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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버려!"
"이지훈 씨, 무슨 일입니까? 우리는 청와대 경호실 요원들입니다."
"아! 오셨군요."
"계……계장님,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진정하게."
"총 버려, 어서!"
청와대 경호실 요원은 모두 열 명이었고, 그들 중 두 명은 빠르게 다가와서 지훈을 보호하듯 앞을 가로막았다.
그사이 다른 경호 요원들은 아직 총을 꺼내지 못한 박상호와 다른 한 명의 요원을 제압하면서 총을 들고 있는 이현수와 그 옆의 요원과 대치했다.
박상호가 자신들의 신분을 밝힌 것은 그때였다.
"우리는 국정원 요원들이오."
"신분증은 어디 있소?"
"양복 오른쪽 주머니를 뒤져 보시오."
청와대 경호실 요원들이 들이닥치면서 한밤의 활극은 간단히 끝났다.
박상호 일행의 신분을 확인한 경호실 요원들은 그들에게 자초지종을 물었고, 그들이 지훈을 간첩으로 오해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제가 간첩이라고요? 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 얼토당토않은 오해를 하신 거죠?"
"이지훈, 우리는 네놈이 북한 대외연락부의 고위 간부인 박용성을 비롯해, 심지어 림용순 노동당 제2비서와도 접촉한 사실을 알고 있다."
"맞아요. 하지만 그건 간첩질을 하기 위해 만난 것은 절대 아니었어요."
"이지훈, 닥쳐라! 우리는 이미 문형석의 자백을 받아 냈다."
"여보쇼, 청와대에서 이자를 왜 찾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자는 온 국민을 속이고 있는 간첩이오."
"그렇소! 그러니 이지훈을 우리에게 넘기시오. 이건 국가 안보와 직결된 문제요."
여전히 지훈을 간첩이라고 여기고 있는 5국 7과의 요원들은 청와대 경호실 요원을 설득하기 위해 자신들이 알고 있는 사실을 떠벌리기 시작했다.
반면 지훈은 그들의 입에서 문형석이 언급된 순간 어찌 된 상황인지 파악하고는 확인에 들어갔다.
"문 사장님이 일주일째 행방불명되었다더니, 당신들이 데리고 있었던 겁니까?"
"가증스러운 놈, 그자가 모두 자백한 이상 네놈의 간첩 행위는 곧 밝혀질 것이다."
"문 사장님이 자백을 했다니, 설마 그분이 내가 간첩이라고 얘기했다는 겁니까?"
"건방진 새끼, 네놈이 아무리 아닌 척해도 우리는 네놈의 정체를 낱낱이 까발릴 수 있는 많은 증거들을 가지고 있다."
"문 사장님이 그런 말도 안 되는 자백을 하다니, 얼마나 모진 고문을 가한 겁니까? 만약 그분에게 고문을 한 것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그때는 제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추악한 새끼, 여기는 자유 대한민국으로 네놈 같은 빨갱이가 설칠 장소가 아니다!"
"잔소리 말고 문 사장님이 지금 어디 있는지 말해요."
"네놈도 곧 그곳으로 데려갈 것이니 조금만 기다려라."
"여보쇼, 우리의 신분을 확인했으면 물러나시오."
"미리 경고하는데 간첩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계속해서 저자를 두둔한다면, 그때는 당신들도 이적행위를 하는 것인 만큼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오."
지훈의 예상대로 모진 고문 끝에 문형석에게서 허위 자백을 받아 낸 5국 7과의 요원들은 당당하기만 했다.
하지만 청와대 경호실 요원들의 반응은 냉랭하기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은 오늘 저녁 한국을 방문한 이가 누구인지 잘 알고 있었다. 아울러 남북한 정상들의 비밀 접촉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5국 7과의 요원들이 어째서 그런 오해를 하고 있는지도 충분히 짐작하고 있었다.
"팀장님, 이 사람들을 어찌할까요?"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상부에 보고부터 해야지."
"그 무엇보다도 문형석 씨의 안전부터 확보해야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나서기 어렵다면 제가 직접 대통령 각하에게 얘기를 하겠습니다."
"건방진 자식, 네까짓 것이 뭔데 각하를 운운하는 것이냐?"
"당신들, 계속해서 이적행위를 할 생각이오?"
"이봐, 옷 벗고 싶어? 옷 벗기 싫으면 당장 이지훈을 우리에게 넘겨."
5국 7과의 요원들이 엉뚱한 오해를 하고 있음을 알게 된 경호실 요원들이 난감해하는 동안 지훈은 문형석의 안전을 재차 강조했다.
반면 아직도 상황 파악을 못 한 5국 7과의 요원들은 기세등등해서 소리를 질렀다.
김기철 비서실장이 출발 유무를 확인하기 위해 지훈에게 전화를 걸어온 것은 그때였다.
지훈은 그에게 청와대 경호실 직원을 만난 것부터 시작해서 현재의 상황을 알렸다.
-그 문제는 내가 알아서 원만하게 처리를 할 것이니 이지훈 씨는 이쪽으로 빨리 와 줬으면 좋겠소.
"그 사람들에게 억울하게 잡혀 있는 문형석 씨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내가 책임지고 그분의 안전도 보장하겠소.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아무래도 모진 고문을 당한 것 같은데, 그 부분도 신경 써 주십시오."
-물론이오. 바로 병원으로 이송해서 최상의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겠소.
"실장님 말만 믿겠습니다. 그리고 고문을 가해서 무고한 시민을 간첩으로 조작한 기관원들에 대해서는 책임을 확실하게 물어 주십시오."
-그렇게 하겠소.
"분명하게 약속해 주셔야 합니다."
-물론이오. 혹시 옆에 경호실의 책임자가 있으면 전화를 바꿔 줄 수 있겠소?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지훈을 통해서 상황을 알게 된 김기철은 경호팀의 책임자와 한참을 통화했다.
얼마 후, 통화를 종료한 경호실의 책임자는 지훈에게 먼저 출발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
"문형석 씨의 일을 부탁합니다."
"김기철 비서실장이 상황을 확실하게 인지한 이상 곧 조치가 취해질 것이니 걱정 마시고 출발하십시오."
"저는 팀장님만 믿겠습니다."
"문형석 씨를 만나거든 바로 연락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엉뚱한 오해를 받고 있는 문형석을 구하는 일도 중요했지만 한국을 찾은 외국의 VIP를 접대하는 일도 중요했기에 지훈은 몇몇 경호실 요원을 따라나서기로 했다.
반면 눈앞에서 지훈이 멀어지려고 하자 다른 요원들과 함께 악을 지르던 박상호는 주머니 속의 휴대폰이 계속해서 멜로디를 토해 내자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5국 7과의 박상호 계장인가?
"그렇습니다만 누구십니까?"
-나, 본사의 안희만 전무이사네.
"아! 이사님."
-당신들, 지금도 이지훈 씨와 함께 있나?
"그 사실을 전무이사님이 어떻게?"
-정말이었군. 그러면 문형석이란 사람도 자네들이 잡고 있겠군. 위승환 팀장은 어디 있는가?
국정원은 자신들의 신분 노출을 우려해서 정식 직급 대신 일반 기업의 직급을 사용해 위장하고 있다. 즉, 안희만 전무이사는 국정원의 외국 관련 부서를 총괄하는 제3차장이었다.
얼마 후, 안희만과 통화를 종료한 박상호는 청와대 경호실 요원들과 함께 문형석이 있는 서울 외곽의 창고로 이동했는데, 차 안은 그들의 한숨 소리로 가득했다.
경호실 요원들을 따라나선 지훈은 당연히 청와대로 가는 줄 알았다. 그런데 차가 가는 방향이 아무래도 이상했다.
"청와대로 가는 것 아니었습니까?"
"사정이 있어서 청와대가 아닌 안가로 갑니다."
"안가요?"
"그렇습니다. 죄송합니다만 얼마 후부터는 안대를 차야 하니 양해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훈도 영화나 소설에서 안가의 얘기를 들은 적은 있었다. 안가란 '안전 가옥'의 줄임말로 그 위치나 정체가 비밀에 싸여 있는 장소였다.
그 때문에 지훈은 한국을 찾은 VIP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미안합니다만 한국을 찾아왔다는 VIP가 누구인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죄송합니다만 알려 드릴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안가에 가면 그분을 직접 뵐 수 있나요?"
"저희도 그 부분까지는 모르고 있습니다."
"답답하군요. 그러면 어느 나라 분이며 몇 분이 오셨는지, 그리고 연령과 성별만이라도 알면 안 되겠습니까? 이는 개인적인 호기심을 떠나 그분들에게 맞는 요리를 하기 위함입니다."
"안가에 도착하면 적절한 조치가 이어질 것입니다."
남북한 정상의 만남은 실로 엄청난 일이다. 막말로 외세에 의해 조국의 허리가 잘린 채 첨예한 대치를 하며 살아온 우리 민족에게 남북한 정상의 만남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평화와 화해의 분위기로 갈 수 있는, 새로운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일본과 중국 그리고 러시아와 미국은 이를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고, 이를 염두에 둔 남북한은 청와대가 아닌 다른 곳에 자리를 마련했다.
"이제 안대를 차셔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경호실 요원들이 넘겨준 안대를 착용한 지훈은 자동차 시트에 몸을 기댔다.
머릿속으로는 지금 가는 곳이 어디인지 그리고 외국의 VIP가 누구인지 계속 떠올려 봤지만 짐작 가는 이도 없었다.
누군가와 통화를 하던 경호실 요원이 문형석의 소식을 전해 온 것은 그맘때였다.
"국정원 직원들을 따라간 팀장님이 조금 전에 문형석 씨를 만났다고 합니다."
"그분의 건강은 어떻다고 합니까?"
"몸이 많이 축나기는 했지만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고 합니다."
"몸이 많이 축났다면 고문을 많이 당하셨겠죠?"
"죄송합니다."
"역시 그렇게 되었군요."
"지금 병원으로 이송 중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분은 이지훈 씨가 구조된 사실을 아직까지 모르고 있었답니다."
자신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사과부터 하는 순간 지훈은 문형석이 고문을 당했음을 간파했다.
아울러 그가 자신이 구조된 사실을 지금껏 모르고 있었다는 말을 듣는 순간, 국정원 직원들이 그 사실을 의도적으로 숨긴 상태에서 그 부분을 철저히 이용했음을 깨달았다. 그렇기에 더더욱 분노가 치솟아서 국정원 직원들에 대한 것을 물었다.
"죄 없는 국민을 감금하고 불법적으로 고문을 가한 이상, 그자들은 법의 준엄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국정원 직원들이 문형석 씨를 간첩으로 오해한 이유는 뭐랍니까? 혹시 저와 관련이 있습니까?"
"아마 그랬을 것 같습니다."
국정원 직원들은 문형석의 자백을 받아 낸 것으로 지훈을 엮으려고 했다. 그런데 베이징에서 림용순과 김정문 국방위원장을 만난 것은 지훈이다.
그렇다면 국정원 직원들은 지훈과 문형석의 관계 때문에 그까지도 간첩으로 오해한 것 같았고, 결국 문형석은 지훈 때문에 괜한 피해를 당한 것이다.
'나 때문에 그런 노초를 당하다니…….'
원인이 자신에게 있음을 알게 된 지훈은 마음이 무거워져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는 사이 차는 어느덧 안가에 도착했고, 지훈은 그때서야 안대를 벗을 수 있었다.
"이쪽으로 따라오시면 됩니다."
"시간이 늦은 만큼 서둘러야 할 것 같은데 셰프는 나밖에 없는 것입니까?"
"청와대의 셰프가 기본적인 준비는 이미 끝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행이군요."
경호 요원을 따라서 안가로 들어간 지훈은 거실에서 남한 측 각료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던 림용순을 발견하고서야 VIP가 북측의 인사임을 알았다.
아울러 자신이 청와대가 아닌 안가로 오게 된 이유도 짐작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김정문 국방위원장이 직접 한국을 찾아왔으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오! 이지훈 동무, 반갑수다. 우리래 자주 보는 것이 전생에 무슨 인연이 있는 것 같지 않소?"
"어쩐지, 그래서……. 저는 여기까지 오면서도 저를 찾은 VIP가 비서님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하하하~! 진짜 VIP는 내가 아니디요."
"네?"
"이지훈 동무, 반갑수다! 차디찬 바닷속이 뭐래 좋다고 그리 오래 있어서 사람 애간장을 태웠던 기요?"
"어!"
"하하하~! 이지훈 동무래, 내래 북조선이 아니라 남조선에 있어서 많이 놀랬나 보오?"
"위원장님,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하하하~! 이지훈 동무래 북남이 힘을 합쳐야 한다고 하지 않았소? 기래서 내래 남조선을 방문한 것 아니갔소."
지훈의 목소리를 들은 것인지 방문이 열리면서 김정문 위원장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