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모든 걸 기억하는 천재무사-4화 (4/357)

#4. <영약을 모으는 삼류무사(2)>

“케에엑.”

언뜻 인간의 얼굴과 비슷한 형상을 한 거미가 입에서 독액을 뿜어냈다.

치지직.

나무는 물론이고 바닥을 다지고 있는 흙마저도 녹여 버리는 독한 산성 액과 거기서 피어오르는 녹색의 연기.

두건으로 입을 막고 있었지만, 머리가 서서히 어지러워지는 것 같았다.

영약은 주로 대지와 천지의 기운이 모이는 곳에서 나타나곤 하는데.

그런 영지(靈地)는 곧 영약뿐만 아니라 영물을 키우곤 한다.

다만, 그 대상이 보기만 해도 끔찍한 존재라면 사람들은 때때로 마물이라 부르곤 했다.

“징그럽게도 생겼군.”

8개의 다리, 커다란 몸통. 거기에 인간과 흡사한 얼굴에 4개의 눈을 가진 마물 자체인 인면지주.

인면지주는 제 보물을 빼앗길까 만년화삼을 뒤에 두고 나를 경계하고 있었다.

“네놈 때문에 굳이 먼 합치 산까지 다녀왔다.”

나는 녀석의 측면으로 돌며 다리 하나를 잘라냈다.

키에엑.

녹색의 피가 뿜어지며 사방에 연기와 산성액을 토해낸다.

나처럼 내공이 비천한 이에겐 연기만으로도 급사에 이를 무서운 독기였기에, 멀리 돌아 합치산까지 가서 구엽신근을 먼저 먹고 온 보람이 있었다.

“어차피 네놈이 이곳에서 살아남는다 한들 삼 년 뒤 면 당가에 끌려가 죽을 때까지 독액이나 생산하다 말라 죽어야 한다.”

키에엑.

나의 설득에도 인면지주는 통 말을 들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차아악.

인면지주의 꽁무니에서 사방으로 거미줄이 쳐진다.

사방으로 그물처럼 펴진 거미줄은 금세 동굴의 통로를 막아선다.

“멍청한 녀석.”

난 햇불로 거미줄에 불을 붙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거미줄에 붙은 불이 인면지주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인면지주의 점액질을 타고 불길이 인면지주의 꽁무니까지 곧장 쫓아갔다.

키에엑.

녀석이 당황하여 꽁무니를 바닥에 긁으려는 순간, 준비해 왔던 기름을 놈의 몸에 뿌리고 불을 붙였다.

키에에에에엑!

비명을 지르는 인면지주의 끔찍한 아가리 속에 검을 찔러 넣자, 놈이 발광하기 시작했다.

사람과 비슷한 형상의 얼굴로 눈과 입에서 녹색의 피를 뿜어낸다.

꿈에 나올 것 같은 징그러운 모습.

뒤로 물러나 있자, 놈의 움직임이 서서히 잦아들었다.

비릿한 냄새가 동굴을 가득 메울 때쯤 겨우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휴.”

만년하수오와 인왕삼을 먹었지만 내공은 8년치밖에 흡수하지 못했다.

두 영약 자체가 귀하긴 하지만 내공 증진엔 그닥 도움이 되지 않았고, 태을심법으로 흡수할 수 있는 양이 정해져 있던 탓이다.

“이걸로 어느 세월에 그 놈을 쫓아간담.”

태청신검, 그러니까 지금의 용소아의 내공이 삼갑자였다.

삼 갑자라니. 삼 갑자라니.

아득한 수준에 정신이 아찔해진다.

그래도 넋 놓고 있을 순 없다.

“강호 영약서에 나와 있는 영약을 다 먹는다면 따라갈 수나 있으려나.”

태을심법이 훌륭한 심법이긴 하나 기초에 불과하다.

뛰어난 내공심법이 없다면 흡수하기가 더욱 요원한 상황.

영약의 기운이 어디 가는 건 아니지만, 흡수 못 한 기운을 가지고 칼 맞아 죽는다면 얼마나 억울한가.

“영단, 영단이 필요해.”

내공의 양을 늘리는 데는 영약보단 영단이 더 효율적이다.

그것도 명문 대파의 영단일수록 더 많은 내공을 늘릴 수 있다.

“할 일이 한둘이 아니군.”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인면지주의 시체를 지나자 동굴 틈새로 비친 빛을 쬐고 있는 만년화삼의 이파리가 보였다.

“내 평생에 이걸 먹을 줄이야.”

영단에 대한 고민도 잠시, 만년화삼의 이파리를 보자 근심이 싹 사라졌다.

만년하수오와 인왕삼도 귀하지만 만년화삼은 만년설삼과 더불어 양·음의 진기 증진과 내공 증진에 탁월한 효과를 지닌 영약이다.

특히 탈태(奪胎)의 효과가 있어, 무재가 없던 이가 먹으면 무재가 뛰어난 신체로 바뀌고, 무재가 뛰어난 이가 먹으면 무신지체로 변한다.

최소한 이걸 먹으면 머리로 알면서 막지 못하는 바보 같은 사태는 벌어지지 않는다는 말씀.

난 지체하지 않고, 잔뿌리 하나부터 시작해, 최대한 진액을 흡수하며 이파리까지 씹어 삼켰다.

청아한 향기가 입안을 가득 메우고, 날숨을 내뱉을 때마다 입안의 청명한 향기가 사방으로 퍼졌다.

“오는구나.”

만년화삼을 넘긴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랫배에서 열이 뜨끈하게 올라오기 시작했다.

나는 그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재빨리 가부좌를 틀고 태을심법을 운공하기 시작했다.

뜨끈한 기운이 태을심법의 기운을 훨씬 압도하여 신체 내부를 핑핑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얌전하고 정순한 태을심법은 열심히 만년화삼의 기운을 쫓아다니며 녀석을 자제시키려 하지만 놈은 말을 듣지 않는다.

“크윽.”

심맥을 오가며, 제멋대로 막힌 길을 뚫고 탁기를 불태운다.

그럴 때마다 온몸을 갈기갈기 찢기는 고통이 느껴졌지만, 덕분에 기운은 조금씩 아주 천천히 미약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쫓고 쫓기는 싸움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

얼마나 지났을까.

번쩍.

눈을 떴을 때, 동굴을 비추는 빛이 너무 환해 눈살을 찌푸렸다.

‘환하다고?’

동굴엔 만년화삼이 자라는 일부분만 빛이 들어온다.

그마저도 빛이 너무 약해 따로 횃불을 만들어 들고 들어왔을 정도.

그런데 빛이 환하다는 것은?

‘달라졌구나.’

몸이 달라졌다. 온몸에서 활력이 샘솟는다.

쿵.

주먹으로 벽을 때리자, 단단한 동굴 벽 일부가 무너져 내렸다.

그럼에도 아픔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단전을 둘러보자 손가락만 한 덩어리가 자리하고 있었다.

“대략 십오 년 정도인가?”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에 기재들에 비교하자면 한참이나 모자란 수준이겠지만, 이쪽은 내공 모이는 속도가 극악에 달하는 태을심법으로 모은 내공이다.

거기에 무공을 이루기 위한 신체도 닦았으니, 앞으로의 내공이 쌓이는 속도는 이전만큼 느리지 않을 것이다.

“귀한 영단에 욕심을 내봐도 되겠군.”

마침 강호영약서에는 적혀 있지 않은 귀한 영단의 존재를 하나 알고 있었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계룡상단이 잃어버린 영단이지.”

계연석은 계철영을 위해 화산의 설매단을 구매했다.

화산 최고의 영약인 자소단을 제외하면 최고로 꼽히는 영단.

진신 제자들도 구경하기 힘들다는 설매단을 구하기 위해, 가산은 물론이고 계룡상단이 가지고 있는 연줄 전부를 동원했다.

그렇게 결국 계연석은 설매단을 얻어 계철영의 빛나는 미래를 준비해 줄 수 있을 뻔하였으나.

워낙에 대단한 일을 해낸 탓이었을까?

계연석은 그 허영심이 일을 그르쳤다.

“어쩌면, 화산의 고수들을 믿은 걸지도 모르겠군.”

무려 화산의 고수가 계룡상단에 방문한다.

계연석은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인간이 아니었고, 화산파와 자신의 상단이 밀접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는 것을 선전하기 위해 연회를 열었다.

하지만 계철영이 설매단을 복용하기 하루 전날, 계룡상단의 가장 깊숙한 금고 속에 숨겨놓았던 설매단은 감쪽같이 사라졌다.

정체불명의 존재가 그 화산파 고수들의 눈을 피해 설매단을 탈취해 버린 것.

닭 쫓던 개 신세가 된 계연석은 화산파에 매달려 보았지만, 화산파는 이미 설매단을 넘긴 후에 탈취당한 것이었기에 책임을 질 수 없다는 말만 남기고 떠나버렸다.

후에 계연석은 다시금 막대한 가산을 털어 매화단을 구하긴 했지만, 이 일은 계연석의 마음에 영영 남아 주변 사람들도 설매단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누군가의 불행은 술자리의 좋은 안주가 되는 법.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두고두고 나누었다.

그 당시엔 누가 설매단을 가져간 건지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았지만, 이후로 잃어버린 설매단이 세상에 나타나는 일은 없었다.

“움직이는 장서각 노릇을 한 것이 이리 도움 될 줄이야.”

나는 머릿속의 자료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첫 번째는 무림맹 합비 지부에서 보내는 월간 보고서.

설매단이 탈취당한 날을 기준으로 전후 한 달여간 합비에서 일어난 사건과 주요 흑도 인사들의 이동 경로를 파악한다.

두 번째는 무림맹의 출입 명단.

화산파 고수들의 눈을 피할만한 백도의 고수라면 대부분 무림맹의 소속이었다.

무림맹의 출입 명단만 살피면 누가 언제 움직였는지 모두 파악이 가능했다.

세 번째는 임무 보고서.

무림맹에서 임무 관련 파견된 고수 중에 사건이 있었던 날 전후로 합비에 들렀던 인물을 추려낸다.

그리고 이렇게 취합한 자료들을 제갈천기가 알려준 추론법을 이용해 정리한다.

“네 명이라.”

그렇게 네 사람의 신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추혼객 주장목

오성군자 송원기

점창오검 구일무

점창오검 장한기

점창오검 중 두 사람이 사건이 있기 삼 일 전 합비에 들러 삼 일간 쉬고 다시 임무를 하러 떠났다.

오성군자 송원기.

사건이 있기 한 달 전부터 합비에 머물렀고, 사건이 발생한 후에도 두 달 더 합비에 머물렀다.

낭인이지만 품행이 방정하여 강호인들은 군자라는 별호를 붙여주었다.

더불어 실력도 절정 수준이라, 자신이 원하면 설매화를 얼마든지 살 수 있는 재력도 얻을 수 있지만 이자는 그저 군자가 글에 매진하듯 오직 검에 매진하는 자였다.

마지막 추혼객.

추혼객은 흑도인이다.

무공보다는 투술이 더 뛰어나고 재물에 대한 탐욕이 크다.

설매단에 대한 소문이 돌기 시작할 때 합비에 나타났고, 설매단이 사라진 날.

자취를 감췄다.

그리고 그 이후로 무림맹의 어떤 보고서에서도 녀석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추혼객이라…….”

추론을 이어가다 막히는 부분이 나타났다.

천하에 퍼진 각 지부는 언제든 보고서에 주요 인원들의 동향 파악을 하도록 되어 있는데 어디에도 추혼객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

사건 발생 이후로 무림맹의 흔적을 보이지 않았다는 건, 정체를 숨겼을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다.

특히나 이런 도둑놈들은 인피면구를 이용해 몇 개의 신분을 가지기도 하는 만큼.

설매단을 탈취한 후 추혼객의 신분 자체를 세상에서 없애버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시기에 새로 나타난 이는 없는데.”

머릿속 장서각을 마구 쏘다니며 추혼객이 사라진 시기 새로 나타난 도적을 찾아보았지만, 비슷한 자는 없었다.

그러다 이내 다른 임무 보고서를 뒤져보다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헛!”

이런 수를 썼던 거군.

“그러니 흔적이 없었지.”

잘하면 설매단을 탈취 하고도 쫓길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듯 했다.

“일이 쉽게 풀리겠어.”

그렇게 맘 편히 생각하고 인면지주의 시체를 넘어 동굴 밖으로 나가려는 때에 미증유의 힘이 왼팔을 당기고 있었다.

“?”

무의식적으로 왼손을 내려다본 순간, 대경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손목을 감고 있는 푸른색의 용.

전생에 가지고 있던 청룡환이 피부 아래서 빛을 내고 있었다.

‘이게 어찌 된 영문이지?’

전생에 착용했던 청룡환이 피부 속에 들어가 있는 것도 이상하지만 더 이상한 것은 청룡환이 명백하게 인면지주의 시체를 끌어당기고 있는 형세.

“내단을 바라는 것이냐?”

인면지주의 내단은 단지 만지기만 하는 것으로도 극심한 중독에 이를 정도로 독기가 강하기에 건들지 않았다.

하지만 왜인지 청룡환은 인면지주의 내단을 끌어당기고 있는지.

쩌어어억.

인면지주의 배를 가르자 풍기는 냄새만으로도 눈이 따끔거렸다.

청룡환은 제 식사를 찾은 것처럼 더욱 큰 빛을 뿜어내며 내단으로 향하고 있었다.

“……어찌해야 하나.”

청룡환은 호교법왕 중 하나였던 흡혈괴마의 유품이다.

소정대의 값진 승리를 기념하는 물건이었기에 품고 있었고, 생이 다하는 순간까지 청룡환이 나에겐 소정대를 상징하는 물건이었다.

“에라. 모르겠다.”

다가간 손이 인면지주의 내단을 잡아챈 순간.

치이익.

“큭.”

화끈한 기운이 손바닥을 녹이며 스며들기 시작했다.

독기가 몸에 흡수되면 끝장이라는 다급함에 손을 떼려는 그 순간.

“어?”

손바닥을 타고 시원한 청량감이 흡수되기 시작했다.

시냇물같이 작은 줄기였던 그 기운은 이내 커다란 강물이 되어 온 몸에 쏘다니기 시작했다.

만년화삼을 흡수했을 때와는 전혀 다른 개운함에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손안에 있던 인면지주의 내단이 감쪽같이 사라지고, 단전엔 조금 전보다 조금 더 자란 덩어리가 느껴졌다.

“허, 이거.”

믿을 수 없는 눈으로 빛이 꺼져가는 청룡환을 보았다.

“이걸 좋아해야 하는 것인가, 말아야 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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