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37화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때는 한 달 전쯤, 본격적으로 컴백 준비에 열을 올리고 있을 무렵이었다.
[MH 정재진 대리님 : 지금 혹시 연습실이신가요? 잠깐 전해 드릴 게 있어서 제가 거기로 가도 될는지요.]
음.
마침, 나도 할 말이 있는 참이다.
[아니요. 제가 가겠습니다.]
나는 곧바로 메시지를 전송하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컴백 준비에 실무진들도 정신없는 건 마찬가지인지 테이블에 서류 더미들이 엉망으로 흩어져 있었다.
나는 일부러 서류 쪽을 힐끔대며 입을 열었다.
“아, 이건……? 앨범 기획이 벌써 시작된 건가요?”
“아 이건 다른 거고, 앨범은 곧 기획될 겁니다.”
아마도 내가 앨범 퀄리티를 걱정한다고 생각하는지 이번에는 정말 자신 있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걸려들었군.’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상대방에게 안타까운 눈빛을 보냅니다!]
“포토 카드용 사진도 슬슬 보내 드려야겠네요.”
“네 그렇죠? 근데 당장 급한 건 아니니까 천천히 하세요.”
“한 장씩만 골라 보내면 되는 건가요?”
“예. 포카는 한 장씩 들어가니까요. 고르시기 힘드시면 여러 장 보내주세요! 저희도 뭐가 나을지 상의해 볼게요.”
“……이번엔 포토 카드를 2종 넣어보는 건 어떨까요.”
내가 이 짓을 당하는 이해성을 옆에서 안타깝게 본 적이 있었는데, 내가 이 짓을 하게 될 줄이야.
그리고 사실 포토 카드 2종 정도면 각종 상술이 판을 치는 이 바닥에서 그리 많은 게 아니긴 하다.
“아, 2종이요? 그런데 포토 카드 수량당 단가 때문에, 으음…….”
확실히 이 사람은 아이돌 기획을 맡았던 사람이라 그런지 이해가 빨랐다.
망돌은 부담스러운 단가 때문에 포토 카드를 여러 장 끼고 싶어도 못 낀다.
한 종류 100장을 제작하는 것과 두 종류를 각 50장씩 제작하는 것은 단가 차이가 어마어마하니까.
포토 카드 여러 버전 만들어서 뻔한 상술 부리는 것도 그만큼 많이 팔린다는 전제가 붙는 아이돌이여야 가능한 일이라는 뜻이다.
‘제발 터져라.’
지금부터 논리 없는 개소리를 할 예정이라 꼭 필요했다.
“제가 보기엔 이번 노래 정말 잘될 거 같은데, 2종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요?”
“잘될 것 같기야 합니다만…….”
“대리님도 요즈음 반응을 보셨나요? 저희도 체감될 정도로 팬분들이 늘어났더군요.”
“그럼요. 저희도 모니터링하면서 매번 놀라고 있습니다. 이게 다 여러분이 노력하신 덕분 아니겠-”
쯧, 아직인가.
쓸데없을 때는 그렇게 잘 터지더니.
나는 정재진의 말이 끝나기 직전, 아련한 얼굴을 걸치고 입을 열었다.
“요즘 포토 카드 2종은 기본이다 보니 사양을 보신 팬분들이 실망하시진 않으실까…… 조금 우려됩니다.”
띠링!
[……그런가?(B)]가 발동됩니다!
안 그래도 설득되기 직전이었던 정재진이 특성이 발동되기 무섭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긴 하죠. 솔직히 일종의 상술이지만 포토 카드 종류가 많을수록 판매량이 많아지는 것도 사실이니까요. 말씀대로 요즘은 2종이 디폴트 같은 느낌도 있고요.”
정말 예상외로 쓸모 있는 특성이 아닐 수 없다.
“대신, 가격을 합리적으로 구성하는 건 어떨까요? 그러면 자연스레 앨범 판매량도 많아져서 2종류의 포토 카드 발주 시에도 부담이 덜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여러 장 사도 부담이 없게끔 앨범 가격을 내려치자는 제안이다.
사실 성공 척도의 주요 지표가 되는 앨범 판매량은, 당연하게도 앨범 자체 가격이 저렴할수록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대형 소속사도 무언가 타이틀을 달고 싶으면 앨범을 아주 저렴하게 판매한다.
그럼 초동부터 판매량이 급격하게 뛰고, ‘신기록 갱신!’ 같은 타이틀이 자연스레 따라오기 때문이다.
“괜찮은 생각인 듯합니다. 제가 한번 회의를 거쳐보겠습니다.”
정재진의 말에 나는 곧바로 대답했다.
“저렴하면서도 팬들이 만족할 만한 구성을 해야 합니다.”
팬들 등쳐먹으려는 의도가 훤히 보이는 앨범은 사양이다.
이건 이해성의 오타쿠 자아 때문이 아닌, 온전히 내 생각.
* * *
한편, 성해온에게 착실하게 말려들고 있는 정재진은 생각했다.
‘……대체 뭐지?’
포토 카드까지야 아티스트가 사진을 직접 찍어야 하는 거니 그러려니 할 수 있다.
실제로 포카 속 사진이 고민된다며 회사에 선택을 맡기는 아티스트도 종종 있으니까.
하지만 지금 성해온은 팬싸 일정은 꼭 초동 집계 기간에 잡아야 한다며, 예판 기간에 잡히지 않도록 신경 써달라는 말을 하고 있다.
심지어 찰나에 사악하게 웃는 얼굴을 본 것 같기도…….
‘에이, 잘못 본 거겠지.’
정재진은 곧바로 고개를 털었다.
저렇게 슬픈 얼굴로 팬들과 멤버를 걱정하는 사람이 그럴 리 없으니까.
소속 아티스트는 원래 이런 거에 관심이 있을 필요도 없고, 있는 사람도 없다.
더 웃긴 건 그 어떤 실무진 못지않게, 아니, 오히려 그들보다 더 잘 알고 있다는 거다.
‘가족 중에 엔터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 게 분명하다!’
이쯤 되니 의심이 아니라 확신이다.
그 가족이 MH를 믿지 못하고 성해온에게 대신 말을 전하라고 하는 거겠지.
‘……내가 정말 잘해야겠다.’
첫 앨범을 생각하면 이렇게 걱정이 많은 게 백번 천번 이해된다.
나도 미친 듯이 답답했는데, 당사자 가족분은 어떠셨겠어? 울화통이 터졌겠지!
내가 가족이었으면 이딴 회사 가만 안 뒀다.
끄덕……!
정재진은 고개를 느리게 끄덕였다.
성해온 씨 가족분이 이번 앨범을 보고 만족할 수 있게끔 노력해야겠다.
자신이 짚은 게 모두 헛다리라는 사실을 알 리 없는 정재진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 * *
대충 이렇게 된 일이었다.
사실 시일이 꽤 걸릴 줄 알았는데, 곧장 회의에서 포토카드 종수 관련해서 긍정적인 컨펌이 났다고 연락이 와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
“음.”
그 정재진이라는 사람, 역시 쓸 만한 것 같단 말이지.
‘가끔 날 보는 눈빛이 묘하긴 하지만.’
금세 상념을 털어낸 나는 스크롤을 내렸다.
“……!!”
동공이 서서히 확장되는 게 느껴졌다.
‘……시세가 이 정도라고?’
마음을 가라앉힌 나는 시세를 파악했다.
“……흐음.”
저번 앨범에 수록된 포카의 시세와 비교했을 때 몇 배는 오른 가격이었다.
- 성해온 교복 포카 진짜 레전드다 시세 개비싸 해온이가 시세 왜 이리 오름?
└ 해온이 팬 많아졌자너 요즘 감긴 사람 꽤 많은 듯?
- 신유하 윙크 포토 카드 구합니다… 다른 멤버 포카와 교환도 가능합니다… 일단 찔러봐 주세요…
- 류인 눕 포카 가진 사람들을 시샘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미워하고… 분노하고… 분개하고… 절망하고… 아파하고…
- 해온이 이 포카 진짜 레전드
- 나 수현이 자석인가? 앨범 4개째 수현이만 나옴 승하랑 윤재 구합니다… 교환도 가능…ㅠ
멤버들 대부분이 처참한 셀카 실력을 가지고 있기에 이 포토 카드는 대부분 나의 눈물겨운 노력이 들어가 있다고 보면 된다.
정확한 지표인 판매량이 크게 늘어나자, 팬덤의 분위기도 화기애애했다.
포토 카드가 멤버별 2종이어도, 앨범 가격이 저렴해서 그런지 팬들 사이에서 큰 불만은 보이지 않았다.
뭐, 그리고 앨범이 저렴해서 이득이 적어지는 건 명훈이 손해고 당장 우리에게 중요한 건 성적이다.
이렇게 착실히 지표가 상승하면, 언젠가 망돌 꼬리표도 뗄 수 있겠지.
멍하니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배달시킨 음식이 도착했고, 자고 있는 한수현을 제외한 멤버들이 모였다.
‘활동 결과도 나왔겠다, 확인해 볼까.’
속으로 원하는 멤버의 상태창을 읊으니 곧장 눈앞에 떠올랐다.
먼저 차윤재는 59%, 마지막으로 확인했을 때보다 9% 감소했다.
‘저번부터 꾸준히 큰 폭으로 옅어지고 있다.’
나는 자연스럽게 신유하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
생각보다 신유하의 그림자가 많이 옅어졌다.
한결같이 음울한 분위기인데다가, 풀칠이라도 한 듯 입까지 다물고 있어서 솔직히 기대 안 했는데 의외였다.
49%로 위험 2단계에 머물러 있던 그림자 수치가 위험 1단계 영역인 38%로 내려간 것이다.
‘……이 정도 속도면.’
30% 이하로 내려가면 자동으로 소멸된다고 했으니, 고지가 멀지 않아 보였다.
한수현이 일어났나 확인해 본다는 핑계로 잠든 녀석의 방문을 열고 상태창을 불러냈다.
“……음.”
눈앞에 보이는 숫자는 40%였다.
애초에 45%로 그림자 수치가 가장 낮은 녀석이었다.
‘저번에도 겨우 3% 내려가더니, 이번에도 2%?’
가장 쉽게 없앨 수 있는 건 한수현의 그림자라고 자만했건만.
* * *
활동 3주 차의 시작이다.
오늘 사녹은 예정 시간보다 2시간이나 딜레이됐다.
방송국의 사정이라고는 하나, 길에서 밤을 꼴딱 새운 걸로 모자라 딜레이까지 겪은 팬들이 걱정됐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새벽부터 비까지 내렸는데…….
“여러분, 많이 기다리셨죠.”
내가 입을 열자 무대 아래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악-!”
내 옆에 선 차윤재가 입술을 잘근 씹더니,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응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최,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겠습니다!”
“……으, 응원법이, 들리면…… 힘이 납니다.”
……신유하까지?
“와아아아아아아아악-!”
공기에 흩날리는 것처럼 점차 작아지는 목소리였지만, 팬들에게는 확실히 전달되었는지 함성이 어마어마했다.
오늘 사녹은 신유하의 멘트 덕인지 인이어를 끼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응원법이 무척이나 크게 들려왔다.
이제는 몸에 익은 안무와 팬들의 목소리까지.
……음, 조금 짜릿한 기분이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무대에서 내려오자마자 그 기분은 잡쳐 버렸지만.
“누구 맘대로 멘트를 하세요? 하라고 한 적 없는데요.”
음. 잘못 걸렸군.
이 인간, 참고로 그 인간이다.
첫 사녹때 우리에게 눈치를 줬던 스태프.
사실 멘트라고 해봤자 무대 시작하기 전에 잠깐 2분 정도였다.
그리고 어차피 음향과 카메라 체크하느라 올라가자마자 무대를 시작할 수 있는 게 아니어서 그 정도는 방송국의 업무에도 지장 주지 않는다.
다른 아이돌보다 짧으면 짧았지, 절대 길게 하진 않았고 말이다.
그러니까 이건 그냥, 그래. 화풀이다.
만만한 망돌에게 내뱉는.
“그냥 시키는 무대만 하면 되는걸, 진짜 나는 이해가 안 되네.”
오늘 다른 그룹의 사녹도 연신 딜레이되고 있는 걸 봐서는, 윗대가리한테 깨지기라도 했나 보지.
“하여튼 간에, 또 이러기만 하세요. 그러면 다음번엔 본사녹 한 번만 하고 바로 내려오실 겁니다.”
오, 협박까지?
나는 놈을 빠르게 훑었다.
척 봐도 높은 위치는 아니다.
기껏해야 막내에서 갓 벗어난 느낌.
잘못한 것도 없고 부당한 말을 듣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게 빌빌 기는 것밖에 못 하는 현실이 마음에 안 든다.
“아무튼 다음부터 조심하겠다 하시니 특별히 이번만 넘어가 드립니다.”
스태프는 한숨을 깊게 내쉬며 등을 돌렸다.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저 인간이 싫은 거냐 묻습니다.]
그거야 당연히 싫…….
콰당탕탕!
내 생각은 끝을 맺지 못했다.
멀쩡하게 걷던 스태프가 평평하기 그지없는 방송국 바닥에서…… 마치 돌부리에 발이라도 걸린 것처럼 대자로 넘어진 것이다.
근처에 있던 우리는 그에게 다급하게 달려갔다.
얼마나 세게 넘어졌는지 코피가 양쪽으로 흐르고 있었다.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감사 인사는 됐다며 수줍어합니다.]
매니저는 입에 지퍼라도 채운 듯 다물고 있다가, 몸을 일으킨 스태프가 사라지자마자 입을 놀리기 시작했다.
“근데 형은 너네 언제 한번 이럴 줄 알았다. 다음부턴 그러지 마~ 그냥 무대만 깔끔하게 하라고.”
이런 상황이 있을 때 중재하라고 있는 게 매니저인데 정말이지 쓰잘데기없는 놈이라고 할 수 있다.
넘어지는 게 이쪽이었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밀려들어 왔다.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귀를 쫑긋 세웁니다!]
……운전해야 할 매니저가 다치면 곤란하다.
우리는 바로 다음 스케줄을 위해 밴에 올라탔다.
“저희 이제 어디로 가나요?”
“어~ 이제 샵 들렀다가, KBC로 가야 해.”
“……KBC요?”
“응~ 그 프로그램 알지? <연기의 신> 거기 스케줄 잡혔거든. 아이고, 내가 아침에 말을 안 해줬나? 내 정신 좀 봐. 어이고, 미안하다~”
[연기의 신]
알다마다, 일반인들 중에서 배우를 발굴해 낸다는 취지인데, 공중파 서바이벌답게 별 재미는 없으며 시청률도 망한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공중파’답게 구석탱이 게스트로라도 들어가고 싶은 연예인이 널리고 널렸는지 회차마다 얼굴도 모르겠는 연예인들을 잔뜩 모아놓고 리액션용 병풍으로 쓴다.
이름이 있는 연예인이 게스트로 나오면 고정 패널들이 소개를 해주지만, 그 이외는 얄짤없다.
“얘들아 공중파 좋지?”
너나 가.
“내가 힘~ 들게 잡아 온 스케줄이야!”
지랄한다…….
이 프로그램 패널은 ‘진짜 망돌’들도 얼마든지 출연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운 나쁘면 전체 샷만 찍힐 뿐, 리액션 단독 컷도 못 나오는 프로그램이니까.
백미러로 뒤를 바라보니 멤버들은 아직도 혼난 게 신경 쓰이는지 의기소침해져 있었다.
특히 신유하는 본인이 용기 내 멘트 친 날 혼난 데다가 협박까지 들었으니, 아마 더 자책을 하고 있는지 분위기가 우중충하다 못해 머리 위에 먹구름이 둥둥 떠다니고 있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기죽지 마.”
나는 신유하의 상체를 내빼 신유하의 어깨를 퍽퍽 두들겼다.
신유하의 눈이 잠시 커졌다가, ‘감사합니다’라는 아주 작은 목소리가 뒤이어 들려왔다.
내가 소중하게 다루고 있는 멘탈들을, 그 생기다 만 놈이 흐트려 놓다니.
굉장히 열받는다.
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