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217화
바로 여기.
고인물 오타쿠 곽덕배는, 보통의 팬들이 소홀히 하는 라디오조차 놓칠 생각이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스케줄이 하나도 없어서 다 헤진 떡밥을 허겁지겁 주워 먹던 시절을 떠올려 봐라…….
그렇다.
지금은 그때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한 것이다.
“김명훈…….”
갑작스레 명훈이에 대한 그라데이션 분노가 차오른 곽덕배는 주먹을 쥐었다.
하지만 분노는 오래가지 않았다.
라디오가 진행되면 될수록, 곽덕배의 입이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뭐야?”
“뭐, 뭐, 뭐야?”
곽덕배는 지금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처, 천천히 생각해 보자.”
“그러니까, 해온이가 MH 사장이라는 거지?”
“그래, 그런 거지.”
셀프 자문자답을 마친 곽덕배가 주먹으로 벽을 강타했다.
“돌았나!”
지금 라이트온 멤버들은 성해온을 계속해서 자랑하고 있었다!
“임종할란다.”
한도 초과의 깜찍함에, 진심으로 혼절하고 싶어진 곽덕배는 거친 숨을 내뱉었다.
“후우욱……”
옆에서 동생이 오타쿠 같은 숨소리를 내지 말라며 비난했지만, 모르는 소리였다.
이건 오타쿠의 마음이 내는 소리였다.
“하아아아…….”
길고 긴 한숨을 내뱉은 곽덕배는 아찔한 얼굴로 스크롤을 내렸다.
한줌단 시절부터 라이트온을 팠던 일편단심 고인물들은 거의 오열하고 있었다.
- 김명훈이 정신 차린 줄 알았는데 아니었네
- 성미놈 그는 대체…?
- 성해온 독기 미쳤네 tlqkf
But!
행복해…
However!
정병들 들러붙을까 봐 걱정돼…
Neverless!
하지만 썰 더 풀어줬으면 좋겠어…
진짜 내 마음은 뭘까…?
어느 순간부터 기획의 결이 싹 바뀌었다 싶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단 말인가.
곽덕배는 벅차오르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이 쩌는 걸 왜 지금까지 숨긴 거지? 이해가 안 되는…….”
-라고 중얼거린 곽덕배는 잠시 멈칫했다.
평소의 성해온을 떠올리니, 순식간에 납득된 것이다.
“……아니다. 이해되네.”
사실 고인물들끼리 암묵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 하나 있었다.
- 해온이 어쩌면… 나보다 인터넷 많이 할지도…
- 모니터링 많이 하는 티 필사적으로 안 내려고 하는 것 같은데 느껴짐 그의 감출 수 없는 기운이
└ 오타쿠는 오타쿠를 알아보는 거임
바로 성해온이 팬들의 반응을 꽤 열심히 체크한다는 것을 말이다!
모를 수가 없는 게, 성해온은 너무, 너무나도…….
팬들의 니즈를 잘 맞췄기 때문이다!
잘 맞추는 수준이 아니라, 찰떡같이 맞추는 수준이었다.
무언가 논란이 생기면, 곧바로 셀카를 동반한 갖은 재롱을 부리며 팬덤을 진정시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그뿐이랴, 성해온의 이런 모먼트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무박 3일도 부족했다.
종합하자면, 덕질 꽤나 해본 스위치들은 이미 성해온의 그런 면을 눈치채고 있었다는 것이다.
‘기획이나 의상까진 몰랐지만!’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자면, 꼬투리를 잡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먹잇감이 될 확률도 높아지니…… 여태껏 그 공로들을 감춘 게 이해 간다.
하지만, 그런 부정적인 점보단 긍정적인 점이 훨씬 컸다.
어느 판에 가나, 과하게 나대지 않는 이상 ‘덕잘알’ 이미지는 호감일 수밖에 없거든.
지금 실시간 트렌드에 성해온 이름 석 자가 올라간 것처럼 말이다.
- 성해온 명예 이사 자리 줘
└ 그냥 사장 시켜주자
└ 김명훈은 물럿거라 물럿거라
- 얘들아 내가 생각을 해봤는데 해온이를 국회로 보내야 할 듯
└ ㅇㅈ 성해온을 국회로
SNS에서 화제가 되자, 커뮤니티에서도 연이어 언급되기 시작했다.
[한 기획사의 비선실세 아이돌 ㄷㄷ]
* 비선실세 : 권력을 가진 자의 배후에서 은밀히 실제 권한을 행사하는 자를 이르는 말
????????????????
아이돌 그룹에서 비선실세?
뭔 헛소리야~(웅성웅성) 할 수도 있겠지…
근데 MH엔 정말 비선실세가 있다…
(Running mate 사진)
(Flame 사진)
이 화끈한 의상은 활동 당시에도 온갖 오타쿠들의 찬사를 받았던 전적이 있다…
하지만 우리 순진한 오타쿠들은 그저 기획팀에 배운 변태가 들어왔다고 생각했을 뿐… 그 배후가 멤버였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거다… 아아… (통탄스러워하기)
엄청난 장문으로 이루어진 글은 곽덕배조차도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반바지를 비롯한 독기 의상을 연달아 붙여놓은 건 박수를 쳐주고 싶을 정도다.
“내가 타 팬이어도 이 자식 뭐지, 싶어서 찾아보겠는데.”
이미 비선실세와 성해온을 합쳐 행선실세라는 말이 떠돌고 있었다.
- 아 ㅅㅂ 성미놈에 이어 행선실세 개찰떡 별명 대체 몇 개가 생성되는 거임
- 성해온 진짜 ㄹㅈㄷ 웃수저답다 붙는 별명들도 하나같이 웃김 아 개그라고는 아무것도 모르게 생겨서는 개그의 축복을 받은 그이
- 나 사실 성해온이라는 남자에게 관심이 간다… 난 오타쿠 성질을 가지고 있는 남성에게 끌리는 고질병이 있단 말이야~!
└ 평생 함께하자며 라이1트온 이 자식들 내가 가만 안 둠 내 친구들 다 뽀려가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아. 들린다, 들려.”
곽덕배는 흐뭇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해온이 주가 올라가는 소리가.”
* * *
그리고 여기.
이 화제의 중심이며, 아마도 주가가 올라가고 있을 성해온도 반응을 확인하고 있었다.
눅눅…….
……무척 눅눅한 낯짝으로 말이다.
“하아아아아아아아…….”
개인적으로 드러내기 싫었던 거지, 알려지면 성해온의 이미지에 플러스알파가 될 거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그 어떤 팬이 기획에 열심히 참여하는 멤버를 싫어하겠는가!
하지만!
내가 추구하는 이미지는 상냥한 리더였단 말이다!
몇몇 스위치들이 날 인터넷 중독자로 보고 있다는 건,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이해성의 오타쿠 자아를 갖고 있는 내가 그런 걸 파악하지 못할 리 없지.
……그럼에도.
그저 인터넷 많이 하는 사람과, 그 니즈를 모조리 파악해서 기획에 손을 대는 사람은 너무나도 하늘과 땅 차이 아닌가!
- 아 ㅋㅋ 성해온 내 트친이라고 ㅋㅋ
- 해온아 디엠해
- 여기 제 왼손엔 블루베리가 있고요~ 오른손엔 독기가 있습니다~ 이 두 개를 팡 섞으면? 성해온 완성! ^^
- 해온이는 공개된 게 싫은 것 같지만 우린 오히려 좋다 미안하다 이런 스위치라서
- 나 다음 앨범도 기대해도 되는 거임? 진짜 고맙다…
보면 볼수록 슬퍼지는 것 같으니 그만 보도록 하자.
스마트폰을 대충 던진 나는 흐릿한 낯짝으로 침대에 드러누웠다.
그러자 프레임이 내 시선을 따라 옮겨지더니, 천장 쪽에 고정됐다.
라디오 시작 전에 작성한 항목에 대한 토크가 짤막하게 이어졌고, 디제이는 슬슬 마무리 각을 잡고 있었다.
[ 잘생긴 분들이 많아서 그런지, 오늘 우리 작가들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질 않네요~ ]
[ 으음? 이런 말, 디제이 선배님께 들어도 되는 건가요? 디제이님의 얼굴에서 빛이 나는데요! ]
[ 승하 씨? 승하 씨는 끝나고 남아요. 커피 사줄게. ]
[ 와아~ 비싼 거 먹어도 되나요? ]
[ 세상에, 저는 지금 제 지갑을 드릴 뻔했어요. 백 잔도 사드릴 수 있겠는데요? 저 지금 진지합니다. ]
[ 근데 승하 진짜 잘 먹어요. 디제이님 지갑을 지켜 드려야겠는데요? 하하. ]
[ 류인 씨의 따뜻한 마음씨에 감동했습니다. 저, 오늘 라이트온 전원에게 음료 쏘겠습니다! ]
나는 침침한 눈을 껌뻑였다.
‘드디어 끝났군.’
참고로 오늘은 라디오를 제외한 스케줄이 없다.
디제이의 공약대로 음료를 얻어먹은 멤버들이 약간의 담소를 나누고는, 매니저의 뒤를 따라 밴에 올라탔다.
[ 배 많이 고프시죠? ]
운전대를 잡은 매니저가 묻자, 멤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루 종일 공복에 음료만 마셨으니, 식사할 때긴 하군.
밴은 식당에 멈춰 섰고, 훌쩍 뛰어내린 최승하가 잇따라 나오는 성해온에게 몸을 치댔다.
[ 형, 안 추워요~? ]
[ 그다지. ]
[ 오늘 해온이 컨디션이 정말 좋아 보이는데? ]
류인의 말에 한수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 맞는 말씀입니다. 평소였다면 몸을 많이 떨고 계실 텐데, 오늘은 그렇지 않으시네요. ]
[ 흠. ]
[ 건강하신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
이 꼴을 직관하고 있는 내 낯짝이 묘해졌다.
저 자식들, 나를 대체 어떻게 보는 건지 모르겠군.
……건강하신 모습이 보기 좋다니.
이건 꼭 귀여운 손자가 노쇠한 할아버지의 손을 꼭 붙잡고 하는 말 같지 않은가.
바로 그 순간이었다.
화면 속 성해온이 시선을 들어 올리더니, 나와 눈을 마주친 것이다.
“……!”
내가 침대에서 몸을 일으킴과 동시에.
파앗-
“……허.”
나는 기가 차다는 얼굴로 화면을 바라봤다.
방금까지 상황을 보여주던 화면이 종료됐다.
네모나게 떠다니던 프레임이 한순간에 사라졌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하겠다만.
나는 천천히 상황을 되짚었다.
내 몸을 납치하고, 성좌들의 눈을 가리면서까지 일을 계획했다면…….
분명 어떤 목적이 있었을 거다.
고작 내 이야기나 떠벌리려고 이런 짓을 벌이진 않았을 것 아닌가.
화면이 꺼지는 건, 충분히 예상했던 바라는 뜻이다.
- 자네의 동료들인데, 설마하니 내가 몹쓸 짓이라도 할까. 걱정 내려놓고, 쉬시게.
멤버들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겠다는 말은 들었다만, 원래 또라이 말은 믿는 게 아니다.
‘우선 여기가 어딘지 파악해 볼까.’
라디오 생방송 중인 성해온이 바깥에서 사진을 찍힌다면, 그건 심령사진과 다를 바 없는 호러다.
하지만 멤버들의 현 위치는 식당.
게다가 그 식당은 개별 룸 형식이니, 최악의 경우로 문을 열자마자 누군가에게 목격된대도 큰 소란이 나지 않을 거다.
애초에…… 이 꼴을 하고 돌아다닐 생각도 없지만.
‘정신 이상자 취급 받을 일 있나.’
그냥 고개만 내빼 대략적인 위치만 파악할 셈이다.
결심을 마친 나는 조용히 몸뚱어리에 이불을 둘러매기 시작했다.
이불의 양 끝을 잡아 매듭진 나는, 이내 시선을 내렸다.
“…….”
우습지도 않은 모양새였지만, 정신 나간 변태로 몰리는 것보단 낫다.
나는 문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후우.”
심호흡을 마친 나는, 결연한 얼굴로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끼이이익-
……쾅!
곧바로 닫아버렸지만 말이다.
“……?”
방금, 내가 뭘 본 거지.
문을 열자마자 펼쳐진 광경에 정신이 조금 아찔해진 나는 생각을 고쳐먹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 잘못 봤겠지.
내가 본 광경보다는, 내 눈깔이 일시적으로 삐었을 거란 가정이 더 신빙성 있었기 때문이다.
헛것이라는 판단을 내린 나는 다시금 문고리에 손을 올렸다.
끼이이이-
느릿하게 문을 열어젖힌 내 얼굴에 은은한 미소가 걸렸다.
……잘못 본 게 아니었다.
왜 바깥에 아무것도 없는 거냐고.
뭐, 산꼭대기나 바다 한복판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차라리 그런 거라면, 이 정도로 황당하진 않았을 거다.
그야말로 암흑.
이게 성좌의 아공간이라는 걸 알 리 없는 나는 얌전히 문을 닫았다.
우두커니 선 나는 결심했다.
보상, 무조건 받아낸다.
받아내는 수준이 아니라 탈탈 털어버릴 거다.
오기만 해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