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79화 (79/118)

78화

심사위원들은 강하준의 노래를 듣고는 기대 이상이라는 듯 작게 침음을 흘리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흐음-?”

하나, 강하준은 주변의 호응 따위는 들리지 않는지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덤덤히 노래를 이어 나갔다.

─ 오늘만큼은 나랑 같이 걷자.

기존의 ‘같이 걷자’를 크게 훼손하지 않은 편곡된 음원 위로 진심을 꾹꾹 눌러 담은 목소리가 넘실거렸고.

곡이 하이라이트에 치달을수록, 지난 본선 라운드 때보다 더욱 안정적으로 자리잡힌 발성과 알찬 소리가 힘을 실어 장내를 메워 나갔다.

“와…….”

윤제이는 어느새 경쟁 상대라는 것도 잊은 채 입을 떡하니 벌리고는 속절없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의 목소리가 선사하는 선율에 젖어 들기도 잠시.

─ 오늘만큼은 모두 잊고, 나랑 같이 걷자.

마지막 소절과 함께 작은 숨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흘러나오자 무대 아래에서는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짝짝짝짝짝-!

를 선택한 참가자의 무대인 만큼 HS가 대표로 마이크를 집어 들었다.

“예, 강하준 참가자 너무 고생하셨습니다. 잘 들었고, 일대일 배틀 오디션인 만큼 윤제이 참가자의 노래도 들어 본 다음에 심사평 진행하겠습니다.”

별다른 말 없이 딱 할 말만을 끝내고 마이크를 내려놨다지만.

‘이 정도면 됐어.’

그것만으로도 만족스럽다는 듯 강하준의 입꼬리에는 옅은 미소가 걸렸다.

그래, 정말 이 정도면….

최선을 다하여 쏟아 냈고, 오히려 연습 때보다 더 소리가 잘 나와 줬기에 아주 만족스럽다고 칭할 수 있는 무대였다.

“네, 감사합니다!”

허리를 굽혀 90도로 인사해 보인 강하준은 넓은 보폭을 자랑하며 윤제이가 앉아 있던 사이드로 향했다.

“너무, 너무 잘하셨어요….”

“윤제이 씨도 잘하세요.”

서로 교차하며 나눈 대화는 딱 한 마디로 충분했다. 어차피 몇 분 뒤에는 둘 중 한 명이 이곳을 떠나게 될 테니까.

“기적의 참가자죠? 지난 라운드에서 정말 눈에 띄는 발전을 보여 준 윤제이 참가자, 이번 라운드는 어떠신가요?”

마치 기다렸다는 듯 마이크를 손에 쥔 이영아의 물음에 윤제이는 곧 끊어질 듯한 목소리로 “열, 열심히 했습니다….”하고 중얼거렸다.

“이번에도 예선 때처럼 기타를 직접 연주하시는 건가요? 저번 본선 때는 기타 없이 더 좋은 무….”

이영아가 재차 간단한 인터뷰를 이어 나가려고 하기를 잠시.

‘잘라, 잘라-!’

메인 PD와 메인 작가가 팔짝 뛰며 말 걸지 말라는 사인을 보내는 걸 읽고는 말끝을 흐렸다가 이내 급하게 일단락시켰다.

“……예, 그럼 더 좋은 무대 기대할게요.”

“혹시 오늘도 편하게 앉아도 될까요?”

“아, 네-! 그럼 바로 노래 시작해 주세요.”

조명이 어슴푸레하게 내려앉고, 무대 중앙에 털썩 주저앉은 윤제이는 아빠 다리를 하고 앉아 기타를 품에 안았다.

‘가부좌로 앉아서 노래한다더니 진짜네.’

그 모습을 본 강하준의 눈썹은 작게 일렁였다. 과연 정말 저게 편해서 그런 걸까? 아니면 컨셉? 모쪼록 전자가 맞을 확률이 유력해 보였다.

걸음걸이조차 빳빳한 종이 같던 사람이 기타를 품에 안고 바닥에 앉자마자 표정부터 부드럽게 풀려 가는 게 눈에 드러났다.

“윤제이 참가자는 정말 특이한 거 같아.”

“약간 신비주의 뮤지션 같은 느낌?”

“이번에도 제발 놀랄 만한 무대여야 할 텐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윤제이를 보고 음울하다고 생각하던 심사위원들의 눈에는 기대감과 불안함이 뒤섞여 넘실거리고 있었다.

그래.

어느새 우울함 따위는 그녀가 가진 매력이라 느끼고 있을 따름이었다.

‘어딜 보는 거지?’

강하준은 윤제이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가 허공을 주시하고 있던 까닭이다.

윤제이의 시선을 따라가길 잠시.

‘아….’

그녀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HS….’

그래, HS를 정확히 주시하고 있었다.

비록.

헬멧을 쓰고 있는 탓에 HS 또한 윤제이를 바라보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왠지….

그녀가 HS를 바라보는 눈빛과 자신이 HS를 바라보는 눈빛은 무척 닮아 있는 양 보일 따름이었다.

‘동질감’

처음으로 윤제이에게 동질감을 느꼈다. 그와 동시에 양심의 가책이 밀려왔다.

윤제이는 온전히 혼자 힘으로 기타를 부여잡은 채 편곡에 시간을 허비했다.

편곡은 잘 되었으려나? 3시간 이상을 붙잡고 있던데 연습은 제대로 다 했나?

‘경쟁자를 걱정하는 일이 제일 우스운 일이라지만….’

자신은 남의 손을 빌려 편곡을 진행하지 않았던가? 그런 생각을 끊임없이 곱씹고 있노라니 입술이 바싹 마르기 시작했다.

그래, 이미 자신의 무대는 끝이 났고 되돌릴 수 없다. 윤제이의 무대가 어떤가에 따라 자신의 운명이 결정될 뿐이었다.

꼴깍-.

이내 강하준은 마른침을 삼키며 마이크를 잡은 그녀를 집요하게 바라봤다.

그리고 머지않아….

“어, 어…?”

아무도 예상치 못한 선율이 장내를 압도하기에 이르렀다.

* * *

윤제이의 무대가 끝이 나고,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장내는 고요함이 감돌았다.

“후우….”

숨을 한번 크게 몰아쉰 윤제이는 기타 줄 위에 올려져 있던 손을 내려놨다.

‘정말 다 쏟아냈어. 후회는 없어.’

속으로 그 말을 반복하여 되새기며 심사위원석을 향해 고개를 치켜들었다.

장내는… 정적, 그 자체였다.

박수 소리는커녕 숨소리도 들리지 않아, 제 심장 소리만이 귓가에 울려댔다.

쿵쾅, 쿵쾅, 쿵쾅-.

윤제이가 불안정한 눈빛으로 주위를 살펴보길 잠시.

‘역시 무리수였나?’

끝내 다시금 고개를 툭 떨궜다.

“아…….”

‘같이 걷자’라는 곡이 지닌 본래의 매력 대신 정반대의 스타일로 편곡을 해 버린 게 지금 흐르는 정적의 원인이자, 자신의 탈락할 이유라 여긴 까닭이었다.

이윽고.

현승이 정적을 깨기 위해 대표로 마이크를 잡은 찰나였다.

“예, 윤제이 참가자….”

“자, 잠시만….”

제이블은 당황한 얼굴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마이크도 쥐지 않은 채 손을 들어 현승의 말을 잘라 냈다.

그리고는.

다급하게 마이크를 집어 들며 물었다.

“윤제이 씨, 혹시 ‘같이 걷자’를 왜 이렇게 편곡할 생각을 하셨는지 여쭤 봐도 될까요?”

“아, 그게 그냥 어떻게 편곡해야 나에게 잘 어울릴까 계속 고민하다 보니까….”

윤제이는 갑작스러운 제이블의 질문에 눈치를 살피며 말끝을 흐리곤, 연신 고개를 꾸벅거렸다.

“죄, 죄송해요. 제가 따로 편곡을 배운 적이 없어서, 잘해 보고 싶었는데 정말 죄송합니다….”

제이블은 책망하려 물은 게 아니니 죄송해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배운 적이 없어…?’

너무 혼란스러운 까닭이었다.

‘잠깐, 잠깐만….’

그럼 방금 윤제이가 부른 ‘같이 걷자’라는 편곡을 배워 본 적도 없는 초보자가 우연히 만들어 낸 결과물이란 말인가?

제이블은 이 상황이 믿을 수가 없다는 듯 잘게 고개를 흔들고 다시 한번 조금 전 윤제이의 무대를 상기시켰다.

‘그래, 분명….’

오늘도 역시 윤제이는 잔뜩 움츠러든 채로 쭈뼛거리며 자리를 잡기도 잠시.

털썩-!

자리에 앉아 기타를 쥔 순간 변해 버린 눈빛을 포착했다. 돌연 생기가 깃든 눈은 정확히 ‘HS’를 향했다.

그 반짝이는 눈동자 속에는 자신감, 믿음, 신뢰, 사명감 따위가 가득 일렁거리고 있었다.

이윽고.

기타 줄 위에 올려놓은 그녀의 손가락이 부드럽게 움직이자 익숙한 듯 낯선 선율이 들려왔다.

‘처음에 무슨 코드로 시작했더라…?’

예상 밖의 코드로 시작된 선율에 자석에 이끌리듯 상체가 앞으로 기울었다. 원곡은 다소 느린 템포의 잔잔한 호숫가를 연상시키는 곡이었다면….

그녀가 편곡한 곡은 마치 1.5배속이라도 해놓은 양 빠르게 소용돌이치는 계곡처럼 넘실거렸다.

‘와….’

곡이 진행될수록 연신 속으로 감탄을 내뱉었다. 마치 생전 처음 알게 된 지름길로 안내하듯 곡은 빠르게 자신을 끌어당겼다.

‘정말 본인이 편곡한 게 맞나?’

자신도 예상해본 바 없는, 생각지도 못했던 편곡에 혀를 내두르기도 잠시.

슬쩍 곁눈질로 양옆을 살펴보니 다른 심사위원들의 표정도 다를 바 없었다.

편곡으로 인한 충격에서 차츰 회복되어 갈 때쯤.

‘미친….’

욕이 나올 정도로 좋은 목소리가 다시금 충격을 선사했다.

그래.

자신은 알아보지 못했고, HS는 알아봤던 그녀의 잠재력은 아무래도 탁월한 리듬감과 목소리였나 보다.

남들보다 월등한 ‘리듬감’을 타고난 그녀가 되레 리드미컬한 곡을 만나니, 비로소 신비로운 ‘목소리’가 자신을 과감히 뽐내며 매끄럽게 춤을 췄다.

그렇게 숨 돌릴 틈도 없이 무대가 끝나 버렸고….

문득.

지난 본선 라운드 때가 떠올랐다.

제이블은 ‘HS’가 택한 참가자라는 이유로 윤제이에게 짤막하게 “잘 들었습니다.”라는 한마디만을 남겼더랬다.

그래.

스스로 치졸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자신이 윤제이를 극찬하는 건 ‘HS’의 안목을 치켜세워 주는 양 느껴졌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죄 없는 사람에게 괜한 어깃장을 부린 꼴이지.’

그러나.

오늘은 자신도 마이크를 집어 들 수밖에 없었다. 한낱 보잘것없는 알량한 자존심 따위보다 뮤지션으로서, 프로듀서로서, 한 명의 음악인으로서 호기심이 더 앞선 탓이었다.

“아…….”

그런데 배워 본 적도 없이, 자신이 가진 강점을 완벽히 앞세울 수 있는 편곡을 해낸 이 어린 천재 앞에 제이블은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것마냥 멍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닙니다, 너무 잘 들었습니다. 고생하셨어요.”

이내 제이블은 얼른 표정을 고쳐 지어 보이며 간결하게 상황을 정리했다.

“자, 그럼 잠시 심사위원 회의를 거친 다음 합격자와 탈락자를 발표하겠습니다.”

그리고는 MC의 말을 끝으로 심사위원들이 모두 중앙으로 모여들었다.

“저는 처음에 강하준의 같이 걷자를 들었을 때는 이건 강하준이 이겼다고 생각했거든요?”

제일 먼저 말문을 연 건 이영아였다.

“근데 아니었어요.”

살짝 흥분한 듯한 이영아의 말에 김광진도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한다는 양 말을 보탰다.

“맞아, 윤제이의 편곡이 충격적이라 만큼 너무 좋았어. 배운 적도 없는 이가 이런 말도 안 되는 편곡을 해내다니….”

말끝을 흐리는 김광진의 뒤를 이어 원진섭이 잔뜩 신난 얼굴로 자기 차례라는 양 말했다.

“원곡은 어두운 밤공기를 맞으며 덤덤한 위로를 받는 듯한 곡이었다면, 윤제이 버전은 마치 딸내미가 힘내라고 뛰어와서 어깨를 두들겨 주는 위로 같았달까?”

그 말에 김광진이 “적절한 비유군.”하고 중얼거렸다.

“쓰읍, 근데 그렇다고 해서 강하준이 못한 건 아니었잖아요. 오늘 들은 같이 걷자 중에서 가장 마음이 동요되고, 감동을 자아내는 무대였어요.”

“영아 말이 맞아. 강하준의 무대도 정말 기대 이상이었어.”

”윤제이는 색다르고 다음 무대가 기대된다고 하면 강하준의 노래는 계속 듣고 싶을 만큼 진정성과 진심이 느껴졌어요. 우열을 가려내기가 어렵네요.”

“아까는 참가자 둘을 떨어트리고 싶은데 못 떨어트려서 아쉬웠으면, 지금은 둘 다 안 떨어트리고 싶어서 큰일이네.”

“휴, 제작진도 무심해라. 왜 하필 이 둘을 붙여 놔서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는 걸까요?”

말이 많은 편에 속하는 이영아와 원진섭이 수심 가득한 얼굴로 대화를 이어 나가던 찰나였다.

“그래도 탈락자를 결정하긴 해야 해요.”

HS가 단호한 투로 얘기하자, 제이블 또한 맞장구치듯 더 단호한 투로 덧붙였다.

“맞습니다. 룰은 룰이니까요.”

“하지만….”

그렇게 한바탕 끝나지 않는 심사가 이어지기를 잠시.

“결정했습니다.”

겨우 결론이 났는지 결정된 사안을 스태프에게 말하자, 곧장 MC에게 전달되었다.

“호명되지 않은 참가자는 별도 심사평 없이 다음 라운드로 진출하게 되오니, 무대에서 내려가 주시면 됩니다.”

차분하지만,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MC의 목소리에 강하준과 윤제이는 마른침을 삼켜 냈다.

“의 마지막 탈락자를 발표하겠습니다.”

이내 두 사람은 눈까지 질끈 감은 채 호명될 이름이 자신의 이름이 제발 아니기를 간절히 바랐다.

“아-!”

한차례 뜸을 들이던 MC가 마이크를 다시 입에 가져다 댔고.

“탈락자는 강하준 참가자입니다.”

강하준은 제 이름이 호명되자, 체념하듯 고개를 푹 떨궈 버렸다.

“어, 어?”

놀란 얼굴을 한 채 입을 틀어막고 있던 윤제이에게 MC는 내려가 있으라고 일러 주었고.

“강하준 씨, 고개 드세요.”

이영아는 홀로 무대 위에 남아있는 강하준을 바라보며 대표로 말을 건넸다.

“낙심하지 마세요. 오늘 여기 있는 심사위원들은 20명이 부르는 ‘같이 걷자’를 들었습니다. 그중 강하준 씨가 부른 ‘같이 걷자’는 두 번째로 좋았습니다. 잔인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하필 대진운이 좋지 않았을 뿐입니다.”

강하준은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한 채 묵묵히 듣고 있었다. 일그러진 표정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까닭이었다.

HS에게 윤제이보다 더 나은 악기라는 걸 인정받고 싶었다. 오늘만큼은 꼭 인정받겠노라고 결의를 다졌건만….

결국 윤제이보다 못한 악기라는 거겠지.

“감사합니다….”

강하준이 아쉬움을 가득 머금은 입술을 꽉 깨물어 가며 힘겹게 대답을 내뱉고는 너털너털 무대를 내려왔다.

터벅, 터벅-.

조명이 닿지 않는 백스테이지로 돌아 나오니 얼굴 위로 어둠이 드리웠다.

정말 이대로 끝인 거야? HS에게 악기로서 인정받지 못한 채 이렇게 끝이라고?

이날 이후로 다시 기회가 오긴 할까?

그 생각까지 도달하자 발이 땅바닥에 붙은 것마냥 툭 멈춰서서는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심사위원들을 붙잡고 기회를 달라고 하지도, 회사에 연락해서 어떻게든 힘을 써 달라고 떼를 쓰지도 못한 채 두 주먹만 바들바들 떨어댔다.

“젠장….”

인정하기 싫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던 윤제이의 무대가 떠오른 까닭이었다.

편곡에 뭐 그리 긴 시간을 쏟아붓나 걱정했던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그래.

미션곡을 한 땀 한 땀 자신의 목소리에 가장 잘 맞는 맞춤 제작으로 재탄생 시킨 점이, 윤제이가 이길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되어 줬을 터였다.

그에 비하면 자신은 회사가 준 편곡으로 잘 부를 생각만 했다. 어떻게 하면 기교를 더 잘 보여 줄지, 어떻게 하면 더 잘 부르는 사람으로 보일지에만 초점을 맞춰 버렸다.

그게 바로 패배의 원인이 되었다.

마른 입술을 한번 축이니 괜스레 씁쓸한 맛이 나는 듯 느껴졌다. 아마도 패배감에서 비롯된 맛이겠지

‘회사에다가는 뭐라고 말씀을 드려야 하나….’

한 차례 한숨을 푹 내쉬어 보인 강하준이 요지부동으로 땅바닥에 붙어 있던 발을 떼어 내려던 찰나였다.

“강하준 씨.”

별안간 뒤에서 누군가 자신을 불러세웠다.

“어….”

바로 헬멧을 뒤집어쓴 남자….

아니, 아니지.

자신이 인정받고 싶은 사람.

HS가 서 있었다.

“노래 계속하실 거죠?”

그는 성큼성큼 앞까지 다가와서는 대뜸 저의를 알 수 없는 물음을 건네왔다.

“어….”

강하준은 갑작스레 코앞에서 HS를 마주하자 어수룩한 투로 어버버거렸고.

“여기 떨어졌다고 포기하려고?”

HS는 대답을 기다려 줄 마음이 없다는 양 재촉하듯 물어왔다.

이윽고.

“아니요.”

강하준은 지금 상황을 판단하기보단 그와 말 한마디라도 섞어 보자는 생각으로 완강하게 답을 이었다.

“계속 노래할 겁니다.”

그리고는 속으로만 ‘당신에게 악기로써 인정받는 그날까지.’라고 되뇌었다,

“음….”

이내 HS가 알 수 없는 침음을 흘리며 고글 너머로 눈을 마주쳐 오기도 잠시.

“그럼 곡 하나 드릴 테니까, 연주 한번 제대로 해 보시죠,”

전혀 예상치 못했던 제안에 강하준의 눈동자가 크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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