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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음모에 빠진 지금은 마냥 감탄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기에 자신의 무죄를 항변했다.
"우리는 마약을 어디서 구입하는지도 모르고 있고, 저자들이야 말로 거짓말로 나와 내 친구의 명예를 더럽히고 있소."
"건방진 노랑 원숭이, 주둥이 닥쳐!"
"나쁜 새끼들, 네놈들이 프랑스 여자를 강간하기 위해서 그런 짓을 벌였음을 우리가 모를 것 같아."
"오해에요. 지훈은 나와 계속 같이 있었기에 그런 짓을 할 틈이 없었어요."
"여보시오. 난 이탈리아 사람인데 그따위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하다니 당장 사과하시오."
"이봐요. 경찰이라면 어떤 것이 진실인지 그것부터 조사를 해야 하는 것 아니오? 저자들은 아까 이쪽의 여자들에게 수작을 걸었던 자들이오. 내 생각에는 저자들이 허위 신고를 한 것 같소."
"외국인은 빠져!"
"당신들이야 말로 사과를 하시오. 지훈은 4달 전 지하철에서 발생한 폭탄 테러에서 많은 프랑스인을 구한 영웅이요."
"그렇소. 내 친구는 당신네 정부로부터 훈장까지 받은 영웅인데 그런 짓을 할 리가 없소."
지훈과 동석이 난처한 상황에 몰리자 쥬디를 비롯해서 마크와 쥬세페가 나서서 적극 변호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지훈이 지하철 참사의 영웅임이 알려졌는데 클럽의 조명이 켜지면서 주위가 환해진 것은 그때였다.
"어! 저 사람은?"
"한국인 셰프가 맞잖아."
"맞네. 그때 그 친구야."
"이봐, 일을 어떡하지?"
"어떡하기는, 신고가 들어왔으니까 조사를 해야지."
"그... 그래야겠지."
"일단 경찰서로 데려가서 조사를 해보자고."
흉악한 범죄자라고 여겼던 자가 프랑스 최고의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를 수여받은 지훈임을 알게 되자 경찰들도 당황하는 눈치였다.
이는 지루와 포그바도 마찬가지였는데 지루는 그 와중에도 자신이 범행 현장을 똑똑히 목격했다면서 재차 소리를 질렀다.
한편 주말을 맞이해서 클럽을 찾았던 손님들은 호기심 가득한 시선으로 그 광경을 보다가 지훈을 알아봤다.
"저 사람은 지하철 테러에서 많은 사람을 구한 한국인이잖아."
"말 들어보니까 여자들 몰래 술에 마약을 탄 것 같은데."
"저런 나쁜 놈을 봤나."
"아냐, 이상해."
"뭐가?"
"마약을 먹은 사람치고는 너무 멀쩡해 보이잖아."
"옆에 있는 여자도 저 친구를 두둔하는 것 같은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어쨌든 재미있는데."
"난 이 사실을 SNS에 올려야겠어."
"큭큭, 나도 올려야겠다."
"아직 어떻게 된 일인지도 모르잖아."
"무척 흥미로운 일인데 무슨 상관이야?"
지켜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파리 시민의 영웅으로 떠오른 지훈이가 추악한 범죄에 연루되었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 것만으로도 무척 흥미로웠다.
그래서 경찰들에게 둘러싸인 지훈과 동석의 모습을 휴대폰으로 촬영하기 시작했고, 이는 전염병처럼 퍼져갔다.
한편 경찰들은 지훈과 동석 그리고 다른 일행들의 거듭된 부정에도 불구하고 그 둘의 손목에 수갑을 채운 후에 연행을 했다.
"경찰 아저씨, 수고 하십시오."
"당신들도 경찰서로 함께 가야겠소."
"증언 때문에 그런가요?"
"그렇소."
"우리의 증언이 필요하면 백번이라도 하지요. 그런데 마약이 탄 술을 마신 이상 정밀검사를 하면 그 사실을 명확하게 밝힐 수 있겠지요?"
"물론이요."
"혹시 조금밖에 안 마셨다고 해도 검사를 하면 나오나요?"
"그렇게 될 것이오. 그리고 여기 있는 술잔과 술도 증거물로 가져가는 만큼 마약을 탔다면 반드시 드러나게 될 것이오."
"오! 그렇습니까? 잘 되었네요."
누가 뭐라고 해도 마약을 탄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니 검사를 하면 마약 성분이 검출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경찰이 자신들의 말을 믿어줄 것이라고 확신한 지루와 포그바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경찰들의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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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대의 모니터가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이곳은 렉시 클럽의 보안실이었다.
지금 이곳에는 경찰들의 갑작스런 출동으로 인해서 여려 명의 클럽 경비들이 두 명의 상급자에게 깨지고 있었다.
"경찰들이 왜 온 거야?"
"손님 중에 마약을 갖고 있는 아시안이 있었는데, 그놈들이 그걸 여자들에게 몰래 집어넣었다고 합니다."
"그걸 경찰들이 어떻게 알고 여기까지 와?"
"때마침 그 장면을 본 목격자가 경찰에 신고했다고 합니다."
"젠장, 잘못하다가는 우리까지 엮이게 생겼잖아?"
"이봐, 그래서 내가 조금이라도 낌새가 이상하면 소지품 검사를 하라고 했잖아?"
"그자들은 별 문제가 없어 보였습니다."
"그런 놈들이 마약을 갖고 와서 이런 일을 벌여. 대체 어떤 놈들이 그런 짓을 한 거야?"
"17번 모니터를 보시면 됩니다."
"메인 화면으로 확대해봐."
"이봐, 빨리 확대해."
"어! 저 친구는? 올리비에, 누군지 알겠어?"
"이런! 지훈이잖아?"
"왜들 그러십니까?"
"에릭, 어떻게 생각해?"
"지훈이 마약을 갖고 있었다고, 말도 안 돼."
"나도 마찬가지야. 추측이지만 어떤 망할 놈이 지훈에게 그런 누명을 씌운 게 틀림없어."
"대체 어떤 양아치 새끼가 그따위 거짓 신고를 한 거야?"
"맞아. 이건 비열한 음모야!"
여태껏 클럽의 경비들을 사정없이 나무라했던 두 명의 상급자들은 지훈의 얼굴이 대형 화면에 나온 순간 소스라치게 놀라더니 신고자를 향해서 욕설을 퍼부었다.
예상과는 너무도 다른 상황 전개에 경비들이 황당해 하는 순간 체격이 우람한데다가 머리를 빡빡 밀어서 마치 이종격투기 선수를 연상시키는 올리비에는 신고자가 누구인지 당장 알아보라고 소리를 질렀다.
또 에릭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17번 모니터와 연동된 CCTV를 빠르게 되돌리기 시작했다.
"에릭 부 팀장님, 대체 무슨 일입니까? 혹시 저 아시안을 알고 계시는 것입니까?"
"자네들은 저 친구가 누구인지 모르겠나?"
"잘 모르겠는데요."
"몇 개월 전 지하철에서 벌어진 폭탄 테러 때 나와 올리비에를 구해준 영웅이 바로 저 친구야. 생각 안나?"
"아! 미스터 리?"
"오! 그 말을 듣고 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이제 알겠어? 그런데 그런 친구가 마약을 했다고? 어림도 없는 소리, 하지 말라고 해!"
"위험을 감수하며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한 영웅이 음흉한 목적으로 여자들에게 몰래 마약을 먹였다고? 절대 그럴 리 없어."
놀랍게도 렉시 클럽의 보안 팀장과 부 팀장은 지훈과 여러모로 인연이 깊은 올리비에와 에릭이었다.
둘은 지훈이 음모에 빠졌다고 판단하고 보안요원들에게 당시의 정황을 비롯해서 신고자에 대해서 알아보게 했다.
아울러 자신들은 지훈의 테이블이 촬영된 CCTV 화면을 유심히 살피기 시작했다.
한편 수갑을 찬 채 경찰에 끌려가는 지훈의 모습을 촬영한 많은 이들은 그 장면을 자신의 SNS에 올렸고, 그것들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그리고 그 와중에 한국에도 이 사실이 알려졌고 각 방송국들은 앞 다퉈 이 사실을 보도했다.
"오! 이것 봐라."
"이놈들, 제대로 걸렸구나!"
아직 새벽인 프랑스와는 달리 한국은 오전이었다.
그러다 보니 이 소식은 순식간에 널리 퍼졌고 각종 매체를 통해서 뉴스를 접한 많은 이들은 크게 분노해서 엄청난 비난을 퍼붓기 시작했다.
덕분에 지훈은 영웅에서 추악한 범죄자이자 나라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한 파렴치범으로 전락했는데, 이 상황을 무척 반기는 이가 두 명 있었으니 박현식과 장철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