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140화 (140/300)

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140화

팬들에게 애정을 받을 때면, 존재해도 된다는 생각이 들어 행복했다.

쓸모없는 한수현이 아니라, 쓸모 있는 한수현이 되는 것 같았다.

그것은 인생의 목표가 사라졌던 자신에게 다가온 빛이자, 숨구멍이었다.

실망시키기 싫었다.

다른 멤버들에 비해서 현저히 부족한 능력치.

……역겹게도 평범한 자신.

노력하는 방법밖엔 알지 못했다.

매달리고, 노력하고, 집착하는 건 자신 있었다.

평생 해온 건데, 어려울 리가 없지.

데뷔하자마자 말 그대로 망해 버렸지만, 그게 뭐 어떤가.

자신을 사랑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뻤다.

그런데, 함께 활동하게 된 멤버들이 신경 쓰였다.

그들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다.

- 한심한 놈, 한심하고 또 한심한 놈. 하나뿐인 아들이란 게, 이런 거라니.

그래, 난 이렇게나 한심하고 쓸모없는데.

자신의 본모습을 모르는 팬들이야, 자신에게 애정을 줄 수 있다지만…….

모든 방면에서 뒤떨어지는 자신을 누구보다 잘 아는 게 멤버들인데, 어떻게 저런 시선을 보내지?

왜 아버지와 같은 시선을 보내지 않는 거지?

……왜 날 걱정해 주는 거지?

그렇잖아.

뒤떨어지는 내가 죽도록 노력하는 게, 그들에게도 이득이 아닌가?

대체 왜?

진심이 아닐 거야.

낳아준 부모조차 자신을 한심해하는데.

저렇게 재능 넘치는 사람들이, 고작 날 좋게 볼 이유가 없잖아.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무력하던 과거의 파편들이 범람하듯 한수현의 머릿속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항상 그랬다.

도태되고 무능한 인간은 항상 짓밟힐 뿐이라고.

그리고 언제나 그 역할은, 자신의 것이었다.

“……한심해.”

혼잣말을 내뱉은 한수현이 눈을 감았다.

* * *

“흠.”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숙소 근처 벤치에 착석했다.

방금 한수현이 올라갔으니, 나는 조금 텀을 두고 올라갈 생각이다.

그 순간, 스마트폰이 울렸다.

발신인은 류인이었다.

- 해온아, 수현이랑 숙소로 갔어?

우리가 사옥에서 나간 뒤, 이 녀석들도 논란 글을 곧장 알아챘는지 연락이 왔었고 나는 한수현과 함께 있다고 둘러댔다.

정재진과 새 매니저도 근처에 있어 보였는데, 나는 상황 파악을 해볼 테니 걱정 말고 기다리라는 말을 남기고 한수현의 뒤를 쫓았었다.

근데 이렇게 또 연락이 온 걸 보면, 적잖이 걱정되는 모양.

“응, 숙소. 나도 숙소고.”

내 말과 동시에, 수화기 너머에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렸다.

- 혀, 형님! 수현이는 어떻습니까? 굉장히 걱정됩니다! 저희도 서둘러 가겠습니다!

- ……얼른, 가야 해요. 이럴 때, 혼, 자 있으면, 무서워요.

- 맞아, 형 저희도 얼른 갈게요. ……살짝 둘러봤는데 악플이 너무 많네요.

이러니저러니 해도, 걱정해 주는 건 이 녀석들이군.

나는 숙소로 올라갔고, 한수현의 방문은 닫혀 있었다.

말을 걸어볼까 싶었지만 아까 본가에 들러서 무언가를 가져온 것도 그렇고, 뭔가 방법이 있는 것 같지.

어차피 곧 멤버들이 오면, 저 녀석에게 말을 걸 테니 그동안이라도 홀로 생각할 시간을 주고 싶다.

“음.”

거실 바닥에 주저앉은 나는 모니터링을 시작했다.

논란 글은 순식간에 1위로 올라갔다.

주로 연예계의 가십을 다루는 이 게시판에서 가장 핫한 논쟁거리는 언제나 학교 폭력 논란.

그런 상황에서, 요즘 언급량으로는 손에 꼽힐 정도의 화제성을 자랑하는 라이트온 멤버가 도마에 올랐다.

사실이든 아니든, 논란을 즐기는 이들에게 진실은 필요하지 않다.

한수현을 믿는 것과 별개로 그 녀석의 멘탈이 걱정될 정도의 선 넘은 악플들이 달리고 있었다.

폭로 글은 게시판을 넘어 SNS로 퍼진 지 오래였고, 알다시피 라이트온을 싫어하는 팬덤은 많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악랄한 비난 분위기가 금세 형성됐다.

- 하루도 바람 잘 날 없는 어메이징 돌판

- 랕궁이들 X됐넼ㅋㅋㅋ 컴백 앞두고~

- 뭔가 한 명 터질 것 같긴 했는데 진짜 터지네

- 클린한 그룹 찾기가 왜 이리 힘드냐 ㅋㅋㅋ

- 양심껏 학폭 저지른 놈들은 데뷔할 생각을 하지 말자; 어디 얼굴을 들이밀어 양심 좀 지키자 양심 좀

증거가 제대로 없는 건 사실이었다.

졸업 앨범과 단체 사진, 누구나 구할 수 있는 거니까.

- 진짜 정신 좀 차리자 팩트도 안 따지고 욕 먼저 박아서 연예인 골로 보낸 경우가 대체 몇 번임?

- 근데 증거도 제대로 없는데 너무 휩쓸리는 듯ㅋㅋ

이런 의견을 내는 사람도 있었으나, 조롱 분위기가 훨씬 더 거셌다.

그런 와중에 또 기름이 부어진다.

[BEST!][5위] 현재 한수현 고교 동창입니다.

종합 예술 고등학교, 한수현은 연예인들이 가장 많이 다닌다는 바로 그 학교에 다닌다.

녀석의 나이는 18살.

졸업한 게 아니고, 현재 진행형으로 재학 중이라는 소리다.

나는 헛웃음을 삼키며 글을 눌렀다.

오늘 뜬 논란 글을 보았습니다.

저는 현재 재학 중이기에 특정되지 않을 만큼 두루뭉술 말하겠습니다. 이해 부탁드립니다.

연예인들이 많이 다니긴 한다지만 기껏해야 반에서 한두 명이고, 친구들에게 데뷔한 연예인은 신기한 존재일 수밖에 없습니다.

.

.

.

장문의 글의 요지는 그것이다.

한수현은 17살, 즉 고1 때 데뷔를 했으니 고교에서 학폭이라고 칭할 만한 행동을 저지르진 않았지만, 평소 학급에서도 친구들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

아예 말을 못 하는 사람처럼, 입을 닫고만 있는다.

한마디로 논란이 되고 있지만, 명확한 증거가 없는 원글에 힘을 실어주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의 글쓴이는 한수현에게 피해를 받은 적이 없다.

그럼에도 이 분위기를 확산시키기 위해 굳이 이 글을 올렸다.

‘열등감이겠지.’

그 학교에서 망돌이 어떤 취급을 받는지 알고 있다.

존경은 무슨, 아마 잘나가는 소속사 연습생보다 한참 아래일 거다.

그랬는데 점점 인지도가 생기는 것 같으니 아니꼬울 테지.

나는 스크롤을 내리며 반응을 살폈다.

같은 학교 동창임을 증명하는 학급 사진들을 세 장 정도 첨부한 이 글로 인해, 제대로 된 증거가 없던 폭로 글은 더 신빙성을 얻게 됐다.

- 생각해 봐 이게 구라겠냐 이미지 검색해 봤는데 구글에도 없는 학급 사진임

- 진짜 찐 동창인가 보네ㅋㅋㅋ 데뷔했으니 이미지 관리 분명 했을 텐데 한 게 저 모양이었다니 중학교 땐 안 봐도 비디오다

나는 흐릿한 얼굴로 난리 난 반응을 살피다가 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급하게 왔는지, 서늘한 날씨에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멤버들이 서 있었다.

철컥, 철커덕-

아연한 얼굴로 문고리를 위아래로 흔든 차윤재가 입을 뻐끔거리며 거의 복화술로 메시지를 전했다.

“자, 잠겼습니다……!”

사아아아-

분위기가 한층 더 심각해졌다.

“문, 제가 열어볼까요?”

최승하가 굳은 얼굴로 나섰다.

아서라.

“부수기라도 하려고?”

정말 그러기라도 할 생각이었는지, 최승하가 입을 다물었다.

스윽…….

나는 실핀을 꺼내 들었다.

무대 의상 등을 시착할 때 종종 나오는 것이라 무의식적으로 챙겨뒀던 게 방에 있었다.

“내가 딴다.”

“오오……!”

결연한 얼굴로 한수현의 방 앞에 선 나는 문고리 구멍에 실핀을 넣었다.

드륵, 탁! 드륵.

“저 형님 제가 보기엔 딸 줄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이봐, 다 들린다.

뒤에서 속닥거리던 차윤재가 나와 눈이 마주치기 무섭게 몸을 파드득 떨었다.

“해온아, 내가 해볼게.”

다가온 류인이 실핀을 달라는 듯이 손을 내밀었다.

다들 나를 못 믿는군.

“나도 할 수 있-”

나는 말을 끝마치지 못했다.

드르륵-

닫혀 있던 문이 스스로 열렸기 때문이다.

“형들, 오셨어요.”

한수현의 아무렇지도 않은 목소리에, 일순간 정적이 흘렀다.

“해결은 할 수 있어요.”

“……해결?”

차윤재가 고개를 기울이며 중얼거리자, 한수현이 말을 이었다.

“네.”

그러면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간다.

본인의 노트북을 꺼내온 한수현이 스페이스 바를 누르자, 녹음 파일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 한수현, 수현아! 너는 왜 이렇게 우리를 무시해? 야, 야. 안 들려? 안 들리세요?

상상도 하지 못한 상황에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 아 X발, 김용헌 미친 새끼 개웃기네. 왜 이렇게 얘한테 집착해?

- 와꾸가 반반하잖아. 수현아! 우리랑 놀자니까?! 형 말 안 들려?!

- 이 새끼 말 다 씹는 것 봐 진짜 귀먹은 거 아니야? 공부만 하지 말고 여기 좀 봐봐, 수현아~

- 아하하하! 미친놈아 애 대가리를 그렇게 손가락으로 튕기면 어떡해 크큭, 미친 새끼 진짜.

- 수현아~ 우리랑 놀자~ 응? 제발~

“그 글에서 말하는 게 아마 이 무리일 거예요. 질이 안 좋았거든요.”

타악-!

노트북의 스페이스 바를 눌러 녹음 파일을 중지시킨 한수현이 태연자약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어쨌든 매번 이 무리가 친구들을 대동해 제 자리로 밥 먹듯이 찾아와 시비를 걸었는데, 그게 친목하는 걸로 보였던 걸까 싶기도 하고요. 아.”

잠시 입을 달싹인 한수현이 고개를 숙였다.

“……혹시 그 글처럼 제가 방관했다고 오해하시는 거면, 아닙니다. 전면에 나선 적은 없지만 반에 심하게 괴롭힘당하던 애가 있었는데, 그 음성 담긴 녹음본 학교에 찔러서 얘네 전학 보냈거든요.”

새로운 사실에 멤버들의 눈이 휘둥그레졌고, 한수현은 조용히 말을 이었다.

“녹음본만 들어도 아시겠지만 절 워낙 싫어했으니, 얘네가 피해자가 된 척 올렸을 가능성도 솔직히 배제할 수는 없겠네요. 아니면 아예 제3자일 수도 있겠고요.”

꿈뻑.

꿈뻑.

나는 느릿하게 눈을 끔뻑였다.

‘뭐 이런 놈이 다 있지?’

애초에 이 녀석이 학폭 같은 건 하지 않았을 거라 생각했지만, 이 녹음본은 뭐란 말인가.

정말 생각지도 못한 해결 루트였다.

내 시선을 느꼈는지 한수현이 입을 열었다.

“……? 나중에 무슨 일이 있을 줄 알고 증거를 안 남겨놔요?”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의 한수현이 말을 이었다.

“사람 일이 어떻게 될 줄 알고. 내 앞에선 웃다가도 등 돌리면 칼 꽂는 게 인간이에요. 이런 건 당연한 거죠. ……형들은 안 이랬다고요?”

끄덕……!

멤버들이 느릿하게 고개를 주억거리자, 한수현의 얼굴에 진지한 의문이 담겼다.

나는 그 순간, 한수현에게 깝치지 말아야겠다고 굳게 결심했다.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흥미롭게 상황을 바라봅니다.]

“뭘로 녹음한 거야?”

류인의 물음에 한수현이 무언가를 들어 올렸다.

구형 스마트 워치였다.

저걸 차고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녹음한 건가.

정말 대단한 놈이다.

“……진, 진짜 대단해.”

눈이 커질 대로 커진 신유하가 눈을 반짝이며 작게 중얼거렸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사실 이렇게 증거를 보유하고 있을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 순간이었다.

“……근데 형들은, 왜 아무도 저한테 뭐라고 안 하세요?”

“……음?”

나는 그런 한수현을 바라보며 물음표를 띄웠다.

어차피 이 녀석이 정말 가해자라고 믿는 사람도 없었거니와, 이렇게 확실한 증거까지 있는데 나무랄 이유는 전혀 없다.

“아무리 제가 억울하다 해도, 완전한 해결은 없을 거예요. 의심하는 사람이 있을 테고, 아무리 사실이 아니어도 한번 손상된 이미지는 회복되지 않아요. 그건 형들한테도 피해를 끼치겠죠. 더 나아가면 그룹 전체에 해를 끼칠 테고요.”

한수현이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말을 끝마쳤다.

“저 때문에.”

놀랍도록 무감정한 얼굴이었다.

사아아아-

순간적으로 정적이 흘렀다.

“고의든 아니든, 저로 인해 일어난 논란이니 원하신다면 때리셔도 괜찮습니다.”

“……!!”

한수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굉장히 대로한 듯한 차윤재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 그럴 리가!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너, 너, 너를 왜 때려!”

씩씩거리며 숨을 내뱉은 녀석이 말을 이었다.

“……처음부터 안 믿었어! 네 성격을 제일 잘 아는 게 우린데! 남을 괴롭히는 데에 시간을 쓸 리도 없고, 뭐, 뭣보다 네가 우리 말고 친구가 있을 리가 없잖아!”

없잖아!

없잖아!

없잖아!

……차윤재의 목소리가 거실에서 메아리치듯 울렸다.

“푸흐흡, 흡…….”

심각했던 상황 속, 갑작스러운 메아리에 바닥으로 쓰러진 최승하가 주먹으로 바닥을 팡팡 두드리며 끅끅댔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