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 회: 1-7( 3. 얼레, 저것 봐라!) -->
다른 조를 심사할 때는 칭찬만 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점을 지적했던 교수들은 아주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우승 발표를 했다.
조리학과 내의 작은 행사이지만 우승을 한 12조는 함성을 지르며 우승의 기쁨을 마음껏 누렸고 다른 이들은 박수를 치며 그들을 축하했다.
한편 수아를 비롯해서 다른 조원들과 기쁨을 나누던 지훈은 남몰래 혼자만의 생각에 잠겼다.
'두릅 무침도 그렇고 더덕구이도 내가 플레이팅을 한 후에 맛이 더 좋아졌어.'
요리 후에 플레이팅을 전담했던 지훈은 그 과정에서도 몸 안에서 뭔가가 빠져 나가는 것을 느꼈다.
더 정확히 말하면 플레이팅 전에 시식을 했을 때 뭔가가 부족한 것 같아서 살짝 아쉬워했었는데 플레이팅을 하는 과정에서 정체불명의 기운이 몸 안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 이후에 다시 맛을 봤을 때는 처음과는 달리 맛이 더 좋아진 것을 확실하게 느꼈다.
'정말로 내 몸 안에 음양오행의 기운이 들어온 것일까?'
계속되는 이상 현상을 납득할 수 있는 길은 자신이 음양오행의 결집체를 받아들였다고 인정하는 것이 유일했다.
그러나 음양오행의 기운과 음식 맛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었다.
'음양오행이라면 자연을 이루고 있는 모든 기운을 말하는데 그것 때문일까?'
푸드 테라피스트로 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동양의학에서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음양오행에 대해서 공부를 했었다.
사실 음양오행은 의학만이 아니라 동양 철학에서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세상을 이루고 있는 근원이었다.
그러니 세상의 근원을 이루는 기운이 요리에 스며든다면 식재료부터 시작해서 전체적인 맛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 같았다.
'만약 이게 꿈이 아니라 현실이라면 어떤 경우에 그런 현상이 벌어지는지, 그리고 그로 인해서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세밀히 확인해봐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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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얼레, 저것 봐라!
최고의 플레이팅이라는 교수들의 극찬에 요리가 담겨진 모습을 휴대폰 카메라로 촬영했던 다른 조원들은 시식을 하기 위해서 몰려왔다.
"어머! 무슨 샐러드가 이렇게 맛있지?"
"맛도 좋지만 먹으니까 절로 기분까지 좋아지는데."
"그러게. 시식을 해보니까 아까 김 교수님이 무척 행복한 표정을 지었던 이유를 알겠어."
"아! 상큼하고 달콤하면서도 식감까지 좋은 것이 구름 위를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야."
"이런 환상의 맛을 내다니 역시 지훈 선배야."
샐러드를 시식한 여학생들이 두 눈을 빛내며 감탄을 하는 사이 두릅 무침과 더덕구이를 맛본 남학생들도 연신 감탄사를 토해냈다.
"오! 이건 마치 고기를 씹는 것처럼 식감이 쫄깃쫄깃한데."
"식감도 식감이지만 몸 안에서 활력이 솟구치는 것 같지 않아?"
"그러게, 마치 엄청난 보양식을 먹은 기분이야."
"두릅과 더덕이 남자에게 그렇게 좋다던데 그래서 그런 것 아닐까?"
"아무리 그래도 겨우 맛만 본 것으로 그런 효과가 나겠어?"
"그렇기는 하지만 그런 기분이 드는 것은 사실인걸."
"그나저나 지훈 선배의 실력은 예전부터 알아줬지만 동석 선배와 수아까지 이 정도의 실력이라니 놀라운 걸."
"지훈 선배가 옆에서 거들어줬겠지."
"그랬겠지?"
"당연하지."
"아! 부럽다."
지훈의 추측대로 그의 몸 안에는 대자연의 정화가 집약된 음양오행의 기운이 깃들어 있었다.
아울러 요리나 플레이팅을 하는 과정에서 분출된 음양오행의 기운은 식재료가 담고 있는 본래의 기운과 성분을 극대화시키고 맛을 조화롭게 바꾸었다.
쉽게 말해서 샐러드를 시식한 여학생들이 행복해하며 기분이 좋아진 점이나 더덕이나 두릅을 먹은 남학생들의 몸에 활력이 솟구친 것은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이들은 자신들의 몸에 일어난 변화를 단지 기분 탓으로 여겼다.
"참! 아까 플레이팅 죽이지 않았냐?"
"말도 마라. 어찌나 아름답던지 나도 모르게 휴대폰으로 찍고 있더라."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어."
"지훈 선배, 요리 실력만이 아니라 플레이팅까지 그토록 잘하는 것이 당장 최고급 호텔의 셰프를 해도 되겠더라."
"아무튼 인물은 인물이야."
교수들이 극찬을 한 점도 있지만 실제로 시식을 해본 다른 이들은 요리 대회의 결과에 깨끗이 승복했다.
이는 남모르게 못마땅한 표정을 하고 있는 박현식도 마찬가지였다.
'빌어먹을 놈, 저놈만 없었더라면 내가 1등을 했을 텐데.'
먼 미래의 일이지만 박현식은 대한민국 최고의 셰프가 된다.
그건 그가 지훈 못지않은 실력을 겸비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미래를 모르는 박현식은 지훈이 사랑만이 아니라 요리에서도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것 같아서 화가 났다.
막말로 지훈만 없다면 자신이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 텐데, 그에게 모든 것을 뺐기는 것 같아서 견딜 수가 없었다.
'제기랄, 저 녀석은 분명 레시피를 가지고 있었을 거야.'
머리에서는 지훈의 요리가 자신의 요리보다 뛰어나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있지만 미각은 정직해서 그럴수록 더욱 비참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가 문득 그가 레시피 노트를 꾸준히 작성하고 있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맞아! 저놈은 산나물을 이용한 요리대회가 우리 과의 전통인 만큼 어디에선가 특별한 레시피를 미리 준비해왔을 거야.'
지훈은 재능도 뛰어나지만 엄청난 노력파에 학구파였다.
그래서 요리 실습을 하다가도 뭔가를 깨닫거나 알아내는 것이 있으면 그것들을 두툼한 수첩에 꼼꼼하게 기재했다.
아울러 그의 단짝 친구 행세를 했던 박현식은 지훈이 가방 안에 그 노트를 항상 갖고 다닌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기회를 봐서 녀석의 레시피 노트를 훔쳐야겠어.'
원래의 인생에서 지훈의 레시피 노트가 사라진 것도 이날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암벽에서 추락한 지훈이 구급차에 실려서 수아와 함께 병원으로 후송되었을 때, 그의 짐을 챙긴 것이 박현식이었다.
즉, 지훈의 레시피 노트를 훔친 것은 수아가 아니라 박현식이었는데 그는 의도적으로 죽은 수아에게 그 일을 전가시켜서 죽은 후에도 그녀를 욕보였다.
그런데 시간이 비틀렸음에도 그때의 일은 변함없이 이루어질 것 같았다.
'아! 레시피 노트를 훔친 후에 그것들을 휴대폰 카메라로 찍는 거야. 그리고 노트는 다시 수아의 가방에 몰래 집어넣고는 내가 나서서 둘 사이를 이간질하는 거야.'
시간이 비틀리면서 되돌아 와져서인지 박현식은 원래와는 다른 그러나 너무도 음험한 수작을 계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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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대회가 끝난 이후에는 바로 저녁시간이 이어져서 각조는 자신들이 만든 음식으로 저녁을 해결했다.
그런데 교수들부터 시작해서 다른 모두 조에서 지훈의 조가 만든 요리들을 얻어갔다.
하지만 120명이 넘는 과의 학생들이 모두 먹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일까?
저녁 시간이 끝난 이후에도 많은 이들이 지훈의 조로 몰려와서 협박 아닌 협박을 해댔다.
"지훈 선배님, 샐러드를 다시 만들어주면 안 될까요?"
"선배님, 소원이에요. 샐러드를 다시 만들어 주세요."
"오빠, 부탁해요. 네?"
"수아야, 두릅을 더 무쳐주면 안 되겠냐?"
"수아야, 그것 아주 죽이던데 조금만 더 만들어주라."
"동석아, 더덕이 더 있는 것 같은데 그것도 마저 구어 먹는 게 어떠냐? 부족하면 우리 조가 따온 더덕도 줄게."
워낙 풍미가 일품이어서 그 맛을 잊지 못한 다른 이의 요구에 먼저 반응을 한 것은 같은 조원들이었다.
"선배님, 버찌랑 다래가 남았는데 준비할까요?"
"선배님, 나물도 제법 남았는데 다시 하죠."
"그럴까?"
"네~!"
"선배님, 저희도 말은 안 했지만 선배님이 요리한 샐러드를 더 먹고 싶었어요."
"맞아요. 다른 조원들이 와서 다 먹어버린 통에 우리는 제대로 먹지도 못 했어요."
"선배님, 이번에는 우리 조가 먹을 것은 따로 남겨두죠."
자신에게 일어나는 특이한 현상을 세밀하게 확인하기 위해서는 다시 요리를 하는 것이 최고의 방법이었기에 지훈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행이 조원들도 미련이 남은 것은 다른 이와 마찬가지였기에 다들 기분 좋은 표정으로 요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한편 지훈의 조가 다시 요리를 한다는 말을 들은 다른 조원들은 자신들이 채취한 나물들을 갖고 와서 떠 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