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216화
주르륵……!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착각이 일기 시작했다.
이 와중에, 차윤재는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 계획적인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해온 형님입니다! 이 이야기는 처음 하는 것인데, 사실 저희 앨범 기획에 대부분 참여하십니다! ]
[ 하핫, 맞아요! 이번 저희 응원봉 디자인도 형이 했잖아요. 스위치들은 다 알고 있겠지만? ]
응원봉 자체 제작은 컨텐츠로 풀렸으니 당연하게도 팬들이 알고 있다.
‘꽤 화제가 되기도 했고.’
……하지만 앨범 기획에 참여한 건, 여태껏 그 아무도 알지 못했다.
나는 메마른 얼굴을 슥슥 쓸어내렸다.
“…….”
참고로 차윤재 허벅지 찌르는 거 다 봤다.
빠르게 침침해지고 있는 내 낯짝과 달리, 실시간 채팅 속 스위치들은 폭주하기 시작했다.
[ 어우, 실시간 채팅창이 난리가 났는데요? 앨범 기획에 참여하셨다고요? ]
화면 속, 성해온은 얌전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입을…….
“다물면 안 되는 거지.”
말려야지, 정신 나간 놈아.
다물긴 뭘 다물어.
그 순간이었다.
한수현이 고개를 돌려 성해온을 짧게 살피더니,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추측하기로 성해온이 이 주제에 대해 암묵적인 동의를 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제발 내 예상이 틀리길 빌었건만, 한수현은 짐짓 뿌듯한 얼굴로 입을 열기 시작했다.
[ 네. 사실입니다. 절대 같은 멤버라서 이러는 게 아니고요. 이전의 부터 기획에 참여하셨습니다. PPT를 제작하셔서, 대표님을 설득하기도 했고요. ]
두 막내가 앞다투어 성해온에 대한 오프더레코드를 퍼뜨리자-
……라디오를 청취하던 일부 스위치들은 당연하게도 난리가 났다.
내가 라디오를 듣는 팬은 별로 없다고 했던가?
그 발언을 취소하겠다.
스위치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이 소식을 SNS에 전파하기 시작했다.
- [긴급속보] [긴급속보] [긴급속보] [긴급속보]
- 아 라디오 별 기대 없이 듣고 있는데 개흥미진진함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ㅅㅂ
- 성성성성해온 뭐냐? 이 남자 뭐냐고 이 남자 뭐냐고 이 남자 뭐냐고
이쯤 되니, 라디오를 들을 생각이 없었던 스위치들도 호기심에 이끌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 와우, 작가들이 난리가 났어요. 지금 갑자기 청취자 수가 급상승했다는데요? ]
디제이의 말과 동시에, 내 낯짝이 심각할 정도로 칙칙해졌다.
“…….”
나는 SNS의 스크롤을 내리기 시작했다.
- 얘들아 내가 뭘 들은 거냐? 진짜 웅장해진다 이 남자는 대체 어디까지 가려는 거냐?
- 이 대단한 걸 왜 지금까지 입 꽉 다물고 있었던 거임? 내가 성해온이었으면 동네방네 소리 지르고 다님
- 그저 경악
- 성해온 씨… 당신을 BK에서 스카우트하겠습니다. 제발 와주세요. 이쪽도 개노답 백준영이라고 있는데 설득 좀 해주시술 있으시련지 ㅈㅂㅈㅂ
- 얘들아! 너흰 너네 오빠가 웬만한 기획팀보다 일 잘하면 어떨 것 같아? 인용으로 MBTI랑 반응 알려줘!
흥분한 스위치들은 이미 하나부터 열까지 퍼즐을 끼워 맞추고 있었다.
- 잠깐만 나 너무 혼란스러움 그러니까 성해온이 MH 사장이라는 거지?
└ ㅇㅇ 내가 방금 김명훈이랑 원만한 합의를 봄
- 내가 지금 너무 너무 너무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드는데 혹시 바, 바바바반바지도 해궁이 아이디어일까?
└ 그 레전드 단체 반바지? 에이 그건 아닐 듯 이것까지 기획했으면 진짜 인정해 줘야 한다 ㅋㅋㅋ
- 말랑촉촉기존쎄독기베이비용안블루베리 해오니 ^_^
그 시각, 화면 속에 비치는 광경에 내 낯짝이 조금 더 아득해졌다.
“…….”
순식간에 급상승한 청취자 수에, 작가는 스케치북으로 예정된 대본을 폐기하고 더 대화를 이어나가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 지시, 철회해 주시면 안될까요?
작가의 지시를 본 멤버들은 신나게 기름을 들이붓기 시작했다.
물론 불타오르고 있는 건 내 억장이다.
[ 그리고 이건 저희끼리 유명한 일화인데……. ]
화면 속 최승하가 말문을 열며 성해온을 살폈다.
원래의 나라면, 애초에 이런 대화가 시작도 되지 않게끔 만들었을 테고…….
어쩔 수 없이 물꼬가 트였대도, 적당한 타이밍에 멤버들의 입을 틀어막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라디오 부스에 앉아 있는 성해온이 그럴 리 없었다.
최승하는 그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말을 이었다.
[ 제가 제일 놀랐던 건, 첫 자컨이 숙소 소개 영상이었거든요? 근데 어느 날 방에 딱 들어가니까 해온 형이 그걸 편집하고 있는 거예요. ]
[ 허어, 그걸 혼자 전부? ]
놀라운 얼굴의 디제이가 묻자, 최승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 네 전부! ]
[ 스위치분들이 난리가 났는데요? 편집을 정말 혼자 다 한 거냐고 묻는 댓글이…… 어우, 읽기도 힘들어요! ]
[ 믿기 힘드시겠지만, 해온 형이 전부 해내신 겁니다. ]
뿌듯하게 고개를 끄덕인 한수현이 추가적으로 입을 나불거리기 시작했고, 실시간 채팅창을 비롯한 SNS가 뒤집어졌다.
“…….”
이쯤 되니 그냥 허탈해지는군.
팬들은 새로운 정보에 축제 분위기였고, 멤버들은 신나서 떠들고 있었다.
매번 시도 때도 없이 이런 걸 말하고 싶어했으니까.
- 흐으음, 형은 가끔 이해가 안 된다니까~ 이걸 왜 숨겨요? 형은 알잖아요. 이미지에 플러스일 거라는 거! 물론 안 좋게 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아닐걸요~? 형이 이걸 모를 리가 없는데?
- 귀찮은 건 딱 질색이다.
- 형님이 한 노력이 있는데, 저희밖에 몰라주면 속상하지 않습니까?
- 하나도 안 속상해.
- 가끔은 자신을 솔직하게 내비치는 것도 필요한 법인 것 같습니다. 힘드시다면 가족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흠. 꼭 저를 말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언제나 준비가 되어있는…….
- ……잘란다.
- ……형이, 한 게 얼마나 많은, 데. 아무도 몰라, 준다는 건 조금, 불공평, 해요…….
- 너희만 알아주면 됐지. 상관없어.
- 해온아, 언제 기회가 되면 한번 말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 달콤이가 말하면 나도 말할게.
- …….
이런 상황이었다 보니, 말수가 그다지 많지 않은 놈들까지 나서서 이야기보따리를 풀고 있었다.
[ 저는 해온이가 정말 다재다능하다고 생각해요. 제 성격이 살갑진 않아서, 직접 표현한 적은 적지만 항상 대단하게 생각하거든요. ]
류인의 말에 신유하가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 맞아요. 정말, 정말, 대단해요……! 제가, 형 룸메이트인데, 매일 회사랑 연락하시고, 정말 기획에도, 많이 참여하시고…… 형은, 본받고 싶은 사람이에요……. ]
- 뭐야…? 라이트온이 국밥보다 따뜻해…
- 라디오보다가 이렇게 아련해져도 되는 거임? 오타쿠도?
- 그냥 임종하고 싶어짐 이 남자들 때문에
- 보라가 아닌 것이 통탄스럽도다 지금 애들 얼굴 어떨지 궁금해서 미치겠어
무언가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면, 그래.
이건 내가 긍정회로를 돌리고 있는 소리다.
이 정도면 넘길 수 있다.
게다가 팬들도 즐거워하고 있지 않은가.
솔직히 말하자면, 더 이상한 일을 벌일 줄 알았는데 이 정도면 넘길 수 있다.
나중에 유라이브 등에서 비슷한 질문이 들어올 테니, 나는 큰 토대만 짰고 세부적인 건 회사에서 지정했다고 정정하면 된다.
나 대신 억울해할 멤버들이 눈에 훤하다만, 강제로 입을 다물게 하면 될 일이다.
끄덕……!
긍정회로를 성공적으로 가동시킨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내 눈깔에서 생기가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디제이가 읽어선 안 되는 댓글을 읽기 시작한 것이다.
[ 청취자분들이 많이들 궁금해하시네요. 리더님이 기획에 참여했다고 하시는데, 의상에도 크게 참여하셨냐고? ]
나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경악스러운 얼굴로 화면을 응시했다.
안 된다!
……이것만은!
오타쿠 자아, 그러니까! 이해성의 정보를 갖고 있는 나는…… 지금껏 내가 낸 아이디어가 얼마나 이 바닥에서 독기 넘치는 선택인지 잘 알고 있다.
알면서도 낸 것이니 말 다 했다.
그러니 이건 관짝에 들어갈 때까지 비밀이어야만 했다.
내 동공이 떨리기 시작했다.
다른 건 몰라도, 이건……!
절대 안 된단 말이다!
하지만 내 애처로운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 예! 해온 형님이 참여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정말이지 대단한 형님입니다! ]
나는 숙소로 들어가는 즉시, 차윤재를 가만두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 솔직히 제 생각도 윤재 형과 같아요. 옆에서 지켜보면서도 놀라우니까요. ]
[ 으하하, 저도요! 리더 형 정말 잘 뒀죠, 저희? ]
손볼 녀석이 하나가 아니군.
흐려질 대로 흐려진 낯짝의 내가 눈을 껌뻑이자, 디제이가 과장된 리액션을 이어갔다.
[ 오! 이거 엔터테인먼트가 놓친 인재 아닌가요? ]
화면 속, 수줍은 얼굴의 성해온이 고개를 저었다.
[ ……그럴 리가요. 과찬이십니다. ]
네가 판 깔아놓고 무슨 부끄러운 척이야.
미친 새끼야.
침대 위에 대자로 누운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재밌네.”
인생이 아주 재밌어…….
- 앓다 죽을 성해온… 디제이가 칭찬해 주니까 과찬이라고 펄쩍 뛰는 거 어쩔 건데ㅠㅠ 자낮미 어쩔 거임 그냥 망태기에 싸서 도주하고 싶음 삼시세끼 따끈한 것만 먹이고 싶음
심지어 라디오가 진행되는 내내, 성해온은 가증스럽게도 멤버들을 말리는 듯한 말을 내뱉었다.
물론 진심으로 말렸을 리는 없다.
하지만 이건 청각으로만 들을 수 있는 라디오라는 게 중요했다.
듣는 이들로 하여금, 자신을 띄워주는 말을 꺼내는 멤버들을 막으며 곤란해하는…….
그래.
그런 행동에, 스위치들은 감동해 버린 것이다…….
- 근데 애들이 해온이 진짜 좋아하넼ㅋㅋㅋ 안 봐도 참리더다 진짜
- 해온이 얼굴 안 보이지만 백퍼 불타오르고 있을 듯 귀염둥이야
- 어딜 숨겨 어딜 숨겨~! 진짜 어이없다 윤재 아니었으면 이걸 평생 숨기려고 했냐고 ㅠㅠㅠ!!
- 아 해온이는 정말 속이 깊은 것 같음… 솔직히 기획에 이 정도로 참여했고, 그 시점부터 반응이 왔으면 으스댈 법도 한데 지금까지 말 안한 거 보면…
물론, 이렇게 감동한 스위치들이 있는가 하면.
- 성해온 딱 말해 애니 몇 개 보냐
- 성미놈에게 저당잡힘… 헤어나올 수가 없음…
나를 놀리는 분들도 다수 포진되어있다.
심지어 벌써 따끈따끈한 별명까지 붙었다.
- 성해온… tlqkf… [성공에 미친 놈] 줄여서 [성미놈]
- 떽! 성미놈이라니, 저분은 우리의 영웅이시다!
- 경배하라 (처억)
성미놈.
성공에 미친 놈의 줄임말이다.
“…….”
물론 긍정적인 의미다.
이분들, 전부 나를 가장 좋아하시는…… 그래, 성해온 최애인 분들이시거든.
순정만화즈와 로코즈라는 별명을 얻었을 때부터 느꼈다만, 날 좋아하시는 분들은 누구보다 날 놀리는데 진심이시군.
나는 동태가 냉동창고에서 달려나와 당장 친구를 하자고 달려들어도 위화감이 없을 듯한 눈깔로 고갤 끄덕였다.
“……좋아하시면 된거다.”
그래, 즐거움을 드렸으면…….
된 거다.
나는 어쩐지 슬픈 얼굴로 눈을 껌뻑이다가, 눈꺼풀을 감았다.
X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