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서지니가 세 곡을 듣고 느낀 점은 한 단어로 압축하자면.
‘맞춤옷’이었다.
몸에 치수를 재고, 딱 맞게 제작되어 장점은 부각하고, 단점은 감출 수 있게 설계된 자신만의 ‘맞춤옷’ 말이다.
“지니야, 마음에 드는 거야?”
김 실장의 물음에, 그녀는 고개를 작게 주억거렸다. 그냥저냥 마음에 든다고 말로 표현하기 아쉬울 만큼 마음에 들었다.
‘한 마디, 구절마다 어떻게 부를지 머릿속으로 그려졌어….’
요즘 들어 노래를 부르는 일이 부담스럽고, 위축되는 감정을 느끼는 그녀였지만 이 노래를 들을 때만큼은 달랐다.
잘 부를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차올랐고, 무대 위에 올라 노래 부르는 제 모습이 환영이 되어 보이기까지 했다.
‘정말 나만을 위한 곡을 만들어 온 건가? 단 하루 만에?’
서지니의 시선은 줄곧 현승에게로 향했다.
그때.
계속 그녀와 시선을 맞추던 현승이 입을 열었다.
“언제까지 저만 보시려고요?”
“예?”
“곡 좋은 거 아니었어요?”
“그러니까.”
이내 서지니는 곰곰이 생각하던 것을 멈추고 되물었다.
“왜 좋지…?”
현승이 멍한 표정의 그녀를 보며 고개를 내젓고는 말을 이어 나갔다.
“간단하게 테스트해야 하니까 바로 불러 볼 수 있겠어요?”
“테스트요? 방금 들은 곡을 바로 불러 보라고요?”
“부를 능력이 있는지 봐야 할 거 아니에요?”
서지니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갔다.
비단 표정이 굳어진 건 서지니뿐만은 아니었다.
장내에 있던 김 실장과 한 팀장을 비롯하여 엔지니어까지 모두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져 갔다.
그냥저냥 무명 가수나 신인 가수도 아니고, 아무리 한물간 서지니라지만….
데뷔 6년 차 가수에게 신인 작곡가가 제 곡을 부를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테스트시킨다?
상당히 감정이 상할 여지가 있는 말이었으나, 현승은 아랑곳하지 않고 거듭 제안했다.
“마지막 곡만 스캣(*scat)으로라도 불러 봐요.”
사실 들어보고 조금이라도 거슬리는 구간이 있다면 곧장 돌아가서 수정 작업을 할 요량이었다.
서지니를 위한 '맞춤옷'으로 제작한 곡이었으니 다른 이에게 재활용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어차피 그녀가 못 부르겠다고 하면 폐기 될 곡이라는 생각으로 만든 곡이었다.
그때.
“그럼 한 번만 다시 들어 봐도 될까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망설이던 그녀가 되물었다.
“물론.”
현승의 답변이 떨어지자 장내에 모든 이들의 턱도 같이 바닥을 향해 떨어졌다.
‘서지니가 저 제안을 온순하게 받아들인다고?’
김 실장의 생각이자, 모두의 생각이었다.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도 모자라서, 자존심 센 서지니가 곡을 한 번 더 듣기 위해 부탁하다니….
‘현승의 곡이 아주 단단히 마음에 들었나 본데?’
한차례 눈을 비비며 이 광경을 다시 바라본 김 실장은 작게 헛웃음을 지어 보였다.
“마지막 곡, 틀어 주세요.”
서지니가 헤드셋을 다시금 뒤집어쓰며 엔지니어를 향해 말했다.
탁-!
엔지니어는 그녀의 말에 재빨리 스페이스 바를 눌러 마지막 곡을 재생시켰다.
그녀는 일순간 곡에 빠져들어 마치 혼자 있는 것처럼 곡의 멜로디 라인을 따라 흥얼거렸다.
처음 불러 보는 거지만, 마치 귀에 익숙한 유행가를 따라 부르는 것마냥 자연스러웠다.
탁, 탁-!
엔지니어를 놀라게 했던 그녀의 발장구가 다시금 시작되었다.
“음, 음-”
이내 그녀의 목울대를 타고 간지러운 콧소리가 흘러나온다.
“한 번만 더 들을게요.”
곡이 끝나자 부리나케 다시,
“한 번만 더요.”
계속, 계속, 계속 다시,
“한 번만 더.”
그렇게 4분 25초짜리 곡이 7번이나 반복되었고, 총 30분 55초라는 시간이 지나갔다.
꽤 많은 시간이 할애되었지만 아무도 그녀를 나무라지 않았다.
오히려 그 모습에 놀라서 입을 꾹 다물고 바라볼 뿐이었다.
‘마치 신인 가수를 보는 것 같네….’
곡 하나하나가 모두 소중하고, 꼭 부르고 싶고, 무대에 오르고 싶은 간절함으로 모든 해내는 신인가수 말이다.
‘지니는 신인 때도 안 저랬던 것 같은데….’
여느 대형 기획사의 아이돌 연습생들이 그렇듯 얼굴이 출중하다면 데뷔 전부터 화제가 되기 마련이었다.
서지니 또한 연습생 시절부터 보컬, 외모 뭐 하나 빠지지 않는 완성형 연예인에 가까웠기 때문에 팬카페가 생겼을 정도였다.
그러니 같은 신인 가수일지라도, 시작점부터 달랐던 그녀였다.
물론 그건 데뷔 초창기의 이야기고, 이후로는 내는 신곡마다 족족 말아먹더니 종지에는 인성 논란까지 불거지며 작곡가들이 기피하는 가수 1위에 오르게 됐다.
‘그래도 항상 열심히 하긴 했지….’
서지니가 특히 주눅이 든 건 주지태와 작업을 시작했던 이후의 일이었다.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하는 가수와 흥행 실적에 절실한 작곡가의 만남.
어쩌면 서로에게 악순환인 작업을 의미 없이 되풀이했을지도 모른다.
김 실장의 생각이 점점 깊어지던 그때.
“이제 불러 볼게요.”
그녀가 헤드셋을 내려놓으며 당당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됐어요.”
그러나 돌아온 답변은 장내를 다시 한번 충격에 빠트렸다.
“안 들어도 될 것 같아요.”
현승은 테스트는 이미 완료했다는 양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녹음 날에 봅시다. 그럼 이만.”
정답을 얻었으니 더 이상 듣는 건 무의미했다.
쿵-!
현승이 재빠르게 문을 열고 나선 뒤 모두 벙 찐 채 눈만 깜빡거렸다.
‘똥개 훈련이야, 뭐야?’
그렇게 총 30분 55초를 들인 그녀의 노력은 공중으로 날아갔다.
* * *
현승은 날이 어슴푸레하게 밝아 올 무렵에야,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서지니의 곡을 한차례 손보기 위해 개인 작업실에서 들러 밤을 지새운 탓이었다.
‘서지니….’
자신이 갑작스레 제안한 테스트였지만, 열중하는 그녀의 모습에 현승 또한 조금은 놀라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녀가 곡을 반복하여 들으면서 간단히 흥얼거리는 것만 들어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역시 괜찮은 악기였어.’
첫 번째로 다시 들었을 때와 마지막으로 다시 들었을 때, 확연히 달라진 멜로디 라인 그리고 음정과 리듬감.
거기다 자신도 모르게 애드리브 포인트까지 잡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현승은 더 들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재밌겠어.’
그로부터 얼마나 지났을까?
어느새 현승이 집 앞에 도착했다.
“다녀왔습니다.”
불이 꺼져 있을 줄 알았던 거실은 환하게 불이 켜져 있었고 분주함이 느껴졌다.
- 지금 들어온 거야?
현승을 발견한 아버지가 한걸음에 달려와 수화로 말을 걸었다.
- 아침부터 뭐 하시는 거예요?
- 아침 차리는 중이었어.
- 혹시 제가 도울 일 없을까요?
- 아냐, 다 됐으니까 조금만 기다려.
그렇게 현승이 주방에 멀뚱멀뚱 서 있던 찰나였다.
“오빠 지금 온 거야?”
마침 방에서 잠옷 차림으로 나오던 현아의 물음이었다.
“응.”
현아가 식탁에 앉으며 재차 되물었다.
“요즘 너무 밖으로 도는 거 아냐?”
“바빠서 그래.”
“바쁠 일이 있긴 해? 친구도 없잖아?”
“눈곱이나 떼.”
이내 현승 역시 식탁 한자리를 꿰차고 앉으며 거하게 차려진 아침상을 쭉 훑어봤다.
“나 잡곡밥 싫은데….”
밥그릇에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잡곡밥이 가득 담겨 있었고, 반찬으로는 형형색색의 나물이 잔뜩 놓여 있었다.
“나물도 싫은데….”
이내 현아의 눈빛이 의심에서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바뀌었다.
“정월대보름이니까 싫어도 먹어. 아빠가 힘들게 한 거잖아.”
동생의 타박에 현승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저를 들었다.
“그럴 거였어.”
한참을 현승이 여동생의 눈치와 함께 잡곡밥을 오물오물 씹어 먹고 있던 때였다.
“오빠,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요즘 나쁜 일 하고 다니는 건 아니지?”
현아가 근심 가득한 물음을 던져 왔다.
“나쁜 일?”
이제 전속 계약을 마친 건 물론이거니와 새로 맡은 프로젝트도 정해졌으니 슬슬 말해도 되겠지.
“아니야, 나 취업했어.”
“취업? 어디에?”
“LS 엔터테인먼트.”
그 말에 현아가 눈매를 지켰다.
"오빠가 거기서 무슨 일을 하는데?"
"작곡가, 아마 당분간 좀 바쁠 거야."
현아가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정적이 흐르기를 잠시.
“작곡가? 오빠가? 작곡가라고?”
“응.”
“조용히 하고, 잡곡밥이나 먹어.”
“…….”
“잡곡밥 꼭꼭 씹어서 먹어.”
“어….”
자신이 동생에게 이렇게나 신뢰가 없는 사람이었나?
하기야.
백수였던 오빠가 하루아침에 작곡가가 된다?
현승은 자신 같아도 같은 반응이었으리라 생각했다.
- 어때? 맛있어?
때마침 맞은편에 앉은 아버지가 수화로 말을 건넸고.
- 네, 맛있어요. 그리고 이거….
현승은 그제야 주머니에 넣어 둔 사원증을 슬그머니 꺼내서 내밀었다.
아버지는 물론 현아 역시 토끼 눈이 되어 사원증과 현승을 번갈아 쳐다봤고.
- 믿기지 않으시겠지만, 제가 앞으로 장남 노릇 제대로 해 볼게요.
이내 아버지가 넌지시 웃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진짜 전속 작곡가라고 적혀 있네…?”
사원증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현아가 낮게 중얼거렸다.
“말했잖아, 작곡가라고.”
현아는 재차 “말도 안 돼.”하며 혼잣말을 읊조렸다.
“이제 좀 믿어 줘라.”
현승이 볼멘소리를 내며 억울함을 호소했고.
그제야 현아의 눈동자 위로 반짝임이 감돌았다.
“오빠가 진짜 작곡가가 된 거면, LS 소속 가수들이 부르는 곡을 만드는 거야?”
현승이 고개를 끄덕이자 현아가 재차 물었다.
“그럼 지금은 누가 부를 노래 만드는데?”
“서지니.”
“헐. 진짜? 그럼 사인 받아 주면 안 돼?”
현승이 눈매를 좁히며 되물었다.
“서지니 사인이 대체 왜 필요한데?”
“유명한 가수잖아!”
“유명한 건 그렇다 쳐도 걔 성격이 어떤지 알아?”
“안 좋은 소문이 돌기는 하는데 난 걸크러시같고 좋던데!”
현승이 작게 “스크래치겠지.”하며 중얼거렸고.
“아무튼 내 눈에 보이는 대로 믿을래.”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야.”
“됐고! 작곡가면 사인 좀 받아다 줄 수 있잖아.”
작게 “흠.”하고 침음을 흘린 현승이 고개를 내저었다.
죽어도 서지니에게 사인해 달라는 말을 꺼낼 자신은 없었다.
암만 동생이라고 해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지.
“못 받아 줘.”
“오빠, 작곡가 된 거 뻥이지.”
“아니라고.”
“그냥 말단직원 아냐?”
“아니라니까?”
“그럼 왜 못 받아다 주는데!”
“말 꺼내기 싫어.”
“거 봐, 거짓말인가 보네!”
한차례 둘이 투덕거리며 말다툼을 이어 가던 그때.
- 요즘 둘이 부쩍 사이가 좋아진 것 같아. 너무 보기 좋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아버지가 수화를 건넸고.
둘은 수화 대신….
각자 반대 방향으로 고개를 “휙!” 돌리며 소리쳤다.
“설마요!”
“그럴 리가.”
남매의 싸움은 잡곡밥이 식을 때까지 끝나지 않았다.
* * *
“샘플곡이라기엔 완성도가 상당히 좋은데요?”
LS 엔터 소속 가수 공효주가 격양된 투로 얘기했다.
“조금만 손 보면 진짜 퀄리티 좋은 곡이 나올 것 같아요.”
공효주는 직접 작곡에 참여할 만큼 곡 퀄리티를 깐깐히 따지는 사람이었다.
그만큼 좋은 곡을 선정하지 못하여 컴백 일정을 늦추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그럼 네 번째 샘플곡 써도 될까요?”
“바로 결정하려고?”
“딱 듣는 순간 멜로디가 떠올랐거든요.”
그런 그녀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은 트랙은 바로 현승이 계약 전 보냈던 샘플곡 중 하나인 ‘HS 04’였다.
“작곡가님에게 제가 손을 봐도 괜찮을지 여쭙고 싶은데.”
“내가 따로 얘기해 놓을게, 괜찮을 거야.”
저작권이야 회사 측에 있으니 어떤 가수에게 돌아가든 딱히 문제가 될 여지는 없었다.
“김 실장님 덕분에 이렇게 좋은 곡을 만났게 됐네요.”
“아니야, 덕분은 무슨.”
“나중에 작곡가님하고 같이 식사라도 대접해 드릴게요.”
김 실장이 대충 “어, 어.”하고 인사하며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이내 밝게 인사하며 매니저에게 뛰어가는 공효주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공효주 정도라면….’
사내에서 공효주는 ‘효녀’로 통했다. 내는 곡마다 히트를 기록하며, 돈을 많이 벌어다 줘서도 있지만.
바르고, 싹싹하고, 인성 좋기로 소문이 나면서 덩달아 LS 엔터의 이미지에도 좋은 영향을 주었다.
단단하고 거대한 팬덤은 당연지사.
우연히 그녀가 마침 신곡을 준비할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한 김 실장은 한걸음에 공효주를 찾아왔다.
물론 현승의 샘플곡을 들고.
분명 좋은 곡이기에 그녀가 일말의 흥미는 가질지도 모른다고 생각은 했었다.
하지만.
듣는 귀가 까탈스럽기로 유명한 그녀가 단박에 결정을 내린 것은 예상 밖이었다.
‘일이 잘 풀리네.’
김 실장은 흐뭇한 표정을 숨기지 못한 채 고개를 끄덕거렸다.
‘지니한테 마냥 모든 것을 걸고 기다릴 수는 없지.’
공효주가 서두르기만 한다면, 어차피 둘 다 같은 싱글이니 얼추 발매 시기는 비슷할 것이다.
설령 서지니의 이번 싱글이 흥행에 실패하더라도 공효주의 싱글이 흥행에 성공한다면?
‘그렇게 된다면야 사 측에서도 뭐라고는 못하겠지.’
김 실장이 한층 가벼워진 발걸음을 옮겨 현승의 개인 작업실로 향했다.
그래도 공효주 정도 되는 가수가 제 곡을 부르게 되었다고 하면 좋아하겠지?
끼이익-.
문을 열고 들어가니 “둥둥.” 거리는 베이스 소리가 연신 들려왔다.
“오셨어요?”
소파에 앉아 베이스를 직접 연주하고 있던 현승이 보였다.
“너 베이스도 다룰 줄 알아?”
“작곡하는 사람이 기본이죠.”
“요새는 어차피 소스로 찍는 거 아냐?”
“그래도 직접 치는 건 엄연히 소리가 달라요.”
짜식, 의외로 올드한 감성이 있다.
“여하튼 현승아.”
“예.”
“내가 좋은 소식 하나 들고 왔다.”
“뭔데요.”
“네 샘플곡 중 하나를 공효주가 부르게 됐어.”
“아, 예.”
김 실장이 뚱한 표정으로 “아, 예?”하고 되물었고.
“그 얘기하시려고 온 거예요? 문자로 하시지.”
현승은 흥미를 잃은 듯 다시 베이스 줄을 튕기며 “둥둥.”소리를 냈다.
“공효주가 부르게 됐다니까?”
“알겠다니까요?”
“LS 엔터 대표 효녀 가수, 공효주 몰라?”
“알아요, 알아.”
“세계가 주목하는 싱어송라이터이자 대한민국 남자가 사귀고 싶은 여자 연예인 1위! 공효주가 네 곡을 선택했다니까?”
“그래서요?”
현승이 그제야 김 실장을 바라보며 시큰둥하게 되물었다.
“뭐, 춤이라도 춰야 하는 거예요?”
김 실장은 “허.”하고 헛웃음을 지었다.
‘대체 이놈은 가수를 고르는 기준이 뭐야?’
서지니는 그렇게 나서서 먼저 연주하고 싶다고 하더니, 공효주는 뒷방 취급이라니.
다른 작곡가들 같았으면 두 손 벌려 환영하며, 디렉팅이던 프로듀서던 하겠다고 나섰을 텐데.
공효주와 친분을 쌓아 놓고 추후 작업까지 약속을 도모하려고 말이다.
‘일부러 힘든 길을 택하는 취향인가.’
지름길을 내버려 두고, 굳이 가파르고 험난한 길을 택하는 모험가들처럼 말이다.
“아마 근데 네 샘플곡을 조금 더 보완해서 공효주랑 공동 작곡으로 이름 올라갈 거야.”
“예.”
“프로듀싱이나 레코딩 디렉팅은 사내 프로팀에서 맡아서 하기로 했고.”
“예.”
“서지니 앨범 잘 안되더라도, 공효주 곡은 무조건 잘될 거니까 기죽을 필요 없을 거야.”
“예.”
이내 반복되는 대답에 김 실장은 눈매를 좁히며 물었다.
“민현승, 성격 좀 머저리 같지 않냐?”
“예.”
“키도 뭐 일 미터 조금 넘는 것 같고.”
“예.”
“사실 여자라는 소문도 돌던데?”
“예.”
“이봐, 이 자식 내 말 안 듣고 있네.”
“예?”
현승이 그제야 베이스를 치던 손을 멈추었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놈이야.”
김 실장이 고개를 내저으며 중얼거리자, 현승이 한 차례 어깨를 들썩이며 답했다.
“그것보다, 김 실장님 전화 오는 것 같은데.”
현승의 말에 제 휴대폰으로 시선을 옮기자 “징징.”소리를 내며 액정에 불이 켜져 있다.
[ 대표님 ]
액정 위에 뜬 글자를 보자 마른침이 절로 넘어갔다.
‘대체 대표님께서 왜 연락을….’
번호만 저장해 놨을 뿐, 단 한 번도 직접 연락을 받은 적은 없다.
당연한 일이다.
엔터테인먼트에서 매니저먼트부 실장과 대표의 차이는 하늘과 땅과도 같으니 말이다.
‘별안간 대표에게 전화가 오다니.’
김 실장은 무슨 연유인지 파악하기 위해 머리를 팽팽 굴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기나긴 상념은 얼마 안 가 끝이 났다.
“누군데요.”
“대표님.”
“받아야죠.”
“그래야지.”
이내 김 실장이 “흠흠.”하며 목을 가다듬고는 휴대폰을 귀에 가져다 댔고.
“네, 대표님 안녕하십니까.”
- 예, 다름이 아니라 지금 회사 내에 계십니까?”
“바로 근처에 나와 있습니다. 무슨 일로….”
김 실장이 끝말을 흐리자, 반대편 스피커에서 잠시 정적이 흘러나왔다.
대략 3초 정도,
하지만 그 3초 만으로 김 실장의 머릿속은 수많은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 서지니 프로듀서 교체 건으로 얘기를 나눴으면 하는데.
일순간 김 실장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맺히기 시작했고,
“아… 지니 건으로 말이죠?”
정적이 5초 정도 이어지던 찰나.
- 지금 바로 대표실로 와 주시겠습니까?
대표의 높낮이 없는 건조한 물음이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