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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4화 (4/118)

4화

“헐, 대박! 이게 뭐야? 웬 치킨이야-?”

손에 들린 치킨 박스를 발견한 현아가 호들갑을 떨었다.

“사 왔어.”

이내 현아가 “헐.”하고 중얼대고는 다급하게 아버지께 수화로 말을 건넸다.

- 아빠! 대박! 오빠가 치킨 사 왔대!

아버지께서도 눈을 동그랗게 뜨며 수화로 물음을 건네왔다.

- 현승아, 네가 돈이 어디 있어서 치킨을 사 왔어?

그 말에 현승이 수화로 답했다.

- 치킨만 사 온 줄 아세요? 선물도 하나씩 사 왔어요.

말을 마친 현승이 손에 들고 있던 최신형 노트북을 식탁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자, 공부 열심히 하라고 사 주는 거야.”

“맥북이잖아!”

“응, 사양 제일 좋은 제품이니까 오래 써.”

말을 마친 현승이 괜히 한 번 더 신신당부했다.

“덜렁대다가 고장 내지 말고.”

그리고는 연달아 쇼핑백을 아버지께 건네 드렸다.

- 이건 아버지 선물로 사 온 점퍼에요.

- 점퍼? 비싸 보이는데….

- 마땅한 점퍼가 없으신 것 같아서요.

큰맘 먹고 구매한 프리미엄 브랜드의 제품이었다.

- 비싼 건 맞는데 그래도 아끼지 말고 편하게 입어 주세요.

다만, 두 사람은 현승의 예상과 다른 반응을 보였다.

“오빠가 돈이 어디 있어서 이런 걸 사 왔어?”

아버지 역시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 현승아, 너 혹시 나쁜 일 하는 건 아니지?

둘은 선물을 받고도 화색은커녕 질겁을 했다.

대체 이게 어디서 났냐는 듯한 의심의 눈초리.

심지어 염려하는 기색마저 다분해 보일 뿐이었다.

“왜? 설마 훔쳐 왔을까 봐?”

“큰돈이 어디서 나서….”

“별 건 아니고 로또 당첨됐어.”

“오빠! 장난치지 말고….”

이내 현승이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설명해 줄 테니까 일단 진정 좀 해 봐.”

아무래도 자초지종을 말해 주는 게 우선인 것처럼 보였고.

‘치킨 다 식겠네.’

실제로 현승의 해명은 사 온 치킨이 다 식을 때까지 이어졌다.

.

.

.

“오빠가 곡을 만들어서 대형 소속사에 팔았다고?”

“그렇다니까.”

“하루 만에 뚝딱뚝딱 만든 곡을 하나에 얼마씩?”

“삼백만 원.”

이내 현아가 “허.”하고 탄식을 내뱉으며 되물었다.

“그걸 믿으라고?”

“그럼 믿어야지.”

현승이 입금 명세를 보여 주며 덧붙였다.

“사실인데 안 믿으면 어쩌려고?”

“뭐야, 진짜 LS 엔터테인먼트네….”

“못 믿겠으면 계약서라도 보여 줘?”

그때 아버지께서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다급한 손동작으로 물으셨다.

- 현승아, 그게 정말이냐?

이내 현승이 “에휴.”하고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 잠깐만 기다리세요.

그리고는 곧장 방에서 LS 엔터테인먼트 측으로부터 우편으로 받은 계약서를 꺼내 왔다.

“자, 두 사람 다 읽어 보세요.”

이번 매절 계약에 관한 내용이 상세하게 기록된 계약서였다.

사락, 사락.

종잇장 넘어가는 소리가 울리기를 잠시.

“보셨죠?”

의기양양한 투로 되물은 현승이 다 식어 버린 치킨 박스를 열기 시작하며 덤덤하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 나갔다.

“여러분의 염려와 달리 사실 제게는 작곡에 대한 천부적이며 천재적인 재능이 있었고, 그 덕에 앞으로 우리 세 식구가 돈방석에 앉는 건 시간문제이며, 이제는 돈을 버는 걱정이 아니라 쓰는 걱정을 하며 살아가게 됐음을 이 자리를 빌려 선포하는 바입니다.”

그리고는 닭 다리를 하나 집어 아버지께 드리며 물었다.

“혹시 이견 있으신 분?”

이내 현아가 “와.”하고 감탄하며 되물었다.

“오빠, 그럼 이제 LS에 작곡가로 취업하는 거야?”

그 말에 현승이 남은 닭 다리 하나를 현아에게 건네줬다.

“그냥 이번에는 곡만 판 거고 전속 계약은 어디랑 할지 몰라.”

“와,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돈 많이 주는 괜찮은 곳 있으면 어디든 계약해야지.”

비록 구구절절 해명해야 한다는 사실이 썩 내키지는 않았으나 입장 바꿔 생각해 본다면 자신조차 믿지 못했을 터였다.

‘방구석에서 게임만 하던 철부지가 갑자기 큰돈이 생겼으니 다들 덜컥 겁부터 낼 수밖에 없는 거겠지.’

이내 현승이 치킨 한 조각을 집어 들며 낮게 덧붙였다.

“민현아, 너는 앞으로 공부에만 전념하고.”

그리고는 한입 베어 문 치킨 조각을 도로 내려놓으며 아버지께 수화로 말했다.

- 아버지도 이제 돈 걱정 안 하셔도 돼요.

- 하지만….

- 밀려 있던 공과금도 제가 다 해결했어요.

- 현승아…!

이내 현승이 씩 웃으며 재차 수화로 덧붙여 말했다.

- 일단 치킨부터 드세요.

그리고는 괜히 툴툴거렸다.

“에이, 다 식었네.”

* * *

엘리베이터 앞에 선 정장 차림의 사내가 미간을 찡그리며 제 가슴팍을 살살 문질러 댔다.

“하, 속 쓰려….”

숙취에 찌들어 사는 사내는 LS 엔터테인먼트의 ‘실장’직을 맡고 있는 김우현이었다.

입사 이래 직접 발굴해 인기 스타 반열에 올린 가수나 배우만 해도 열댓 명.

출중한 능력을 인정받아 최연소 타이틀을 거머쥐게 된 바 있는 인물이랄 수 있었다.

전날의 과음 때문일까?

모 방송국 PD와 동이 틀 무렵까지 술을 마셔 댄 까닭에 머리는 지끈거렸고 속은 뒤흔들렸다.

그가 몽롱한 정신으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찰나였다.

“실장님, 안녕하세요?”

A&R팀에 소속된 엔지니어 두 명이 커피를 홀짝이며 그의 곁에 다가섰다.

“어어, 그래.”

이내 그들 중 하나가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이며 물었다.

“실장님, 어디 아프세요? 안색이 안 좋아 보이셔서….”

그 말에 김우현이 손사래를 치며 답했다.

“아냐, 그냥 숙취 때문에 그렇지.”

때마침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고….

“후우-.”

숨을 길게 몰아쉰 김우현은 넥타이를 고쳐 매며 엘리베이터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야, 어제 그 작곡가 데모곡 들었지?”

“들었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대박이지 않냐?”

이내 김우현이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작곡가? 데모곡?’

어디서 실력이 출중한 작곡가라도 나타난 모양이었다.

“아니, 어떻게 무료 소스만 써서 그런 곡을 뽑지?”

“일부러 무료 소스만 쓰는 건가?”

“그렇겠지? 내가 봤을 때는 그냥 음악 변태야.”

엔지니어 하나가 커피를 쪽쪽 빨고는 덧붙였다.

“그 정도 되는 작곡가가 유료 소스 살 돈이 없겠어?”

“그렇지.”

“무료 소스만 써도 이 정도는 뽑는다, 뭐 이런 거겠지.”

이내 김우현이 그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새로 계약한 작곡가라도 있나 봐?”

그 물음에 엔지니어 하나가 답했다.

“아, 아직 보고 못 받으셨어요? 어제 그 작곡가 때문에 A&R팀 전부 난리였는데….”

“난리?”

“가명 쓰는 작곡가 하나가 난데없이 곡을 팔겠다면서 데모곡을 보내왔거든요.”

확실히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프로그램에서 기본적으로 지원하는 무료 소스만 써서 찍은 곡 세 개였는데, 진짜 어지간한 작곡가들이 공들여 쓴 곡보다 훨씬 괜찮더라고요.”

“그래서?”

“당초에 그쪽에서 제안해 온 게 매절 형태로 곡당 300만 원에 팔고 싶다더라고요. 팀장님이 바로 연락 넣어서 계약 진행한 걸로 알고 있어요.”

자고로 LS 엔터테인먼트의 A&R팀은 업계 내 어느 매니지먼트사와 비교하더라도 손색이 없는 곳이었다.

당연히 까다로운 귀와 각양각색의 취향을 지닌 이들이 이토록 입을 모아 칭찬할 정도라면….

‘실력만큼은 확실한가 보네….’

이내 김우현이 눈매를 좁히며 중얼댔다.

“현역 작곡가일 것 같은데….”

김우현의 추론에 엔지니어 하나가 동조한다는 양 답했다.

“아마 그렇겠죠? 저희 팀장님도 아마 다른 회사랑 이미 전속 계약이 체결된 상태인데, 급하게 돈이 필요해서 가명을 쓰고 매절 형태로 곡 넘기는 게 아닐까 추측하고 계신 것 같더라고요.”

김우현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누구지….’

업계 내에서 뛰어난 실력으로 입지가 굳건한 작곡가라면 그와 거의 구면이었다.

이내 김우현이 상념에 젖어 든 채로 타사와 전속 계약 상태인 작곡가들을 떠올렸고….

그에게 최연소 실장 타이틀을 안겨 줬던 동물적 직감이 귓가에 여러 가능성을 속삭였다.

‘일단 현역 작곡가일 테고….’

김우현은 느닷없이 메일을 보내온 작곡가가 당연히 현역이리라 확신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자사의 A&R팀 엔지니어들이 모두 만족할 만한 곡을 쓸 수 없었을 테니까.

‘기존 회사와 정산 문제로 마찰이 있나?’

그렇지 않고서는 계약된 회사가 아니라 LS 측에 매절 형태로 곡을 팔 이유가 없었다.

정해진 판가에 곡을 넘긴 뒤 이후 저작권료를 포기하는 매절 계약은 작곡가들이 가장 꺼리는 형태의 계약이었으니까.

‘계약 해지를 염두에 두고 있을 수도 있겠어.’

그렇다면 계약 해지를 희망할 수도 있을 테고….

‘잘 구슬리면 데려올 수도 있겠는데?’

매니지먼트 입장에서 실력 있는 작곡가는 그야말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나 마찬가지였다.

만약 기존 회사와의 계약을 해지하는 과정에서의 법정 공방을 돕는다든지….

기존 조건보다 후한 조건을 제시한다면 LS 측으로 영입할 수도 있을 터였다.

“그 작곡가 이름이 뭐랬지?”

김우현의 물음에 엔지니어가 답했다.

“아마 ‘HS’였을 거예요.”

이내 김우현은 그 이름을 몇 번이나 반복해 되뇌었다.

김우현에게는….

그 이름이 꼭 제 인사고과에 반영될 ‘실적’처럼 느껴졌다.

띵!

때마침 엘리베이터가 A&R팀 사무실이 있는 4층에 멈췄고.

“오랜만에 A&R 팀 구경이나 할까?”

엔지니어들과 함께 내린 김우현이 기다란 복도를 따라서 걷기를 잠시.

“실장님?”

김우현을 발견한 A&R팀 ‘팀장’ 한인규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귀하신 분이 공돌이들의 누추한 거처에는 어쩐 일로….”

이내 김우현이 어깨를 들썩이고는 답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어서.”

그리고는 곧장 되물었다.

“어제 매절 형태로 곡 세 개 샀다면서?”

한인규가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그 소문이 벌써 실장님 귀까지 들어갔어요?”

“그래, 제주도 사는 삼촌도 알고 계시더라.”

그의 답변에 피식 웃음을 흘린 한인규가 설명했다.

“들으셔서 아시겠지만, 웬 작곡가 하나가 가명으로 곡 세 개를 보내왔더라고요. 그것도 심지어 매절 형태로 한 곡당 300만 원에 팔고 싶다면서 삼십 초짜리 샘플만 보내온 거 있죠?”

김우현이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처음에는 이 바닥 작곡가들이 으레 그렇듯이 자의식 과잉에 나사 하나 빠진 놈인 줄 알았는데, 그냥 한 번 속아 주는 셈 치고 샘플 하나씩 들어 보니까 완전 물건이 따로 없더라니까요?”

그의 말이 끝나자 곧장 되물었다.

“그럼 그냥 단순히 매절로 곡 사고 끝낼 게 아니라 전속 계약 제안을 해 보지, 그랬어?”

“일단 타 매니지먼트사와 전속 계약 체결되어 있는 작곡가처럼 보이기는 하는데….”

한인규가 팔짱을 끼며 진중하게 말을 이었다.

“혹시 모르니까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지켜보려던 참이었습니다. 아직은 계약 기간이 많이 남았을 수도 있고, 또 불쑥 전속 계약을 제안해 버리면 부담스럽게 느낄 여지도 있을 것 같고….”

그리고는 덧붙였다.

“무엇보다 앞으로도 이 정도 퀄리티의 곡을 꾸준하게 뽑으리란 보장이 없으니까 전속 제안은 천천히 해 보려던 참이었거든요.”

한 팀장다운 신중한 처사였으나 김우현이 추구하는 업무 처리 방식과는 결이 달랐다.

“그럼 그냥 내가 만나 볼게.”

“예?”

“만나서 대화해 보면 알겠지.”

김우현이 대수롭지 않다는 양 되물었다.

“굳이 시간 두고 지켜볼 필요 있겠어?”

그가 곧바로 한인규에게 되물었다.

“작곡가 연락처랑 인적 사항 좀 넘겨 줘.”

한차례 “아, 예. 잠시만요.”하고 답한 한인규가 자신의 스마트폰을 만지작댔고….

“일단 문자로 연락처 보내 드렸습니다.”

“이름은? 가명밖에 몰라?”

“일단 예금주명은 민현승이었는데….”

한인규가 고개를 내저으며 답했다.

“본인인지는 모르겠네요.”

그 말에 김우현이 고개를 끄덕였고.

“민현승, 민현승, 민현승….”

생소한 이름 석 자가 머지않아 있을 인사평가에 보탬이 되리란 기대감을 머금은 채 입가에 그윽한 미소를 머금어 보였다.

“실장님, 바로 연락해 보실 거예요?”

한인규의 물음에 김우현이 “그러지 뭐.”라며 답하고는 곧장 전화를 걸어 보기 시작했고….

뚜우, 뚜우

신호음이 울리자 장내에 자리해 있던 모든 이가 긴장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김우현을 바라보기를 잠시.

- 지금은 고객의 사정으로 전화를 받을 수 없어….

곧장 통화 거절 안내 음성이 흘러나왔다.

“뭐야? 바쁜가?”

이내 김우현이 곧장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 작곡가님, 안녕하십니까? LS 엔터테인먼트 매니지먼트 팀에 소속된 김우현 실장이라고 합니다. 다름 아니라 작곡가님의 곡을 인상 깊게 들어 서로에게 도움이 될 제안을 하나 드리고자…. ]

그로부터 얼마나 지났을까?

띠링!

곧장 답장이 돌아왔다.

“실장님, 뭐래요?”

한인규가 긴장된 기색으로 마른침을 삼켰고.

“뭐라는 거야….”

김우현이 낮게 중얼대자 한인규는 재차 되물었다.

“왜요? 뭐라는데요?”

그리고는 곧장 김우현의 손에 들린 스마트폰 액정을 물끄러미 들여다봤다.

“무?”

이내 한인규가 자신이 본 문자메시지의 내용을 다시 몇 번이나 확인해 봤다.

[ 밤사이에 힘겹게 농사지은 무를 전부 도둑맞아서 몹시 슬픔. 나중에 다시 통화. ]

난데없이 ‘무’를 도둑맞았다니.

‘뭐지? 취미로 농사라도 짓는 건가?’

장내의 모든 이들이 크나큰 의문에 휩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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