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268화
신유하의 손가락이 애처롭게 떨리기 시작했다.
파들파들…….
상대가 상대다 보니, 떨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 흐음~ 누가 할까. 내가 할까?
- 객관적으로 판단했을 때 익숙한 기척을 가진 분이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승하 형이나 유하 형 같은.
- 아냐, 내가 해볼게.
- 안 됩니다! 류인 형님은 뭔가 기척이 있으십니다! 차라리 제가 하겠습니다!
- 아니에요, 제가 할 수 있어요……!
‘이렇게 떨 거면서, 왜 자신만만하게 나선 거야……!’
과거의 본인을 나무란 신유하는 눈을 질끈 감으며 팔을 뻗었다.
그리고 그 순간.
“……!!”
성해온의 스마트폰에 떠오른 스팸 메시지에, 신유하가 음소거로 경악하며 펄쩍 뛰었다.
덩달아 심장을 쓸어내린 멤버들 사이에서, 신유하는 침착하게 계획을 이어갔다.
타악-
방문을 닫고 나오는 데 성공한 신유하가 그 자리에서 허름한 안색으로 주저앉았다.
“심, 심, 심장이…… 나쁜 짓, 하는 것 같아서!”
“하핫, 성공하긴 했다는 거구나!”
“응…….”
신유하가 고개를 끄덕였고, 최승하가 웃었다.
“거봐. 그 형 잘 때는 업어 가도 모른다니까?”
“보는 제 수명이 단축될 뻔했습니다! 이게 이렇게 무서울 일입니까?”
벌렁대는 심장을 부여잡은 차윤재의 옆에 선 류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해온이한테 들키면…… 음.”
뒷말이 이어지지 않았음에도, 모두가 알아들었다.
성해온에게 들키는 순간.
등짝을 얻어맞는 걸론 끝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해온 형은 눈치가 빠르시니, 끝까지 속이는 건 힘들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수현이 흠, 소리를 냈다.
“사실 벌써 눈치채고 있으실지도요.”
* * *
“흐아암.”
하품한 나는 곧바로 침대에서 일어났다.
저번에 구매했던 힐링포션이 아직 돌고 있어서인지.
‘꽤 살 만하군.’
고개를 주억인 나는 여러 방문을 벌컥벌컥 열어젖혔다.
이 시간부터 어딜 간 건지, 숙소에는 나뿐이었다.
“흠.”
아무래도…….
이 자식들, 뭔가 준비하고 있는 것 같지?
사실 얼마 전부터 눈치 깠다.
옹기종기 모여 떠들다가, 내가 근처에만 가면 파드득 놀라 흩어지는 걸 몇 번 목격했으니까.
자기들 딴엔 자연스럽게 행동한 것일 테지만, 음.
나는 거실 벽에 붙은 시계를 힐끔 응시했다.
그래, 내일이 2월 7일.
내 생일이다.
원래 내 몸의 생일이기도, 성해온의 생일이기도 한 날 말이다.
* * *
이해성은 캘린더를 살폈다.
라이트온의 생일을 표시해 놓은 캘린더였다.
[성해온 – 2월 7일]
[류인 – 12월 26일]
[신유하 – 4월 6일]
[최승하 – 9월 20일]
[차윤재 – 7월 17일]
[한수현 – 11월 21일]
이해성은 달력을 덮으며 흠, 소리를 냈다.
곧 성해온 생일이구나.
라이트온은 그룹 내에서 인기가 심각하게 갈리는 편은 아니다.
비주얼이 빠짐없이 훌륭한 데다가, 이렇다 할 병크도 없었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었다.
‘다들 팬한테 잘하기도 하고.’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인기 많은 멤버는 있게 마련.
바로 생일을 앞두고 있는 성해온이다.
알기로, 원래 성해온은 그룹 내 1티어까진 아니었다.
하지만.
실력을 포함한 팬사랑, 팬잘알 모먼트가 퍼지며 라이트팬과 코어팬이 골고루 급증한 것이다.
그런 멤버의 생일이니…….
“서포트 좀 들어오겠는데.”
그로부터 며칠 뒤.
이해성은 자신이 라이트온의 최근 기세를 간과했다는 걸 깨닫는다.
MH의 직원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오우, 저번에 그 류인이라는 친구 때도 엄청났는데, 이번엔 더하네.”
류인의 생일은 라이트온의 사고 직후였다.
……그땐 당사자의 의지로 조용히 넘어가기도 했고.
성해온이 의식도 못 찾고 있었을 때였으니까.
그 순간이었다.
“와, 이거 신형 스마트폰에, 노트북에, 명품에, 이야…….”
배우를 담당하는 기획 1팀의 남자가 말을 이었다.
“아이돌 팔자가 제일이네!”
웃자고 한 소리였겠지만, 이해성의 입장에선 그다지 듣기 좋은 소린 아니었다.
그 뒤에 노력이 얼마나 있어야 하는데.
게다가.
데뷔한 그룹이 10그룹이라면, 그중에 8그룹은 정산조차 못 받고 해체일걸.
이해성은 비즈니스용 얼굴을 걸친 채, 속으로 혀를 끌끌 찼다.
그나저나, 라이트온은 잘 준비하고 있으려나.
‘갑자기 연락 왔을 땐 놀랐지.’
어느 날 기획 3팀에 연락이 온 것이다.
평소 성해온과는 업무에 관련된 메일을 자주 주고받았지만, 멤버들은 처음이었다.
성해온의 생일과 관련된 이유였다.
공식 계정에 무언가를 올릴 땐 회사에 허락을 맡는 게 보통이니까.
생일파티 후 찍은 사진을 팬덤에게도 공유하고 싶다는 말에, 이해성은 곧바로 긍정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 당연히 괜찮죠! 팬분들이 좋아하시겠는데요. 아, 그리고 이건 제안인데요.
성해온을 만난지는 얼마 안 됐지만, 단 한 가지 확실한 건…….
놀라울 정도로 이 바닥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는 점이다.
‘누구 깊게 파본 적 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팬들의 심리를 정확하게 꿰고 있는 모습을 보여줄 땐, 솔직히 어이가 없을 정도다.
활동기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비활동기엔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런 것들을 웬만한 전문가보다 잘 파악하고 있다고 하면 설명이 되겠는가.
그러니 자신이 아는 성해온이라면 지금 같은 공백기에 재미있는 컨텐츠를 바랄 것이다.
만일 본인의 생일이 아닌 멤버의 생일이었다면, 분명 기획팀에 관련된 계획을 보냈을 거라고 확신할 수도 있었다.
무슨 제안이냐고 묻는 라이트온에, 이해성은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 라이브 말씀이십니까? 정말 좋은 생각이지만, 드, 들키지 않겠습니까?
- 맞아요. 조금 불안한데, 형이 좋아할 것 같긴, 해요……!
- 내 생각도. 해온이는 그쪽을 좀 더 좋아할 거 같아.
- 흠, 듣고 보니! 그 형은 이 좋은 컨텐츠를 왜 라이브 안 켜고 몰래 준비했냐면서 열받아할 것 같기도 하고?
-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멤버들은 곧바로 긍정했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자신이 아는 걸, 라이트온이 모를 리 없으니까.
그리고 대화를 건너 듣던 이해성은 생각했다.
‘서프라이즈로 하고 싶나 보네.’
솔직히 성해온은 벌써 눈치챘을 것이다.
그 비범한 눈치로 멤버들의 분위기도 파악 못 했을 리가.
하지만.
자세한 건 모를 것이다.
- 성해온 씨가 오늘 회사에 오면, 저희가 어떻게든 붙잡아볼게요. 그럼 우려하시는 부분은 괜찮지 않을까요?
라이트온에게선 곧바로 열렬한 반응이 튀어나왔다.
어쩌다 보니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된 이해성은 어깨가 무거워짐을 느꼈다.
생각하면 할수록 난감한 탓이었다.
……사실대로 불자면, 정재진에게 넘길 생각이었다.
자신보다는 성해온과 친밀할 테니 쓸데없는 말로 붙잡기도 쉽지 않겠는가.
하지만 이해성의 이러한 계획은 처참하게 무너졌다.
“하필이면 제가 오늘 외근이라…….”
이런 사유였다.
“하지만 해온 씨에게 멋진 생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니 잘 부탁드립니다!”
파이팅을 담아 말을 마친 정재진이 슬그머니 덧붙였다.
“그리고 그 어떻게든…… 스마트폰 사용을…….”
모르긴 몰라도, 성해온이 스마트폰을 보는 순간 서프라이즈는 끝장이었으니까.
이해성은 결연한 얼굴로 두 주먹을 꽉 말아쥐었다.
‘어떻게든 성공한다!’
* * *
회사에 도착하자, 저 멀리서 정재진이 반갑게 다가왔다.
“아, 해온 씨!”
목을 까딱 숙이며 인사하자, 정재진이 나를 안내했다.
“서포트 도착한 건 한곳에 모아놨거든요. 따라와 주세요.”
그리고 얼마 안 가, 어마어마한 서포트를 마주한 내 동공이 살짝 흔들렸다.
“……이게 다 저에게 온 거라고요.”
대충 훑어봐도 고가의 물건이 너무 많았다.
오타쿠 자아를 보유하고 있는 나로선, 이런 서포트는 아낄 게 아니라 최대한 자주 착용하는 것이 감사를 표현하는 길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부담을 드렸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군.
큰 일이 있었다 보니, 아무래도 더 무리하신 것 같은데.
아직까지 수많은 이들에게 애정을 받는다는 게 익숙해지지 않았지만…….
감사하다는 마음만은 진심이었다.
“더 잘해야겠습니다.”
“팬분들께요? 하지만 해온 씨는 이미 잘하고 계시는 걸요.”
정재진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물건들은 매니저님 통해서 빠른 시일 내로 보내 드릴게요.”
“괜찮다면 편지 종류는 오늘 제가 가져가고 싶은데요.”
“꽤 많은데 한 번에 다 가져가시겠어요?”
“예.”
“역시 해온 씨는…….”
“…….”
정재진의 반짝거리는 눈빛을 슬며시 피할 무렵, 익숙한 목소리가 가까워졌다.
“엇, 오셨네요! 생일 축하드려요. 물론 내일이지만.”
“……!”
이 몸으로 이해성에게 생일 축하를 받을 줄은 몰랐는데.
생각지도 못했지만, 나쁘지 않군.
내 입가에 옅은 미소가 스며들었다.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연히 축하드려야죠, 그리고 이번 주는-”
“내내 맛있는 거 먹을게요.”
“으음?”
이해성이 고개를 기울였다.
“제가 하려던 말인데 또 통하네요!”
“저도 그런 말을 많이 들어서요.”
이해성의 축하 방식은 언제나 이랬다.
내 생일, 그러니까 2월 7일이 속한 한 주는 무조건 생일 주간이었다.
생일이 아닌 날들도 생일처럼 보냈으니까.
- 엄마랑 아빠가 축하 안 해줘서 섭섭해?
- 전혀.
- 그치? 누나가 일당백 해준다.
아마도.
빈자리를 채우기 위한 이해성만의 노력이었으리라.
그 순간이었다.
“아!”
손뼉을 짝, 친 이해성이 말을 이었다.
“혹시 시간 있으세요?”
“……?”
“그럼 잠깐 저랑 커피 한잔하실래요?”
뭔가 수상한데.
그것도 아주 많이…….
* * *
사옥에 위치한 작은 사내 카페.
나는 맞은편에 앉은 이해성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확실하다.
미묘하게 어색한 눈동자.
그리고 테이블을 느릿하게 두드리는 손가락.
저건 무언가 숨기는 게 있을 때 나오는 이해성의 버릇이다.
물론 나와 비슷하게 가식적인 얼굴을 잘 걸치는 탓에, 웬만한 사람은 눈치챌 수 없겠지만…….
평생 같이 산 나는 이야기가 다르지.
그리고 하나 더.
아까부터 눈길이 가는 게 있다.
이해성의 목에 걸려 있는 저 은색 목걸이 말이다.
나는 기억이 없다만, 엄마의 유품이라고 한다.
이해성은 부모님 기일의 한 달 전에 저 목걸이를 착용한다.
그리고 기일의 다음 날, 앨범에 인사를 한 뒤 돌려놓곤 했다.
닳을 리가 없는 물건임에도, 너무 소중한 탓이었다.
부모님의 기일은 이미 지났다.
그러니, 원래라면 목걸이가 다시 보관함에 돌아갔어야 할 날짜인데.
……어째서?
“아, 이거 목걸이 보고 계셨어요? 신기하게 생겼죠?”
“……! 죄송합니다. 일부러 쳐다본 건 아니었는데.”
“에이~ 뭘요.”
이해성이 목걸이를 매만졌다.
“아끼는 거라 한 달만 끼는 거거든요. 엄마 기일 전까지.”
나는 순간적으로 내 귀를 의심했다.
……기일 전까지?
오늘은 2월 6일인데,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이미.
기일은 지났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