸고 있는 만큼 맛있는 요리를 하는 것이 기본이겠지만 이왕이면 먹는 사람의 건강까지 챙겨주면 더 좋잖아?"
"건강한 식탁을 만들자는 건가요?"
"그렇지. 의식동원醫食同原이라고 해서 의약과 음식은 근원이 같다는 말도 있잖아."
"의약과 음식의 근원이 같다고요?"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흔히 밥이 보약이라는 말이나, 음식으로 못 고치는 병은 약으로도 못 고친다는 말처럼 좋은 음식은 건강에도 좋으니까 가급적이면 그런 것도 고려해서 요리를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역시 선배는 뭐가 달라도 다르네요."
웰빙이라는 말이 유행을 타고는 있지만 아직은 푸드 테라피가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전이었다.
그 때문에 다른 학생들은 건강까지 고려해서 요리를 하자는 지훈의 말에 큰 감명을 받는 눈치였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어서 다른 이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지훈을 못마땅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도 있었다.
'이지훈, 그놈의 잘난 척은 여전하구나.'
한동안 지훈을 노려보다가 그런 지훈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수아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이는 박현식이었다.
지훈의 단짝 친구를 자처하는 그는 남몰래 김수아를 짝사랑하며 뜨거운 열병을 앓고 있었다.
'저 녀석이 사라졌다면 내가 수아를 차지할 수 있을 텐데.'
암벽 위의 사고는 우연으로 인해서 벌어졌다.
실제로 박현식은 중심을 잃은 상황에서 의도치 않게 지훈을 밀었다.
하지만 그 이후 벌어진 일은 수아를 차지하고픈 마음에 양심을 버린 박현식의 작품이었다.
다행히 큰 사고 없이 마무리가 잘된 탓에 지훈 외에는 그 누구도 박현식을 의심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 찾아온 기회를 허무하게 날려버린 그는 죄책감에 괴로워하기는커녕 지금도 새벽의 일을 아쉽게 여기며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저놈에게서 수아를 떼어낼 수 있을까?'
가장 좋은 해결책은 지훈을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오늘 새벽처럼 또 다시 극단적인 일을 벌이면 그때는 모두의 의심을 살 수 있었다.
그렇다면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그리 많지 않았다.
'우선은 저 둘의 사이를 멀어지게 해야 해.'
서로 사랑하는 지훈과 수아를 멀어지게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지훈의 단짝 친구를 자처하고 있는 자신이라면 두 사람 사이에서 이간질을 하는 방법으로 틈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작정하고 노력한다면 분명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지훈, 마지막에 수아를 차지하는 이는 내가 될 것이다.'
###
채취한 나물과 관련한 조별 발표가 끝난 이후에는 조리학과답게 나물을 이용한 조촐한 요리 대회가 벌어졌다.
요리대회는 나물을 채취할 때와 마찬가지로 조별로 이뤄지는데, 그 심사는 MT에 동행한 두 분 교수님의 몫이었다.
"애들아, 우리 조는 무슨 요리를 할까?"
"동석 오빠, 산나물 비빔밥에 나물 무침을 하는 게 어때요?"
"그건 너무 뻔해서 다른 조와 겹치지 않을까?"
"어차피 나물 요리가 그런 것 아닌가요?"
"동석아, 산나물 비빔밥에 나물을 이용한 상큼한 샐러드와 더덕구이 그리고 두릅무침을 만드는 게 어떨까?"
"드레싱 소스를 만들 만한 것이 없잖아?"
"드레싱 소스가 왜 없어? 우리가 나물을 채취할 때 심심삼아 따놓은 열매들을 갈아서 사용하면 되지."
"오! 좋은데요. 동석 오빠, 그렇게 해요."
춘계 MT는 1학년부터 4학년까지 모두 참석하는 조리학과 최고의 행사이다.
특이한 것은 다른 학과의 MT가 취직 준비로 인해서 고학년의 참여가 저조한 것에 반해서 조리학과는 4학년까지 거의 모든 학생들이 참석한다.
이는 조리학과의 특성상 이론보다는 실기가 중요하고 취업률이 거의 100%에 이르다보니 그렇게 되었다.
아무튼 4학년까지 전체가 행사에 참여하다보니 조리학과는 선후배간의 위계질서가 잘 잡혀 있을 뿐만 아니라, 후배들은 선배들의 솜씨를 지켜보면서 마음을 다잡는 계기가 되었다.
"좋아. 더덕구이는 내가 할게."
"그러면 나물 샐러드와 산나물 비빔밥은 내가 만들게."
"그러면 제가 두릅무침을 요리할게요."
지훈과 수아가 속한 12조에는 지훈과 수아 외에도 조장을 맡은 동석이까지 4학년이 모두 3명이었고, 그들 세 명이 후배들을 이끌었다.
잠시 후, 조원들을 3개 파트로 나눈 12조는 저마다 맡은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지훈 선배님, 버찌와 다래는 우리가 갈게요."
"그래줄래."
"드레싱 소스로 만들 거니까 잘게 갈면 되죠?"
"예쁘게 플레이팅을 하려면 크게 썰어서 꾸미는 것도 필요할 것 같으니까 반 주먹씩은 남겨둬."
"네."
후배들과 역할 분담을 한 지훈은 빠른 손놀림으로 쌀을 씻어서 휴대용 가스레인지에 솥을 올리기 무섭게 이번에는 나물을 데칠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선배님, 밥솥을 올린 가스레인지의 화력이 너무 약한 것 같은데요?"
"꺼내서 몇 번 흔들면 돼."
시간제한이 있는 것은 오늘의 요리대회도 마찬가지였다.
그 때문에 마음이 급해진 지훈은 휴대용 부탄가스를 꺼내서 사정없이 흔든 후에 다시 작동시켰다.
금방이라도 꺼질 것처럼 시원찮던 불은 활활 타오르는가 싶더니 얼마 후에 다시금 약해졌다.
"선배님, 불길이 다시 약해졌어요."
"아무래도 가스레인지에 문제가 있나 봐요."
"이러면 안 되는데."
밥을 맛있게 하기 위해서는 물 조절과 불 조절이 관건이었고 그 이후에는 뜸들이기를 잘해야 했는데 지금 같은 화력으로는 밥이 설익을 수 있었다.
다시금 가스를 꺼내서 흔든 지훈은 계속해서 가스레인지를 지켜보면서 지금 같은 화력이 한동안 이어지기를 간절히 기원했다.
배꼽 부근이 간지러운가 싶더니 뭔가가 몸 안에서 빠져나가는 기분이 든 것은 그때였다.
동시에 가스레인지의 새파란 불꽃이 몇 배나 증가하면서 절대로 휴대용 가스레인지라고 볼 수 없을 정도의 화력이 피어났다.
"오~! 선배님, 어떻게 한 거예요?"
"그러게. 가스레인지에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인지 불길이 절로 세졌어."
"제발 지금 같은 화력이 한동안 유지되었으면 좋겠네요."
"누구 한 명이 계속 불길을 지켜봐줄래?"
"제가 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