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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36화 (36/300)

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36화

숙소에 돌아와 몸에 찌든 소금기를 씻어낸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기절했다.

‘……8시간 정도 잤나.’

몸이 어느 정도 살 만해지자 매니저에 대한 그라데이션 분노가 시작됐다.

그 새끼, 어떻게 조질 수 있을까.

밤새 오징어잡이 배에서 구르고 육지에 발을 내딛자 매니저는 재수 없는 얼굴로 하품을 쩍 하며 입을 열었다.

- 나름 괜찮았지? 하아암…….

그 후로도 자기도 오징어를 잡아보고 싶었다느니, 표정 펴라느니, 다음에는 같이 바다낚시를 가자느니 진짜 한 대 치고 싶은 거 간신히 참았다.

참고로 그 새끼는 배 안에서 코까지 골며 잠만 퍼지게 잤다.

건수만 잡혀봐라, 내가 어떻게든 매니저 정상적인 놈으로 갈아버리고 만다.

오늘은 일주일 중 단 하루, 원래 사녹이 없는 날이다.

소속사도 일말의 양심은 있는지, 오늘은 그냥 푹 쉬라는 연락이 왔다.

하긴 요즘 우리 몰골을 보면 그런 말이 안 나올 수가 없다.

두꺼운 무대용 메이크업을 해도 남들이 안색을 보고 걱정을 해댈 정도면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올 거다.

나는 거실로 나와 소파에 풀썩 앉아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눈에 띄게 많아졌다.’

라이트온을 언급하는 사람이 정말 많이 늘었다.

반바지가 불러온 파급력도 있지만, 이번에는 무대 자체가 대중들의 만족을 불러일으킬 만큼의 퀄리티가 있었다는 전제 덕분이다.

게다가 저번 활동은 헤어, 메이크업, 코디와 컨셉 양 박자가 사이좋게 구렸기 때문에 잘생긴 얼굴도 무대에서 빛을 내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엔 어떤가, 얼굴에 관한 감탄이 치일 정도로 많다.

“……형님, 뭐 하고 계십니까?”

그때, 거실로 나온 차윤재가 멋쩍게 물었다.

“그냥 모니터링.”

“……예.”

그래도 이 녀석은 더 이상 나를 적대적인 눈빛으로 보지 않는다.

엄청난 성과였다.

먼저 말 걸어주는 거?

몇 달 전만 해도 꿈도 못 꿀 일이다.

심지어 쭈뼛거리며 내 옆에 앉기까지했다.

내가 쳐다보니 몸을 파드득 떨며, 시선을 피하고 있지만 말이다.

길고양이를 길들이는 기분이군.

슬슬 일어날 시간이 됐는지 최승하가 방문을 열고 비척비척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저 배고파요. 우리 오늘은 뭐 시켜 먹을까요?”

“그래.”

오늘은 정말 닭가슴살 데울 기력도 없다.

“와, 진짜요? 진짜요? 진짜? 진짜? 지인짜?”

별생각 없이 던진 말에 내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자, 최승하가 눈을 빛내며 다가왔다.

“진짜? 지이이인짜?”

탈탈탈탈탈!

“그래, 진짜니까 이거 놔.”

얼마나 세게 흔드는지 멀미가 날 지경이다.

내 어깨에서 손을 뗀 최승하가 하핫, 웃으며 배달 어플을 켰다.

활동 시작 전부터 배달 음식을 일절 금지했으니 저럴 만도 하다.

참고로, 최승하 진짜 잘 먹는다.

틈만 나면 뭘 입에 넣고 있는데 본인이 말하기를, 살이 잘 안 찌는 몸이라던가.

“피자? 떡볶이? 치킨? 일단 이거 하나씩 시킬까요.”

양심적으로 셋 중의 하나는 빼라고 말하려던 차였다.

“……!!”

어디선가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모두의 시선이 소리의 발원지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엔, 한수현이 쓰러져 있었다.

거실에 있던 차윤재와 최승하가 동시에 튀어 오르듯 한수현에게 향했다.

“어, 수현아!”

최승하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한수현의 이마에 손을 댔다.

“……열도 좀 있는데, 매니저 형을 불러야…… 아니다, 택시. 우리가 택시 타고 가는 게 더 빠르겠어.”

“형님! 제, 제가 택시 얼른 부르겠습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스러운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차윤재가 잘게 손을 떨며 스마트폰을 꺼낸 찰나, 낮게 깔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려놓으세요.”

바닥에 엎어져 있던 한수현이 상체를 비척비척 일으킨 채로 눈을 가늘게 떴다.

“아냐, 당장 병원을……!”

“난리 치지 마세요. 그냥 잠깐 어지러웠어요. 피곤해서 그런가. 괜찮으니까 다들 할 일 하세요.”

“너…… 너어는, 그게 방금 쓰러진 애가 할 소리야?”

“진짜 유난은.”

한수현의 대답에 최승하와 차윤재가 동시에 뒷목을 잡았다.

“너 어디 가! 얼른 누워!”

“……저, 저!”

“세수하러 갈 거니까 따라오지 마세요…….”

그렇게 말하며 한수현은 자리를 털고 태연하게 일어나 화장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방금 쓰러진 놈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태연자약한 모습이었다.

* * *

“15,000원입니다.”

진짜 유난이 맞긴 하네.

무슨 약을 이렇게 종류별로 사?

“약사님, 피곤하고 음, 과로 같은? 그리고 열까지 나는데-”

약사가 프로답게 최승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약 2갑을 추가로 내밀었다.

“이거 드시면 됩니다.”

“이것만 먹으면 되나요? 아, 그리고 혹시 모르니까 감기약도…….”

이렇게 약을 무려 9갑이나 샀다. 물론 다 다른 종류로.

비닐봉지에 가득 찬 약을 힐끗 쳐다보자 최승하가 머쓱한 얼굴로 시키지도 않은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감기약은 숙소에 있으면 좋잖아요. 상비약? 으음. 그런 거.”

“…….”

“……이 두통약도 상비약!”

“그래.”

“하핫핫! 얼른 가서 수현이 약 먹이고, 헉.”

가벼운 발걸음으로 길을 걷던 최승하가 집에 난 불이라도 본 사람처럼 경악스러운 얼굴로 멈춰 섰다.

“왜 그래?”

“……까먹었다.”

“뭘.”

“죽을 샀어야 하는데!”

정말 유난이 맞다.

* * *

편의점 죽은 맛이 없다며 결국 죽 전문점까지 걸어왔다.

“으음…… 소고기 야채죽이랑 소고기 버섯죽 중에 뭐가 맛있을까요?”

“둘 다 사.”

내 대답에 최승하가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하나만요.”

아, 하긴 돈이 없을 수도 있겠군.

통장 잔고를 확인한 후 마음이 지나치게 풍족해진 나는 멋지게 최승하의 어깨를 밀어냈다.

죽 정도야 뭐. 지금은 100그릇, 아니, 1,000그릇을 사재껴도 잔고에 티도 안 난다고.

“내가 살-”

“음, 좋았어! 소고기 야채죽이랑 삼계죽이랑 전복죽 이렇게 세 개 주세요.”

……그냥 다양하게 사고 싶었던 거였냐.

“주문하신 죽 나왔습니다!”

“감사합니다! 형 가요.”

여기서 숙소까지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다.

떠보기 좋은 타이밍이군.

지난번 연습실에서 한수현에게 떠보듯 물었지만, 제대로 된 답을 듣지 못했으니 말이다.

“연습 늦게까지 하더니, 몸이 상했나?”

실제로 한수현은 추가 연습을 자처하며 혼자 연습실에 남는 일이 허다했다.

18살짜리가 혼자 남는다고 하면 만류할 법도 한데, 다들 아무런 말도 얹지 않고 바로 고개나 끄덕이는 것에 매번 이상함을 느꼈다.

“누가 말려요…….”

원래 이렇게 한마디 툭, 던지면 최승하가 알아서 술술 부는데 이번엔 말이 없었다.

그저 한숨만 내쉴 뿐.

결국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한 채 숙소에 도착했다.

“어디 나갔다 오는 거야?”

한수현이 잠깐 쓰러졌다는 사실을 알려주자, 류인의 눈이 잠시 당황으로 물들었다가 이내 평정을 되찾았다.

“아, 그래서 누워 있는 거구나. ……안 깨우길 잘했다.”

“저희가 수현이 먹을 죽이랑 약 사 왔으니까 주고 올게요!”

“그래. 둘이 수고했네. 아, 배고프지? 오랜만에 뭐 좀 만들어볼까.”

주방으로 몸을 트는 류인의 어깨를 잡아 돌렸다.

“쉬어야지. 오늘은 시켜 먹자.”

오늘 같은 날에 안 쉬면 과로로 죽어 나가기 딱 좋다.

최승하는 곧바로 한수현의 방문을 열었다.

“형, 자나 본데요. 어떡하죠? 나갈까요?”

“아니, 약 먹이고 재워야지.”

“하긴, 그렇죠? 제가 깨울게요.”

“수, 와아아……! 깜짝 놀랐네. 언제 일어났어?”

“방금요.”

누워 있던 한수현이 나오려는 듯 바닥으로 발을 디뎠다.

“왜 일어나? 이불 덮고!”

하지만 그걸 두고 볼 리 없는 최승하가 한수현을 침대에 강제로 눕힌 뒤 이불을 덮어줬다.

‘……저걸 덮었다고 해도 되나?’

이놈들, 은근히 한수현을 만만해한단 말이지.

돌돌돌돌!

누에고치와 다를 바 없이 이벌에 칭칭 감긴 한수현은 당장에라도 한마디 하고픈 얼굴이었지만, 정성을 봐서 참는 눈치였다.

“밥도 먹고!”

한수현의 침대 위에 죽 그릇이 담긴 쟁반이 올려졌다.

“약이랑! 물도 마시고!”

그리고 생수병과 물컵을 가져오더니 물을 한가득 따라 약과 함께 쟁반에 올렸다.

“……감사합니다.”

최승하가 곧바로 특유의 능글맞은 얼굴로 대답했다.

“하핫! 뭘~ 푹 쉬어!”

끼이익-

탁!

한수현의 방문이 닫히자마자 최승하가 조용한 목소리로 귓속말을 걸어왔다.

“이제 치킨 시켜 먹어요.”

……와중에도 목적은 잃지 않는군.

그리고 양심껏 튀기지 않은 치킨을 시켰다.

내일도 사녹이 있는데, 얼굴이 부으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구운 치킨도 나트륨은 높겠지만, 튀긴 거보다는 낫겠지.

“튀긴 거 먹고 싶었는데.”

입을 삐죽이는 최승하에, 나는 싱긋 웃었다.

“그럼 우리 그냥 닭가슴살 돌려 먹을까?”

“형, 무슨 소리예요? 저는 원래 구운 치킨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데요. 잠깐만, 형 방금 피식했죠.”

“아니.”

“방금 웃었는데?”

“잘못 봤겠지. 오면 불러라.”

나는 시킨 음식이 오기 전까지 누워 있을 요량으로 방에 들어갔다.

이번 활동에서 라이트온은 나름 좋은 성적을 받고 있다.

찝찝하긴 하지만 밀리어스의 입김 덕에 TOP100 음원 차트에 든 후로 대중들의 취향에 맞았는지 비록 하위권이지만 차트 안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다.

게다가 여름이 다가올수록 한 계단씩 올라가는 기염마저 토하고 있다.

그리고 팬덤은 또 어떤가.

몇 달 전만 해도 스크롤 몇 번 내리면 며칠 전 트윗까지 다 볼 수 있었다.

망돌의 비참한 현실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내려도 내려도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언급량이 늘어났다.

‘조만간 또 컨텐츠를 찍어야겠군.’

지금은 활동기라 팬들 입장에서도 덕질하기 풍요롭다지만, 이럴 때도 뮤직비디오 리액션이나 안무 영상을 찍어 올려줘야 한다.

“음.”

사실 진작 올렸어야 했는데, 회사의 시스템도 제대로 안 갖춰져 있거니와 일정까지 무리하게 잡혔던 탓에 찍지 못했다.

아, 그리고 앨범 판매량도 꾸준히 늘고 있다.

사실 대중들은 음원만 듣지, 대부분 앨범까진 사지 않아서 앨범 판매량은 팬덤의 화력과 비례한다.

그래서 아이돌들의 성공 척도를 나눌 때 앨범 판매량이 중요한 역할을 하곤 한다.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왜 갑자기 더러운 미소를 짓는지 궁금해합니다!]

나는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입꼬리를 끌어당겼다.

* * *

그 시각, 서울의 한적한 카페의 사각지대.

곽덕배와 그녀의 친구들이 모여 있다.

그들이 하고 있는 건 다름 아닌…….

“하아, 자, 잠깐만……! 나 X나 열받아.”

“덕배야! 네가 참아!”

바로 앨범 언박싱이다.

앨범의 꽃은 포토 카드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을 거다.

앨범을 여러 장 사는 팬들에게, 포토 카드를 제외한 모든 것들은 그저 ‘지구야 미안해’일 뿐.

“여기 오타쿠 새끼 앨범깡하다가 뒷목 잡아요!”

“근데 진짜 김명훈 악마랑 계약한 거 아냐? 앨범 퀄 X나 좋은데?”

곽덕배는 곧장 아득한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포카, 포카가 너무, 너무 아름다워…… 하아, X발. 어떻게 포토 카드를 다 이렇게 개쩌는 걸로만 내냐고? 이러면 내가 모을 수밖에 없잖아. 진짜 상술 레전드다.”

“근데 넌 구려도 모을 거잖아.”

“혹시 말을 아끼는 게 수명을 늘리는 비법인 거 알아?”

그때, 앨범을 만지작거리던 곽덕배의 일행 중 한 명이 입을 열었다.

“근데 MH답지 않게 구성까지 괜찮은데? 포토 카드도 포토 카드인데 앨범에 들어간 컷들도 다 예쁘다. 얘는 이름이 뭐였더라? 진짜 귀엽네.”

그녀가 앨범의 한 페이지를 툭툭 건들며 묻자, 숨소리가 거칠어진 곽덕배가 곧장 대답했다.

“이쯤 되면 외울 법도 하지 않냐? 참고로 그 깜찍이는 수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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