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87화 (87/118)

86화

대망의 TOP 10 선발 라운드.

아니지….

TOP 11 선발 라운드의 날이 밝았다.

박 전무는 제 집무실 책상에 앉아 턱을 쓰다듬었다.

“LS 엔터와 계약이라….”

제 새끼랄 수 있는 강하준이 출연 중인 K-싱어스타의 참가자이자, 2팀 전속 작곡가인 HS가 슈퍼패스로 살려 낸 화제의 참가자 ‘윤제이’가 2팀과 계약을 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차였다.

“쓰읍.”

윤제이는 자신이 봤을 적에도 충분히 LS 엔터와 계약을 맺을 만큼 매력적인 음색과 실력을 보유한 자였다.

어찌 보면 이번 K-싱어스타에서 강하준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 상대 격(格)이랄 수 있었지만….

크게 괘념치 않기로 했다.

어차피 강하준이 K-싱어스타에 참가한 궁극적인 목표는 우승자가 아니라 ‘성공적인 데뷔’이지 않나?

‘윤제이….’

이러나저러나 한 식솔이 된 마당에 그녀 또한 K-싱어스타를 잘 마무리하고 데뷔할 수 있어야겠지.

으레 이런 큰 잔치는 같은 팀끼리 서로 돕고, 밀어주며 콩고물을 죄다 주워 먹어야 하는 법이니까.

‘차라리 윤제이라 잘된 일일 수도….’

그녀는 강하준과 진작에 ‘1:1 배틀 라운드’에서 맞붙은 적이 있었고, 그때 순간 시청률은 최고치를 찍었다.

또한.

너튜뷰에서도 ‘K-싱어스타 화제의 순간’이라는 이름의 클립 중 역대급이랄 수 있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둘의 매치에 세간이 관심을 기울이고 있단 반증이겠지.

이후 치러 나갈 라운드에서 다시금 둘의 매치 구도가 형성된다면, 느슨하게 늘어졌던 고무줄이 확 탄력감을 찾듯 또다시 화두에 오를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렇게 켜켜이 쌓인 화제는 인지도와 직결될 테고….

결론적으로는 데뷔 시 많은 투자금을 태우지 않고도, 홍보 효과를 톡톡히 누려 볼 수 있을 터였다.

더군다나 K-싱어스타에서 가장 화제의 참가자랄 수 있는 두 명이 모두 LS 엔터에서 데뷔한다?

연예 기획사인 LS 엔터의 위상도 올라가는 일이랄 수 있었다.

‘그래, 되레 잘된 일이야.’

물론 가슴 한편으로는 강하준이 TOP 1의 주인공이 되기를 바라는 욕심이 들끓었지만….

그건 나중 일이었다.

박 전무가 상념에 잠겨 고개를 연신 끄덕이기도 잠시.

뚜르르르-.

제 손목시계를 한번 확인하고는 외투를 챙겨 입으며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어, 하준아 지금 연습실인가?”

오늘만큼은 직접 촬영장에 동행하고자 함이었다.

* * *

일산에 한 스튜디오는 당일 있을 K-싱어스타의 경연 준비로 한바탕 북새통을 이뤘다.

“PD님, 약속한 내용이 다르지 않나요?”

설치된 경연 무대 뒤편에는 성규진 PD가 연신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를 조아린 채 서 있었다.

“연락을 드렸었는데 받지를 않으셔서….”

“공사다망한 와중에 일일이 오는 연락을 어떻게 다 받습니까?”

그를 책망하듯 몰아붙이고 있는 사람은 바로 JN 엔터의 사내 이사인 김우석이었다.

김우석은 분기가 서린 목소리를 억누르며 조곤조곤하게 따져 물었다.

“분명 그때 저한테는 유주가 마지막 TOP10 내정자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그 이후에 한 명이 더 포함되었거든요. 내부 회의를 통해 가결되는 바람에….”

난처한 기색이 역력한 성규진의 모습에도, 김우석은 순순히 물러설 마음이 없어 보일 따름이었다.

“갑작스레 TOP 11 체제로 변동될 경우, 분명 세간에는 짜고 치는 판이라는 말이 나올 테고, JN 엔터와 계약을 맺은 유주와 관련해서도 말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사실 별 상관없었다. 방송국 놈들 말이야,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다는 걸 모르는 것도 아니니까.

다만….

김우석은 뒤늦게 K-싱어스타라는 배를 타기 위해 남들의 두 배가량 되는 뱃삯을 치르지 않았던가?

“그렇게 아무나 다 내정자로 포함되는 거였다면 애초부터 거액의 투자금을 내놓지도 않았을 겁니다.”

속에서 어깃장이 안 날 수가 없을 터였다.

“김 이사님, 부디 고정하시죠. 제 선에서 어찌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아시잖아요.”

제 허리춤에 손을 올려놓은 김우석이 거만하게 말해 보라는 양 턱짓했다.

“대체 내부적인 사정이 뭡니까? 어디 한번 들어나 보죠.”

그 물음에 성규진이 주위를 한 번 살피고는 “저, 그게….”하며 말문을 열었다.

“윤제이라는 참가자 아시죠? 크게 화제 됐었던….”

“그 참가자가 열한 번째 내정자입니까?”

“예. 이번에 LS 엔터와 계약을 체결하게 되었습니다.”

그 말에 김우석은 “LS 엔터?” 하며 눈매를 좁혀 보였다.

“네, 메인 심사위원인 HS 씨가 직접 관여하는 바람에, 별도 로비도 없이 윤제이가 진출 내정자로 결정되면서 상황이 꼬여 버린 겁니다.”

김우석은 HS라는 말에 “음?”하고 반응했다. HS라면 현재 LS 엔터의 전속 작곡가로서, ‘히트 보증수표’라는 수식어가 붙은 신성 작곡가였다.

또한.

제 전 둥지인 LS 엔터에서 직속 후임 격이었던 김우현 실장이 영입한 인물이었다.

바드득-.

김우석은 별안간 입안에서 마찰음이 날 정도로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일전에 김우현 실장에게 스카우트 제안을 했던 때가 떠오른 까닭이었다.

김우현과 오랜만에 해후를 가진 그날.

분명 자신의 제안에 김우현은 잔뜩 흔들리는 기색을 보였기에 백 프로 넘어왔다고 확신했다.

비록 HS만큼은 대쪽같이 데려올 수 없다고 잘랐지만….

그래도 김우현 정도의 인물을 스카우트해 간다면 더욱 사내에서 제 입지를 굳힐 수 있을 테니 괜찮았다.

그러나.

돌연 두 번째 만남에서는 완강히 거부 의사를 밝히더니 제 부름을 뿌리치고 가 버렸었다.

그래….

김우현과 HS가 호형호제하는 사이라는 소문을 듣고, 사 측에다가 둘을 동시에 JN 엔터로 스카우트해 오겠노라고 큰소리를 떵떵 쳐 놨었는데.

‘HS는커녕, 김우현마저 제안을 까 버리는 통에 체면이 말도 아니었지.’

사실 지금까지도 김우현의 거절은 당최 이해할 수가 없는 선택이었다.

아니, 용서할 수가 없는 선택이었지.

“김 이사님도 아시다시피 이번에 연출을 맡은 김영호 메인 PD의 입김이 세다 보니까 저도 어찌해 볼 방법이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연신 제 앞에서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는 성규진에게 화가 난 것은 아니었다.

지금 이 끓어오르는 어깃장의 주인은 아무래도….

윤제이를 무임승차 시킨 HS였다.

아니, 아니지.

HS를 영입하고 키워 낸 김우현인가?

뭐가 되었건 묵힌 연(緣)으로 더욱 분기가 들끓는 건 확실했다.

“마침….”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했던가?

“저기 주인공들이 오네요.”

김우석의 시야 안으로 김우현과 HS로 추정되는 헬멧을 뒤집어쓴 남자가 보였다.

* * *

“이야, 옛날 생각난다.”

현장에 직접 동행하는 건 오랜만이었던 박 전무가 추억에 잠긴 듯 경연이 치러질 스튜디오 내부를 살폈다.

이제는 우승자를 가려내기 위한 피 터지는 혈투만이 남았으므로, 경연장의 분위기는 공기 자체가 무거웠다.

수많은 스태프가 정신없이 뛰어다녔으며….

딱 봐도 기획사 사람으로 추정되는 이들이 PD들과 연신 인사치레를 나누기 여념 없어 보였다.

“이제 대놓고 관여하려고들 찾아왔나 보네.”

비단, 그들만이 그런 건 아니었다.

박 전무 또한 마찬가지로 오늘같이 중요한 촬영일은 로드매니저가 아닌 간부급 사람이 동행해야 한다고 판단했고.

오늘 때마침 중요 일정은 없었기에, 사사로운 일정은 전부 밀어 둔 채, 강하준과 함께 촬영장을 찾아왔다.

“안녕하십니까? SE 엔터의 김병규 본부장이라고 합니다. 이번에 우리와 계약한 이준혁 참가자….”

“성 PD님, 이거 차 오랜만이네요. 이번에 제가 WD 레이블 사내 이사직으로 임명된 건 아시죠?”

“아이고, 김 PD님! 무한한 도전 프로그램 진행하실 적에는 진짜 자주 뵀었는데 요즘은 인사를 통 못 드렸네요.”

겉으로 보여지기에는 화목한 분위기였으나, 결국 이해와 공생으로 이루어진 관계가 아니던가?

잘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모두 원하는 바를 취해 내기 위해, 권력과 친목을 무기 삼아 사투를 벌이는 중이었다.

“쓰읍….”

한참 동안 그들을 면면이 살펴보던 박 전무가 제 두 손을 파리마냥 비벼대며 말했다.

“하준아, 아직 촬영 좀 남았으니까 우리도 순회 좀 돌아보자.”

그 말에 강하준은 정확히 ‘순회’가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으나 “네.”하고 답하며 뒤를 쫓았다.

박 전무는 주위를 살피다 말고, 목표물을 발견했는지 씨익 웃음을 머금은 채 전진했다.

“어? 고 CP, 오랜만이야. 잘 지냈나?”

그가 인사를 건넨 건, 지금 이 현장에서 최고의 통솔자이자 지휘자랄 수 있는 고현덕 CP였다.

다른 자잘한 제작진들 붙잡고 한세월 얘기해 봐야, 이 사람에게 한마디 전하는 것만 못하다.

물론.

박 전무 정도는 되어야, CP에게 다이렉트로 격식 없이 말을 건넬 수 있었지만….

“박 전무님! 정말 오랜만에 인사드리네요. 잘 지내셨어요?”

“그래, 내가 본부장으로 있을 때만 해도 자주 봤는데.”

“요즘은 아무래도 직접 현장에 오실 일이 없으시죠?”

한차례 “그렇지.”하고 답한 박 전무가 제 뒤에 서 있던 강하준의 어깨에 팔을 올리며 말을 이었다.

“우리 하준이 알지? 일전에 일대일 매치에서 한번 탈락해서 어찌나 서운했는지 몰라.”

“그, 그건….”

“아냐, 농담일세. 그때는 어쩔 수 없던 결과였겠지. 하여튼 다시금 불러 주었으니 됐어.”

그리고는 고현덕의 어깨를 잘게 다독이며 덧붙였다.

“기적적으로 부활한 참가자라는 타이틀 덕분에 더 화제도 되고 그러지 않겠어?”

일말의 압박이 가미된 물음이었다.

제 말대로 꼭 될 수 있도록 힘 써 달라는 요구를, 노련하게 둘러 전하는 강요였다.

고현덕 CP 정도 되는 인물이 자신의 저의를 못 알아챘을 리 만무했으므로.

“모쪼록 잘 좀 부탁해.”

“그럼요.”

말을 끝낸 그가 곧장 걸음을 돌렸다.

“으흠-.”

박 전무가 다음 타깃을 찾고자, 주위를 살펴보기도 잠시.

“김 실장이랑 애송이 작곡가 아니야?”

그 말에 강하준도 따라서 시선을 옮겼고. 자동반사적으로 시야 속에 들어온 사람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어, HS 님….”

“그래, 하준이한테 곡도 주기로 했으니, 인사 정도는 해야겠지.”

박 전무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이 서 있는 쪽으로 걸어갔고.

터벅, 터벅-.

김 실장이 마주 선 남자와 무슨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는 들리지 않았지만….

“누구는 비싼 값 치르고 탔는데, 누구는 무임승차 했다고 하니까 기분이 영 좋지는 않네.”

“적어도 프로그램에 로비한 만큼 도움을 줬다면 무임승차 했다고 볼 수는 없지 않을까요?”

말을 잇는 김 실장의 표정으로 보아 상대편이 영 달갑지 않은 듯 보였다.

“우현아, 앞으로도 이 바닥에 계속 종사할 거라면, 나랑 필연적으로 마주할 일이 얼마나 많겠어?”

“그렇겠죠.”

“근데 HS가 요즘 잘나간다고 너까지 이렇게 나오면 우리 관계가 어떻게 되겠냐.”

더군다나 점차 가까이 다가갈수록 둘 사이에 일련의 위화감이 느껴졌고….

“혹시 저번에 주신 제안 거절한 것 때문에 이러시는 거예요?”

앞에 다다랐을 무렵, 또렷이 들려온 김 실장의 말에 눈매를 좁혔다.

‘제안?’

척 봐도 동종업계인 사람이, 김 실장에게 할 만한 제안이라면 스카우트 제안밖에 없을 터였다.

다만.

확실하지도 않고, 상대편이 누군지도 모르는데 곧장 달려가 들이받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나?

“어이, 김 실장-.”

박 전무는 표정을 고쳐 보인 뒤, 일부러 김 실장을 불러 인기척을 냈다.

“박 전무님-!”

김 실장은 그의 부름에 곧장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보였고,

“안녕하십니까.”

현승 또한 가볍게 묵례하며 박 전무에게 인사를 전했다.

“전무님을 촬영장에서 뵙는 건 오랜만이네요. 그나저나 촬영장에는 웬일로 오셨어요?”

“우리 하준이 매니저 노릇 하러 한번 와 봤지. 시간 날 때 종종 와야겠어. 정겹고 좋네.”

박 전무는 제 꽁무니를 쫓아 따라온 강하준에게 인사하라는 제스처를 취해 보였다.

그 모습이 어쩐지 일타 강사에게 아들을 맡기려는 극성맘의 모습처럼 보일 따름이었다.

“안녕하십니까, 김 실장님! 처음 정식으로 인사드립니다. 1팀 연습생 강하준이라고 합니다.”

“예, 우리 실제로 만나는 건 처음이네요.”

“사내에서 엄청 유능하신 분이라는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모쪼록 다른 팀이지만 잘 부탁드립니다.”

김 실장은 강하준과 직접 인사를 나누기 전까지 그를 보며 싹싹함과는 거리가 먼, 곱게 자란 도련님 아니면 귀공자 같다고 생각했었다.

하나, 지금 모습만 봐선 되레 사회성이 적당히도 아니고 월등히 높은 사람 축에 속해 보였다.

“작곡가님도 아, 안녕하세요….”

“어, 하이.”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지, 조금 전까지 당당하던 강하준이 현승의 앞에선 마치 초등학생이 입학 첫날 짝꿍에서 말을 걸 때처럼 부끄러워했다.

‘뭐지…?’

김 실장이 의아하다는 양 강하준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기도 잠시.

“그건 그렇고 이번에 2팀에서 윤제이 계약했다던데, 벌써 매니저 노릇 하러 온 건가?”

“꼭 윤제이 때문은 아니고요. 겸사겸사 현승이 매니저 노릇도 하러 왔습니다.”

박 전무가 한차례 “그렇군.”하고 고개를 주억거리던 중, 잠시 잊고 있던 존재를 확인하고는 놀란 기색을 보였다.

“음? 이게 누구야? 김우석이 아니야?”

“박 전무님, 오랜만입니다.”

박 전무는 김우석과의 해후가 마냥 달갑지는 않은지, 위아래로 시선을 한번 훑어 내리며 되물었다.

“둥지 떠나더니, 더 번듯해졌네?”

“예, 다음 둥지에 자리를 잘 잡았거든요.”

박 전무는 김우석이 내민 명함을 살피더니 바람 빠지는 소리로 피식 웃음을 흘렸다.

“사내 이사? 출세했네, 축하해.”

빈정거림이 섞인 어투였지만, 적당히 축하하는 시늉을 곁들이며 명함을 주머니에 욱여넣었다.

박 전무는 둥지를 떠난 이를 진심으로 축하해 줄 만큼 인자함을 지닌 사람은 되지 못했다.

“둘이 오랜만에 회포 풀고 있었는데 내가 방해한 건가?”

이내 김 실장과 김우석의 어깨 위로 제 두툼한 손을 올려놓으며 넉살 좋게 물어 왔고.

“방해라니요, 전혀 아닙니다.”

“예, 절대 방해 아닙니다.”

결사코 아니라는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살펴보던 박 전무의 얼굴이 점차 딱딱하게 굳어갔다.

“근데 분위기가 왜 이래?”

이내 그가 던진 싸늘한 물음이 공기 안에 부유하고 있던 긴장감을 팽창시켰다.

‘확인해 볼 필요가 있어.’

아까 김 실장의 말로 짐작해 보건대, 스카우트를 제안을 거절한 걸로 김우석이 어깃장을 부리고 있던 모양이었으니까.

“김 실장, 둘이 무슨 얘기 나눴어?”

“전무님, 그게….”

“아니면 김우석, 네가 한번 말해 볼래?”

스튜디오 내부는 풀가동되고 있는 에어컨 덕택에 실내 온도가 제법 쌀쌀했지만….

“바쁜 우리 애들 붙잡고 대체 무슨 얘기를 떠들고 있었는지.”

김우석의 등줄기로는 식은땀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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