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모든 걸 기억하는 천재무사-3화 (3/357)

-마교가 재림한다.

-무림맹은 마교에 의해 망한다.

-태을문은 무림맹의 소속이기에 함께 망한다.

-그 와중에 기억력이 쓸데없이 좋은 나는 이곳저곳에서 이용당하다 죽는다.

이 또한 ‘절대’적으로 변하지 않는 것일까?

“말을 똑바로 하지 못하는 걸 보니 속임수를 쓴 게 분명하구나?”

잠시 딴생각하는 동안 들리는 계연승의 개소리에 인상이 절로 찌푸려진다.

“……그건 또 무슨 소립니까?”

“기초 검법과 고급 검법의 간격은 메울 수 없다. 이는 무공을 익히는 이들에겐 상식인 것이다.”

“화산에선 자신의 실력이 부족할 땐 그렇게 변명하라고 가르칩니까?”

“이 녀석이 감히……! 그 말, 당장 취소해라!”

“제 말이 틀렸습니까?”

“좋다! 그럼 나를 상대로 그 간격을 메꿔봐라.”

“…….”

홍사련과 사제들의 눈동자엔 경멸이 어렸다.

이건 아무리 좋게 봐줘도 어른이 애를 상대로 생떼를 피우는 꼴 아닌가.

“진심이십니까?”

“난 당연히 내공은 쓰지 않고 오직 초식으로만 상대할 것이다. 왜, 증명하지 못하겠느냐?”

“그 전에, 계 사형을 의원으로 데려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프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계철영은 계연승이 대신 복수해 줄 거란 기대를 한 건지, 울음을 멈추고 아무렇지 않은 듯 고개를 저었다.

“나, 난 괜찮다.”

인마, 너 피 계속 흘러.

“다시 묻겠다. 증명하지 못하겠느냐?”

어쩌면 나는 시작도 하기 전에 패배주의에 절여져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분명 내 상황은, 전생과 크게 다르지 않은 절망적인 상황이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전생의 ‘나’와 지금의 ‘나’는 확연히 다르지 않은가.

내가 한 말대로 ‘절대’가 어디 있나.

모든 것이 정해져 있었다면, 애당초 우리 소정대가 마교의 호교법왕을 잡았던 것도 말이 안 되는 이야기.

‘그러니까, 예전처럼 겁먹은 채로 도망치지 않는다!’

나는 고개를 들어 계연승을 바라봤다.

“증명하면요?”

“뭐?”

“증명하면 어쩌시겠습니까? 어른이 애를 상대로 떼를 쓰는데, 애한테 아무런 이점도 없다는 건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계연승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진심 나를 죽이고 싶어 하는 표정.

“무엇을 원하느냐?”

지금 내게 필요한 게 무엇일까?

기회를 포기하지 않을 거라면 무엇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제가 이기면 부생당을 이수했다 해주십쇼. 전 더 이상 부생당에 출석하지 않겠습니다.”

“……좋다.”

계연승은 한쪽으로 가 목검을 들었다.

기세가 엄혹한 것이, 팔 하나 부러지는 정도론 끝나지 않을 게 분명했다.

난 목검을 곧추세웠다.

생각해 보면, 문주 홍문기가 계룡상단에게 제시한 것은 입관할 수 있는 ‘기회’였다.

우리에게도 언제든 계철영과 ‘특별전형 자리’를 두고 경쟁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것.

그럼에도 태을문의 제자들은 나를 포함해, 누구도 그 기회에 도전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지키지 못하고 포기한 결과가 멸문(滅門).

가만히 앉아서 끔찍한 악몽을 재현할 순 없다.

“시작해라!”

화산의 속가제자인 계연승이 가장 애용하는 검법은 화산의 절기인 매화검법.

머릿속에선 이미 매화검법이 펼쳐지는 검로가 속속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검로의 약점들.

불세출의 천재인 제갈천기는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무공을 마교에 대항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기 위해, 무공들을 연구하여 각파에 맞는 파쇄식과 상승식, 제마식을 창조해 냈다.

허나 문제는, 사분오열되어 천하로 퍼진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에게 제갈삼식을 전달할 방법이 없었고.

그때, 쓸데없는 절대 기억 능력을 가진 내가 그 일을 맡게 되었다.

‘내공이 부족하다 한들, 천기의 파쇄식이 통하지 않을 리 없다.’

계연승이 매화검법을 펼쳐낸다.

내기를 끌어올리지 않아 매화향은 맡지 못했지만, 동작 하나하나가 우아하기 그지없는 모습.

난 단숨에 머릿속에 떠오르는 매화검법의 파쇄식을 보고 약점을 찔러 들어갔다.

“놈!”

내가 계철영에게 그랬듯, 계연승의 목검이 내 머리를 내려치려는 순간.

퍼퍽!

“흡!”

허공에서 검을 놓친 계연승이 허둥지둥 겨우 목검을 다시 잡았다.

“이, 무슨…….”

매화검법의 파쇄식이 펼쳐졌다.

계연승은 가장 자신 있는 매화검법을 펼치지만 이미 파쇄된 검법에 힘이 실릴 리 없었다.

이상함을 느낀 것일까?

계연승의 목검에 내기가 흘러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이미 늦었어!’

펼쳐진 매화검법의 파쇄식은, 내기가 운용되는 매화검법을 파쇄함과 동시에 계연승의 검을 그에게서 쳐냈다.

“!!”

순식간에 계연승의 손아귀를 빠져나가 날아간 목검.

난 그의 머리를 강하게 내리쳤고, 그는 양팔을 들어 자신의 머리를 막아냈다.

빡!

“크흑!”

둔탁한 소리와 함께, 계연승의 손을 빠져나간 목검이 뒤늦게 벽면을 강하게 때렸다.

텅. 투두둑.

바닥을 구르는 계연승의 목검.

양손으로 목검을 겨우 막아낸 계연승.

또다시, 잠시간 정적이 부생당을 감싸고.

“““와아아아악!!”””

태을문의 제자들이 일제히 뛰어나와 나를 감쌌다.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자신의 손을 바라보는 계연승.

나는 주위를 찬찬히 둘러보았다.

이건 분명 전생에 없던 일.

‘그래, 이전 생과는 다르다. 이젠 모든 것이 다를 것이다.’

#3. <영약을 모으는 삼류무사>

“그래서, 부생당엘 안 나가겠다고?”

이번 일로 인해 태을문에 난리가 났다.

계철영의 아비이자 계룡상단의 상단주인 계연석이 먼저 계철영의 부상으로 난리를 피웠고, 그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계연승의 방만한 수업 과정이 드러났다.

계연승은 이 일을 책임으로 부생당에서 잘렸고 더 이상 태을문에 출입할 수 없는 신세가 되었다.

계연석은 괜스레 일을 만들어 계철영을 보호할 보호자가 사라진 것에 아쉬움을 토했지만, 이미 일은 벌어진 후였다.

“이미 전대 부생당주에게 이수를 인정받았습니다. 그러니 나갈 필요가 없지요.”

아버지는 그 우락부락한 얼굴로 한껏 험상궂은 인상을 써 보였다.

다른 사람들에겐 두려움을 느끼게 할 얼굴이겠지만, 내겐 아직도 울컥울컥 가슴을 울리게 하는 얼굴이었다.

난 눈물이 나올까 재빨리 시선을 돌렸다.

“난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네놈이 어떻게 계연승을 이길 수 있었지? 혹, 속임수라도 쓴 것이냐?”

“아, 계 당주가 그 말을 했다가 팔이 부러졌지요. 아버지도 팔이 부러지고 싶으십니까?”

“뭐야!”

“어쨌든 전 다른 사제들이 부생당을 이수할 때까지 자유입니다.”

“하필 골통을 깨놔도 계철영이 골통을 깨 놓을 게 뭐람.”

아버지 진태산은 문 내의 외부 일을 도맡아 하는 외당의 당주다.

계룡상단이 태을문의 가장 큰 후원자인 만큼, 이번 일이 아버지에겐 달갑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상단주가 결국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습니까. 그럼 된 거지요.”

“이놈아! 계연석이 그 작자가 그렇게 말로만 끝날 거 같아! 당장 태을문에서 곡기가 두 끼로 줄어들면 다른 제자들이 널 가만둘 거 같아!”

“말을 제대로 하시지요. 그게 왜 제 잘못입니까. 무능한 외당 당주님의 잘못이죠.”

“이 자식이-!”

“소자 그만 나가보겠습니다.”

“어딜 간다는 거야-! 부생당에 안 나가면 외당의 일이나 도와.”

“개인적으로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그게 무언데?”

“저도 이제 얼굴에 털 나는 나이입니다. 사생활은 지켜주십시오.”

“뭐?”

진태산은 얼토당토않은 말을 들은 듯 턱수염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솔직하게 ‘마교의 재림에 대비해 태을문을 지킬 준비를 해야 한다.’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윽고 아버지의 손이 구석에 세워둔 몽둥이로 움직이기 시작했고, 난 재빨리 몸을 날렸다.

“그럼 소자 다녀오겠-”

“이 자식이! 거기 안 서!”

#

“네놈이 그 근본 없는 진소운이란 놈이냐?”

험상궂은 아버지를 피해 나왔더니 볼살이 축 늘어진 늙은 돼지가 앞을 막아섰다.

“누구십니까?”

“나를…… 몰라?”

왜 모르겠나.

어울리지 않은 비단옷. 옥이 박현 금빛 혁띠와 투박하게 큰 금반지.

태을문에 이런 천박한 복장을 한 사람은 하나밖에 없다.

바짓단을 휘날리며 날이면 날마다 태을문을 뒤집어 놓는 계철영의 아비인 계연석.

“저한테 무슨 볼일이십니까?”

“이놈! 말을 삼가라! 이분이 계룡상단의 상단주이신 계연석님이시다.”

표사로 보이는 사내가 인상을 잔뜩 쓰며 눈을 희번덕거린다.

“네. 알아들었습니다. 계룡상단주시라고. 그래서 제게 무슨 볼일이냐 여쭤보지 않았습니까.”

계연석은 기가 찬다는 듯 콧바람을 킁킁 뿜어냈다.

“네놈 때문에 우리 철영이가 부상으로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계룡상단의 적자에게 이따위 짓을 하고 그냥 넘어갈 수 있을 줄 알았더냐?”

피가 조금 나긴 했지만 겨우 머리 한 방 맞은 것 두고 과장이 심하다.

그렇게 따지면 그동안 대련을 빙자해 계철영에게 수도 없이 맞은 우리 태을문의 제자들은 어찌해야 하는가?

“그냥 넘어가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그거야 나와 문주의 문제고 너와 나의 문제는 아직 남지 않았느냐.”

뻔뻔함도 이 정도면 무공으로 쳐줘야 할까?

“그냥 안 넘어가면요?”

내 말에 표사가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 손을 검에 가져다 댄다.

“맞는 게 두려웠으면 상계나 가르치지, 무공은 뭣 하러 가르치는 겁니까?”

“……이, 이놈이 감히 어른이 말씀하시는데…!”

난 생각을 하느라 눈알을 굴리는 중인 계연석의 귓가에 말을 때려 박았다.

“혹시 계 사형이 무림학관에 차출되어 가면, 거기까지 쫓아가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후손들에게도 책임을 물을 작정입니까?”

계연석은 물론이고 표사도 살짝 놀란 얼굴.

그것까진 생각 못 한 건가?

아님. 애초에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가 텃세를 부리지 않을 거로 생각한 건가?

“말씀을 못 하시는 것을 보니 그럴 용기는 없으신 것 같군요. 근데 태을문에 와서 이리 억지를 부리시는 걸 보니 태을문은 꽤 만만하게 보시는 모양입니다.”

“……이, 이놈 보게……!”

계연석의 목청이 어찌나 컸던지, 각 당의 당주와 대현전의 문주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그동안 계 사형에게 맞아 며칠이나 일어나지 못했던 사제들이 열 손가락을 넘습니다. 제게 탓을 하고 싶다면, 먼저 사제들을 그리 만든 계 사형을 먼저 탓하시죠.”

“이놈이 감히…….”

‘이놈이…….’, ‘감히…….’ 만을 외치던 계연석이 갑자기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네놈 때문에 태을문의 후원이 끊기면 네놈이 책임질 터냐?”

이것이 항상 문제였다.

현 세대의 제자들 절반은 나처럼 태을문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

나머지 절반은 마을에서도 그리 풍족하지 않은 집안의 아이들.

집안의 입을 덜기 위해 사문에 들어온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힘들게 자란 아이들이 빨리 어른이 되듯, 계철영에게 저항하는 것이 다른 이에게 손해를 끼친다는 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책임?”

그랬기에 계철영와 계연석은 이렇게 마음 놓고 태을문에서 갑질을 할 수 있었다.

“다른 ‘백팔봉’에서도 철영이를 원하는 곳이 많다. 언제든 그곳으로 옮기면 그만. 그때는 네놈이 책임질 것이더냐?”

계철영의 입문은 곧 막대한 후원금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경영에 어려운 ‘백팔봉’이 태을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철영이를 원하는 곳이 많다.’는점은 곧, 태을문에 사는 이들에겐 불만을 꾹 삼켜야 하는 약점이었다.

그랬기에 우리는 남들이 다 하는 텃세 한번 부려본 적도 없었다.

“그리하시지요.”

“뭣이?”

“책임? 지겠습니다. 그리하시라고요.”

저 멀리서 다가오던 아버지가 다른 당주와 이야기를 듣곤 사색이 되어 달려오기 직전이었다.

“특별 전형 심사 시기가 1년도 남지 않았습니다. 과연 계 사형이 다른 곳에 가서도 태을문 만큼 대우받을 수 있겠습니까? 또 겨우 1년간의 후원을 받자고 굴러 들어온 돌인 계 사형을 반길 무문이 어디 있겠습니까?”

“네놈이……. 그걸…….”

달려오려던 아버지는 이내 멈칫 발걸음을 멈추었다.

“태을문의 제자들은 바보 멍청이가 아닙니다. 군자의 덕을 배웠기에 저열한 이와 어울리지 않으려 하는 것이지요.”

부들부들 떨던 계연석이 이를 갈며 말했다.

“내 반드시 태을문에 큰 피해를 줄 것이다. 네놈이 벌인 일 때문에 장차 태을문의 제자들은 곡기를 줄이고 낡은 옷만을 입고 다니게 될 것이다.”

명백한 협박.

난 그의 귀에 작게 속삭였다.

“내가 그리 둘 것 같습니까?”

이제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달려오려는 아버지를 보고 재빨리 돌아서 태을문을 나섰다.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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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에 계철영이 특별 전형으로 무림학관에 들어간 뒤에 태을문에 대한 후원이 확연히 줄었다.

속가제자이지만 연을 끊겠다는 듯 후원은 결국 몇 년 가지 않아 메말랐고, 태을문의 제자들은 곡기를 줄여야 했다.

“어차피 그리될 거면 계철영이 아닌 다른 이가 가야지.”

장차 태을문이 정마대전에 휘말릴 수 밖에 없는 것을 생각하면 무림학관엔 태을문의 사람이 가야 했다. 하급 무사로 들어가 봐야 고기 방패로 쓰이고 버림 받을 테니.

“문제는 태을문의 무공이 너무…….”

쓰레…… 낭비투성이라는 것.

제갈천기의 말에 따르면, 태을문의 무공 중에 쓸만한 것은 소천검법과 태을심법이 전부다.

그 숱한 무공들 전부가 태을문의 뿌리인 태을심법과 전혀 상리가 맞지 않는다는 것.

뿌리와 줄기가 서로 다르니 수백 년의 역사 속에서 강호를 떠들썩하게 할만한 고수가 하나도 나오지 않은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머릿속엔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상승 무공이 모두 담겨있지만.

“그걸 익혔다간 천마신교가 재림하기도 전에 태을문에 개새끼 한 마리도 살아남지 못하겠지.”

결국, 지금 내가 강해질 방법은 내공으로 압도하는 수밖에 없다.

“장강의 물살이 바위섬을 깎는 법.”

하지만 태을심법으론 한 200년쯤 수련해야 일갑자 수준의 내공을 모을 수 있다.

결국 영약을 있는 대로 먹어야 한다는 건데, 영약이 어디 그리 흔해서 영약인가.

“……흐흐. 하지만 방법이 있지.”

난 즉시 머릿속에 만들어진 장서고를 뒤지기 시작했다.

무림맹에서 사제들이 마교의 손에 속절없이 죽어가는 동안, 나는 무림맹에 남아 쓸데없이 부피만 많이 차지하는 잡다한 보고서와 자료들만 외우는 게 일이었다.

하지만 마교의 물밀듯 몰려오는 물량에 최후 방어선이 깨지고 더 이상 시간이 없어지자, 만통부와 심현각에 있는 자료까지 모두 외워야 하는 상황이 왔다.

잡다한 자료들보다 더 복잡하고 더 많은 양의 기밀문서들.

난 이해하고 흡수하는 것을 포기한 채, 단순히 저장시키기 위해 머릿속에 거대한 크기의 장서고를 만들었다.

그렇게 만든 머릿속 장서고의 가장 깊숙한 곳에서 찾아낸 책 하나.

강호 영약서.

고래로부터 20년 뒤의 강호에 등장한 영약의 발견지와 출몰 시기, 이동 경로들을 모두 망라한 기밀문서.

기밀문서라곤 하지만 그 당시 이미 다 발견된 영약을 기록해 놓은 서적이었다.

이런 쓸데도 없는 걸 외우겠다고 머리에 과부하가 걸려 온종일 코피를 쏟고 살았었다.

그런 고생을 한 대가가 살인멸구.

“다시 생각해도 열받네. 태청신검 그 새…….”

내 어린 시절 우상.

같은 나이에는 상대할 자가 없었던 천외천의 존재.

정마대전이 펼쳐지고 사분오열되어 있던 무림맹을 단박에 정리한 백도의 구원자.

그리고 강호에서 사라질 뻔했던 무림맹을 끝까지 존속시킨 영웅.

하지만 태청신검은 무림맹을 존속시키기 위해 일부를 제외한 모든 이들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북해에 세워졌던 무림맹은 결국 그들의 피와 시체 위에 재건된 것이다.

“다시는 네놈과 무림맹 따위를 믿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를 갈며 첫 번째 영약 만년하수오가 위치한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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