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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세!"
"그 걸로는 안 되고 전화번호 알려주면 믿어줄게."
그날, 지훈과 리아는 서로의 번호를 교환한 채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지훈은 자신과 리아의 인연이 계속 이어지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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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 마스터의 결승전이 열리고 있을 무렵 TJ병원의 본관 26층에 자리한 세미나실에는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얼마 후, 병원장을 비롯해서 TJ병원의 핵심 의료진이 모두 착석하자 잔뜩 상기된 표정의 유영용이 앞으로 나섰다.
"유 선생, 실험의 결과가 나왔는가?"
"그렇습니다, 원장님. 아주 놀랄만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어서 설명을 해보게."
"먼저 제가 준비한 자료부터 보십시오."
세미나실에 모인 의료진들에게 자료를 나눠준 유영용은 빔 프로젝터를 작동하고는 프레젠테이션에 들어갔다.
각종 도표와 그래프가 잔뜩 그려진 자료를 살피던 의료진들은 얼마 안가서 약속이나 한 것처럼 탄성을 터트렸다.
"비교적 경미한 증세를 갖고 2명의 심장병 환자가 완치되고 14명의 환자가 호전 증세를 보인 것인가?"
"연거푸 이런 일이 발생하다니 우리의 예상이 정확했습니다."
"대체 어떤 음식이 그런 효과를 발휘한 건가?"
"다음 장을 넘겨보십시오."
"달 마크니를 먹은 환자들만 증세가 호전되었군."
"반면 달 마크니를 먹지 않은 환자들에게는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으로 나왔군."
"유 선생, 달 마크니가 뭔가?"
"일종의 카레 요리입니다."
"카레를 먹었다고 심장병이 호전되었다니 믿을 수 없군."
"그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달 마크니에 사용된 식재료를 보면 어느 정도 납득이 갑니다.
"어떤 식재료가 들어갔기에 그런 것인가?"
"달 마크니는 커리의 주원료인 강황을 비롯해서 검은 콩과 당근 그리고 허브와 토마토에 파프리카로 만들어졌습니다."
"가만 그것들은 하나같이 심장병 치료나 예방에 좋은 성분을 갖고 있는 것들입니다."
"정확한 지적입니다."
"하지만 그런 것을 한 번 먹었다고 외과적 수술이 필요했던 심장병이 완치를 되었다니 믿을 수 없네."
"김 선생님, 우리는 두 차례에 걸쳐서 여러 환자가 완치된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즉, 이미 그 효과를 입증한 임상사례가 충분히 확보되어 있습니다."
"허~험! 그래서 어떻게 하자는 건가?"
"저는 달 마크니의 어떤 성분이 심장병 치료에 탁월한 효과를 보이는지 그 점을 면밀히 살피다가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뭔가?"
"아까 열거했던 달 마크니의 식재료들은 여러 선생님들이 아시는 것처럼 심장병 치료나 예방에 좋은 성분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되는 점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게 뭐냐고?"
"각각의 식재료들이 심장병에 좋다고는 하는데, 그 효과를 발휘하는 성분은 각각 다르다는 겁니다."
"성분이 각각 다르다니 무슨 뜻인가?"
"예를 들자면 검은콩은 엽산과 마그네슘이 심장병에 좋고 허브는 항산화물질이 심장병 완화에 효과를 보입니다. 그리고 토마토는 리코펜 성분이 심장병에 좋습니다."
"좀 더 자세히 얘기해보게?"
"저는 여러 식재료에 저마다 들어있던, 심장병 완화 효과를 갖고 있는 각기 다른 물질들이 서로 섞이면서 어떤 화학반응을 일으켰다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각 식재료에 들어있던 해당 물질을 이용하면 심장병에 좋은 치료제를 만들 수 있다는 건가?"
"그건 이미 입증된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이제는 그 배합비율을 밝히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지난번의 임상실험을 통해 어느 정도 밝혀진 것 아니겠는가?"
"맞습니다. 그래서 굳이 많은 시간은 필요치 않을 거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다만 더 높은 치료효과를 내는 배합비율을 찾아내기 위한 충분한 실험은 진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더 높은 치료효과라, 만약 찾아내기만 한다면 그야말로 대박이겠군."
"덩달아서 우리 병원의 명성도 올라가게 될 것입니다."
"유 선생, 아낌없는 지원을 해줄 것이니 당장 연구팀을 발족시키게."
"감사합니다. 원장님."
유영용을 비롯한 의료진은 확실한 임상실험 자료가 있기에 어렵지 않게 심장병 치료제를 개발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러기에 유영용을 팀장으로 한 연구팀을 발족시켰다.
하지만 달 마크니가 심장병에 좋은 효과를 보인 까닭은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아니, 그것들보다는 음양오행의 기운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는데 과연 치료제를 개발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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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같으면 수많은 사람들로 붐벼야 할 거리가 오늘은 한산하기만 했다.
대신 식당이든 또는 상점이든 TV가 켜진 곳에는 어김없이 사람들이 몰려 있었고,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키친 마스터 결승전을 시청하고 있었다.
"여보, 어떻게 됐어요?"
"이지훈 참가자가 이길 것 같아."
"그렇죠? 그럴 줄 알았어요."
"아! 우승 상금이 5억이던데 내년에는 나도 키친 마스터에 참가해볼까?"
"당신이요? 당신은 예선도 통과 못하고 떨어질 것이 확실하니까 꿈 깨요."
"여편네가 신랑이 간만에 뭔가를 해보겠다는데 시작도 하기 전에 초를 쳐?"
"저런 대회에 나간다고 아무나 순위에 들 것 같아요? 솔직히 말하면 당신 실력으로는 어림도 없어요."
"내 실력이 어때서? 당신도 잘 알겠지만 우리 가게의 메뉴는 일식과 중국식은 물론이고 양식에 한식까지 겸하고 있으니 나야말로 동서양의 모든 요리에 통달한 달인이지 않겠어?"
"3분 짜장이 중국식인 것은 알겠는데 우리 가게에 양식이 뭐가 있다고요?"
"왜 없어? 돈가스가 있잖아!"
"아저씨, 여기 단무지 좀 더 주세요!"
"아줌마, TV 채널을 돌려주시면 안 돼요."
"아줌마, 저딴 것 말고 스포츠 채널이나 틀어줘요."
키친 마스터를 시청하던 분식집 주인아저씨가 괜히 흥분하고 있을 무렵 한쪽 구석에 있던 젊은 사내가 짜증이 가득한 목소리로 주인아저씨를 불렀다.
그리고 그 직후, 모자를 깊숙이 눌러쓴 한 사내가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TV 채널 변경을 요구했고, 깍두기를 달라고 했던 젊은 사내도 냉큼 같은 요구를 했다.
하지만 주인 부부의 대답은 거절이었다.
"손님, 누가 우승했는지 그것만 보고 돌릴게요."
"요즘은 다들 이 방송을 보던데 손님들은 안 봐요?"
"저딴 프로에는 관심도 없습니다."
단무지를 더 달라고 했던 젊은 사내는 박현식이었다.
후각을 잃으면서 거의 모든 미각을 잃은 박현식은 먹는 즐거움을 잊어버린 지 오래였다.
그러다보니 시원하면서도 그나마 아삭한 식감이 느껴지는 단무지를 좋아하게 되어서 종종 분식집을 찾았다.
사실 최고의 셰프가 되겠다고 이름난 맛 집만 찾아다녔던 그의 과거를 아는 사람이라면 단무지를 깨작깨작 거리는 박현식의 지금 모습을 보면 적잖게 놀랄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박현식 바로 앞 테이블에 자리한, 모자를 푹 눌러 쓴 사내는 이재철로부터 버림을 받은 장철우였다.
둘은 다른 손님들이 들을까봐 나지막한 목소리로 계속해서 지훈을 욕하며 씨부렁거렸다.
그사이 TV에서는 키친 마스터의 최종 우승자가 가려졌다.
"니미럴, 결국 저 새끼가 됐네."
"염병할, 저 밥맛이 우승할 줄 알았어. 방송국에서 그렇게 밀어주는데 누가 우승을 못해?"
"학생, 그게 무슨 소리야?"
우승을 차지한 지훈의 얼굴이 브라운관을 가득 메운 순간 장철우와 박현식은 마치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욕설이 섞인 비난을 거의 동시에 토해냈다.
그런데 박현식의 말이 너무도 의미심장했기에 호기심이 생긴 식당 아주머니는 참지 못하고 질문을 했다.
"이번 키친 마스터는 애초부터 저놈이 우승하는 걸로 정해져 있었고 다른 참가자들은 죄다 들러리였어요."
"애초부터 우승자가 정해져 있었다면 지금까지의 방송은 전부 가짜라는 거야?"
"그런 셈이죠."
"학생이 그걸 어떻게 알아?"
"척 보면 알죠! 방송국에서 초반부터 저 사람을 노골적으로 띄웠잖아요."
"아무렴 그럴까? 그리고 세계 최고의 요리사라는 사람이 이지훈의 실력을 극찬했잖아?"
"그것도 이상해요. 세계 최고의 요리사들이 세계 대회도 아니고 고작 국내 요리 대회의 심사를 본 다는 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보나마나 방송국에서 비싼 출연료를 줘가면서 억지로 데려와서 그런 말을 하게끔 조작을 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