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126화
여기서 눈물이라도 한 방울 나와주면 최곤데, 성해온의 안구는 그저 건조하기만 했다.
대충 고개를 치켜올린 나는 일부러 말을 드문드문 이었다.
“정말 그럴까요…….”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질색합니다!]
“그럼! 나 김명훈이, 이름 석 자를 걸고 맹세하지! 너희들은 아주 열심이었어!”
“저, 저도 보잘것없지만 맹세하겠습니다! 남들은 이렇게 단숨에 화제성과 인지도를 끌어오지 못했을 겁니다! 라이트온 분들이 노력하셨기에 가능했던……!”
……흠.
이쯤이면 될까?
나는 숙인 채로 표정을 다시 한번 점검하고 고개를 들었다.
“아니요, 저희가 부족한 게 맞습니다. 저희 모두 그렇게 생각하거든요. 그렇지?”
스윽-
대표와 정재진 쪽엔 보이지 않게끔 살짝 고개를 돌려 멤버들에게 시선을 보내자, 곧바로 대답들이 터져 나왔다.
“……예? 예! 부, 부족한 게 맞습니다!”
“해온이 말이 맞습니다.”
“저도 아직은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하핫!”
“당연히 한참 멀었죠. 1위 한 것도 아닌데.”
“……네.”
아주 기특하군.
다시 시선을 돌려 말간 얼굴로 명훈이와 눈이 마주치자, 측은한 시선이 직통으로 닿았다.
의도한 거라지만, 은근히 열받는군.
“저희를 믿어주신다면, 다음 앨범엔 대표님이 만족하실 만한 가시적인 성과를 들고 오겠습니다.”
“……그 말은, 바로 컴백 준비를 하고 싶단 말이냐.”
“아, 해온 씨. 지금 저희도 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회사 사정상 아무래도 겨울쯤에…….”
사실 한 달 쯤은 실컷 쉴 생각이었지만, 컴백이라는 계획이 없다면 당장 전국 팔도 행사나 뺑뺑이 돌려질 미래가 훤히 내다보였다.
‘내 휴식…….’
빌어먹을 망돌.
나는 누가 말을 끊기라도 할세라 빠른 속도로 말을 이었다.
“대표님, 저희 이번에 반응이 제대로 오고 있는 건 아마 보고받으셨을 겁니다.”
“그, 그렇지.”
“해외 쪽으로는 아직 발을 뻗지 않아, 글로벌 파이가 전무하다시피 한 상태에서 3위를 했다는 건 제 입으로 말하기는 민망합니다만 엄청난 결과입니다. 국내 득표수로만 따지자면 2위 팀인 트웰브를 앞질렀다는 거니까요.”
여기서 명훈이가 혹할 만한 키워드를 던져주자.
나는 진지함이 깃든 얼굴로 말을 이었다.
“BK, 3대 기획사에 속하는 그곳 출신인 트웰브를 국내에서 압도했다는 겁니다.”
예상대로 대표가 걸려들었다.
“B, BK?”
과시하길 좋아하는 성격상, 자신의 아래에 있는 그룹이 대형 기획사를 앞질렀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고양감을 느낄 거다.
물론 트웰브는 마약 논란으로 국내 팬덤 상태가 엉망인 데다가, 무대까지 굉장히 별로였지만.
심지어 ‘마약’이라는 범죄에 관련된 키워드로 인해 대중들의 인식이 좋지 않았다.
그 큰 논란 속에서도 팬덤의 규모가 거대했으니 2위라는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거다.
한마디로, 명훈이를 자극하기 위해 BK와 트웰브를 언급했으나, 사실상 라이트온은 그들에게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게다가 의외로 첫 번째 무대를 임팩트 있게 소화한 탓에, 팬덤에 속하지 않은 시청자들의 덕을 많이 보기도 했고.
하지만 이것들은 구태여 덧붙이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에서 저희의 인지도는 형편없었습니다. 하지만 대중들에게 이미지를 각인시킨 지금 최대한 서둘러야 합니다. 올해 말도 얼마 남지 않았다지만, 저는 한시가 급하다고 생각합니다.”
대표는 내 말을 경청하며 고개를 느리게 끄덕였다.
“행사도 물론 좋지만, 저희의 위치는 아마 추후 발매될 곡의 성적으로 정해질 겁니다.”
“……허어.”
“지금 이렇게 낮은 단가로 섭외가 들어오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화제성 넘치는 프로그램에 출연만 했을 뿐, 객관적인 지표로 보자면 아직은 형편없는 아이돌이기 때문이죠.”
타앗-!
그 순간, 허공에서 나와 대표의 시선이 만났다.
“화제성과 인지도가 동시에 생긴 지금, 허락해 주신다면…….”
명훈이를 가장 혹하게 할 단어는 무엇일까.
역시 이거다.
“저희의 몸값을 올려보겠습니다.”
“……!!”
지금 들어온 섭외 단가를 세 배는 올려놓겠다는 당찬 다짐에 명훈이의 얼굴이 잔뜩 씰룩였다가, 이내 차분해졌다.
“크흠! 큼, 크흠.”
명훈이의 헛기침과 동시에 알림이 울렸다.
[……그런가?(B)]가 발동됩니다!
역시 설득당하고 있던 모양.
“흐흥, ……일리가 있구나!”
……급한 불은 껐군.
* * *
껌뻑.
귀가 따가울 정도의 띠링 소리와 함께 계속해서 떠오르는 메시지창에 나는 눈을 무거운 눈을 느릿하게 껌뻑였다.
[특급 퀘스트의 정산이 진행됩니다!]
[Loading…….]
‘……아.’
기간도 물음표처리 되어 있던 거라, 반쯤 잊고 있던 퀘스트 하나가 있었다.
나는 곧장 퀘스트창을 불러냈다.
[스타성을 입증하라]
모두의 시선을 이끌고 주목을 받는 것!
그게 스타성의 첫걸음이 아닐까요?
이곳에 있는 인간들을 라이트온에 입덕시켜 보세요!
(※ 기존 팬은 카운팅되지 않습니다!)
기간 - ???
달성 보상 ▶ 변심한 팬의 수에 따라 변동
이 퀘스트 말이다.
2차 경연 즈음에 받은 거라, 꽤 오래된 퀘스트다.
갑작스럽게 정산 관련 알림이 울리는 걸 보면, 기간은 아마 파이널 무대까지였던 모양.
“……음.”
솔직히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
그때 그 현장에 있던 팬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었으니, 아마 250명 남짓…….
심지어 그 인원은 전부 라이트팬이 아닌 헤비팬에 가까울 테니 애정이 쉽게 변할 리 없다.
‘많아봐야 5명?’
각 팬덤당 한 명쯤은 변심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어지로울 정도로 갱신되고 있는 창을 바라봤다.
[387개의 데이터 분석을 시작합니다!]
“……!”
우리 쪽 팬덤을 제외하면 최대 250명이었을 텐데?
‘스튜디오 내에 있던 스태프들까지 포함된 건가.’
[데이터 분석 진행 중 (34/387)]
눈으로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숫자가 무섭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데이터 분석 진행 중 (386/387)]
[Loading…….]
[분석 완료!]
“……!!”
이내 내 동공이 천천히 확장되는 게 느껴졌다.
눈앞에 이런 메시지창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대상에 적합한 데이터는 27개입니다!]
[Loading…….]
[퀘스트의 달성 보성이 책정됩니다!]
사실 5명도 힘들 거라고 생각했는데, ……27명?
‘믿기지 않는 숫자다.’
하지만 더 믿기지 않는 건 내 눈앞에 나타난 이 정신 나간 기계다.
나는 안광이 사라져 버린 눈으로 그것을 바라봤다.
[띠리링! 띠링! 띠리링! 띠리링! 띠리링! 띠링! 띠링! 버튼을 눌러주세요! 띠링! 띠리링!]
참고로 이 새끼, [……그런가?(B)]를 뽑았을 때, 보았던 그 기계다.
‘……보상이 특성 뽑기인 건가?’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마침 새로운 특성을 뽑고 싶었던 참이었다.
‘쓸 만한게 나왔으면 좋겠는데.’
잠시 멈칫한 나는 손을 들어 올렸다.
[띠링! 띠리링! 버튼을 눌러주세요! 띠링! 띠리링!]
“……제발 조용히 좀 해.”
지금 시각은 새벽.
룸메이트인 최승하는 자고 있다.
물론 이 정신 나간 사운드는 내게만 들릴 테지만…….
[띠리-!]
정신 나간 기계가 더 떠들기 전에 나는 버튼을 눌렀다.
버튼을 누르기 무섭게 기계가 또 벼락을 맞은 듯 덜그덕 소리를 내며 진동했다.
‘이미 본 광경인데도 아주 새롭군…….’
나까지 미친놈이 된 기분이다.
파아아아앗-!
이내 새하얀 빛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이전에 보았던 건 조금 더 노란 빛이었는데, 그보다 더 환하고 눈이 멀어버릴 것 같은 빛이었다.
나는 기대감이 깃든 얼굴로 눈을 껌뻑였다.
‘27명이면 기대를 훨씬 웃돈 수치니까…….’
게다가 이 화사한 이펙트.
이건 무조건 좋은 게 틀림 없다.
“……흠.”
나는 올라가려는 얼굴 근육을 필사적으로 컨트롤하며 곧 등장할 특성을 기다렸다.
[축하합니다!]
[불면은 나의 힘(A)] 획득!
“…….”
벌떡!
특성명을 보자마자 침대에서 일어난 나는 기계를 향해 터벅터벅 걸어갔다.
[……띠링! 띠리링!]
뿜어내는 빛이 조금씩 사그라들고 있던 기계가, 내가 지척에 서자 순식간에 사라졌다.
역시나 맞기 싫어서 도망간 게 틀림 없었다.
‘다음엔 보자마자 한 대 치고 시작해야겠어…….’
고개를 끄덕인 나는 특성을 살폈다.
[불면은 나의 힘(A)]
: 활성화되는 동안은 수면을 요하지 않습니다!
▲ 피로도 20% 감소
▲ 장기간 사용은 부작용을 유발합니다.
“음.”
나는 특성을 살펴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나쁘지 않은 특성이다.’
사람 열받게 하는 이름과 다르게 알맹이는 꽤 요긴하다.
활성화되는 동안 피로도가 20%나 감소한다니.
게다가 매일 피곤에 찌들어 당장 침대에 드러눕고 싶음을 느끼고 있던 터라, 극악의 스케줄을 달릴 때 사용하면 좋을 특성임이 확실하다.
스윽-
나는 침대맡에 올려둔 스마트폰 화면을 켰다.
현재 시각은 새벽 4시 25분.
내가 지금 일어나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난데없이 귓가에 다이렉트로 울리는 띠링 소리에 깨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시간개념이 없어…….’
나는 속으로 혀를 찼다.
아무리 정산이 완료되었어도, 사람이 자고 있는데 알림을 미친 듯이 울려대는 게 말이 되냐고.
‘안 그래도 피곤해 죽겠는데.’
나는 마른 얼굴을 쓸어넘겼다.
파이널 무대가 바로 엊그제.
어제는 난데없이 병원에 끌려갔고, 정신 나간 명훈이를 상대했다.
한마디로 휴식을 전혀 취하지 못한 무척 피곤한 상태라는 것이다.
나는 특성을 시험해 보기로 결심했다.
‘불면은 나의 힘, 활성화.’
[불면은 나의 힘(A)]이 활성화됩니다!
“……!!”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방금까지 그득하던 졸음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졸음이 사라지니 몸이 조금 가벼워진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특성 내용대로 잠이 사라진 거지, 피로가 사라진 느낌은 아니다.
하지만 피곤할 때 단 걸 먹은 것처럼, 피로도가 좀 덜어진 느낌은 확실히 든다.
피로도 감소 효과의 영향인가?
뭐가 됐든 신기하긴 하군.
게다가 발동 시기를 맞출 수 없는 두 특성과 달리, 내가 원할 때 활성화를 할 수 있다는 점이 무척이나 마음에 든다.
‘부작용이 있다는 설명은 조금 걸리지만.’
자세한 내용이 써져 있지 않다.
하지만 나도 이걸 백날천날 사용할 생각은 없다.
‘인간인 이상 잠은 자야지.’
나는 고개를 꺾어 목을 뚜둑거리며 속으로 외쳤다.
‘불면은 나의 힘, 비활성화.’
[불면은 나의 힘(A)]이 비활성화됩니다!
“오.”
……털썩.
단발마의 감탄사와 함께 물에 데친 시금치처럼 매가리없이 침대에 쓰러지듯 엎어진 나는 눈을 껌뻑였다.
졸음이 미친 듯이 몰려왔다.
‘효과 좋네…….’
이 생각을 마지막으로 나는 기절하듯 잠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