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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269화 (269/300)

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269화

심장이 느릿하고, 무겁게 달음박질쳤다.

‘진정하자.’

나는 입안의 여린 살을 깨물었다.

말이 헛나온 걸 테다.

아니면 올해부터 목걸이를 계속 지니고 다니는 걸 수도 있고.

뒷이야기를 제대로 듣지 않았으니, 여러 가능성이 있지 않은가.

“……! 제가 괜히 불편한 이야기를 꺼냈나 보네요. 괜찮으세요? 안색이 갑자기…….”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으려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

멍청하게, 낯짝 관리도 제대로 못 해서.

“……괜찮습니다. 가벼운 두통이 잠깐 왔던 모양입니다.”

“어지럽진 않으시고요? 으으음, 잠깐만 기다리세요. 어디 가지 마시고요!”

자리에서 일어난 이해성이 바깥으로 뛰어나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왔다.

“약을 좀 사 왔는데, 허어억, 오랜만에 뛰었더니 죽겠네……! 체력 무슨 일이지?”

목이 타는지 물을 들이켠 이해성이 내 쪽으로 빵 접시를 밀었다.

“빈속엔 안 좋으니까, 이거 먼저 드시고 복용하세요.”

고개를 꾸벅이며 감사의 말을 전하자, 이해성이 나를 응시했다.

“사실 저 성해온 씨 본 적 있거든요. 기억 안 나시겠지만?”

“……!”

내 눈이 조금 커졌다.

지금 이 주제가 나올 줄은 몰랐으니까.

……내가 기억을 못 할 리가.

하지만.

평범한 사람이라면 한 번 들른 약국에 신경을 두진 않겠지.

나는 처음 듣는 이야기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모자 쓰고 계셨는데도 딱, 느낌이 오는 거예요. 연예인인가? 싶었죠.”

“눈썰미가 좋으시네요.”

“감탄할 게 아니라! 그때도 어지럼증 호소하시면서, 막…… 진짜 아파하셨잖아요. 저 진짜 119 부를 뻔했어요.”

이해성의 얼굴이 진지해졌다.

“건강이 제일이에요. 그것보다 소중한 게 어딨겠어요? 잘 먹고, 잘 쉬셔야 합니다. 스트레스 최대한 멀리하시고! 씁, 제가 삼이라도 있으면 드리는 건데…… 어라?”

이해성의 눈이 커졌다.

“방금 제 말이 재밌었나요? 개그 취향 특이하시네…… 그래, 이렇게 웃으니까 얼마나 보기 좋아요?”

“……!”

나는 입매를 매만졌다.

웃고 있었다.

정말로.

- 야야, 해온아. 허구한 날 공부해 봤자 골병 얻으면 끝장이다. 그런 의미로 누나가 아끼는 삼을 하사해 주마.

- ……누나는 입맛이 왜 그래?

- 이 새끼, 이거, 삼 귀한 줄 모르고…….

상대가 상대니, 분위기는 다르지만.

이해성은 여전히 이해성이군.

그래.

세상에서 사라진 건, 이해온 하나다.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내가 작게 웃자, 이해성이 물음표를 띠었다.

“재밌는 거 있음 공유 좀 해줘요. 혼자 웃지 마시고.”

“그냥, 애들이 뭘 준비하고 있을까 싶어서요.”

“……!”

눈이 휘둥그레진 이해성이 허! 하며 웃었고, 나는 입을 열었다.

이해성이 뜬금없이 나를 붙잡은 이유 말인데, 추측 가는 게 있거든.

“애들이 부탁했나요? 저 잡아달라고.”

“음? 아닌데요.”

“방금의 반응으로 확실해졌어요. 정답이네.”

내가 싱긋 웃자, 이해성이 소름 돋는다는 듯이 팔을 슥슥 쓸어내렸다.

“저 방금 자연스럽지 않았어요? 지, 진짜 무서운 사람이시네! 그렇게 안 봤는데?”

“아까 보니까 자리에 서류도 많이 쌓여 있으시던데, 고생하시네요.”

두고 온 일거리들이 떠올랐는지, 이해성이 흐릿한 얼굴로 아메리카노를 들이켰다.

“일하러 들어가 보세요. 마침 저는 잠깐 가볼 데도 있고, 뭣보다.”

나는 피식 웃으며 스마트폰을 흔들었다.

“이건 최대한 안 볼게요.”

“……와아, 진짜 못 당하겠네! 약속이에요?”

“아무렴요.”

* * *

“성해온 생일이라는 빅 이벤트? 이건 못 참지.”

곽덕배는 서울 내에서 열리는 모든 이벤트 카페에 갈 작정이었다.

이름하여, 성해온 생일 투어.

신나게 길을 걷던 곽덕배가 멈칫한 건, 4번째 생일 카페에서 나온 직후였다.

“음료로 배 찬 게 레전든데.”

공복으로 나와 음료만 넉 잔째였다.

참고로 아직 가야 할 카페가 수두룩했다.

“음.”

두 눈을 차분히 감은 곽덕배는 고뇌하며 턱을 문질렀다.

“그래! 소화할 겸 지하철 역 광고나 보러 가야겠다!”

“원래 갈 생각이었으면서 즉흥적인 척하는 거 레전드다.”

“저기 있잖아. 팩트폭력도 폭력이야.”

“야, 근데 성해온 인기 진짜 많네. 다른 애들도 코어팬 많지만 얘는 좀 차원이 다르네.”

근돌의 말에 곽덕배가 답했다.

“근데 그…… 류인이 생일은 시기가 좀 그랬으니까, 이벤트 카페들도 줄줄이 취소되고 그랬잖아.”

“하긴. 그때만 생각하면 간담이 서늘하다.”

“너도 류인이 생일 카페 준비했다가 엎었으니까.”

“쾌차해서 다행이지. 그깟 생일 카페야 다음 기회에 다시 열면 그만이고.”

둘은 대화를 이어나가며, 역사 안으로 진입했다.

“일단 여기서 전광판 보고, 바로 삼성역으로 넘어간다. 거기 전광판도 걸렸고, 근처에 생일 카페까지 있으니까…….”

“저거 같은데.”

근돌이 어딘가를 가리켰다.

성해온의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걸린 대형 전광판이었다.

그것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어쩐지 과거가 떠오른 곽덕배가 아련하게 입을 열었다.

“내가 전에 모금 열어서 전광판을 한 적이 있는데.”

“설마 그거, 네가 한 거야?”

라이트온이 직접 보러 간 데다가, 인증까지 남겼던 대형 전광판은 스위치들 사이에서 유명하니까.

“곽덕배 폼 미쳤네.”

놀라움을 삼킨 곽덕배가 말을 이었다.

“오늘 또 나타날 가능성은?”

“다른 남돌이었으면 헛소리하지 말라고 할 텐데, 해온이라면…….”

곽덕배가 푸하하 웃으며 말을 이었다.

“가능성 있을지도!”

* * *

홀로 남은 나는 엊그제 모니터링을 하다가 발견했던 내 생일 기념 광고를 떠올렸다.

거리가 그 정도면…….

“갈 만하지 않나.”

생일 전날인지라 주변에 팬이 있을 수도 있지만…….

지금 내 꼴은 MH 직원들도 놀랐을 정도의, 완전무장 상태라서 말이다.

거의 강도 저리 가라라고 할 수 있겠다.

“가자.”

작게 읊조리며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근처 역으로 향했다.

분명 3번 출구 쪽이었던 것 같은데.

곧이어 내 시야에 전광판이 들어왔다.

어떤 전광판이 그러지 않겠냐만, 애정이 듬뿍 담긴 게 한눈에 보인다.

나는 한참을 그 앞에 서 있다가, 발길을 돌렸다.

* * *

- 광고 보러 갔는데 진짜 해온이같았어요 일부러 말 안 걸었는데 진짜 한참 쳐다보다가 가더라고요 (사진)

하지만 성해온의 생각과 다르게, 스위치들은 눈치가 빨랐다.

고인물이란 무엇인가.

멤버들의 손이 모인 사진만 봐도, 누구의 손인지 맞출 수 있는 이들이다.

- 얼굴 다 가리면 뭐 함 대충 봐도 갓기블루베리소다고양이임

- 진짜 얘는 미쳤다 계속 쳐다보다 간 게 ㄹㅇ 찐임 성해온은 스위치를 사랑한다 눈물 남

- 인증샷 찍으려고 간 게 아니라는 점이 진심으로 발리는 포인트다

어떤 스위치들은 감동의 눈물을 흘렸으며.

어떤 스위치들은 통탄의 눈물을 흘렸다.

여기 두 오타쿠는 후자였다.

“이거 목격 인증 시간이…… 이거 설마 우리가 역사 나가자마자 온 걸까?”

“아무래도 그런 것 같은데.”

“그냥 죽어야겠다…….”

“덕배야, 눈물 날 땐 블루베리 고양이 쿠키지.”

근돌이 생일 카페의 특별 메뉴인 고양이 쿠키의 포장을 찢은 순간.

스위치들이 모여 있는 카페가 술렁였다.

그들의 스마트폰이 동시에 반짝였기 때문에!

[ LIGHT ON ] ●라이브 시작

깜짝 생일파티 준비! 함께해 주실래요?

* * *

카메라는 삼각대에 고정되어 있었고, 숙소 주방에 모인 라이트온이 인사했다.

- 이게 무슨 일이야 안녕 ㅠㅠㅠ

- Hello :D

- 일본의 팬들을 향해 인사해 주시겠습니까?

“안녕, 하세요……!”

“와아~ 스위치 많이 들어와주시네요! 예고도 없었는데!”

댓글을 읽던 최승하가 속닥이듯 말을 이었다.

“근데~ 내일이 무슨 날인지 아세요? 스위치들이면 아실 텐데!”

- 리더 생일 ㅠㅠㅠ

- 승하야 안전거리 지켜줘 액정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지니까

- 충격 블루베리 탄생일

“맞아요! 우리 형 생일~”

“스위치, 소문내시면 안 됩니다! 지금 이건 비밀입니다!”

차윤재가 손가락을 입술에 가져다 대며 ‘쉿!’을 그리자, 스위치들이 대동단결했다.

- 절대로 비밀 지킬게 응응

- 당연히 지켜줄 수 있지 우리 윤재가 부탁하는데

- 해온이한테 서프라이즈야?

“네, 저희가 새벽에 몰래 해온 형 스마트폰에 어플 알림을 꺼놨습니다. 라이브를 켜도 울리지 않게요.”

- 철두철미 ㄹㅈㄷ

- 한수현 너무 진지해 보임 아기토끼는 무엇이든 최선을 다해 버리는 것이에요

“맞습니다! 그리고 형님이 알지 못하게 도와주실 조력자도 섭외했습니다!”

- 안 그래도 해온이는 당연히 알지 않을까 생각했는뎈ㅋㅋㅋ 조력자가 있었구나

- 갓기막내즈 너무 자신만만해 보임 깨물어주고파

생각지도 못한 깜짝 라이브에, 스위치들이 흥분했을 무렵.

류인이 입을 열었다.

“스위치는 생일하면 뭐가 생각나세요?”

- 생일은… 아무래도 라이트온이지…

- 당신들의 얼굴을 보는 매 순간이 저희에겐 생일입니다

- 케이크! 파티!

“오오, 정답입니다! 저흰 지금 케이크를 만들어볼 겁니다! 류인 형님의 지시와 함께!”

- 도랐나 리더 생일에 직접 케이크 만들어주려는 깜찍이 아이돌이 실존? 말도 안 된다고 이건

- 걍 임종할랍니다

- 개화난다 라이트온 내가 낳을걸

“사실 시간 단축을 위해서 케이크 반죽은 미리 해놨거든요.”

류인이 하트 모양 케이크 틀에 담긴 반죽을 화면에 가까이 댔다.

“사실 원형 틀엔 몇 번 해봤는데…… 이렇게 모양이 있는 케이크 틀은 처음이에요. 잘 될까요?”

- 류인이 얼굴 봐서라도 잘 나와줄 듯

- 숙소에 오븐 구비하고 케이크 굽는 남돌이 실화임? 진짜 조신한 매력 미쳤다 이거거든

- 반죽아 알아서 눈치 챙겨

“하하, 그럼 용기를 가지고, 구워보겠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

띵, 케이크 반죽을 머금은 오븐에서 완성을 알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곧바로 달려간 최승하가 효과음을 깔았다.

“두구두구두구두구.”

화악-

류인이 오븐의 문을 열자, 뜨거운 열기가 퍼졌고 류인은 먹음직스러운 빛깔로 부푼 케이크 시트를 꺼냈다.

“덜 익었을 수도 있으니까, 한번 찔러볼게요.”

정 가운데에 젓가락을 콕, 하고 찔러넣은 류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시트를 꺼냈다.

“오오! 그럼 바로 썰면 되겠습니다!”

양손에 각봉을 들고 온 차윤재에, 류인이 고개를 저었다.

“완전히 식혀야 해.”

“그럼 바깥이 추우니까, 베란다에 둘까요? 창문 열고요.”

“응, 좋다. 그럼 부탁할-”

한수현에게 케이크 시트를 넘긴 류인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든 것도 그 즈음이었다.

“……얘, 얘들아!”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미쳤냐고 이게 개그프로야 뭐야

그도 그럴 게.

전동 휘핑기가 익숙치 않은 멤버들이 가장 높은 단계로 휘핑을 시작해 버린 것이다.

파바바박!

……묽은 생크림이 온 사방으로 튀기 시작했다.

숙소엔 비명 소리가 가득 찼다.

그야말로.

난장판의 서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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