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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타고난 인간성이 어디 가겠습니까?
수아가 한국에 들어온 지 어느덧 사흘이 지나면서 11월의 마지막 날이 되었다.
그 사흘 동안 가온누리에서 지내면서 여러 가지 일을 거들었던 수아는 지훈과 함께 부모님이 계시는 경남 밀양의 고향 집을 다녀오기로 했다.
"부사장님, 부탁합니다."
"걱정 마시고 잘 다녀오십시오."
"아까도 얘기했지만 모든 요리는 제가 만든 장류와 조미료 그리고 향신료와 소스를 사용해주십시오."
"얼마 전부터 그래왔잖습니까? 걱정 말고 가십시오."
"성훈 오빠, 미선 언니, 갖다 올게요."
"그래, 잘 다녀와."
"사장님, 운전 조심히 하십시오."
지훈이 가온누리를 비우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간의 고생이 헛되지 않아서 자신이 직접 요리를 하지 않는다고 해도 가온누리 특유의 맛을 지킬 수 있었기에 부담은 없었다.
"오빠, 왜 이쪽으로 가?"
"잠깐 들려야 할 곳이 있어."
"어디?"
"내가 특허를 여러 개 받았거든."
"무슨 특허?"
"가온누리의 모든 메뉴를 특허 신청했어."
그 어떤 분야보다 원조 논쟁이 가장 치열하게 벌어지며 모방이나 도용이 극심하게 벌어지는 바닥이 음식점이다.
그 때문에 상표등록만이 아니라 특허까지 신청했던 지훈은 그 사실을 알리고는 특허증을 받기 위해 변리사 사무실부터 찾았다.
"오빠, 특허를 받으면 오히려 비법이 공개될 수 있잖아?"
"물론 그런 단점도 있지만 최소한 가온누리 만의 독특한 메뉴를 지킬 수 있잖아. 그리고 내가 먼저 특허를 냄으로써 우리의 메뉴를 흉내 내서 살짝 바꾼 짝퉁은 특허를 받을 수가 없다고 해서 그 때문에도 특허를 신청했어."
아무리 특허를 받아도 첨가물을 살짝 바꾸고 이름을 달리 쓰면 특허법을 피해갈 수 있는 것이 현실이었다.
반면 특허를 받기 위해서는 그 제조법을 상세하게 공개해야 했는데 그 과정에서 비법이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음식업계에서는 특허를 터부시해서 오히려 특허 내는 것을 극도로 꺼려했다.
하지만 지훈은 가온누리와 함께 그 메뉴의 상징성을 지키기 위해서 특허를 신청했고, 최소한 원조 논쟁에서 비껴갈 수 있다는 점에 만족했다.
쉽게 말해서 특허를 신청하면 남들이 똑같은 이름의 메뉴를 사용할 수 없고 요리방법도 하나부터 열까지 그대로 따라서 하는 것은 막을 수 있어서 신청했다.
아울러 음양오행기가 있는 이상 맛을 도용당할 리는 없기에 비법이 노출된다고 해도 문제될 것은 없었다.
"그래도 오빠가 심혈을 기울여서 개발한 비법이 공개되는 것 같아서 아쉬워."
"그 정도는 감수해야지. 그리고 우리 음식을 흉내 낸 사람도 소송에 휘말리기는 싫어서 적극적으로 홍보하지 못할 테니까 그것만으로도 충분해."
"아무튼 특허를 받은 이상 가온누리의 메뉴를 그대로 도용했다가는 법의 처벌을 받겠네?"
"누가 겁도 없이 그런 짓을 하겠어? 다 왔다, 여기야!"
변리사 사무실에 당도한 지훈이 특허증을 받고 있을 무렵 하마의 차를 빌린 강민구는 어머니가 있는 요양원에 들어섰다.
'어머니는 잘 계시겠지.'
마음 같아서는 매주 휴무일이면 요양원을 꼬박꼬박 찾아와서 어머니를 만나고 싶었다.
그러나 지난주 휴무에는 일이 꼬여서 올 수가 없었고, 오늘도 원래대로라면 가온누리에 남아서 지훈을 염탐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훈이 수아와 함께 가게를 비운 통에 본의 아니게 해야 할 일이 없어지면서 운 좋게 어머니를 찾아올 수 있었다.
'아이참, 알아내면 어련히 알아서 연락할 텐데 또 전화했네.'
차에서 내리다 말고 휴대폰을 붙잡은 강민구는 짜증이 섞인 음성으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강민구씨, 어떻게 됐어?
"아직 입니다."
-아직 이라니, 호텔 입점이 코앞으로 다가왔는데 지금껏 알아내지 못하면 어쩌자는 거야?
"저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열심히만 하면 뭐해? 성과를 내야지. 성과를!
"좀처럼 기회가 없는데 나보고 어쩌라는 겁니까?"
-강민구씨, 지금 그런 말이 나와? 나보고 어쩌라니, 그런 무책임한 자세로 임하니 지금껏 성과가 없는 것 아냐?
"저도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최선을 다하고 있다면 내가 원하는 결과물이 있어야 할 것 아냐?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십시오.
-조금, 조금한 게 벌써 며칠 째인가?
전화를 걸어온 이는 장철우였다.
그는 아직까지 비법을 알아내지 못했다는 말에 언성까지 높여가며 화를 냈다.
반면 비법을 알아내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던 강민구는 장철우가 자신의 속도 모르고 타박만 하자 짜증이 치솟아서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마스터, 저도 비법을 최대한 빨리 알아내기 위해서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열심히 알아보고 있습니다."
-강민구씨, 뭘 잘했다고 어디서 큰 소리야? 아까도 말했지만 지금은 결과물이 꼭 필요할 때야. 우리는 돈이 남아돌아서 강민구씨에게 그 많은 돈을 지급했는지 알아? 그따위 식으로 하려면 당장 때려치우고 돈이나 돌려줘!
"죄송합니다. 제가 잠시 흥분했나 봅니다. 하지만 저도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돈을 토해내라는 말에 강민구는 이내 꼬리를 내리고 사과를 했다.
어찌되었든 돈을 받은 이상 그 값어치는 무조건 해야 했다.
-그렇다면 결과물을 가져와야 할 것 아냐?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알아내도록 하겠습니다."
-강민구씨 아직 상황파악을 제대로 못한 것 같은데 지금은 시간이 없어. 그러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오늘 중으로 비법의 단서만이라도 무조건 알아내.
"죄송하지만 오늘은 이 사장이 가게를 비워서 어렵습니다."
-그 놈이 가게를 비웠다고? 미치겠네, 오픈이 임박했는데 이 시기에 가게를 비우자면 어쩌자는 거야? 대체 어딜 간 거야?
"여자 친구가 귀국을 해서 두 분이서 여자 분의 고향으로 함께 내려갔습니다."
-뭐! 김수아가 한국으로 귀국했다고? 그 여자, 지금 프랑스에 있는 것 아니었어?
"휴가를 받아서 잠시 들어온 거라고 들었습니다."
-언제?
"며칠 되었습니다."
-젠장, 귀국했다는데 사장님은 거기 왜 간 거야?
박현식이 파리로 간 이유를 얼추 짐작하고 있는 장철우는 수아가 한국에 있다는 말에 어이없어했다.
반면 그 사정을 모르는 강민구는 무슨 말인가 싶어서 반문을 했다.
"네?"
-강민구씨는 신경 쓸 것 없으니까 거기 일이나 잘해. 다시 말하지만 늦어도 모레 오전까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비법의 단서를 알아내.
"하는 데까지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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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를 끝낸 강민구는 답답한 마음에 바로 병실로 올라가지 않고 자판기 커피를 훌쩍이며 마음을 달랬다.
'니미럴, 맛을 낼 자신이 없으면 애초부터 따라서 안 하면 될 것 아냐? 월급은 쥐꼬리만 하게 주면서, 뭐 얼마나 잘해준다고 그리 유세야.'
가온누리는 파밀시에테보다 더 많은 월급을 준다.
사실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크게 흔들리고 있는데 가온누리는 직원들과 전망과 비젼을 공유하고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함께 성장하자고 했다.
막말로 자신의 짧은 생각에도 파밀시에테보다는 가온누리가 발전 가능성이 있어보였고, 그래서 자신도 가온누리의 진짜 식구가 되고 싶었다.
'빌어먹을, 그 놈의 돈이 웬수지.'
박현식에게 받은 돈은 이미 은행의 대출금을 상환하는데 사용해서 돈을 토해내고 싶어도 토해낼 능력이 없었다.
게다가 아직도 은행에 갚아야 할 빚이 남아 있는 이상 싫어도 스파이 노릇을 계속 해야 했다.
'후회한들 어쩔 수 없어!'
자신이 처한 현실을 다시금 돌아본 강민구는 빈 종이컵을 일그러트려서 쓰레기통에 버린 후 2층으로 올라갔다.
'누구지? 뒷모습이 우리 엄마와 많이 비슷하네. 우리 엄마도 저렇게 걸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2층의 복도에 올라선 강민구는 한손으로 벽을 의지 삼아가며 걸음을 옮기는 중년 여인을 발견했다.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처럼 뇌졸중을 앓았는지 걸음을 옮기는 것이 살짝 불편해보였는데, 그래도 혼자의 힘으로 걷고 있었다.
'우리 엄마도 저분처럼 혼자의 힘으로 걸을 수 있는 날이 꼭 오겠지.'
예전에는 꼼짝도 못했지만 지금은 혼자서 상체를 일으킬 수 있는 어머니를 떠올린 강민구는 자신의 어머니가 눈앞의 여자처럼 걸을 수만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사이 복도 끝에 다다른 여인은 몸을 돌려서 회전을 했고, 자연스럽게 얼굴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설마!'
"어... 엄마!"
"민구니?"
"엄마."
"아들, 어서와."
"엄마~!"
놀랍게도 그토록 부러워하던 여자가 자신의 어머니임을 확인한 강민구는 자신이 헛것을 보고 있나 싶어서 눈을 비볐다.
그러나 환하게 웃으며 연신 걸음을 옮기고 있는 여인은 자신의 어머니가 틀림없었고, 그걸 확인한 순간 아이처럼 소리 높여 엄마라 부르며 후다닥 뛰어갔다.
"아들, 언제 온 거야?"
"엄마, 어떻게 된 거야?"
"네가 왔던 지난번 밤부터 이상하게 몸에서 힘이 나는 것이 걸을 수 있을 것 같아서 걸어봤더니 걸어지더구나."
"엄마, 이게 꿈은 아니겠지?"
"민구야, 네가 엄마 때문에 고생이 많았다."
"엄마, 고마워."
"고맙기는, 지금은 이렇게밖에 못 걷지만 재활을 열심히 해서 반드시 예전으로 돌아갈 생각이니까 조금만 참아."
"그래야죠. 엄마는 그럴 수 있을 거야."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들어가자."
"엄마, 내 손 잡아."
"어머! 아주머니 아들이 왔네."
"안녕하세요."
"어머니가 많이 좋아져서 기쁘죠?"
"그럼요."
어머니의 손을 붙잡고 병실로 향하던 도중, 강민구는 같은 병실의 환자를 돌봐주는 간병인 아주머니와 마주쳤다.
활짝 웃는 표정의 그녀는 강민구에게 축하의 말을 건네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지난번에 싸온 음식 얘기를 했다.
"그게 왜요?"
"아주머니가 맛도 좋았지만 그 음식을 먹은 후부터 힘이 솟는 것 같다고 몇 번이나 얘기하더라고요."
"엄마, 그랬어?"
"그게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자꾸 그때 먹은 음식이 생각나지 뭐니?"
"그랬으면 미리 얘기하지 그랬어?"
"됐어."
"아주머니, 그때 그 음식이 자꾸 눈에 아른거린다고 하셨잖아요? 아들이 일하는 식당에서 가져온 음식이라면, 이번 기회에 아들과 함께 가서 드시고 오세요."
"아주머니, 엄마를 모시고 나갔다 와도 되나요?"
"병원 측에 얘기하면 보호자와 동행일 경우 외출을 허락해주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엄마, 가자."
"됐어. 언제 거기까지 갔다가 다시 와?"
"선배 차를 빌려왔으니까 금방이면 돼."
그때 먹었던 음식을 계속 얘기했다는 말에 강민구는 어머니를 모시고 가온누리를 가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들 걱정에 계속해서 사양했다.
"다음에, 그리고 거기는 음식 값이 꽤나 비싸다면서?"
"그 정도 돈은 나도 있어. 그리고 이번에 주임으로 승진해서 월급도 많이 올랐어."
"네가 승진을 했다고?"
"그렇다니깐."
"아이고! 우리 아들, 장하다."
"아줌마, 외출을 허락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죠?"
"병동에 얘기를 해보세요."
어머니가 걸을 수 있다는 사실에 신이 난 강민구는 병동의 관계자를 만나서 외출 허락을 받았고, 얼마 후에는 어머니를 모시고 가온누리를 찾았다.
가온누리의 직원들은 같은 직원인 강민구가 어머니를 모셔왔다는 말에 두 사람을 때마침 비워있던 테이블로 안내했다.
"엄마, 여기가 내가 일하는 곳이야."
"나도 TV에서 몇 번 봤다. 무슨 프로인지는 모르겠는데 여기가 그렇게 맛있어서 외국인들도 많이 찾는다면서?"
"응. 특히 외국인들에게는 바깥의 야외 테이블이 인기야."
"지금은 초겨울이라 꽤 추울 텐데?"
"걱정 마. 거기도 다 유리로 막아져서 따뜻해."
어머니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며 음식을 먹던 강민구는 얘기를 듣고 자신을 찾아온 하마를 어머니에게 소개했다.
강민구의 어머니는 함께 일하는 형이라는 말에 자신의 아들을 잘 부탁한다는 말을 했고, 그렇게 그녀와 몇 마디 나눈 하마는 강민구를 데리고 잠시 자리를 비웠다.
"민구야, 어머니가 여기까지 오신 것이 병세가 많이 좋아지셨나 보다?"
"네. 오늘 갔다가 어머니가 혼자서 걷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어머니가 혼자서 걸으실 수 있다고? 그러면 사실상 거의 완치되신 거네?"
"그런 셈이죠."
"역시, 그럴 줄 알았어. 아! 사장님이 내일 오실 텐데, 내 휴무일을 모레로 바꿀 수 있을지 모르겠다."
"휴무일을 바꾸게요?"
"그래야 우리 어머니도 신경통이 많이 좋아지지."
지훈의 특별한 능력을 알고 있는 하마는 신경통으로 고생하는 자신의 어머니에게도 지훈이 만든 음식을 대접하고 싶은 마음에 얼마 전부터 이번 휴무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지훈이 가게를 비운 통에 그가 만든 음식을 싸갈 수가 없었다.
"형님, 그게 무슨 소리에요?"
"멍청한 놈, 너는 아직도 모르겠냐?"
"뭘요?"
"하여간, 운도 억세게 좋은 놈! 난 다음 주 휴무에나 목포에로 내려가야겠다."
"오늘 밤에 가신다고 했잖아요?"
"사장님이 만든 음식을 싸가지고 가지도 못하는데 가봐야 무슨 의미가 있어? 우리 어머니도 신경통 때문에 고생하시는데......"
하마는 마치 지훈의 음식을 대접해야만 어머니의 신경통이 나을 수 있는 것처럼 얘기했다.
아니, 곰곰이 생각해보니 자신의 어머니가 지금처럼 좋아진 것도 지훈의 음식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형님, 우리 어머니의 병세가 좋아진 것이 사장님과 무슨 관계가 있다는 것입니까?"
"무식한 놈, 어머니를 빨리 낫게 해드리려면 아무 소리 말고 나중에라도 사장님이 직접 만든 음식을 어머니가 드시게 해."
"형님, 그게 무슨 소리에요?"
"사정이 있어서 더 말을 못하니까 그렇게만 알아. 사실 이 말도 안하려다가 네 어머니를 보는 순간, 우리 어머니 생각이 나서 얘기해주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