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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를 일으켰던 가스레인지가 아주 만족스러울 정도의 화력을 계속 유지하자 지훈은 물에 데칠 나물을 다듬기 시작했다.
"선배님, 나물은 전부 물에 데치나요?"
"아니, 비빔밥에 들어갈 나물만 살짝 데치고 샐러드를 만들 나물은 씻기만 할 거야."
"데치는 것은 제가 할게요."
"할 수 있겠어?"
"집이 시골이라 종종 해봤어요."
"그러면 잘하겠네, 부탁한다."
물에 데칠 나물을 후배에게 넘긴 지훈은 샐러드용 나물을 씻기 위해서 수돗가로 이동했다.
'나물이 수돗물에 직접적으로 닿게 되면 수압 때문에 상할 수 있겠지.'
수압 때문에 나물이 상할 것을 우려한 지훈은 가져간 통에 물을 받고는 나물을 그 안에 쏟아 부은 후에 조심스러운 손길로 정성스럽게 씻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번에도 배꼽 부근이 간질거리며 뭔가가 치솟더니 손끝을 따라서 그 뭔가가 분출되었다.
'이거 뭐야, 왜 그래?'
처음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이상한 경험을 한 지훈은 나물이 들어있는 통을 살폈다.
하지만 딱히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기분 탓인가? 이야, 산에서 막 채취한 자연산이라 그런지 때깔이 너무 좋다.'
흙과 먼지가 씻겨나간 나물은 싱싱하기도 하지만 윤기가 감도는 것이 보기가 너무 좋아서 절로 흐뭇해졌다.
잠시 후, 조원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온 지훈은 나물의 물기를 뺀 후에 먹기 좋은 크기로 썰기 시작했다.
'어! 뭐지?'
아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배꼽 부근에서 솟아난 뭔가가 손끝을 타고 식칼로 옮겨가는 것을 느낀 지훈은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서 칼질을 멈췄다.
"선배님, 왜 그래요?"
"자꾸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
"어떤 이상한 기분이요?"
"그걸 뭐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내 몸 안에서 뭔가가 자꾸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어."
"몸에서 뭔가가 빠져 나간다고요, 뭐가요?"
"글쎄, 나도 잘 모르겠어."
"에이, 그런 게 어디 있어요?"
"막상 말을 꺼내놓고 나니까 내가 생각해도 우습다. 아마, 기분 탓 일거야."
"혹시 사고의 후유증 때문에 그러는 것 아닐까요?"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
"그러면 다행이고요. 엇! 이것들은 선배님이 썰어놓은 거죠?"
"응. 왜?"
"와~! 마치 원래부터 이렇게 생긴 것처럼 왜 이렇게 자연스러워요? 지금이라도 이어놓으면 다시 달라붙을 것 같은데요."
"아무렴 그럴까?"
"와~! 역시 우리 과 최고의 기대주답게 선배님의 칼질은 예술의 경지에 접어들었나 봐요."
"인석아, 교수님이 들으시면 어쩌려고 그런 어이없는 소리를 해?"
"아니에요. 다른 것은 몰라도 칼 질 만큼은 선배님이 교수님들의 경지를 뛰어넘은 것 같은데요."
"떽! 그런 소리 함부로 하는 것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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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의 시간이 흐르면서 심사의 시간이 다가왔다.
심사에 나선 두 분 교수님은 12개 조가 내놓은 음식들을 살피고 맛보면서 점수를 매기기 시작했고, 마지막으로 지훈의 조가 내놓은 음식을 살피기 시작했다.
"플레이팅은 누가 했지?"
"제가 했습니다."
"아주 깔끔하고 완벽해. 이 정도라면 플레이팅 만큼은 최고급 호텔의 요리라고 해도 무방하겠어."
"감사합니다."
"다들 와서 12조의 플레이팅을 살펴보고 배우도록 해."
음식을 그릇에 담는 것을 플레이팅이라고 하는데 먹는 즐거움만이 아니라 보는 즐거움까지 안겨 주는 것이야말로 플레이팅의 핵심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12조의 플레이팅은 마치 예술작품을 보는 것처럼 너무도 아름다운 것이 차마 먹기가 아까울 정도였다.
'한국 최고의 푸드 스타일리스트인데 이 정도의 플레이팅은 기본으로 해야지요.'
과거의 지훈은 요리 실력은 뛰어나지만 플레이팅을 잘 하는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지훈은 20년 전의 그가 아니라 한국 최고의 푸드 스타일리스트와 푸드 테라피스트의 경험을 갖고 있었다.
그러니 플레이팅이 남다를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했다.
다만 지훈은 지금도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헷갈렸다.
'내일이 되면 알 수 있겠지.'
아무리 실감나는 꿈이라고 해도 하룻밤이 지났음에도 같은 꿈이 계속 이어질 수가 없었다.
그러니 내일도 지금 같은 상황이 이어진다면 그때는 이 상황을 현실로 받아들여야 했다.
사실 지훈은 어느 순간부터 자신이 경험하고 있는 것이 모두 현실이며, 자신이 과거로 회귀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계속되는 이상 현상은 무엇 때문일까? 혹시 대자연의 정화가 집약된 음양오행의 기운을 물려받은 것이 꿈이 아니고 사실일까?'
암벽 사이의 틈에서 발견한 오색 구슬을 매만지다가 의식을 잃었던 지훈은 꿈속에서 산신령처럼 생긴 노인을 만났다.
그리고 그로부터 자신이 만졌던 구슬이 대자연의 정화가 집약된 음양오행의 집결체라는 얘기를 들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고 여겼기에, 꿈속에서 또 다른 꿈을 꿨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요리에 집중하거나 정성을 쏟을 때면 배꼽 부근에서 뭔가가 샘솟아서 그것들이 몸 밖으로 분출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분출된 기운은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을 계속 연출했다.
"하~아! 이 교수님, 샐러드를 드셔보시죠. 상큼한 것이 식욕을 절로 돋게 해서 아주 좋은데요."
"김 교수님이 그런 행복한 표정을 짓다니 기대가 되는데요."
지훈이 자신의 몸속에서 벌어졌던 일을 고민하고 있을 때 샐러드를 맛본 프랑스 유학파 출신의 김현 교수가 탄성을 터트리며, 지훈의 플레이팅을 칭찬한 이국흔 교수에게 시식을 권했다.
"어떠세요?"
"오~호! 산나물에서 어떻게 이런 맛이 날 수 있죠? 드레싱 소스도 훌륭하지만 산나물 특유의 아삭함과 감칠맛이 그대로 살아있는 것이 씹을수록 고소한데요."
"그렇죠?"
"샐러드는 누가 했지?"
"제가 했습니다."
"드레싱은 과일을 썼나?"
"나물을 채취할 때 구한 버찌와 다래를 갈아서 사용했습니다."
"나물의 텁텁함을 제거하고 단 맛을 내려고 그랬나?"
"그 점도 있습니다만 버찌의 살짝 시큼한 맛이 식욕을 증진시키고 다래의 풍부한 무기질과 비타민이 피로회복과 기분전환에 좋은 효과가 있어서 그랬습니다."
"이지훈, 그런 것까지 고려하다니 대단해."
"과찬이십니다."
"아무튼 종일 산을 탄 우리에게 있어서 이 샐러드야 말로 최고의 전채요리겠어. 아주 훌륭해!"
"감사합니다."
"아직 심사가 끝난 것은 아니니 너무 좋아하지 말게."
플레이팅에 이어서 나물 샐러드를 극찬한 교수들은 산나물 비빔밥과 더덕구이 그리고 두릅무침까지 맛보았다.
참고로 그것들의 플레이팅도 지훈이 했는데 교수들은 이번에도 플레이팅을 칭찬했다.
"더덕 특유의 향이 살아 있으면서 아삭한 식감까지 있는 것이 아주 잘했어."
"교수님, 더덕구이는 제가 했습니다."
"동석아, 너는 구이요리는 정말 잘하는 것 같구나."
"감사합니다. 교수님."
"두릅 무침은 누가 했지?"
"제가 했습니다."
"된장이 잘 버무려져서 너무 구수했어. 게다가 양념이 너무 과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연하지도 않아서 두릅 특유의 맛을 잘 살린 점도 좋았어."
"감사합니다."
"이 교수님, 어떠십니까?"
"나물 샐러드와 두릅 무침 그리고 산채 비빔밥과 더덕구이까지 모든 것이 완벽한 것 같은데요."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게다가 각각의 음식들이 서로 잘 어울리는 것이 메뉴 선택의 조화도 좋은 것 같습니다."
"굳이 기다릴 것 없이 이 자리에서 발표하죠."
"좋습니다. 오늘 요리대회의 우승 팀은 12조다. 다들 와서 시식을 해보고 직접 느껴보도록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