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103화
오늘은 이른 시간에 숙소에 들어왔다.
그래봤자 10시가 다 되어가지만, 이 정도면 일찍 들어온 편이다.
중간에 유닛 무대가 추가된 덕에, 2주 남짓이었던 퍼포먼스 준비 기간이 3주가량으로 늘어났거든.
‘상태창.’
[성해온]
체력 B-
정신력 S+
비주얼 B+
노래 A
춤 B-
특성
▶[K팝 망령의 눈(A)]
▶[……그런가?(B)]
진행 중인 미션
▶긴급! 그림자를 잠재워라!
▶망돌의 그림자를 없애라!
▶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보유 골드 5,100G
미션 하나를 눈짓으로 누르자, 세부적인 내용이 둥실 떠올랐다.
[긴급! 그림자를 잠재워라!]
타깃의 그림자가 요동치고 있습니다!
망돌의 그림자가 비상사태에 도달하는 것을 막아주세요!
그림자가 70% 이내로 회복되면, 미션은 클리어됩니다!
타깃 - 신유하
제한 기간 – 1일
성공 시 ▶ 스탯 업 쿠폰 증정
실패 시 ▶ 랜덤 페널티
그래, 딱 하루 남았다.
미션 실패 말이다.
나는 수십 번은 족히 읽은 것 같은 아이템 하나를 익숙하게 찾아냈다.
[그림자 지우개]
: 드리워진 그림자를 일시적으로 흐릿하게 만듭니다!
▲ 365일 지속 후 자동 소멸
일전엔 제대로 판단하지 못했지만,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
우선 이건 기한이 정해져 있는 아이템이다.
기간이 지나 아이템이 소멸하면, ……신유하에게는 아무런 리스크가 없을까?
게다가 그림자가 얼마나 옅어질지, 객관적인 수치가 없다.
만일 사용하고도, 70% 밑으로 떨어뜨리지 못한다면?
머릿속이 복잡했다.
내가 이 아이템을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실패 페널티를 맞는다면 어떻게 될까.
쓰러지면서 느꼈던 건, 나는 저들의 유희 혹은 목적에 필요한 패라는 것.
‘죽지는 않는다.’
저번처럼 쓰러지는 것? 아니면 사고?
하루 이틀만 아픈 거라면, 어디 골방에라도 틀어박혀서 혼자 앓다가 깨어나면 될 일이지만 그 이상이라면 곤란하다.
‘……무대에 차질이 생겨.’
“음.”
그때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몸이 굳을 정도로 내가 겪었던 고통은 생각보다 엄청났다.
사실 이건 고민할 문제가 아니다.
평소의 나였으면 망설임 없이 곧바로 신유하에게 저 아이템을 적용시켰을 거라고.
오히려 4,000G나 되는 아이템을 사용하는 걸 아까워하기만 했을 거다.
그새 정이라도 든 건가?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지.’
……이 녀석들이 뭐라고.
[구매가 완료되었습니다!]
[아이템을 적용시킬 대상자를 선택해 주세요!]
‘신유하.’
[적용 완료!]
“…….”
된 건가?
나는 곧장 신유하의 방문을 벌컥 열었다.
“어, 해온아.”
옷을 갈아입고 있던 류인이 윗옷을 금세 걸치고 말을 이었다.
“무슨 일이야?”
“아, 배고프지 않은가 해서.”
나는 입 밖으로 아무 말이나 내뱉으며 침대에 누워 있는 신유하를 곁눈질로 응시하며 상태창을 불렀다.
“……!”
[신유하]
체력 C
정신력 C-
비주얼 S-
노래 A-
춤 B+
※ 망돌의 그림자 수치 : 50%(*위험 2단계)
맙소사.
비상사태가 되기 직전이었던 놈의 그림자 수치가 무려 29%나 하락했다.
게다가 이 녀석 정신력 스탯, 분명 D였다.
‘두 단계나…….’
나는 메마른 얼굴을 쓸어내렸다.
인위적인 힘으로 옅어진 그림자가, ……신유하 자체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건가.
* * *
“음.”
[스탯 업 쿠폰]
: 원하는 스탯에 투자하세요!
등급이 한 단계 상승합니다!
어제 신유하에게 아이템을 적용함과 동시에 미션 클리어 알림이 떠올랐었다.
그리고 이건 그때 받은 보상.
내가 골드 상점에서 봤던 스탯 업 쿠폰은, 3,000G나 하는 주제에 확률이 60%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건 확률에 대한 경고가 없는 걸 보니, 아마 100%의 확률이라는 거겠지.
‘양심은 있군.’
미션 클리어 보상인 만큼 확실한 걸로 준 모양.
[적용시킬 스탯을 선택해 주세요!]
체력 ◀
정신력
비주얼
노래
춤
음, 이건 고민할 것도 없지.
선택과 동시에 알림이 연속적으로 떠올랐다.
[비주얼 스탯을 선택하셨습니다!]
자고로 아이돌은 첫째도 얼굴, 둘째도 얼굴이다.
[해당 스탯의 업그레이드가 진행됩니다!]
지루하게 앉아서 기다리던 와중에, 새하얀 빛이 터져 나왔다.
파아앗-
[완료!]
“음.”
곧장 상태창을 확인해 본 결과, 비주얼 스탯이 B+에서 A-로 확실히 높아졌다.
나는 고개를 돌려 연습실 벽면에 붙은 거울을 바라봤다.
‘……잘 모르겠는데.’
과로로 푸석하던 피부에 윤기가 흐르는 것 같은 느낌 빼고는 다른 걸 못 느끼겠다.
그리고 티가 나는 쪽은 따로 있다.
바로 저 녀석.
“……이렇게 하는 게 맞, 을까요.”
매일같이 삶은 시금치처럼 축축 처져 있던 신유하가 오늘은 스스로 배움을 자처하고 있었다.
류인도 굉장히 떨떠름한 낯으로 안무 디테일을 알려주고 있었다.
“아, 이제 알겠어요. ……감사합니다!”
다른 멤버들도 오늘따라 눈에 띄게 활기찬 신유하가 놀라운지 크게 티는 안 내도 힐끔힐끔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 강찬혁이 편곡한 노래가 도착했다.
RUSH의 데뷔곡 .
원곡은 유니크함이 가미된 이지리스닝 곡이다.
INT에서 작정하고 대중들의 입맛에 딱 맞을 노래를 뽑아낸 거라, 이건 발매되자마자 음원 차트 상위권 랭크는 물론 음악 방송 1위까지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데뷔부터 러쉬에게 ‘슈퍼루키’라는 칭호를 붙여줌과 동시에 승승장구의 가도에 올려준 곡이라고 할 수 있지.
쯧, 재수 없는 놈들.
이제 편곡된 곡까지 나왔으니 파트를 나누고 본격적인 연습에 돌입해야 할 시간이다.
사실 편곡이 완성되기 전부터 컨셉을 들은 구희승이 어느 정도 안무의 큰 틀을 대강 정해놓은 상태여서 안무 연습을 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체계를 상실한 수준이지만, 준비 시간이 매우 촉박한 서바이벌 프로그램 특성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드르륵-
때마침 구희승까지 연습실에 도착했다.
“음? 오늘 뭔가 분위기가 좋다?”
싸운 두 놈이 화해했고, 뭣보다 먹구름과 비바람을 얼굴로 몰고 다니던 신유하가 저렇게 됐으니 구희승이 색다름을 느끼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나는 멤버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제 편곡된 것도 도착했으니까, 파트 짤까.”
“오호~ 나도 들어보자. 안무 뺄 건 빼고, 추가할 건 해야지.”
터억-
구희승이 내 어깨에 팔을 올리며 웃었다.
“에~ 해온아, 얼굴에 좀 불만이 득실거리는 것 같은데?”
“착각이십니다.”
쓸데없이 예리하군…….
“아무리 봐도 착각이 아닌-”
“제가 노래 연결할게요!”
타이밍 좋게 구희승의 말을 자른 최승하가 연결한 스피커에서 편곡된 곡이 흘러나오자, 모두가 눈을 크게 떴다.
“와~ 잠깐만, 노래 너무 좋은데요?”
“그러게.”
“이, 이렇게 편곡될 거라곤 생각도 못 했습니다!”
“저도 마음에 들어요.”
최승하를 시작으로 류인, 차윤재, 한수현의 감탄 섞인 호평이 쏟아져나왔다.
신유하는 그저 장단에 맞춰 조용히 고개만 끄덕일 뿐, 조용했다.
‘흐음.’
“아하~ 노래가 완전 예상이랑 다르게 편곡됐네? 전체적으로 완전 손봐야겠다. 아이고.”
구희승이 아득한 얼굴로 마른세수를 했다.
나는 시선을 바로 한 채 입을 열었다.
“우선 이 부분, 센터 파트지?”
내 물음에 류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이번 곡은 센터가 좀 두드러질 것 같은데.”
다들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명확한 의견을 내보이진 않았다.
“나는 이번 센터, 유하가 했으면 하는데.”
“……!!”
내 발언이 어지간히 갑작스러운지 다들 놀란 얼굴로 눈을 홉 떴다.
특히 신유하, 안 그래도 허여멀건 한 낯짝이 더 창백해졌다.
“……저, 저는, 센터까진 무리-”
나는 눈을 도록 굴려 신유하와 정면으로 눈을 마주쳤다.
“이번 편곡은 보컬 비중이 많아. 센터라고 해도, 파트는 나랑 비등할 테니까 부담 갖지 마. 게다가…….”
“…….”
“이 곡, 너한테 잘 어울리는데?”
“확실히…….”
입을 열려던 차윤재가 멈칫했다.
이 녀석들도 신유하와 러쉬의 관계를 알고 있기에, 곧바로 의견을 내기는 어려운 것이다.
당사자부터가 백지장처럼 희게 질려 있으니까 말이다.
그 순간, 입을 연 건 의외의 인물이었다.
“끼어들어서 미안한데, 나도 같은 생각이네? 너희가 준 컨셉서 보고 편곡까지 들으니 안무를 어떻게 짤지 느낌이 팍! 왔는데~ 이건 이놈이 센터 서야 할 것 같거든.”
나이스, 구희승.
생각지도 않았던 구희승이 지원사격을 해왔다.
“……사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제가 봐도 유하 형님이…….”
“같은 생각입니다.”
“나도 센터를 정하자면, 음. 유하가 어울릴 것 같은데.”
차윤재를 시작으로 한수현과 류인까지, 긍정적인 대답이 이어졌다.
서바이벌 프로그램, 그러니까 연습생들을 대상으로 한 서바이벌에선 어떻게든 센터에 서려고 발악했겠지만 우린 이미 그룹이다.
이 녀석들도 다 센터 서고 싶을 거다.
단지 조금이라도 나아질 결과물을 위해 양보하는 거겠지.
그때, 최승하가 입을 열었다.
“으음~ 못 당하겠다. 저는 유하가 좋다면 대찬성이에요. 솔직히, 잘 어울릴 것 같거든요!”
말을 마친 녀석이 내 팔에 달라붙었다.
“우리 형은 못하는 게 뭘까? 전 사실 곡 정할 때만 해도 러쉬, 별로였거든요. 선택지가 여러 갠데 모험할 필요는 없잖아요? 근데, 이유를 알겠어요. 왜 형이 그걸 선택했는지.”
나는 피식 웃으며 최승하를 탈탈 털어냈다.
매정하다며 왁왁대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한 귀로 흘린 나는 신유하를 응시했다.
“어때?”
“…….”
길고 긴 침묵이 흘렀고, 마침내 신유하의 입이 열렸다.
“……해볼게요.”
이래야지.
나는 입꼬리를 끌어당겨 웃었다.
“……!!”
멤버들 역시 신유하의 이런 반응은 예상하지 못했는지, 적잖이 놀란 기색이 스친 면면이었다.
여러 쌍의 시선이 신유하에게 모였다.
무언가 결심한 얼굴의 녀석이, 조용히 숨을 들이마시더니 평소와는 다른 단단하고 흔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할게요.”
“그래. 이건 네가 해야지.”
아마 또 예상치 못한 경우의 수가 벌어지지 않고서야, 이걸 신유하만큼 잘 소화해 낼 사람은 없을 거다.
컨셉이나 분위기가 신유하에게 어울린다는 뻔한 소리가 아니다.
내가 본 과거에서 INT 연습생, 신유하는 이미 데뷔조에 들어 있었다.
‘애초에 이 곡은 신유하를 위한 곡이거든.’
RUSH의 데뷔 타이틀 의 오리지널 센터가 신유하였다는 뜻이다.
신유하가 회사를 나가면서 다른 놈들이 파트를 나눠 가진 것 같다만, 원래는 신유하의 비중이 어마어마한 곡이었다.
이놈에게 지독한 열등감을 품고 있는 러쉬 놈들이 얼마나 멍청한 얼굴을 할지 벌써 기대되는군.
히죽…….
손으로 얼굴을 가린 나는 입꼬리를 끌어당겼다.
[……수식언을 공개하지 않은 한 성좌가 당신에게 미약한 호감을 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