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127화
며칠 뒤, 의외의 수확까지 얻게 된다.
‘BK를 억지로 가져다 댄 게 신의 한 수였던 모양이로군.’
저번에 분위기가 괜찮기에 살짝 말을 흘려본 건데, 곧바로 허락이 떨어질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무대 아래 일상을 보여 드리는 컨텐츠, LIGHT OFF.
숙소 소개 이후론 컴백과 경연 프로그램 준비로 바빠졌기에 새 영상을 올리지 못했다.
‘이제 슬슬, 올릴 때가 됐지.’
컴백 준비에 들어가면 자체 컨텐츠를 촬영하기 힘드니 미리 찍어두는 게 베스트였다.
때마침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됐으니, 촬영지는 여행지로 결정됐다.
목적은 촬영이지만, 여행 느낌이 강해서인지 들뜬 기색의 멤버들이 의견을 내기 시작했다.
“저는 바다~ 음, 풀빌라 같은 곳? 사실 저는 어디든 좋습니다~!”
“저, 저도 어디든지 괜찮습니다……!”
“음, 나도 너희 의견에 따를게.”
“……저도.”
신유하까지 의견을 내자, 한수현도 입을 열었다.
“저도 상관없어요. 형들 가고 싶은 곳으로 정해주세요.”
터억-
“……?!”
난데없이 테이블에 캠코더를 올려두자 멤버들의 눈에 당황이 깃들었다.
“직접 정하는 여행지니까, 이 부분도 찍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삑!
동시에 녹화 버튼을 누른 나는 의자에 앉으며 가식적인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수현이는 어디 가고 싶어?”
순식간에 얼굴에 생기를 주입한 한수현이 발랄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저는 형들이 가자는 곳이면 다 좋아요! 여행이라니, 두근거려요.”
역시 놀랍군…….
삑!
“……? 아.”
내가 녹화 종료 버튼을 누르자, 속았다는 걸 곧장 눈치챈 한수현의 몸이 작게 떨렸다.
“재밌어요?”
“꽤.”
“…….”
“푸, 푸흐, 하…….”
아까부터 얼굴이 시뻘개져 있던 차윤재가 몸을 들썩거렸다.
“아니, 큽, 저 형도 진짜 은근히 사람 놀리는 거 좋아한다니까!”
최승하까지 옆에서 배를 잡고 웃자, 한수현의 얼굴이 조금 더 험악해졌다.
그래봤자 깜찍한 소동물…… 이해성, 제발.
또다시 스친 무의식에, 내 두 눈이 질끈 감겼다.
* * *
팔을 뻗어, 셀프캠을 최대한 멀리 떨어뜨린 나는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며 풍경을 담았다.
“음, 여기는 어딜까요.”
나는 캠코더에 대고 입을 염과 동시에, 앵글에 나오지 않는 오른손을 파닥거렸다.
입 닫고 있지 말고 멘트나 치라는 의미다.
“……강원도! 강원도입니다!”
끄덕! 끄덕! 끄덕!
함께 앵글에 잡히는 신유하도 고개를 필사적으로 끄덕였다.
나는 주변의 전경을 캠코더에 담아냈다.
푸르른 녹음 아래 반짝이는 조명들이 줄지어 걸려 있고, 여러 대의 캠핑카와 텐트가 구비되어 있다.
그렇다.
오늘의 촬영지는 바로 이곳, 소위 말하는 글램핑장이다.
사실 여유만 있다면 바다 쪽으로 가고 싶다는 의견이 조금 더 우세했지만, 그만한 시간이 없었다.
주어진 건 1박 2일.
그 안에 최대한 적은 인력으로 갈 수 있는, 서울과 가까운 촬영지로 낙점된 게 강원도였다.
‘흠.’
기분 좋게 서늘한 바람이 코끝을 훑고 지나갔다.
‘촬영 목적이 크다지만, 어쩐지 힐링이 되는 것 같기도 하군.’
부터 까지, 쉴 틈 없이 달려왔으니 몸의 맥이 풀리는 느낌이랄까.
“캠핑장~”
난데없이 앵글에 들어와 내 어깨에 팔을 걸친 최승하가 벙글 웃었다.
성해온의 몸은 사람과 닿는 걸 꺼려해서 내키지 않는다만, 이런 장면이 필요하긴 하다.
- 근데 해궁이 애들이랑 안 친하더니 그새 저렇게 친해졌나?
얼마 전, SNS를 살피다가 성해온의 데뷔 초 영상을 분석하며 이러한 의견을 내놓는 사람을 목격했거든.
평소와 달리 내가 가만히 있자, 신난 최승하가 더 껌딱지처럼 달라붙었다.
달라붙는 놈이 더 큰 탓에, 꼴이 웃기겠지만 말이다.
나는 설핏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럼 다른 멤버들에게 가볼까요.”
“좋지요~”
이번 촬영엔 열 명은 가뿐히 잘 수 있는 대형 텐트를 예약했다.
스륵-
천막을 열자, 장 봐온 것이 담긴 박스를 뒤적거리고 있는 한수현이 보였다.
뭐라 말을 걸려던 차에, 최승하가 선수를 쳤다.
“어엇? 막내, 지금 몰래 맛있는 거 먹으려다 들킨 거 아닌가요? 먹을 거면 나랑 나눠 먹어야 하는데? 어어?”
“장 본 거 정리하고 있었어요!”
카메라를 들이대자, 한수현이 눈을 접어 웃었다.
“누구누구가 산 게 하도 많아서, 끝이 안 나네요.”
“그 누구누구는 혹시 저인가요?”
쪼르르 달려간 최승하가 박스 안에서 고기와 과자 등을 휙휙 꺼냈다.
엄청난 개수의 고기 팩들이 카메라에 들어왔다.
당연하게도 촬영지에 도착하자마자, 근처에 있는 마트에서 장보는 영상도 촬영했다.
‘고기를 이놈한테 맡기는 게 아니었는데.’
- 고기는 제가 얼른 사 올게요~
최승하의 말에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던 게 화근이었다.
- 새우랑 그런 것도 살까요? 아까 보니까 육류 코너랑 어류 코너 붙어 있던데!
5,000g, 식당 기준으로 환산하면 25인분이나 사 온 걸 보고 카메라에 나오지 않는 사각지대에서 등짝을 후려쳤었다.
새우도 무슨, 수십 마리를 사 온 걸 보고 기함했다.
‘못 먹기만 해봐라.’
“형이 할 테니까 수현이는 좀 쉬어!”
“이게 뭐 힘들다고, 괜찮아요.”
그 순간, 최승하가 한수현을 곰 인형 끌어안듯 품에 안더니 얼굴을 머리칼에 비비기 시작했다.
“다 컸어~”
그 시각, 나는 짐짓 심각한 얼굴로 감탄했다.
‘뭐 저런 기특한 놈이.’
스윽!
당장 카메라를 들어 팬분들이 좋아하실 것 같은 광경을 담아낸 나는 오타쿠 자아를 진정시켰다.
‘……이봐, 이해성. 찍고 있으니 진정해라.’
원래 한수현이었다면 달라붙는 최승하를 냅다 떼어냈을 거다.
하지만 프로의 자아를 가지고 있는 한수현은 방싯 웃으며 최승하의 치댐에 어울려 주고 있었다.
조금 안타까웠던 내가 카메라를 셀프 모드로 돌려주기 무섭게, 한수현이 최승하를 밀어냈다.
그래봤자 최승하에겐 어림도 없었지만 말이다.
“수현아, 형은 정말 슬퍼…….”
우는 척, 건조한 눈가를 콕콕 닦은 녀석이 말을 이었다.
“해온 형도 그렇고, 수현이도 그렇고, 카메라가 있을 때만 날 사랑해 주는 걸까? 난 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데…… 어떻게, 머리에 카메라를 매달고 다녀야 하나…….”
지금 이 순간에도, 음소거에 가까운 작은 목소리로 한수현을 놀려먹고 있었다.
“진짜…… 제발…… 형이 이러지만 않으면 존경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으음~! 수현이한테 안 치대고 존경받기 vs 치대고 존경 안 받기인가? 그럼 난 후자지~!”
하핫, 웃은 최승하가 무광 재질이 된 한수현을 끌어안았다.
“귀여운 수현이한테 어떻게 안 치대~!”
“…….”
한수현의 희생 덕에, 아주 편하군.
히죽 웃은 나는 최승하가 달라붙기 전에 발걸음을 옮기며, 멤버들의 상황 중계를 시작했다.
“음, 지금 류인이랑 유하는 잠깐 관리실에 뭐 받으러 갔고 윤재는 어딜 갔을까요. 구경하고 있나?”
아무도 묻지 않았고,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지만 팬분들은 궁금해하신다.
이런 TMI 남발, 아이돌이 갖춰야 할 기본적인 미덕이라고 할 수 있다.
“아! 저…… 여기 있습니다!”
텐트 안에서 나온 차윤재가 재빠르게 신발을 신고 천막으로 나왔다.
“오, 옷을 갈아입었, 아니, 입고 나왔습니다!”
카메라 앞이라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헷갈렸는지 잠시 버벅댄 차윤재가 옆으로 다가왔다.
“아, 저기 류인 형님과 유하 형님도 오십니다!”
드디어 멤버들이 한자리에 모였고, 나는 입을 열었다.
“우선 캠핑장을 구경해 볼까.”
오늘은 안전한 촬영을 위해 글램핑장 자체를 통으로 빌렸다.
자연 속에 위치한 곳이라, 주변엔 나무와 풀뿐이었지만, 그게 또 여유로운 기분을 안겨준다.
“구경 좋죠~ 다 같이 갈까요~?”
말을 덧붙이지 않아도, 최승하가 알아서 교통정리를 했다.
녹음이 가득 찬 공간을 거닐며 멤버들이 저마다 감탄사를 내뱉었다.
“형님! 풍경이 너무 좋습니다!!”
조금 신난 듯 보이는 차윤재가 목이 꺾일세라 주변을 둘러보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러게. 힐링된다.”
류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신유하가 작게 중얼거렸다.
“피톤치드…… 공기가, 엄청 좋아!”
“그러게요. 정말 숨이 트이는 기분이 드는 것 같기도 해요. 공기 진짜 좋네요.”
“유하랑 수현이 말이 맞네! 습~ 하! 와아, 공기가 청량해~ 윤재야, 너도 숨 들이마셔 봐.”
“저, 정말입니다! 스읍, 하! 좋습니다!”
“해온 형, 형도! 형도!”
쿡! 쿡!
얼른 해보라는 듯이, 최승하가 내 옆구리를 찌르며 헤헤 웃었다.
“……스읍, 하.”
“좋죠?”
“그래, 좋네.”
미리 당부한 대로, 멤버들은 오디오가 비지 않을 만큼 계속해서 멘트를 치고 있었다.
나는 적당한 리액션을 취하며, 어딘가를 향해 터벅터벅 걸었다.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다만, 목적지는 정해져 있거든.
바로 여기다.
멤버들은 내가 미리 계획해 둔 곳에 도착하자마자 제각기 한마디씩 내뱉었다.
“우와~ 여기 수영장이 있네요?”
“시, 심지어 엄청 큽니다!!”
“여름에 오면 재밌겠는데.”
수영장.
그래, 글램핑장 내에 시설 좋은 수영장이 있더라.
우연찮게 정재진에게 전해 듣고, 그것까지 대여해 달라고 부탁했다.
7월과 8월, 성수기에 속하는 2개월 동안만 운영하는 수영장이라던데 사정해서 얻어냈다더군.
깨끗한 물이 가득 담겨 있는 수영장을 전체적으로 영상에 담아낸 뒤, 나는 망설임 없이 캠코더를 껐다.
삑!
버튼이 눌리는 소리와 함께, 나는 상체를 돌려 멤버들과 눈을 마주쳤다.
“이제 들어갈 준비를 할까…….”
“……?”
순간적으로 정적이 흘렀다.
“음, 어딜요? 설마, 여기를……?”
“……?”
처억!
뭘 그런 당연한 걸 묻냐는 눈빛으로 수영장을 가리키자, 물에 손을 담군 최승하가 말을 이었다.
“……으음. 찬물인데. 형, 지금 날씨는 입수하기에 조금 춥지 않을까요?”
몇 놈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덥지도 않고 딱 좋지.”
내 말에 한수현이 물음표를 띄웠다.
“입수는 더울 때 하는 거죠.”
“편견이다.”
“하핫, 형! 저는 배도 고픈데!”
“네가 물놀이하고 밥 먹는 게 더 맛있다며.”
“그건~ 여름 한정이죠!”
“편견이다.”
“…….”
넋이 나간 듯한 다섯 놈을 훑어본 나는 등을 돌렸다.
저 얼굴들을 보자니 작게나마 존재하는 양심이 매우 찔리지만, 어쩔 수 없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양심이 존재하긴 하는 거냐며 의심합니다!]
[성좌, ‘황금의 신’이 우리 아해가 고뿔이라도 걸리면 책임질 거냐며 대노합니다!]
* * *
“젖게 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해서, 여유분의 옷을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탈의차 들어온 텐트에서 차윤재가 짐짓 곤란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물론 내가 미리 말했다면, 이 녀석들은 입수 시에 입을 것들을 챙겨왔을 거다.
하지만 내가 그러지 않은 이유, 음. 당연히 있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당신의 속내에 두 눈을 질끈 감습니다!]
지이익!
고요한 텐트 속에, 내가 캐리어 지퍼를 여는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아침부터 최승하가 왜 이리 짐이 많냐고 기웃댔을 정도로 커다란 사이즈의 캐리어에서 나는 망설임 없이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
동시에 멤버들의 얼굴에 황당함이 물들며, 엄청난 시선들이 직통으로 꽂혔다.
“입어라.”
나는 가지런히 접힌 수상용 래쉬가드와 반바지 6쌍을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