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2 회: 5-6 -->
"처음 뵙겠습니다. 이지훈입니다."
"손녀의 성화에 처음으로 이곳을 찾아왔는데, 아주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게 해 줘서 고맙소."
"입에 맞으셨다니 다행입니다."
"미정아, 너도 인사해야지."
"안녕하세요, 조미정입니다."
"안녕하세요.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이지훈입니다."
유병만의 소개로 조진산을 비롯해서 조미정과 인사를 한 지훈은 그 뒤로도 몇 마디 나누다가 조진산의 건강과 관련한 얘기를 했다.
"조 회장님은 나이가 있으시니까 건강을 위해서 짜고 매운 음식은 피하시는 게 좋습니다."
"안 그래도 내가 만성 신부전증을 앓고 있어서 음식을 주의하는 편인데 유 회장 말로는 이 사장이 의식동원을 실천하고 있다고 해서 소개해 달라고 했소."
"그리 거창한 것은 아니고 건강한 음식을 제공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손녀를 위해서도 지훈을 좀 더 알고 싶은 조진산은 그를 붙잡기 위해서 의식동원과 관련한 질문을 했고, 지훈은 내친김에 만성 신부전증에 좋은 음식과 피해야 할 음식을 알려 줬다.
그리고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조미정이 깊은 관심을 드러내며 질문을 했다.
"이 사장님, 그렇게 하면 할아버지의 건강이 지켜질 수 있는 건가요?"
"규칙적인 생활과 함께 병원 치료를 꾸준히 하신다면 건강을 지킬 수는 있습니다."
"조 회장님, 아까 제가 얘기한 것처럼 당분간만이라도 가온누리를 꾸준히 다니면서 이 사장의 요리를 드십시오."
"할아버지, 그렇게 해요. 저도 여기 음식을 먹고 나면 몸이 가벼워지는 것이, 건강해진다는 게 절로 느껴져요."
"이 사장, 실은 내가 조 회장님의 도움을 많이 받았으니 부탁하겠네."
예전에 조진산의 도움을 받았던 유병만은 그때의 신세를 갚기 위해서도 지훈에게 부탁을 했고, 지훈은 조진산을 바라보며 가온누리를 방문하면 부족하나마 노력을 해 보겠다고 했다.
"이 사장이 날 위해서 특별한 음식을 해 주겠다는 거요?"
"특별한 음식은 아니고 만성 신부전증에 효과가 좋은 식재료를 사용해서 요리를 만들겠습니다."
"조 회장님, 이 사장을 믿고 한동안만이라도 꾸준히 다녀 보십시오. 분명 건강이 눈에 띄게 좋아질 것입니다."
"할아버지, 제가 같이 올 테니까 그렇게 해요."
"네가 이 할아비를 매일 따라다니겠다고?"
"할아버지의 건강이 좋아진다는데 그렇게 해야죠."
지훈의 능력을 잘 알고 있는 유병만과는 달리 조진산은 고작 음식을 먹는다고 해서 자신의 지병이 나아질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하지만 가온누리의 음식이 무척 맛있는 것은 사실이었고, 손녀가 자신을 따라서 매일 함께 오겠다고 하자 그게 다 지훈에 대한 관심 때문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손녀를 돕고, 지훈을 계속 살펴보겠다는 생각에 그렇게 했다.
서비스 파트의 직원이 다가와서 다른 손님이 지훈을 찾는다는 말을 전해 온 것은 그때였다.
"이 사장, 다른 손님이 찾는 것 같은데 어서 가 보게."
"좀 더 시간을 내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시간은 안 내줘도 되니까 앞으로 조 회장님 음식을 잘 부탁하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고맙네. 그런데 가온누리를 공개하고 주식 상장을 하는 일은 어떻게 되어 가는가?"
"계획대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나도 한 손 거들 수 있게 해 주게."
"회장님이 도와주신다고 해서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따로 만나서 하세."
"알겠습니다. 조 회장님, 죄송하지만 먼저 일어서야겠습니다."
"아닐세, 어서 가 보게."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미정 씨도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저도요,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미정이가 저 녀석에게 관심이 있는 게 틀림없구나.'
작별 인사를 한 지훈이 멀어지는 동안 조미정은 하염없이 그를 바라봤고, 이를 통해서 조진산은 손녀의 마음을 확인했다.
그사이 조미정이 유병만에게 질문을 했다.
"저기, 유 회장님?"
"미정 양, 내게 할 말이 있나요?"
"아까 주식 얘기는 뭐예요?"
"아! 이 사장은 회사를 공개하고 주식을 발행해서 자금을 확보한 후에 가온누리를 더 키울 생각이오. 이 사장은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해외에 진출해서 한식을 세계화시키겠다는 큰 포부를 갖고 있죠."
"얘기하는 것으로 봤을 때는 유 회장님도 투자를 하시나 봐요?"
"맞아요. 난 이 사장이라면 분명 외국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고 믿고 있기에 투자를 할 생각입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투자 안 하세요?"
"나도?"
"이지훈 씨는 오바나 대통령만이 아니라 유럽 정상들도 인정하는 실력을 갖고 있으니, 분명 외국에서도 성공할 수 있을 거예요."
"조 회장님, 그건 미정 양의 얘기가 맞습니다. 저는 머지않은 시일 내에 가온누리가 전 세계에 진출해서 큰 성공을 거둘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요리 실력이 좋다고 해도 사업은 또 다른 것인데 유 회장은 그 친구를 너무 높게 평가하는 것 아니오?"
"지금은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조 회장님이 가온누리를 한동안 다니시다 보면 저와 같은 생각을 하시게 될 것입니다."
"할아버지, 우리도 투자해요."
"인석아, 투자란 것은 기분이나 감정만으로 결정해서는 절대 안 된다."
"그래도 느낌이란 게 있죠. 그리고 유 회장님도 확신을 하시는 것을 보면 틀림없어요."
"그 문제는 내가 좀 더 지켜본 후에 결정하마."
"치~이, 언제는 내 말이면 무조건 들어줄 것 같더니 실망이네요."
"아무리 그래도 투자는 요모조모 따져 보고 해야 한다."
"저도 따져 보고 얘기하는 거예요. 한국에서도 성공하고 있고, 각국의 정상들도 인정하는 실력에 요즘 한류가 얼마나 대단해요? 그러니 이건 성공할 수밖에 없어요. 제가 장담해요."
"미정 양, 아직은 시간이 있으니 그렇게 서두를 필요 없네. 조 회장님도 반대를 하시는 게 아니라 이곳을 좀 더 다니시고 결정을 하신다고 했으니 지켜보게."
"조 회장은 정말로 그 친구가 성공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거요?"
"회장님도 이곳을 다니다 보면 제 말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며칠의 시간이 흘렀고, 서울에는 제법 많은 양의 첫눈이 내려서 온 세상을 하얗게 덮었다.
손녀를 위해서, 그리고 투자를 결정하기 위해서라도 조진산이 가온누리를 매일같이 다니는 동안 인터넷에서는 고담과 관련한 글이 연일 화제였다.
고담과 관련한 글은 여러 개가 떠돌았지만 그 내용은 대부분 비슷해서, 고담이 가온누리를 모방했지만 맛은 없어서 짝퉁의 전형을 보여 준다고 했다.
또 그런 고담을 입점 시킨 TJ호텔의 수준도 알 만하다면서, 그래서 이류 호텔이라는 얘기도 제법 나돌았다.
그렇다 보니 이재철도 그냥 넘길 수만은 없어서 박현식을 따로 불렀다.
"박 사장, 가온누리의 맛을 그대로 재현할 수 있다고 그리도 큰소리를 치더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이오?"
"면목이 없습니다."
"박 사장은 지금 인터넷에서 어떤 얘기가 떠돌고 있는지 알고 있소?"
"무슨 얘기 말입니까?"
"아직 그것도 모르고 있소?"
"죄송합니다."
"허~참!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 정도는 기본으로 알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니오?"
"죄송합니다, 바로 확인하겠습니다."
고담을 비롯해서 파밀시에테의 모든 직원들은 인터넷에서 떠도는 소문을 들어서 알고 있었고, 그건 장철우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예은과 계속 붙어 다니는 박현식만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는데, 그 누구도 그런 얘기를 그에게 해 주지 않았다.
"짜증 나니까 굳이 내 앞에서 확인할 필요는 없소.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해 줘야겠소."
"뭐 말입니까?"
"내가 박 사장을 우리 호텔에 입점시킨 것은 가온누리와 똑같은 맛을 낼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소. 그렇지 않소?"
"몇 가지 착오가 있어서 그렇습니다만, 곧 그렇게 될 것입니다."
"그것 자체가 계약과 다르지 않소? 박 사장은 모든 준비가 완벽하게 끝났다면서 오픈만 하면 바로 똑같은 맛을 낼 수 있다고 했잖소?"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예상치 못한 일로 일이 꼬이면서……."
"어디 그뿐이오? 가온누리가 망할지도 모르고 그렇게 되면 고담이 가온누리의 역할을 차지할 거라고 했소, 안 했소?"
"그것도 예상 밖의 일이 생기는 바람에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걸 말이라고 하는 것이오?"
"죄송합니다."
이재철의 지적은 하나같이 사실이었기에 박현식은 미안하다는 말만 계속해서 되풀이했다.
반면 이재철은 아직까지 상황 파악도 못 한 박현식이 뚜렷한 대안은 제시하지 못하고 마냥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하자 짜증이 솟구쳤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능력도 없는 박현식과 계약한 일을 크게 후회하며 앞으로의 대책을 물었다.
"박 사장, 가온누리의 맛을 그대로 재현할 수 있소, 없소? 만약 재현할 수 없다면 더 늦기 전에 얘기하시오."
"재현할 수 있습니다."
"정말이오?"
"시간을 조금만 더 주시면 반드시 재현할 수 있습니다. 전무님에게 미처 얘기 못 했지만 가온누리에 저희 직원이 침투한 상태인 만큼 조리법만 빼내면 똑같이 재현할 수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이런저런 얘기가 더 나오기 전에 빨리 재현하시오. 미리 말하지만 이번 달 안에 그 맛을 내지 못한다면 계약을 파기할 수밖에 없소."
"이번 달 안에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재현할 수 있으니 염려 마십시오."
"장담할 수 있소?"
"장담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자리에서 그것과 관련한 각서를 쓰시오."
"각서요?"
"그렇소. 계약 당시 구두로 합의했던 내용을 그대로 각서로 써 주시오. 어차피 맛을 재현할 수 있다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 같은데 안 그렇소?"
"그런 그렇습니다만 꼭 각서까지 써야 하겠습니까?"
"나는 각서를 써 주지 않는다면 맛을 재현할 수 없는 것으로 여기고 박 사장과의 계약을 파기하겠소."
"쓰겠습니다. 쓰면 될 것 아닙니까?"
'강민구, 그놈에게 돈을 더 쥐여 주는 한이 있어도 반드시 놈의 비법을 완전하게 알아내야겠어.'
박현식에게 TJ호텔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그런 마당에 입점한 지 한 달 만에 호텔에서 쫓겨나는 것은 크나큰 수치라는 생각에 이재철이 요구하는 대로 각서를 작성했다.
각서는 가온누리의 맛을 재현하지 못하면 위약금을 물고 아무 조건 없이 TJ호텔에서 철수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박현식이 각서를 썼던 그날 저녁, 평소와 달리 조미정을 동행하지 않고 혼자서만 가온누리를 찾은 조진산은 먼저 당도한 유병만과 마주했다.
"유 회장, 먼저 오셨구려."
"때마침 이 근처에 일이 있어서 왔다가 조 회장님의 연락을 받고 바로 왔습니다."
"주문은 하셨소?"
"저도 방금 전에 와서 아직 안 했습니다."
"그러면 같이 시킵시다."
근처에 있던 직원을 불러서 주문을 한 조진산은 대뜸 가온누리의 기업공개에 대해서 물었다.
"다음 달, 그러니까 연초에 진행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나도 한자리 낄 수 있겠소?"
"이 사장과 얘기를 해 봐야겠지만 조 회장님이 함께하시겠다면 이 사장도 기뻐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염치 불고하고 나도 한자리 끼게 해 주시오."
"조금 후에 이 사장을 함께 만나도록 하지요. 그런데 조 회장님이 투자를 결정하신 이유가 무엇인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첫째는 맛이고 두 번째는 건강함이오."
"건강함요?"
"유 회장 말대로 그때 이후로 매일 저녁이면 이곳에서 식사를 했소. 그런데 하루가 다르게 몸이 좋아지는 것을 느꼈소. 그래서 지금은 하루라도 이곳의 음식을 먹지 못하면 내가 불편함을 느낄 정도요."
"제가 그럴 거라고 했잖습니까?"
"그러게 말이오. 솔직히 말하면 처음에는 유 회장의 말을 믿지 못했소."
"저도 그랬던 만큼 이해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이해가 안 가는 것은 고작 음식을 바꿨다고 며칠 만에 몸이 좋아질 수 있는 것인지 내 스스로도 의문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