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스터 셰프-182화 (182/219)

<-- 182 회: 6-21 -->

"당신들, 우리가 오늘 일을 그냥 넘어갈 것 같아? 유능한 변호사를 고용해서라도 기어이 당신들에게 책임을 물을 생각이니까 각오해."

"아저씨, 사람이 안 다친 것만으로도 다행 아닙니까?"

"아저씨야말로 양심을 지키고 사세요. 솔직히 고맙다고 해도 부족할 판에 변상을 요구하다니 너무 뻔뻔하신 것 아니에요?"

"이 여자가 어디서 따박따박 말대꾸를 하는 거야?"

"아줌마도 그러는 것 아니에요. 어쩜 부부가 그렇게 똑같은지, 자녀들 보기 부끄럽지 않으세요?"

"뭐가 어째?"

"그리고 평범한 백자를 5천만 원이나 부르다니 너무 하신 것 아니에요?"

"흥! 너희들 같은 싸구려가 보기에는 평범해 보이겠지만 그건 조선시대의 백자야."

"천한 것들이 감히 어디서 우리를 의심해? 오늘 깨진 백자는 너희들 같은 것들은 평생 볼 수도 없는 귀한 것이야."

"우리 집에 널리고 널린 게 백자네요."

"미정 씨, 그만하고 갑시다."

계속 얘기를 했다가는 한바탕 싸움이 나겠다는 생각에 미정을 떼어 내서 주차장으로 향한 지훈은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반면 그 자리에 계속 남은 문형석 부부는 이제 자신들끼리 싸우고 있었다.

"그러게 내가 백자를 꺼내지 말라고 했잖아!"

"그게 왜 내 탓이에요? 당신이 운전을 똑바로 안 한 통에 벌어진 일이잖아요."

"어쨌든 당신이 백자를 상자에서 꺼내지만 않았어도 깨지지는 않았을 것 아냐."

"그 전에 운전을 잘했어야죠."

"뭘 잘했다고 큰소리야?"

"내가 잘못한 것이 뭐가 있는데요? 그리고 거기서 밑도 끝도 없이 5천만 원을 부르면 누가 배상을 하겠어요?"

"원래 가격보다 두둑하게 얘기하라고 한 것은 당신이잖아?"

"그래도 정도가 있지, 그렇게 많이 뻥튀기를 한 통에 그것들이 지레 겁을 먹고 변상을 안 한 것 아니에요?"

"으이그! 그나저나 이제는 어쩔 거야?"

"조 회장님에게 드릴 백자가 깨졌는데 찾아가는 것은 다음으로 미뤄야죠."

"회사 사정도 급하지만 찾아뵙겠다고 미리 연락까지 드렸는데 취소를 하자고?"

"그렇다고 아무것도 없이 빈손으로 찾아가서 자금 융통을 부탁할 수는 없잖아요."

무슨 인연인지, 사업을 하는 문형석 부부는 조진산을 찾아가는 길에 사고를 냈다. 쉽게 말해서 사고 도중에 깨져 버린 백자는 조진산에게 선물할 것이었는데 미정의 말대로 그녀의 집에는 널리고 널린 것이 백자였다.

"젠장, 가뜩이나 돈이 없는데 또다시 돈 들게 생겼네."

"여보, 이번에는 사오백만 원짜리로 구해 봐요."

"조 회장이 도자기를 좋아하고 그쪽에 상당한 조예가 있다는데 어떻게 그래?"

"그래 봐야 전문가도 아닌 사람이 무슨 수로 가격 차이를 정확하게 알겠어요? 그리고 어차피 회사 사정도 안 좋잖아요?"

"일단 가지."

사고 때문에 범퍼가 살짝 찌그러진 차에 탑승한 문형석은 집으로 향했는데 희한하게도 그가 차를 세운 곳은 가온누리 주차장이었다.

"여보, 이 집은 오늘도 사람들이 많네요."

"아주 유명한 요리사가 하는 집이라잖아."

"가격도 제법 비싸다던데 이렇게 손님들이 많으면 얼마나 많은 돈을 벌까요?"

"그러게 말이야. 나도 제조업을 할 게 아니고 이런 식당이나 차릴 걸 그랬어."

주차장을 가득 메우고 있는 차들을 바라보며 푸념을 뱉은 부부는 가온누리가 아닌 다른 쪽 골목으로 향하다가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아저씨, 잠깐만요."

"왜요?"

"여긴 가온누리 주차장인데 차를 여기다 주차하시면 안 되죠."

"이웃끼리 그 정도는 이해하고 넘어가야 하는 것 아니오?"

"그래서 밤부터 오전까지 주차하는 것은 모른 척 넘어가고 있잖습니까? 하지만 지금 같은 피크 시간대에는 주차 공간이 부족해서 어쩔 수 없습니다."

"아직 빈자리가 몇 곳 남아 있는데 그냥 넘어갑시다."

"저도 어지간하면 넘어가려고 했는데 곧 단체 손님들이 온다고 해서 오늘은 여유가 없어서 도저히 어렵겠습니다."

"거참, 한동네 사는 이웃끼리 꼭 그래야겠소?"

"아무리 이웃이라고 해도 우리 가게를 찾은 손님부터 챙겨야 할 것 아닙니까?"

"그래서 이미 주차한 나보고 차를 빼라는 것이오?"

"그렇게 해 주십시오."

"이봐요, 이미 주차까지 했는데 너무하는 것 아니에요? 막말로 우리를 못 봤으면 모르고 넘어갔을 것 아니에요."

"이 차는 매일 밤마다 이곳에서 주차를 하는지라 저도 다 알고 있습니다."

"몰라요, 맘대로 해요."

"불법 주차로 신고하기 전에 빨리 빼십시오."

자기 주차장도 아니고 남의 주차장에 도둑 주차를 한 주제에 문형석 부부는 오히려 큰소리를 쳤다.

하지만 계속해서 비워 달라며, 그러지 않으면 신고를 하겠다는 말에 투덜거리며 차를 뺐다.

"세상에 장사하는 사람의 인심이 이렇게 야박해서야."

"아, 짜증! 오늘은 무슨 일진이 이렇게 사납죠?"

"여보, 아무래도 이것들 단단히 혼을 내 줘야만 분이 풀릴 것 같소."

"어쩌려고요?"

"내일부터 구청에 계속해서 민원을 집어넣을 생각이오."

"무슨 민원요?"

"가온누리 때문에 밤마다 시끄럽고 손님들 때문에 주차할 곳도 없어서 불편하다고 하면 구청에서 움직일 것이오."

"그렇게 되면 무슨 일이 생기나요?"

"구청에서 가온누리를 찾아올 것 아니오? 그리고 그런 일이 반복되면 가온누리는 우리가 민원을 넣을까 무서워서라도 더 이상 주차 문제로 왈가왈부하지 않을 것이오."

"호호호~! 그렇게 되면 우리는 좋죠. 그리고 가온누리처럼 인심 야박한 것들은 혼이 나 봐야 해요."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양심과는 담을 쌓은 문형석 부부는 자신들의 잘못은 생각도 않고 가온누리만 탓하더니 골탕을 먹일 수 있겠다는 생각에 낄낄거리며 자신의 집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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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국과 함께 지훈은 일상으로 복귀했다.

하지만 전과 달라진 것이 있었으니 매일 아침이면 인근의 약수터를 찾았고, 아침저녁으로 호흡법을 연마했다.

한편 미정은 답사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중국과 태국 진출을 위한 본격적인 실무 작업에 돌입했다.

그렇게 다들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무렵, 구청의 직원들이 가온누리를 찾았다.

"구청에서 무슨 일이십니까?"

"주민이 민원을 제기해서 찾아왔습니다."

"민원요?"

"가온누리 때문에 소음이 심각하고 도로가 번잡해서 사고의 위험이 있으며, 주차 문제가 심각하다는 민원이 제기되었습니다."

"소음이 심각하다니 이해가 안 되는군요? 잘 아시겠지만 저희는 음식점이라 시끄러울 일이 없습니다. 그리고 주차 문제는 전용 주차장이 있어서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저희도 별문제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민원이 들어와서 확인차 나왔습니다."

"저희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저희도 딱히 문제점을 찾지 못했기에 솔직히 드릴 말은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는 하지만 앞으로는 좀 더 주의해서 주변 이웃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민원을 제기한 것은 문형석이었다.

그러나 애당초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기에 구청 직원들은 며칠 전에 민원이 들어왔음을 알리고 주의를 당부한 후에 그냥 돌아갔다.

본점 직원들과 일부 손님들이 준호의 일을 알고 지훈에게 물어 오기 시작한 것은 그날 저녁이었다.

"사장님, 정말 훌륭한 일을 하셨습니다."

"하마연 씨,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사장님이 차에 치일 뻔했던 꼬마를 구하신 것, 다 알고 있습니다."

"어! 하마연 씨가 그걸 어떻게 알고 있죠?"

"지금 인터넷에 그때의 영상이 떠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게 사장님이라는 사실도 다 알려졌습니다."

"네?"

지훈이 준호를 구한 동영상은 당시 경찰서를 찾아왔던 편의점의 알바생들이 올렸다.

처음에는 많은 영상에 파묻혀 주목을 받지 못했던 문제의 영상은 우연히도 방송국 기자의 눈에 띄면서 TV에 나왔고, 그게 계기가 되어서 지금은 엄청난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었다.

그런데 동영상으로 인해서 지훈과 함께 온 국민의 주목을 받은 이가 있었으니, 뻔뻔하게도 배상을 요구했던 문형석 부부였다.

파렴치 부부 또는 대한민국 최악의 부창부수라는 별명을 얻은 그들 부부는 단 하루 만에 수많은 네티즌들에 의해서 신상이 완전 털렸다. 덕분에 거리를 지날 때면 그들 부부를 알아본 사람들이 비난과 함께 손가락질을 해 댔는데, 변함없이 뻔뻔한 그들 부부는 부끄러워하기는커녕 되레 악담과 욕설을 퍼부었다.

그리고 그 영상은 다시금 사이버 공간을 뜨겁게 달궈서 이제는 문형석이 생산한 제품에 대해서 불매운동까지 벌어졌다.

한편 이번 일과 무관하게 애초부터 자금 사정 악화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던 문형석은 조진산에게 전화를 걸어서 저녁 약속을 잡았다.

"조 회장님, 바쁘실 텐데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회장님이 도자기를 좋아하신다고 해서 하나 가져왔는데, 마음에 들지 모르겠네요."

사업을 하는 기업인이 조진산을 찾는 이유는 자금을 빌리기 위함이었고, 이는 문형석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조진산은 문형석이 내민 도자기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대뜸 거절했다.

"회장님, 제 성의를 생각해서 받아 주십시오."

"문 사장, 일전에도 얘기했지만 지금은 여유가 없어서 문 사장에게 자금을 돌릴 수 없소."

"회장님, 저만 믿고 있는 많은 근로자를 생각해서라도 한 번만 도와주십시오. 그 은혜는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문 사장, 사정은 딱하지만 없는 자금을 무슨 수로 만들겠소."

"회장님이 도와주시지 않으시면 저는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도움을 주신다면 늦어도 2년 안에는 원금을 상환하겠습니다."

중견 기업을 경영하고 있는 문형석은 사업 초창기에 그의 기술력과 열정을 높이 산 조진산의 도움을 받았다. 그리고 그때의 도움에 힘입어 영세한 중소기업에 불과했던 자신의 회사를 빠르게 성장시켜 이제는 중국에도 공장이 있는 제법 탄탄한 중견 기업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 한다고, 어느 정도 살 만해지자 초심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한 나머지 제품 개발과 품질관리를 소홀히 하면서 위기 상황을 자초했고, 이를 파악한 조진산은 더 이상 문형석을 돕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린 상태였다.

대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조미정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할아버지, 우리 왔어요. 어디 계세요?"

"미정이냐?"

"네."

"지훈이는?"

"같이 왔어요."

"회장님, 잘 계셨습니까?"

"오냐, 어서 와라!"

"할아버지, 손님과 함께 계시나 보네요?"

"곧 가실 분들이다."

조진산의 손녀가 왔다는 생각에 고개를 돌린 문형석 부부는 방문을 열고 들어온 지훈과 미정을 보는 순간 소스라치게 놀랐다.

한편 긴히 할 얘기가 있다는 말에 미정과 함께 조진산의 집을 찾은 지훈도 문형석 부부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놀란 것은 마찬가지였다.

"헉!"

"어머!"

"할아버지, 이 사람들 아세요? 이 사람들이 왜 우리 집에 있는 거죠?"

"엥! 당신들은?"

*10. 가온누리는 애초부터 길을 잘못 들었습니다!

지훈과 미정을 바라보는 문형석 부부의 눈빛은 황당함에서 경악으로 바뀌었고 그 이후에는 낙담과 체념 그리고 안타까움으로 바뀌었다.

그들 부부는 조미정과 조진산이 손녀, 조부 관계임을 알게 된 순간 자금을 빌리는 것은 물 건너갔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마지막에는 부부가 동시에 깊은 한숨을 토해 냈다.

"미정이 너도 문 사장을 알고 있었더냐?"

"아주 유명한 사람인데 잘 알죠. 그런데 할아버지는 이 사람들을 어떻게 아세요?"

"전부터 거래 관계가 있었다. 그런데 문 사장이 뭐로 유명하다는 거냐?"

"할아버지는 그것도 모르세요? 그러게 인터넷을 하시라고 했잖아요. 여기 이 사람들은……."

"잘 아는 것은 아니고 예전에 작은 인연이 있었습니다. 그나저나 중요한 얘기를 나누시는 것 같은데, 저와 미정은 밖에 있을 테니 얘기 나누십시오."

"사장님?"

"미정 씨, 우리는 갑시다."

거래 관계가 있었다는 말에 조미정은 문형석 부부가 할아버지를 찾아온 이유를 대번에 알아차렸다. 그래서 옳다구나 싶어 지난번 준호의 일을 할아버지에게 죄다 얘기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가 미처 얘기를 꺼내기도 전에 지훈이 먼저 나서서 말을 끊어 버리더니 미정을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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