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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무를 맞아 어머니를 찾아간 강민구가 자리를 비운 오늘도, 가온누리는 밀려드는 손님들로 정신없는 하루를 보냈다.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가 그렇게 저물고 있을 무렵 박현식은 예은과 데이트를 즐기며 묘한 우월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박현식은 흐뭇한 표정으로 그녀가 갖고 싶어 하는 신상 가방과 구두를 사주고 있었다.
비슷한 시각, 강민구는 요양병원의 병실에서 어머니에게 음식을 떠먹이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엄마, 더 드실래요?"
"더 먹고 싶은데 배가 불러서 그만 먹어야겠다."
"오! 우리 엄마, 오늘은 많이 드셨네."
"우리 아들이 떠주니까 쑥쑥 들어가는 것 같다."
"엄마, 다음번 휴무 때도 올게."
"바쁘면 안 와도 돼. 그런데 이제는 서울로 가봐야지?"
"아직까지는 퇴근시간이라 차가 많이 막히니까 조금 있다 갈 생각이에요."
"내일 일 하려면 조금이라도 빨리 가."
"여기서 가게까지는 1시간도 안 걸려."
"그래도 늦게 가면 피곤할 것 아냐?"
"엄마랑 같이 있으면 피곤이 다 사라지니까 괜찮아."
"그래서 언제 가려고?"
"조금만 더 있다가 갈게. 엄마는 내가 간만에 왔는데, 왜 그렇게 날 못 보내서 안달을 해?"
"네가 피곤할까봐 그렇지."
"하나도 안 피곤하니까 걱정하지 마."
"그래도 곧 나가봐. 그리고 가게로 돌아가거든 사장님께 음식 잘 먹었다고 꼭 감사의 말을 전해드려."
"그럴 거야."
"그나저나 서울에서 소문이 자자한 식당이라 그런지 맛은 기가 막히게 좋더구나. 아까 음식을 얻어간 아줌마들도 다들 맛있다고 아우성이야."
"엄마는 어떤 음식이 제일 맛있었는데? 나중에 올 때 그건 꼭 해가지고 올 테니까 말해봐."
"여기까지 오는 것도 힘들 텐데 그러지 마라."
"괜찮으니까 말해 봐."
"다 맛있더라."
"그래도 그중에서 제일 맛있는 게 뭐였는데?"
"다 맛있었다니까! 그런데 간만에 배불리 먹어서 그런지 몸에 힘이 나는 것 같아, 아주 좋구나."
"그것 봐? 그러니 식사만큼은 평소에도 꼭 챙겨."
"예전에는 입맛이 없어서 통 못 먹었는데 지금 같으면 앞으로는 잘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강민구가 싸온 여러 음식에는 뇌졸중 치료에 좋은 들기름과 콩을 비롯해서 다시마와 표고버섯이 많이 들어가 있었고 곱게 간 사과도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지훈의 음양오행기가 듬뿍 들어가 있어서 어머니의 병을 치료하고 있었다.
덕분에 강민구의 어머니는 평소와는 달리 전신에서 활력이 넘쳐나고 있었는데 어머니는 물론이고 강민구도 그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현아 엄마, 연속극 할 시간이 되었는데 TV 채널을 돌려봐."
"여기가 거기야."
"거기가 거기라고, 그런데 왜 연속극은 안 해?"
"뉴스가 끝나야 하지."
강민구의 어머니가 입원한 병실은 3인실로, 비슷한 또래의 나이 든 아주머니들이 두 분 입원해 있었다.
그리고 그녀들은 여느 아주머니와 마찬가지로 연속극에 푹 빠져서 살았다.
"현아 엄마, 저 사람은 누구인데 군인들이 나와 있지?"
"미국 대통령이라잖아."
"미국 대통령이 왜 우리나라 TV에 나와?"
"아따 무식하기는, 오늘 우리나라를 방한해서 그렇게 된 것 아녀?"
"그 옆의 여자는 누구여?"
"미국 대통령 부인이지, 누구긴 누구여?"
"저 여자는 남편 잘 만나서 세상 곳곳을 돌아다니겠네."
"그러게, 자고로 여자는 신랑을 잘 만나야 해."
뉴스에서는 미국 대통령의 방한 소식과 함께 그의 일정을 소개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화면이 바뀌면서 화려한 샹들리에가 달린 청와대 영빈관의 모습도 이어서 나오고 있었다.
그사이 뉴스 화면 밑으로는 방송 프로 변경을 알리는 자막이 흐르고 있었다.
"어! 이러면 안 되는데."
"현아 엄마, 왜 그래?"
"미국 대통령이 방한해서 오늘은 특별 대담을 방송한다면서 연속극은 방송을 안 한다고 하잖아."
"미국 대통령이 온 것은 온 것이고 날마다 하는 연속극은 무조건 해줘야지."
"내말이!"
"아이참! 미국 대통령은 올 거면 아침 일찍 올 것이지 하필이면 다저녁때에 와서 연속극을 못 보게 해. 난, 그것 보는 재미로 사는 사람인데."
삶의 빛이자 활력소였던 연속극을 못 보게 된 아주머니들이 투덜거리며 리모컨을 조작해서 채널을 돌리는 동안 강민구의 어머니는 재차 재촉을 했다.
"민구야, 늦기 전에 어서 가봐."
"조금만 더 있다가 갈게요."
"어! 재방송 한다."
"현아 엄마, 그거라도 보게. 그대로 놔둬."
어머니의 재촉에도 병실에 남은 강민구는 자신의 어머니가 TV화면에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엄마도 저 연속극 봐?"
"심심할 때 한 번씩 봐."
"보기 편하게 침대를 올려줄까?"
"됐어. 의사 선생님도 자꾸 움직이는 게 좋다고 했는데 내가 일어나서 볼게."
"엄마 혼자 일어나려면 힘들잖아?"
"늘 하는 일인데."
휙~!
몸을 일으킬 때마다 힘들어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강민구는 어머니는 부축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의 어머니는 강민구가 어찌 하기도 전에 가볍게 몸을 일으켜 세웠다.
"어! 엄마?"
"얼레?"
이전과는 달리 혼자의 힘으로 몸을 가볍게 일으킨 강민구의 어머니는 자신도 놀랐는지 휘둥그레진 눈으로 아들을 바라봤다.
"엄마, 여기 있더니 많이 좋아진 것 같네?"
"아침까지는 이러지 않았는데? 지금은 유난히 몸이 가볍더니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간다. 한번 걸어볼까?"
"걸을 수 있겠어."
"지금 같으면 누가 부축해주면 걸을 수 있을 것 같아."
"엄마, 말 나온 김에 걸어보자."
아침까지 힘겹게 일어서는 것이 고작이었던 강민구의 어머니는 아들의 부축을 받으며 어렵게나마 걸음을 옮겼다.
중간에 중심을 잃어서 몸이 휘청거리고 어린 아이보다 느리기는 했지만 병실을 한 바퀴 도는데 성공한 그녀의 두 눈에는 어느새 뜨거운 눈물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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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그럴 리가 없는데 이상하네?
비록 아들의 부축을 받기는 했지만 마침내 걸음을 옮길 수 있게 된 강민구의 어머니가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있을 무렵 지훈은 두 명의 사내와 마주하고 있었다.
양복을 입은 거만한 표정의 중년 사내는 청와대의 고위 인사였고 그 옆에서 반가운 표정으로 지훈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내는 벽안의 외국인이었다.
"미스터 리, 다시 보게 되어 반갑습니다."
"저 역시 제임슨씨를 한국에서 보게 되다니 반갑기도 하지만 기쁜데요."
"하하하~! 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제임슨씨, 대통령 각하와 영부인도 잘 계시죠?"
"물론입니다. 특히 영부인께서는 미스터 리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며칠 전부터 무척 즐거워하셨습니다."
청와대 고위 인사와 함께 온 외국인은 오바나 대통령과 함께 방한을 한 그의 수행원이었다.
아울러 그는 오바나 대통령과 영부인이 내일 낮에 이곳에서 식사를 하고 싶다는 뜻을 지훈에게 알렸다.
"내일 점심을 이곳에서 드시겠다고요?"
"그렇습니다. 영부인도 그렇지만 각하께서도 미스터 리가 해준 요리를 무척 그리워해서 종종 그 얘기를 했습니다."
"각하께서 제 요리를 잊지 않고 있다니 영광입니다."
"미스터 리, 겸손한 것은 그때와 마찬가지군요. 사실 미스터 리의 음식이 그리운 것은 저도 똑같습니다."
"내일 실망을 안 끼쳐 드리려면 더 맛있게 해야겠는데요?"
지훈은 모르고 있지만 오바나 대통령 부부는 방한이 확정된 직후부터 지훈과의 재회를 무척 기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대통령 부부만 그런 것이 아니라 프랑스에서 지훈의 음식을 맛본 수행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미스터 리가 실력발휘를 제대로 하겠다니, 이 사실을 각하와 영부인께서 알면 무척 기대하실 것입니다. 아! 영부인께서는 미스터 리에게 특별한 부탁을 하고 싶어 합니다."
"어떤 부탁이지요?"
"영부인께서는 프랑스에서 선물로 받았던 홍삼차를 다시 얻고 싶어 합니다."
"홍삼차요?"
"그렇습니다."
"홍삼차야 항상 준비되어 있으니 그리 하겠습니다."
오바나 대통령에게 지훈의 홍삼차를 소개하고 적극 권장한 이는 프랑스 대통령 홀란드였다.
당시 지훈의 요리에 매료되었던 오바나 대통령은 홀란드 대통령의 말을 프랑스인 특유의 유쾌한 농담으로 받아 들였다.
하지만 홍삼차의 놀라운 효능을 실제로 확인한 후에는 그의 말이 농담이 아니라 사실임을 깨달았다.
특히 홍삼차 덕을 톡톡히 본 영부인은 그날 이후로 오바나 대통령에게 매일같이 홍삼차를 먹였고, 선물로 받은 홍삼차가 떨어지자 자신이 직접 홍삼차를 담갔다.
그러나 같은 홍삼차라고 해도 효능이 똑같지가 않아서 이번 기회에 많은 홍삼차를 가져가고 싶어 했다.
"허~험! 영부인께서는 그때보다는 많은 홍삼차를 받고 싶어 합니다. 농담으로 전용기를 홍삼차로 가득 채워서 돌아가고 싶다고 하실 정도입니다."
"하하~! 알겠습니다."
미국 측 수행원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을 무렵 청와대의 고위 인사가 다분히 위압적인 자세로 지훈을 바라보며 대화에 불쑥 끼어들었다.
그는 보안문제가 중요한 만큼 내일 점심시간을 전후해서는 그 어떤 고객도 받지 말라며, 마치 지훈을 아랫사람 대하듯 일방적인 지시를 내렸다.
"그건 어렵겠습니다."
"뭐요?"
"우리 가온누리는 예약제를 시행하고 있는 까닭에 내일도 많은 고객의 예약이 잡혀 있습니다."
"그래서 내 말을 따르지 않겠다는 거요?"
"고객은 왕이라는 말처럼 제게 있어 한분 한분의 고객은 모두 소중합니다. 그런 마당에 미리 잡힌 그분들과의 약속은 절대 어길 수가 없습니다."
"이 사장, 내일 어떤 분이 오시는지 몰라서 그런 건방진 말을 하는 거요?"
"제게는 미리 예약을 하신 다른 고객 분들도 오바나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소중합니다."
"이 작자가 미쳤나?"
"다시 말하지만 그런 무리한 요구를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쩌겠다는 거요?"
"아쉽지만 오바나 대통령과 영부인을 모실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뭐가 어쩌고 어째!"
양복을 입은 사내는 청와대 외교안보 수석이었다.
일찍이 군대의 요직을 두루 거치고 청와대 외교안보 수석으로 발탁된 그는 고위 장교 특유의 거만함과 권위주의가 몸에 배여 있었다.
그래서 자신의 말 한마디면 지훈이 아무 말 않고 무조건 따를 것이라고 생각했다가 예기치 못한 반발에 당황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한낱 식당의 주인이 감히 자신의 말을 거부했다는 생각에 분노가 솟구쳐서 자신도 모르게 고성을 지르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은 나는 새도 떨어트린다는 청와대의 고위 인사로, 지훈이 같은 일반인은 감히 말 붙이기도 어려워해야 정상이었다.
막말로 이곳을 방문하는 사림이 한국과 특별한 관계에 있는 미국의 대통령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이런 곳을 방문할 필요도 없었다.
"미스터 리, 왜 그러십니까?"
"옆에 계신 분이 무리한 요구를 해서 대통령과 영부인을 모시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얘기입니까? 각하와 영부인께서 미스터 리를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는데 그럴 수는 없습니다."
한국어를 모르는 제임스는 지훈과 청와대 인사 사이에 어떤 대화 내용이 오가는지 알지 못해서 지훈에게 그 연유를 물었다.
그리고 지훈이 대통령과 영부인을 모실 수 없다고 하자 깜짝 놀라서 어찌된 영문인지 물었고, 청와대 인사를 통해서 그 사정을 들었다.
"미스터 김, 다른 고객들이 있는 것은 상관없습니다."
"제이슨, 뭐라 하셨습니까?"
"오바나 대통령께서는 수만 명이 운집한 농구장도 스스럼없이 찾는 분입니다."
"하지만 어떤 위험이 닥칠 지도 모르는데 미국의 대통령과 영부인이 머무는 곳에 다른 고객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그런 일을 대비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이지 않겠습니까? 만약 한국 측에서 부담을 가진다면 우리 측에서 모든 것을 담당하겠습니다."
국빈 자격으로 방문한 외국 정상의 경호를 방문국의 경호원들에게 전담시키는 것은 외교상의 결례이기도 하지만 국격에도 큰 손상이 가는 일이었다.
때문에 미스터 김으로 불린 청와대의 인사는 무척 당황스러워하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도 그럴 것이 만약 그런 일이 생기면 이번 일을 준비한 자신에게도 화가 미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그는 지훈을 무섭게 노려보다가 다른 중재안을 내놓았다.
"제이슨, 굳이 그럴 필요가 있겠습니까? 미국의 대통령께서 한국 음식을 드시고 싶다면 더 좋은 곳을 저희가 알아보겠습니다."
"미스터 김, 큰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이지훈 셰프는 세계 최고의 셰프입니다. 그리고 대통령과 영부인께서 원하시는 것은 메뉴를 떠나서 이지훈 셰프가 요리한 음식입니다."
말은 안 했지만 제이슨은 한국 측 인사들을 보면 마치 후진국이나 독재 국가의 인사들을 보는 것 같아서 이해안갈 때가 많았다.
솔직히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국가에서 어떻게 그토록 권위주의적인 모습을 보이는지, 그리고 그럼에도 무슨 수로 자리를 계속 유지할 수 있는지 신기하기만 했다.
그리고 그런 인사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에 명색이 대통령을 모시고 외국을 방문한 고위 인사가 성추행이나 해서 세계적인 망신을 당하는 것 같았다.
"제... 제이슨, 꼭 그래야겠소?"
"미스터 김, 다시 말하지만 대통령과 영부인은 오직 이지훈 셰프의 요리를 원하고 있소. 만약 당신이 계속해서 문제를 일으킨다면 나는 이 일을 정식으로 보고할 수밖에 없소."
"내가 무슨 문제를 일으켰다는 겁니까? 나는 단지 오바나 대통령과 영부인의 안전을 위해서 그런 제안을 했을 뿐입니다."
정식으로 이 일을 보고하겠다는 제이슨의 말에 청와대 인사는 안색이 하얗게 질려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 상황에서 청와대 인사를 돕겠다고 나선 이는 지훈이었다.
"제이슨씨, 그건 이분의 말씀이 맞습니다. 그리고 저로서도 이분의 입장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니 그만하시죠."
"미스터 리, 내일 각하와 영부인을 모셔 와도 되겠소?"
"야외 테이블을 모두 비워놓을 것이니 그곳을 사용하십시오."
"고맙소."
알량한 권력만 믿고 큰소리를 빵빵 쳤던 청와대 인사는 지훈이 나선 통에 얼추 상황이 마무리되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고마워하기는커녕 자신을 곤경에 빠트린 지훈을 고깝게 생각하며 언제고 오늘의 수모를 갚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