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173화
막상 이렇게 무대에 올라오니 긴장되긴 하는군.
나야 정신력 덕에 괜찮다지만, 다른 녀석들은 빳빳하게 얼어붙은 지 오래다.
누구의 것인지도 모를 심장박동 소리가 들리는 기분이 들 정도로 말이다.
다른 놈들과 비슷한, 긴장되는 얼굴을 걸친 나는 머릿속으로 주판을 튕겼다.
1위는 아마 우리일 거다.
저쪽은 팬덤 파워가 우리보다 약한 데다가, 그걸 상회할 정도의 성적도 아니거든.
“이번 주 영광의 1위! 그 주인공은!”
긴장감을 돋우려는 듯, 한 템포 호흡을 늦춘 MC가 방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축하합니다. 라이트온!”
팡!
발표와 동시에 색색의 컨페티가 공중에서 흩날렸다.
“축하합니다~”
“축하드려요!”
출연진들이 저마다 축하를 건네며 무대 아래로 내려갔고, 트로피와 꽃다발을 건네려 다가오는 MC에게 다가간 나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안쓰럽다는 얼굴로 ‘아이고’라는 짤막한 소리를 낸 MC에, 나는 물음표를 띄운 채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마주한 광경은…….
‘……음.’
이럴 거라고 예상은 했다만, 생각보다 더 난리가 났군.
차윤재는 이미 눈물샘이 터졌고, 신유하는 고개를 떨군 채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다.
자연스레 마이크는 한수현에게 돌아갔고, 입을 몇 차례 달싹인 녀석이 말을 이었다.
“……감사합니다. 사실 예상도 못 했는데.”
그렇다.
이놈들은 내 1위 공약을 미친 듯이 만류했지만, 그러면서도 정말 우리가 1위를 차지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진 않았다.
그냥 후보에 든 것만으로도 벅차하던데.
“우선 저희를 사랑해 주시는…… 팬, 스위치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어요. 네, 저는 그뿐입니다. 감사해요. 스위치.”
짤막한 말을 마친 한수현이 옆에 서 있는 차윤재에게 마이크를 넘기자, 차윤재가 고개를 저었다.
도저히 말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는 듯이.
신유하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작게 웃으며 말문을 열었다.
“스위치, 고마워요.”
우리가 아무리 노력한대도, 팬들이 없다면 이 모든 건 불가능했을 테니까.
나는 회사 관련 언급을 짧게 이은 뒤, 류인에게 소감을 넘겼다.
“……저희가 1위는 처음 해보는 건데.”
“……!!”
놀란 건 내 쪽이다.
이 녀석, 목소리가 잘게 떨리고 있다.
어딜 가나 잘 우는 차윤재나 신유하는 둘째 치고, 이 녀석의 이런 모습은 처음이다.
최승하도 조금 놀란 모양인지, 류인의 어깨를 토닥였다.
“……어어, 하하. 이거 어쩌죠. 준비해 둔 말이 생각이 안 나네요. 그냥 스위치, 스위치. 고마워요. ……열심히 할게요.”
마지막으로 마이크를 잡은 최승하는 본방에 참석한 소수의 스위치들 쪽으로 손을 붕방 흔들었다.
“사랑해요, 스위치!”
“와아아아악!”
동시에 음원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앵콜 무대의 시작.
……즉, 대망의 공약 시간이 온 것이다.
나는 우선, 가장 만만해 보이는 녀석의 허리에 손을 넣었다.
내 몸 상태가 아무리 허접해도, 한수현 정도는 들 수 있을 것 같다.
“해온 형, 저도 일단은 성인에 가까워서 무거울 텐데요.”
“괜찮아.”
우려를 표하는 속삭임에 신뢰의 낯짝으로 고개를 저은 나는 팔에 힘을 줬다.
덜덜덜덜…….
한수현의 몸은 미동도 없는데, 내 팔이 미친 듯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미안하지만 나는 주제 파악이 몹시 빠른 편이다.
골드 아끼자고 이대로 진행했다간, 그냥 이거대로 망신살 적립이다.
……그것만은 안 된다.
다급하게 골드 상점에 접속한 나는 눈짓으로 스크롤을 내렸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봐놨던 게 있다.
[아틀라스의 기운(B)]
무엇이든지 들어 올릴 수 있다는 설명의 아이템.
심지어 기간도 120분으로 짧다.
굉장히 쓸데없지만 관련된 아이템이 이것뿐이다.
가격은 1,000G, 나를 열받게 하려는 목적이 분명한 퀘스트의 성공 보상보다 비싸다.
내게 손해지만, 애써 긍정회로를 돌려보자면 이득이 될 가능성도 있다.
- 해온이 왤케 허약해 보이지 보약 한 사발 멕이고 싶어…
요즘따라 이런 반응을 내보이는 팬들이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주먹을 쥐었다.
……이참에 이미지 탈피까지 노린다.
틈만 나면 날 관짝에 눕힐 기세로 구는 멤버들에게도, 내 사지육신이 멀쩡함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구매가 완료되었습니다!]
“……!”
오.
방금은 들 엄두도 나지 않았던 한수현이 가볍게 느껴진다.
류인이 파트를 하는 동안, 나는 의문으로 가득 찬 얼굴의 한수현을 안아들고 무대를 한 바퀴 돌았다.
그리고 뒤이어 신유하와 차윤재를 차례대로 번쩍 안아 들자, 녀석들의 눈이 땡그래졌다.
“……형!”
“혀, 형님!”
인생은 역시 템빨인 걸까.
이 녀석들이 하나도 무겁지 않다.
뭣보다 매번 병든 닭을 보는 듯한 안쓰러운 시선만 받다가, 이런 시선을 받으니 기분이 나쁘지 않군.
하지만 성인 남성을 아무렇지도 않게 드는 건 보통 일이 아니기에, 나는 적당히 힘겨운 시늉을 더했다.
신유하를 내려놓은 나는 다음 타자인 최승하에게 다가갔다.
다른 녀석들도 그렇지만, 특히 이 녀석에게 내 상태가 온전하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
물론 평소에 몸 상태가 X같은 건 사실이지만 그게 현대 의학으로 해결될 것도 아니고, 의심받는 건 피곤하거든.
나는 히죽 웃으며 최승하의 허리와 무릎 안쪽에 손을 댔고, 녀석이 몸을 잔뜩 구기며 안겼다.
“우와아~!”
최승하는 내 목에 팔을 두른 채로 본인의 파트를 이어갔고, 나는 녀석의 팔을 툭툭 쳤다.
이제 내 파트다.
최승하는 조금 놀란 얼굴을 하더니, 이내 방긋 웃으며 마이크를 내 입가에 대줬다.
그때, 류인이 나에게 매달린 최승하를 보고 눈을 크게 뜨더니 커다란 보폭으로 순식간에 다가왔다.
음, 설마 직접 안기러 온 건가.
그렇게 만류하더니, 이 녀석도 재밌어 보였나 보군.
와라.
아이템이 있는 지금으로선 전혀 두려울 게 없다.
나는 직접 걸음해 준 마지막 타깃을 위해 최승하를 내려놓으려 했다.
그래, 분명 이놈을 내려놓고 저놈을 안아 들려고 했는데 말이다.
“……?”
휘익-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악!!”
관객석에서도 환호가 터져 나왔다.
나는 도저히 납득되지 않는 상황에 눈알을 굴렸다.
지금 상황을 설명하자면 류인이 나와 최승하를 번쩍 안아 든 것이다.
무려 두 명을 말이다.
……아이템을 썼을 리도 없는데, 이게 가능하다는 게 놀랍다.
성인 남성 둘을 가볍게 들어 올린 류인이 내 귀에 대고 속닥였다.
“해온아.”
“……그래.”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내 파트가 다가온 것도 잊고 있었다.
* * *
그 시각, 스위치들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 애들 너무 서럽게 울어 ㅠㅠㅠㅠ 지금 내 가슴이 천 갈래로 찢김 걍
- 멤버들 다 너무 착하고 순둥하고 평생 스위치 해줄게…
- 내가 언젠가 성해온 울리고 만다
└ 제발 우리 같이 감동 좀 하자
수많은 팬들의 눈물샘을 자극한 수상 소감이 끝나자, 팬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던 앵콜 무대가 시작됐다.
- 너네 왜 다 해온이가 실패할 거라 생각해? 우리 애가 의외로 힘이 세면 어쩔래?
- 투표 시작합니다 성해온은 멤버를 안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리며 쓰러진다 67%.]
[보란 듯이 성공한다 23%.]
└ 몰표 ㅈㄴ 너무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팬들도 그냥 공약 자체가 재밌었던 거지, 딱히 성공할 거란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저 다치지만 않았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의외의 결과에 팬들은 놀라움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성해온이 멤버들을 번쩍번쩍 들어 올리기 시작한 것이다.
- 우리 말랑아기블루베리 놀린 놈들 좋은 말 할 때 나와라 ㅋㅋ 너네 해온이한테 사과해! 사과해!
└ 네가 제일 많이 놀렸잖아
└ 이래서 눈치 빠른 오타쿠는 싫다니까
- 뭐야 뭐야 뭐야 의외네?! 근데 수현이는 나도 안을 수 있을 것 같아(듬직)
- 해궁이 힘 쎄네
- 해온이는 못하는 게 대체 뭐임? 발린다 진짜
타임라인이 초 단위로 갱신되고 있을 무렵, 팬들은 경악했다.
류인이 최승하와 성해온을 동시에 안아 든 것이다.
- 내, 내, 내, 내, 내가 뭘 본 거임?
- 얘들아 원래 제빵하는 사람이랑 발레하는 사람이 힘 제일 쎄 깝치면 안 돼
- 류떤남자 가슴밖에 안 보이는데…
└ 이 새끼 끌고 나가
└ 당장 체포해 22
* * *
백스테이지로 내려가자, 캠코더를 든 매니저가 다가왔다.
- 음, 설레발이지만 이따가 저희가 혹시라도 1위 하게 되면 촬영 부탁드려도 될까요?
이런 기념비적인 날에 비하인드 식의 영상은 필수라고 주장하는 오타쿠 자아로 인해 무대에 오르기 직전, 매니저에게 부탁했던 일이다.
매니저 손에 들린 캠코더는 내가 이전에 사비로 구매했던 거고.
첫 1위는 아이돌 인생에 한 번뿐인데, 그냥 넘어갈 수야 없지.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당신의 정상적인 사고를 믿을 수 없어 합니다!]
눈물범벅의 멤버들이 훌쩍이며 찍는 영상?
얼마나 팬들의 과몰입을 이끌지 벌써부터 흐뭇하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이젠 더 이상 잡을 뒷목도 없다며 비통해합니다!]
그런고로 이건 무조건 찍어야 한다.
비하인드 영상의 촬영이 끝나기 무섭게, 나는 안구에 가득 주입했던 생기를 빼냈다.
“…….”
결과론적으로 보자면 퀘스트는 성공했다.
류인을 제외한 멤버들을 모두 안아 들어서인지, 시스템이 공약의 주체를 나로 인정한 모양이다.
게다가 확실히 경쟁 그룹의 공약보다도 임팩트도 강했으니.
하지만 문제는 이게 아니었다.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 천천히 스크롤을 내렸다.
슥, 슥…….
실시간으로 내 안색이 눅눅해졌다.
멤버들을 힘든 기색 없이 가뿐히 들어 올리면 작위적일까 봐, 약간의 힘겨운 척을 곁들였는데…….
그 부분이 온갖 짤로 제조되고 있었다.
……한 가지는 확실했다.
내가 이놈들을 전부 완벽하게 안아 들었어도, 내 이미지는 바뀌지 않았을 것이라는 걸…….
그 이유를 묻는다면, 지금 나를 놀려먹고 있는 수많은 이들의 프로필 사진은 나였다.
한마디로 내가 최애인 분들이라는 뜻이다.
- 응. 해온아. 수고했어. 응응. 우리가 봤어.
- ㅋㅋㅋㅋㅋㅋㅋㅋ성해온 진짜 힘자랑하고 싶었냐고
- 얘들아 우리 해온이한테 수고했다고 해주자 ^^
- 성해온 : 나 힘 세지! (번쩍)
류인 : ㅎㅎ(조용히 두 사람을 들어올리는)
- 냉철해 보이는 해온이에게 가끔 보이는 하찮은 포인트가 미치게 사랑스럽다…
……그만 보도록 하자.
나는 SNS앱을 종료시키며,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퀘스트도 성공으로 돌아갔으니 나는 정말 괜찮다.
뭔가 하찮은 이미지가 덧대진 것 같지만, 망신살을 피한 것만으로도 어디인가.
이 정도는 귀여운 수준이다.
그래, 귀여운 수준…….
눅눅한 낯짝을 걸친 내가 갤러리를 넘기고 있자, 최승하가 다가왔다.
“어? 웬 사진이에요?”
“저번에 찍은 사진들.”
“오~ 이거 나다! 형이 뮤비 촬영장에서 찍어줬던 거네요?”
“이거 올리려고요?”
“그래.”
“역시 날 너무 사랑한다니까~”
“…….”
“와! 못 들은 척하는 봐!”
나는 오늘 멤버들과 찍은 셀카와 이전에 찍어놨던 사진 여러 장을 골라 업로드 버튼을 눌렀다.
‘좋아하셨으면 좋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