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80화 (80/118)

79화

“죄송해요….”

강하준은 배틀 라운드에서 떨어지자마자, 곧장 사옥으로 복귀하여 전무실을 찾았다.

“아냐, 아냐.”

박 전무는 고개를 숙여 보인 강하준을 향해 강하게 손사래를 쳐댔다.

“죄송할 게 뭐 있어? 얼른 고개 들어.”

“꼭 우승하고 싶었는데….”

“물론 그랬다면야 더할 나위 없이 좋았겠지만….”

그리고는 짐짓 아무렇지 않은 양 의연한 투로 말을 이었다.

“애초에 우승이 목적도 아니었고 인지도를 올리는 게 목표였잖아? 충분히 화제도 끌었고, 이만하면 충분하지.”

사실 못내 아쉬운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이미 떨어진 걸 되돌릴 수도 없는 노릇이지 않나? 박 전무는 그저 아쉬움에 입맛을 다실 뿐이었다.

그때.

고개를 든 강하준이 조심스럽게 운을 떼어 냈다.

“박 전무님, 상의드릴 일이 있어요.”

“응, 무슨 다른 문제라도 있어?”

“비록 져서 떨어지기는 했는데 HS 님이 따로 백 스테이지에서 곡을 주겠다고 하시더라고요.”

박 전무는 자신이 방금 들은 말이 잘못 들은 건 아닌가 싶어 눈매를 좁히며 다시금 물었다.

“하준아, 잠깐만… 방금 뭐라고 했어?”

“HS 님이 먼저 곡 준다고….”

“LS 엔터 전속 작곡가인 HS 말하는 거 맞지?”

그리고는 강하준이 “네.”하고 대답하자 도저히 못 믿겠다는 얼굴로 집요하게 되물었다.

“그 녀석, 아니… HS가 정말 너한테 먼저 곡을 주겠다고 했다는 거지?”

강하준은 반신반의해하는 박 전무의 얼굴을 바라보며 차분히 부연했다.

“네, 그러면서 개인 톡 아이디를 알려 주셨어요.”

“녀석이 제 개인 톡 아이디를 알려 줬다고?”

그 물음에 강하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폰을 꺼내 보였다. 그리고는 메신저 어플인 ‘까톡’을 실행시키자 즐겨찾기 목록에는 유일하게 ‘HS’라는 사용자가 등록되어 있었다.

“이, 이게 녀석 까톡이라고?”

박 전무는 자기 눈을 의심했다. 우선 녀석이 강하준에게 개인 톡 아이디를 알려 줬다는 사실이 놀라워서도 있었지만….

스윽, 스윽-.

‘HS’라는 사용자의 까톡 프로필 사진 목록이 안 어울리게 죄다 길고양이 사진으로 도배되어 있던 탓이다.

‘녀석이 이런 취향이었다고…?’

박 전무는 눈을 꿈뻑이며 채팅창을 클릭했고.

“아….”

이내 의구심은 수긍이 섞인 탄식으로 바뀌었다.

「 크나큰 결례를 범할 수 있다는 걸 알지만, 저로서는 기적이라 여겨질 만큼 믿기 힘든 제안이기에 제가 이해한 바가 맞는 지 한 번 더 확인하고자, 조심스럽게 여쭙니다. 정말 작곡가님의 곡을 제게 주신다고 제안해 주신 게 맞을까요? 」

예의를 갖춘 채 구구절절 적어 내려간 강하준의 선톡에 이어서.

「 ㅇㅇ. 」

간결하다 못해 모음을 다 잊어버린 듯한 단답을 보자 딱 녀석이라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 그럼 직접 만나 뵙고 자세히 얘기 나누고 싶은데 언제쯤 시간 가능하실까요? 」

「 K-싱어스타 끝날 때까지 ㄱㄷ. 」

「 예, 그럼 기다리겠습니다. 연락 부탁드립니다. 」

「 ㅇㅋ. 」

둘의 대화를 짤막하게 별 내용 없이 끝이 났다.

“녀석은 카톡 말투라고 별반 다를 게 없네.”

강하준은 헛웃음을 흘리는 박 전무를 바라보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혹시 박 전무님도 HS 님의 개인 연락처를 모르시는 거예요?”

“아무래도 다른 팀이니까, 2팀 실장 통해서만 연락했지….”

박 전무는 괜히 머쓱한 기분에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폰을 다시 건네주었다. 녀석의 연락처나 개인 톡 아이디를 알고 있는 건 2팀의 주요 관리직이나 임원급 몇 명 정도가 다였다.

그래.

사내에선 모르는 이가 없는 전무지만, 몸 담그고 있는 팀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알지 못하는 것만 보더라도, 아무나 알 수 있는 연락처가 아니라는 반증이었다.

하물며 녀석의 실명을 아는 사람조차 몇 없는 점을 고려해 봤을 때, 강하준에게 개인 톡 아이디를 알려 줬다는 건 정말로 곡을 줄 마음이 있다고 볼 수 있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상념에 잠겨 혼자 중얼거리던 박 전무가 별안간 강하준의 어깨를 붙들고 앞뒤로 가볍게 흔들며 소리쳤다.

“됐다! 됐어! 다 된 거야!”

그리고는 조금 전 탈락 소식에 품었던 아쉬움은 싹 잊어버린 채 방금 갓 잡아 올린 물고기마냥 펄쩍 날뛰며 기뻐했다.

“그 녀석에게 곡을 받을 수만 있다면야 데뷔곡부터 히트는 보장됐다고 할 수 있지!

다만.

그와 대비되듯 강하준의 얼굴 위로는 잔뜩 먹구름이 낀 채였다.

‘혹시….’

박 전무의 말대로 그냥 해 본 말은 아닐까?

탈락자를 위한 배려인가?

설마 안쓰러운 마음에 한 말은 아니겠지?

계속 자신을 집어삼키듯 떠오르는 물음표들에 쉽사리 HS의 호의를 받아들이지 못한 까닭이었다.

“하준아, 기분 안 좋아?”

그때 박 전무가 강하준의 안색을 살피며 넌지시 물었다.

“지난번에 HS가 너를 마음에 안 들어 하는 것 같다고 걱정했었잖아. 근데 그 녀석이 먼저 곡을 준다고 했다는 건 네가 마음에 들었다는 반증 아니겠어?”

그의 말에 원하던 답을 들은 것마냥 강하준의 안색이 조금은 밝아졌다.

“정말 그럴까요?”

“그럼!”

“근데 만약 제가 다른 팀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서 곡을 안 준다고 하면 어쩌죠?”

이내 강하준은 다시금 한층 더 어두워진 얼굴로 되물었다.

매니저 형에게 1팀과 HS의 사이가 경쟁 구도에 있는 만큼 그다지 좋지 않다는 사실을 얼추 전해 들었던 얘기가 떠오른 까닭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얼마 전 표절 사건도 있던 바람에 1팀 전체가 HS와 영 찝찝한 사이가 되었다는 소식까지도 전해 들었다.

‘그 와중에 자신이 사실 1팀 연습생이라고 말하면….’

박 전무는 강하준이 이런 고민을 할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듯 어깨를 잘게 다독이며 말을 이었다.

“내가 나름 측근으로서 장담컨대 녀석은 그렇게 쪼잔하게 나올 녀석이 아니야. 그저 네가 마음에 든다면 팀이 다른 건 어쨌건 강단 있게 밀고 나갈 녀석이거든.”

강하준은 그 말에 응답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마치 홍보실 직원이라도 되는 양 그와 관련된 모든 기사나 인터뷰를 스크랩하며 읽으며 알게 된 그는 제 마음에 든 악기(가수)에게만 곡을 주는 몹시 까탈스러운 미치광이의 성향을 띠고 있지 않았던가?

자신이 느낀 그대로의 성향을 지닌 사람이 맞으면….

지금 박 전무가 하는 말이 맞는다면….

아무나 알지 못하는 톡 아이디까지 알려 준 거라면….

정말 자신이 그의 맘에 든 거라고, 악기로서 인정받게 된 거라고 생각해 봐도 되지 않을까?

강하준의 입가 위로 옅은 미소가 퍼져 나갈 찰나였다.

“대, 대, 대, 대박이야. 대박이군-.”

“그렇게 좋으세요?”

“그럼! 우리 하준이 시작부터 꽃길이 열린 건데.”

박 전무는 한층 더 신난 얼굴로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말을 덧붙였다.

“하준아, 오디션 떨어진 거? 그건 네 가수로써의 인생에 별것도 아니야. 오점조차 될 수 없는 티끌 같은 일이야.”

이내 은밀한 비밀을 얘기하듯 귓가에 대고 넌지시 덧붙였다.

“근데 그 녀석에게 곡은 받는다? 그럼 우리 하준이가 가수로서 보내게 될 제2의 인생을 화려한 막으로 시작하는 거라고.”

모쪼록 박 전무에게 있어선 오디션을 떨어진 대신, HS에게 곡을 받게 된 이 상황이 일실일득(一失一得)처럼 느껴질 따름이었다.

‘아니, 아니지….’

일거양득(一擧兩得)이라고 해야 할까?

* * *

어느덧 배틀 라운드가 끝나고 1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윤제이는 자신의 목소리를 활용하는 법을 터득했는지, 점차 폭발적인 가창력을 선보이는 중이었다.

그 결과….

윤제이만이 가진 독보적인 리듬감과 목소리로 배틀 라운드 다음 치러진 듀엣 라운드에서도 거뜬히 통과했다.

“그래서 이번 배틀 라운드에서 윤제이랑 강하준 중에 누가 떨어져? 아니다, 말하지 마. 어차피 말 안 해 주겠지만….”

“뭐 하세요?”

“아니, 방송국 놈들이 딱 결과 발표하기 직전에 잘라 버렸더라니까? 아주 고약한 놈들이야.”

김 실장은 고구마를 먹고 목이 메는 것처럼 제 가슴팍을 퍽퍽 내려치며 열불을 토해 냈다.

요즘 김 실장은 매주 K-싱어스타에 푹 빠져 매번 실시간 라이브 챗까지 남기는 열혈 시청자로 거듭난 상태였다.

그때.

한참 열을 내며 답답해하던 김 실장이 옷깃을 다듬으며 넌지시 물었다.

“현승아, 네가 봤을 때 강하준 어떤 것 같아? 내 촉에는 확실히 될 놈처럼 보여지던데….”

그리고는 현승이 “음.”하고 작게 침음하며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넙죽 되물었다.

“바로 접촉해 볼까? 이왕 그런 김에 윤제이까지 한 번에 좀 만나 보고? 아, 이미 다른 기획사랑 계약했으려나….”

김 실장의 말에 현승은 무언가 떠올랐는지 짧게 “아, 맞다.”하고 중얼거렸다.

“저 다음 개인 작업으로는….”

강하준에게 곡을 주기로 했다는 걸 자신이 따로 말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까닭이었다.

지이이이이잉-!

그때 김 실장의 휴대폰이 시끄럽게 진동을 울려댔다.

“이크! 아린이가 한시까지 주차장에서 만나자고 했었는데, 얼른 가자.”

끝내 말을 잇지 못한 현승은 잘게 고개를 끄덕이며 “예.”하고 외투를 챙겨 입었다.

‘그래, 뭐 나중에 생각하자….’

강하준의 작업은 K-싱어스타에서 윤제이를 연주한 다음 일이니까 말이다.

* * *

정아린과 현승 그리고 김 실장은 회사 근처에 있는 한정식집을 찾았다.

테이블 위로 꽉 채워진 접시 때문에, 빈틈을 찾아보기조차 어려울 지경이었다.

“많이들 드세요. 맨날 구내식당만 드시잖아요.”

“구내식당이 뭐 어때서.”

“그냥 좀 더 몸에 좋고 비싼 거 드시라는 거죠.”

“어? 구내식당 무시 발언?”

정아린은 현승의 장난에 고개를 내저으며 “말을 말자….”하고 중얼거렸다.

“아린이 요즘 엄청 바쁜데 어떻게 시간 내서 밥 사 줄 생각을 다 했어? 기특하네.”

“벚꽃 한 줌이 너무 잘 되는 바람에 이번 봄에 정작 꽃 구경 한 번 못 해 본 거 있죠.”

김 실장의 칭찬에 정아린은 짐짓 앓는 척을 하며 투정 부리듯 말을 덧붙였다.

“아마 이번 봄은 전 세계 통틀어 제가 제일 바쁜 사람이었을 거예요.”

그리고는 “힝.”하는 어리광 섞인 소리와 함께 어깨를 축 늘어트려 보였지만, 정작 입꼬리는 기분 좋은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말 그대로 그녀는 요즘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축제와 콘서트, 공연, 음방, 예능까지….

마치 하루가 48시간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래도 연습생 퇴출당할 뻔한 적을 생각하면 지금 몸이 좀 힘든 거쯤이야, 얼마든지 견뎌 낼 수 있었다.

그래.

어쩌면 지금 힘들다고 말하는 건 힘겹게 연습생 시절을 버티고 있을 이들을 기만하는 발언일 수도 있을 터였다.

정아린이 소리 없이 재차 히죽거리자, 떡갈비를 한바탕 입에 쓸어 넣던 현승이 장난기 서린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어? 지금 전 세계 사람 무시 발언?”

“아, 진짜! 유치해!”

“이젠 나 유치하다고 무시 발언하네.”

전의를 상실한 듯 정아린은 반 포기한 얼굴로 고개를 내 저었다.

“얼른 밥이나 먹자고요….”

그렇게 장내에 달그락거리는 소리만 들려오기도 잠시.

“작곡가님, 혹시 여름 시즌곡도 만드실 거예요?”

돌연 정아린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그럴 생각이긴 한데, 왜?”

“그럼 그것도 혹시 제가 부르면 안 돼요?”

현승은 제 얼굴 아래로 꽃받침을 하며 물어오는 정아린을 보고는 정색을 해 보였다.

“원래도 안 줄 거였는데 방금 꽃받침 해서 더 안 주고 싶어졌어.”

정아린은 단호한 현승의 대답에 “왜요-?!”하고 바로 반문했다.

“여름 시즌 곡이라면 자고로 시원시원한 기럭지를 자랑하는 가수가….”

장난기 섞인 현승의 대답에 정아린이 일순 발끈하며 제 옆구리 춤에 손을 딱 짚어 보였다.

“이거야말로 키 160㎝ 미만 무시 발언 아닌가요?”

“너 160㎝도 안 됐냐?”

“아…… 아주 조금 모자라요, 진짜 조금.”

이내 정아린이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뭐, 그냥 158㎝ 정도…?”

그 말에 현승은 피식 웃어 보이고는 다시금 묵묵히 밥을 먹기 시작했다.

‘아, 정말 근데 금방 여름이 오겠군.’

정아린의 말을 듣고 생각해 보니, 요즘 부쩍 더워져 가는 날씨를 체감하는 중이긴 했다.

여름 곡은 누가 부르게 할까나?

현승은 떡갈비를 크게 한입 베어 문 채로 고민에 빠져들었다.

“흠….”

정아린이 불러도 크게 문제는 없을 것 같지만, 시즌 곡마다 다른 가수를 써서 각기 다른 계절의 매력을 돋보이고 싶기도 했고.

무엇보다 조금 더 청량감 있는 목소리를….

현승은 불현듯 떠오른 목소리에 “아!”하고 작게 탄식을 내뱉으며 곧장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그 녀석이 있었어.”

“네? 갑자기 그 녀석이라뇨? 요즘 헛것 보세요?”

정아린은 그런 현승의 눈앞에 손을 휙휙 내저으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어왔고.

“잠을 너무 안 자서 그래요. 충분한 숙면을 좀 취하시고….”

“그래, 결정했어.”

“잘 생각하셨어요. 앞으로는 카페인을 좀 줄이고 잠을 푹….”

현승은 정아린이 무어라 말하는지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곧장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타닥, 탁, 탁-.

액정 두들기는 소리가 아주 짧게 이어지기도 잠시.

[ 당장 내일 면담 요망 ]

강하준과의 채팅창 위로 예상보다 더 빠르게 메시지가 전송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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