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79화
잠깐 이야기한다는 것치고, 너무 오래 걸린다.
역시 느낌이 좋지 않았다.
“쯧, 보내는 게 아니었는데.”
데리러 갈 요량으로 침대에서 일어났는데, 스마트폰이 반짝였다.
최승하가 보낸 메시지였다.
[ 최승하 : 형 유하 지금 왔는데 ]
아, 방금 들린 문소리가 신유하였던 모양이지.
[ 최승하 : 잠깐만 내려오실래요? ]
“음.”
나는 녀석의 부탁대로 자리를 피해주지 않았다.
오래된 목재 계단이 삐그덕대는 소리가 점차 가까워지더니 문이 열렸다.
그리고 보이는 건 혈색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창백한 얼굴이었다.
“너 괜찮아?”
내 말에, 괜찮은 척 고개를 끄덕인 신유하가 작게 웃었다.
“네, 괜찮다고 했잖, 아요. 정말 괜찮아요.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저, 촬영 때까지 잠깐만…… 눈 좀, 붙일게요.”
“……그래.”
침대에 누워 이불 속에 들어간 녀석을 응시한 나는 속으로 읊조렸다.
‘상태창.’
그리고 이내 할 말을 잃고야 말았다.
[신유하]
체력 C
정신력 D
비주얼 S-
노래 A-
춤 B+
※ 망돌의 그림자 수치 : 78%(*위험 4단계)
“…….”
미친 건가.
나는 내 시력을 의심하며 눈을 두어 번 정도 껌뻑였다.
이 녀석의 그림자 수치는 분명 60%로 위험 3단계에 안착해 있었다.
불과 한 시간 전만 해도 말이다.
‘허…….’
막막한 생각에 헛웃음이 나올 때쯤, 알림음이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다.
……아, X발.
나는 시선을 올리지 않은 채 마른 얼굴을 쓸어내렸다.
띠링!
띠링!
띠링!
“…….”
내가 시선을 피하며 메시지를 확인하지 않자, 엿 같은 띠링 소리가 사이렌처럼 연달아 울려 퍼졌다.
나는 고개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긴급! 그림자를 잠재워라!]
타깃의 그림자가 요동치고 있습니다!
망돌의 그림자가 비상사태에 도달하는 것을 막아주세요!
그림자가 70% 이내로 회복되면, 미션은 클리어됩니다!
타깃 - 신유하
제한 기간 - 30일
성공 시 ▶ 스탯 업 쿠폰 증정
실패 시 ▶ 랜덤 페널티
“……하하.”
작은 실소가 터져 나왔다.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라, 발걸음을 옮겼다.
‘바람, 바람을 쐬자.’
하지만 바깥까지도 도달하지 못했다.
계단 난간에서 멈춰 선 나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성해온의 자아는 어쨌든 나의 것이었다.
정신력 덕에 멘탈에 큰 타격이 없었으나, 그것과는 별개라는 뜻이다.
견고하게 쌓인 모래성이 서서히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나조차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나는 머리칼을 쓸어넘기며 턱을 괬다.
‘이딴 생각이나 할 때가 아니지.’
무르지도 못할 미션이라면, 해결해야 한다.
계단 난간에 등을 기댄 나는 오랜만에 시스템창 속 수치 가이드를 꺼내 살폈다.
[망돌의 그림자 수치 가이드]
: 수치가 30% 이하로 떨어진다면 그림자는 대상자에게서 자동으로 사라집니다!
- 31% ~ 40% 위험 1단계
- 41% ~ 50% 위험 2단계
- 51% ~ 70% 위험 3단계
- 71% ~ 80% 위험 4단계
- 81% ~ 비상사태
몇 번을 봐도 어이없군.
방금 뜬 미션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것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미션의 주 내용은, 신유하의 그림자가 비상사태에 도달하는 것을 막으라는 거다.
그리고 신유하의 현재 그림자 수치는, 78%.
그래, 3%만 더 오르면 미션 실패인 거다.
게다가 실패 시 페널티도 알려주지 않겠다는 건, 그냥 날 놀리겠다는 소리고.
게다가 기간이 겨우 한 달 남짓? 그 기간 동안 8%를 내려놓으라고?
“하하, 지랄.”
익숙하고도 X같은 행태에 신물이 올라올 지경이었다.
“저희 20분 뒤에 야외에서 촬영이 있습니다! 준비 마쳐주세요!”
“아, 네. 알겠습니다.”
나는 2층 난간에 상체를 기대 아래층을 바라보았다.
스태프와 류인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 와중에 촬영이라…….”
신유하가 걱정된다만, 책임감 있는 녀석이니 알아서 나올 거다.
오늘은 프로그램 본방송이 진행되는 날인데, 다 같이 모여 시청하는 모습을 찍는다나.
‘정말 별걸 다 하는군.’
그리고 우리의 무대는 다음 주 방송분에 나올 예정이기에 그냥 리액션이나 해주면 될 일이다.
물론 지금 욕을 대차게 먹고 있지만 말이다.
오늘 Nnet의 공식 유O브에 3화 선공개 영상이 올라왔다.
선공개 영상의 주된 내용은 1차 경연의 현장 팬 투표 결과가 나오는 부분, 아까 잠깐 보니 출연진들의 경악 섞인 표정들을 잘도 편집해 놨더라고.
물론 우리가 현장 투표 1위의 주인공이라는 건 나오지 않았다.
그룹명 부분에서 <삐-> 처리가 들어갔거든.
하지만 2차 경연 무대 녹화에서 MC가 현장 팬 투표 1위가 우리라는 말을 흘렸었고, 그에 대한 이야기가 커뮤니티에서 진작 퍼졌었기 때문에 팬덤들은 경악했다.
- 라이트온이 현장 투표 1위였음? 안 믿고 있었는데 진짜임?
└ 진짜인 듯ㅋㅋㅋㅋ 편집 분위기상
- 설마 설마 했는데 진짜네 ㅅㅂ 믿을 수가 없음
- 고백합니다… 저도 견제표로 그들을 뽑았습니다… 미안합니다…
- 씹ㅋㅋㅋㅋ개어이없어 진짜 쟤네 때문에 볼 맛 안 남 짜증 나
- 견제표로 들어간 건 맞는 것 같은데 솔직히 ㄹㅇㅌㅇ 무대 잘하지 않음? 내 기준 상위권이었는데
└ 솔직히 맞음 잘했는데 괜히 민망하니까 지랄하는 듯ㅋㅋㅋ
팬덤 분위기가 처져 있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팬들은 이런 험악한 분위기를 그닥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 이럴 줄 알았음 진짜 제일 잘했다니까?!?!
- 왜요? 제가 1위 한 그룹 팬처럼 보이세요? ㅋㅋ
- 라이트온은 신이다
타 팬덤에서 오는 조롱과 비난을 모를 리 없으나, 1차 경연에서 우리 무대가 좋았던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에 눈치 보지 않고 즐기는 듯했다.
“형 같이 가요! 왜 이렇게 혼자 가요!”
최승하가 내 뒤를 따라오며 내 어깨에 팔을 걸쳤다.
“유하는 금방 나온대요.”
“관심 없어.”
“에헤이~ 거짓말~ 얼굴에 근심 걱정이 있는데~”
“네가 떨어지면 괜찮아질 것 같은데.”
내가 장난조로 대꾸하자 최승하가 하핫, 웃으며 내 어깨에 얼굴을 기댔다.
“사실은, 아까 유하 상태가 너무 안 좋아 보이더라고요. 딱히 형이라서 그런 말을 한 게 아니라, 룸메이트가 누구였어도 그랬을 거예요. 그럴 땐 혼자 있는 게 낫잖아요?”
타인의 입에서 처음 듣는 신유하의 이야기에, 더 해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 됐든 이 녀석은 나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을 테니까.
“으음…… 유하는 무슨 고민이 있어도, 혼자 삭이거든요. 절대 말을 안 해요. 저라고 안 물어봤을까요. 옆에서 지켜보니까…… 이럴 땐 그냥 혼자 두는 게 맞더라고요.”
최승하가 흠, 소리를 내며 미간을 약간 좁혔다.
“남이 있으면, 오히려 괜찮은 척을 해. 혼자 있으면 울기라도 하지 않겠어요? 눈물이라도 흘리면 좀 나아지잖아요. 사람이? 으하핫.”
나는 발걸음을 돌연 멈추고, 녀석을 바라봤다.
“내가 그런 거 신경 쓸 거 같냐.”
“으음, 그렇진 않죠?”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아무래도 신경을 쓰는 것 같다고 말을 얹습니다!]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동의합니다!]
“…….”
정말 신경 쓰지 않는다.
그저 신유하의 그림자가 골치 아플 뿐, 이 녀석들이 이러는 것도 이해되니까.
성해온의 기억이 없는 입장으로서 과거의 전적을 알 방도는 없으나, 인성이 똑바로 생겨먹지 않았다는 건 잘 알고 있다.
신유하같이 멘탈이 유약한 놈을 오래도록 지켜본 다른 놈들 입장에서야 불안할 수밖에.
야외엔 캠핑 의자가 수십 개 놓여 있었고, 그 앞에 거대한 스크린과 빔프로젝터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캠프파이어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모닥불까지.
나는 지정된 자리에 앉으며 주변을 힐끗 둘러봤다.
음, 다행히 신유하는 류인과 함께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바짝 말린 우거지 같은 안색이었으나, 촬영을 펑크내지 않은 것만으로도 어딘가.
그리고 곧 스크린에 영상이 나오기 시작했고, 나는 화면에 시선을 집중했다.
예상대로 처음부터 현장 팬 투표 결과가 나왔다.
“와하~ 근데 라이트온 무대가 진짜 좋긴 했지~?”
가장 고참인 스피디의 리더, 클락션이 이런 멘트를 치자 다른 출연진들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아~~ 맞아요. 무대 진짜 좋았죠.”
“대단했어요. 계단에서 훅! 하고 떨어지는 거 으으, 보통 담력으로 못하죠. 그거.”
멤버들은 칭찬이 부끄러운지 잔뜩 삐그덕대고 있었다.
‘음, 신인에겐 이런 면모가 호감이긴 하지.’
나도 다른 녀석들을 따라 밋밋했던 낯에 수줍음을 더해 웃었다.
아직 무척이나 비즈니스적 분위기로 라이트온 무대의 칭찬을 이어가고 있었다.
특히 트웰브와 러쉬 쪽 몇 멤버는 표정 관리도 제대로 못 하면서 클락션의 말에 억지로 호응을 하고 있었는데, 그 꼴이 꽤 볼만했다.
나는 눈을 굴려 클락션을 바라봤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우리에게 호감을 갖고 있는 듯하다.
내가 무대 순서를 데뷔 연차순으로 정해 버리면서, 자연스럽게 스피디가 5번째 무대를 차지했는데 그게 고마웠던 건가.
뒤이어 러쉬와 신유하의 대화 장면이 제대로 나왔다.
‘편집으로 잘릴까 걱정했는데, 다행이군.’
저 때 신유하가 표정 관리를 꽤 잘했던데다가, 러쉬 쪽에서 먼저 친한 친구라는 듯이 운운했으니 논란이 조금은 줄어들리라.
스윽-
나는 스크린으로 시선을 옮겼다.
연차순으로 순서를 정했기 때문에, 우리 다음으로 데뷔가 최근이었던 러쉬가 첫 번째 무대의 막을 열었다.
나는 옆에 앉은 신유하의 귀에 속삭였다.
“호응은 안 해도 되니까, 눈만 크게 뜨고 화면 바라봐. 박수도 좀 쳐주면 좋고.”
내 말에 잠시 놀란 듯한 얼굴을 한 신유하가, 이내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당장 표정 관리를 하는 것도 힘들겠지만, 까딱 잘못해서 악편 들어가면 더 힘들어지는 건 다름 아닌 신유하다.
점점 집요하게 러쉬와 신유하로 편집 구도를 잡으려 드니, 매사 신중하고 조심스러워야 한다.
여론은 항상 강자의 편이기 때문에.
‘무슨 상황이든, 우리에게 불리할 게 뻔하지.’
나는 다시 화면에 집중하며 두 손을 곱게 모았다.
‘감동받은 척해야지.’
주변에 앉은 멤버들이 놀란 눈초리를 보내는 게 보였으나 나는 그 시선을 익숙하게 외면했다.
“태오 잘생겼다~”
러쉬와 친분이 있어 보이는 올타임의 멤버가 이런 멘트를 치자, 태오가 쑥스러운 듯 웃으며 겸손한 척을 했다.
저 새끼의 인성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굉장히 역겨웠으나,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하는 척을 했다.
러쉬의 무대는 솔직히 훌륭했다.
실력도 실력이고, 대형답게 자본력이 어마어마해 보였지.
은 매 경연 여섯 팀이 무대를 펼치고 한 주에 3그룹씩, 총 2주에 걸쳐 송출된다.
오늘 나오는 무대는 러쉬, 올타임, 그리고 트웰브였다.
각 무대가 나오기 전엔 각 그룹의 연습 장면이 나오는데, 트웰브의 연습 장면이 끝나고 갑자기 화면이 바뀌더니 익숙한 건물이 나왔다.
……아, 저게 지금 나오는 건가.
바로 되지도 않는 <친해지길 바래>의 연장선 촬영을 진행했던, 루프탑 카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