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215화
그 시각, 의문스러운 공간에 갇혀 있는 성해온은…….
“…….”
참회의 시간을 가지기 시작했다.
솔직히 불자면, 지금 성해온은 정말 평범하게 굴고 있다.
하지만 평소 내가 저런 분위기가 아니었다는 게 중요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수습 가능한 선이다.”
나는 칙칙한 낯짝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사실 난장판을 만들어 놓는 수준까지 생각했는데, 이 정도면 정말 약과였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 형니이이임! ]
화면 속, 차윤재가 성해온에게 쪼르르 다가가기 시작한 것이다.
어느새 목표물의 앞에 선 차윤재가 성해온의 어깨를 붙잡았다.
[ 혹시 오늘 몸이 안 좋으신 겁니까? 그래서 표정을 더 관리하시는 겁니까?! ]
펄럭! 펄럭! 펄럭!
성해온의 몸이 사방팔방 흔들리기 시작했고, 낯짝이 묘해진 성해온이 작게 중얼거렸다.
[ 이런 기분이로군……. ]
평소 차윤재의 눈치를 나무랐던 나 자신을 매우 치겠다.
곤란해하는 성좌의 낯짝을 보니 이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기특한 놈…….”
차윤재는 계속해서 성해온을 붙잡고 흔들기 시작했다.
[ 아프면 지금 당장에라도 매니저님에게 말씀을……! ]
[ 건강하다. ]
[ 그럼 제발 평소의 무서운 형님으로 돌아와 주십시오! ]
“…….”
다시 한번 참회의 시간을 가지게 해주는군.
대체 평소 내 낯짝이 어땠길래, 저러는 건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내가 고개를 젓고 있을 무렵이었다.
차윤재에게 붙들린 성해온의 얼굴에 커다란 의문이 드리워진 것이다.
[ 이 얼굴이 무섭단 말인가? 깜찍하지 않고? ]
[ 까, 깜찍, 깜…… 혀, 형님이 말씀이십니까? ]
너무나도 충격적인 물음에, 차윤재의 혀가 꼬였다.
이 와중에, 성좌…… 그러니까 화면 속, 성해온은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로 고개를 기울였다.
차윤재는 주변을 휙휙 살피더니, 상체를 숙여 개미만 한 목소리로 속닥였다.
[ 지, 진심이십니까? ]
[ 당연하지. 나는 쓸데없는 거짓을 입에 담을 만큼 한가하지 않아. ]
[ 하지만 자주 담지 않으십니까! ]
“…….”
왜 이렇게 비참해지는지 모를 일이군.
나는 작게 중얼거렸다.
“……허튼 말만 안 하면 됐다.”
그렇다.
이쯤 되니, 반쯤 해탈한 것이다.
그리고 얼마 안 가, 라이트온이 라디오 부스에 입장하기 시작했다.
미리 앉아 있던 디제이가 반갑게 인사했다.
[ 라이트온 한번 모시고 싶었는데, 드디어 기회가 닿았네요. 잘 부탁드립니다. ]
잘 가르쳐 놓은 사회생활답게, 멤버들은 씩씩하게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걸 지켜보던 내 입이 벌어졌다.
디제이와 가볍게 인사를 나눈 정신 나간 성해온이 저벅저벅 걸어가더니, 테이블의 센터에 앉은 것이다.
어차피 보이지 않는 라디오인데 테이블 자리가 뭐가 중요하겠냐만, 나는 항상 구석을 선호했다.
그랬기에, 멤버들도 의외라는 얼굴로 나를 힐끔댔다.
바로 그 순간, 한수현이 다가왔다.
[ 해온 형이 센터에 자발적으로 앉으시는 건 처음입니다. ]
[ 음, 나는 센터가 좋거든. ]
“미친 새끼야.”
정신 나간 행보에 절로 아찔해진다.
[ ……! 몰랐던 사실이에요. 앞으로 참고하도록 하겠습니다. ]
“……넌 또 뭘 참고해?”
내가 황당해하기도 전에, 한수현은 스마트폰을 꺼내더니 무언가를 토독토독 적어 내리기 시작했다.
이봐.
안 좋아해.
안 좋아한다고.
난 학창 시절에도 뒷좌석을 선호했단 말이다.
주목받는 자리는 딱 질색이라고.
내가 아득해하고 있을 무렵, 스태프가 건넨 커피를 마신 성해온의 얼굴이 작게 찡그려졌다.
[ 해온 형, 왜 그러세요? ]
[ 아무것도 아니야. ]
[ 표정이 이상하신데요? ]
옆자리의 한수현이 계속해서 물어왔고, 성해온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 맛없는데. ]
[ ……어푸푸풉! ]
이상한 소리를 내며 먹던 커피를 그대로 뿜어낸 차윤재가 아연실색한 얼굴로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 형님! 마, 말조심하십시오! 다행히 아무도 안 계셔서 망정이지! ]
[ 맛이 이럴 줄은 몰랐군. ]
[ 이 커피, 원두 맛이 좀 쓰긴 합니다만…… 아무리 그래도 쉿! 쉿! 조용히 해야 합니다! 저희를 생각해서 사다 주신 건데, 투정을 부리면 안 됩니다! ]
터업…….
나는 벌써부터 정신이 나갈 것 같은 광경에 입을 가렸다.
내가 차윤재에게 눈치를 챙기라는 말을 듣는 날이 다 오다니.
X발…….
벌떡 일어난 나는 이불을 칭칭 감은 채, 공간을 빙글빙글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말마따나, 이제 인지도가 꽤 커져서 나갔다가 사진이라도 찍히면 X된다.
생방송 라디오 진행 중인 성해온이 길가를 돌아다닌다니.
호러가 따로 없지 않은가.
“……돌겠군.”
나는 머리칼을 거칠게 쓸어넘겼다.
생방송 직전이었다.
다르게 말하면, 내 얼굴을 한 시한폭탄이 대중에게 모습을 드러내기 직전이라는 뜻이다.
* * *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넨 작가가 대본을 나눠주기 시작했다.
“오늘 주제는 ‘계획’이에요. 계획형과 즉흥형으로 청취자분들께 사연을 받았고, 이건 대본입니다.”
작가가 대본을 나눠줬다.
“대본은 오프닝과 사연 상황극을 포함해 몇몇 부분만 있어요. 나머지는 라이트온분들의 애드립으로 채워주시면 됩니다. 오프닝 멘트는 어떤 분이 하시겠어요? 두 분 정도만 나서주시면 될 것 같아요!”
“저랑 수현이가 하겠습니다~!”
“네? 승하 형이랑 제가요?”
“이잉, 그래서 싫어?”
“아니요. 싫지는…….”
“그럼 낙찰~ 작가님, 저희가 할게요!”
시간은 금세 흘렀고, 라디오의 시작을 알리는 빨간 불이 들어왔다.
[ON AIR]
[ON AIR]
동시에, 오프닝을 맡은 최승하와 한수현이 정해진 멘트를 치기 시작했다.
“여행 계획 짜봤어요. 이동 시간 포함해서 여유롭게 나눴습니다. 가게가 문을 열지 않았다거나, 갑자기 날이 좋지 않아졌을 때의 차선책까지 엑셀에 정리해 놨으니까 미리 확인해 주세요.”
“와아~ 수현이는 대단하다! 나는 계획 그렇게 꼼꼼하게는 못 정하겠던데.”
“하지만 즉흥 여행도 매력 있죠. 내킬 때 바로 떠나는 여행, 짜릿하잖아요?”
주제에 충실한 오프닝 상황극이 끝나자마자, 라디오의 OST와 디제이의 시그니처 멘트가 이어졌다.
그리고 다음 순서는 게스트 소개였다.
“자아, 오늘 저희 라디오를 찾아와주신 분들이 있어요. 요즘 핫하신 분들이죠? 청취자분들에게도 소개드리겠습니다. 라이트온입니다!”
“Switch on your light! 안녕하세요, 라이트온입니다!”
“우와아아아~ 자알~! 생겼다! 다들 자기소개 한 분씩 부탁드릴게요.”
* * *
“…….”
생각보다 평범한 진행에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라디오가 시작하기 전부터 은은하게 지랄을 떨어대서, 허튼소리라도 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얌전했던 것이다.
- 내 자네의 이미지를 더 아름답게 만들어주겠네.
그 순간, 성좌가 지나가듯 내뱉었던 말이 떠올랐다.
나는 고개를 살짝 털어냈다.
가만히 입 닫고 있어주는 게 아름다운 이미지의 지름길이라고 친절히 덧붙였으니, 알아들었을 거다.
제정신이라면 말이다.
[ 와아~ 라이트온의 파워인가요? 벌써부터 실시간 채팅이 어마어마합니다! ]
디제이는 자연스럽게 댓글을 읽기 시작했다.
[ 라이트온 얼굴이 국보급이다. 빛이 난다. 정말 말 그대로 라이트온이다. 어우, 팬분들의 재치가 엄청납니다. ]
나 역시 스마트폰을 들어 올려 라디오 어플에 접속했다.
예상대로, 대부분의 채팅이 팬들의 것이었다.
하지만 애매한 오전 시간.
게다가 프로그램과 유O브와 달리, 라디오를 챙겨 보는 팬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
……정말 다행인 일이었다.
- 아기 천사들도 라디오를 할 수 있나요? ㄷㄷ
- 디제이님! 라이트온 잘 챙겨주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 라이트온인데 당연지사! 잘 챙겨 드려야죠~ ]
청취자들이 실시간으로 보낸 채팅과 문자를 몇 개 더 읽은 디제이가 본격적인 라디오의 문을 열었다.
[ 그럼 오늘 청취자분이 보내주신 사연 읽고 시작하겠습니다. ]
정석적인 라디오 진행이 시작됐다.
바로 상황극이다.
오프닝 때도 최승하와 한수현의 상황극이 진행됐던 것처럼, 청취자들의 사연을 대신 읽어주는 것이다.
[ 여행에서 계획형의 끝판왕인 남편과 한바탕하셨다고. 사실 저도 엄청난 즉흥형이라서 이 사연이 무척 공감 가네요. 음, 류인 씨가 읽어주시겠어요? ]
[ 제가 아내분을 맡으면 되는 걸까요? ]
류인의 물음에, 디제이가 하하 웃었다.
[ 네! 그럼 남편은…… 맏형 라인인 해온 씨가 함께 해볼까요? ]
나는 그 자리에서 귀신이라도 본 듯 벌떡 일어났다.
“…….”
못 볼 꼴을 봤기 때문이다.
방금 화면 속, 성해온이 정확히 나와 눈을 마주치며 눈을 깜빡였다.
그래, 소위 말하는 윙크처럼 말이다.
“돌았나.”
마치 본인을 믿어보라는 것 같았는데, 당신 같으면 믿을 수 있겠는가.
나는 차라리 눈을 질끈 감는 것을 택했다.
하지만 고막까지 틀어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마 대본에 정해져 있었을 대사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나는 감았던 눈을 서서히 떠올렸다.
그리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대사 읽는 것 정도로는 별 티가 나지 않는군.”
그래도 계속 나를 지켜봤던 짬이 있어선지, 어조나 말투도 거의 흡사하다.
내가 한숨을 돌리던 순간이었다.
“……!”
내 낯짝에 경악이 물들었다.
* * *
한편, 라디오 부스.
테이블에 둘러앉은 라이트온을 둘러본 디제이가 운을 뗐다.
“라이트온에서 내가 대표적인 계획형이다! 그리고 즉흥형이다! 하는 멤버가 있을까요?”
차윤재는 약간 긴장한 얼굴로, 두 주먹을 꼭 쥐었다.
이제 여기선 멤버들과의 일화를 풀며, 애드립으로 대화를 이어나가면 된다고 설명 들었지!
사실 아직도 방송이 익숙하지가 않아서, 긴장되긴 하지만…….
‘잘할 수 있어!’
차윤재가 미리 생각해 뒀던, 평범한 답을 내뱉으려던 찰나였다.
콕!
“……?”
처음엔 실수였나 싶었는데, 누군가가 계속해서 자신의 허벅지를 찌르고 있었다.
콕! 콕! 콕!
‘이 방향은 분명…….’
고개를 느릿하게 돌리자, 성해온이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자신과 눈이 마주치자, 성해온이 입 모양으로 메시지를 전하기 시작했다.
내 이야기.
“……!!”
찰떡같이 그 말을 알아들은 차윤재는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휙휙 끄덕였다.
드디어 이 형님이!
사실 자신을 포함한 멤버들은 매번 답답해했다.
그도 그럴 게, 각종 편집부터 시작해 매 기획까지 참여하면서도! 입도 벙끗하지 않으니까…….
과한 자기 자랑은 독이 될 수도 있겠다만, 이 형님은 너무 조용해도 너무 조용했다!
방송에서 관련된 말만 꺼내려 하면, 무섭게 미소 지으며 우리의 입을 틀어막았던 게 이 형님이었다.
‘그런데 웬일로?!’
잘 이해는 가지 않는다만, 평소 바라 마지않던 것이었으므로…….
차윤재는 기뻤다!
아무렴! 사람이 잘한 게 있으면 칭찬도 받아야지!
그렇고말고!
차윤재는 히히 웃으며 마이크에 입을 가까이 가져다 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