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사문의 명예를 지키는 삼류무사(6)>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래.”
“그, 그러게. 이건 아무리 봐도…….”
“쌍랑철검의 혈랑이 성 외 수준이라고 그러더니 그것도 영 허황된 소문이었군.”
태을문의 제자가 철검문의 기재를 압도하고 있지만 태을문을 인정하기보다 철검문을 후려치는 분위기가 더 강했다.
개 같은 거 진짜.
태을문이 벌써 몇백 년째 종이 호랑이 노릇은커녕 종이 여우 노릇도 못하고 있는 탓에, 태을문에 대한 인식을 바꾸려면 아직도 한참이나 걸릴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을 위해선 철검문의 명예가 철저하게 박살 나다 못해 아예 무너지는 수준의 명분이 필요하다.
철검문이 손가락만 까딱해도 ‘저거 저거 흑도 맹키로 태을문을 잡아 먹으려 하네.’ 하는 인식이 강호에 뿌리 박혀 있어야 했다.
“하아, 하아. 하아.”
그런 의미에서 지금의 판은 아주 잘 흘러가고 있었다.
성모현은 무인에겐 굴욕적이라는 나려타곤을 시전하면서 거지꼴이 되어있었고, 온몸에 자잘한 상처들이 있었다.
반면에 나는 상처 하나 없이 깨끗했고, 숨도 가쁘지 않았다. 누가 보아도 내가 압도적인 상황이었지만 성모현은 쉽게 승복하지 못했다.
‘나라도 못 하지 그건.’
일단은 보고 있는 시선이 너무 많았다.
철검문 내의 사람들은 물론이고, 안휘성 내에서 술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 모였다.
술 좋아하는 사람들이 최고급 안주로 생각하는 게 뒷담화 아니던가.
오늘 패배를 기록하면 성모현은 평생 태을문도 못 이긴 놈이라는 꼬리표를 달게 될 것이다.
더불어 자신이 질 것 같지 않다 생각하는 것이 포기를 못 하게 하는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비무의 양상으로 보건대, 나에게 파산검법에 대응할 검법은 없다.
분명 자신이 이길 수 있을 텐데 어찌된 일인지 자꾸만 내기가 뚝뚝 끊기고 운공이 잘되지 않는 것이다.
“내공 공부가 부족하시군요.”
“……이, 이놈!”
단전에서 뿜어져 나온 내기는 계곡을 흐르는 물줄기처럼 끊임없이 쭉쭉 흘러나가야 하는데, 청룡환의 의해 물이 뚝뚝 끊기니 초식이든 힘이든 제대로 이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네놈 대체…….”
“뭐가 말입니까?”
“네놈 혹여?”
“실력이 부족하니 잡생각이 드나 보군요.”
쐐액.
촤르르.
결국 내 검에 성모현의 머리카락이 잘려 나간다.
산발한 거지꼴이 된 성모현은 분을 참을 수 없다는 듯 씩씩거리고 있었다.
“뭔가 이상합니까?”
“흐으, 흐으.”
미련한 성모현도 이쯤 되자 뭔갈 깨달았는지, 검 대신 권법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그의 손을 맞잡는 순간 청룡환을 발동시켜 내기를 왕창 빼내었다.
“허업!”
드디어 확신한다는 눈빛.
성모현은 귀신을 만난 듯 뒤로 빠르게 빠졌다.
그리곤 단상을 향해 외쳤다.
“사, 사술! 사술이다!”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철검문의 무사들과 단상 위의 철검문 인사들이 벌떡 일어났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더욱 흉악한 기세로 성모현에게 검을 휘둘렀다.
“히익!”
성모현의 입에서 비명도 기합도 아닌 소리가 새어나오며 바닥을 구르기 시작했다.
몸에 새겨지는 상처는 점점 더 커졌고, 얼굴엔 절망감과 콧물이 잔뜩 흘러내렸다.
“멈춰라!”
결국 단상 위의 철검문주가 벌떡 일어나 외쳤다.
내공을 잔뜩 실은 그의 외침은 참관하는 모든이의 고막을 찢을 듯 쩌렁하게 울렸고, 내공이 부족한 이들은 머리를 부여잡고 휘청거리기까지 했다.
“하아, 하아.”
철검문주의 외침에 성모현이 한숨 돌렸다는 듯 고개를 돌린 순간. 난 놈의 목을 베어낼 생각으로 소천검법을 흩뿌렸다.
“이것으로 끝날 거라 생각했는가?”
쐐액.
철검문주의 등장에 안심하고 있던 성모현은 부지불식간에 짓쳐드는 소천검법에, 보법을 밟을 새도 없이 뒷걸음질 치며 도망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난 그것보다 한발 앞서 그의 등에 검을 길게 내리쳤다.
“크악!”
오른쪽 어깨에서 왼쪽 옆구리를 가로지르는 상처와 함께 붉은 피가 사방에 비산한다.
다시금 그의 등에 반대 방향으로 검을 휘두르려는 순간.
철검문주가 홀연히 나타나며 손을 뻗었다.
펑 소리와 함께 내 몸은 이 장이나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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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잘못되고 있다.’
철검문주 성천월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 것 있지 않은가.
뭐라 정확히 말할 수 없는데 분명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고 그렇다고 일을 중단시키기엔 굉장히 중요한 일이었기에 쉽사리 멈출 수 없는 그런 애매한 상황.
지금 딱 성천월의 입장이 그랬다.
“태을문의 검법이 꽤 날카롭군.”
혼잣말하듯 읊조리는 제갈소명의 말에 그 의심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태을문의 검은 철검문의 검을 뚫기엔 너무 가볍다.
검로의 깊이가 서로 다르다 보니 상성이 좋지 않다.
태을문의 검으로 철검문의 검을 넘어서자면 압도적으로 내공이 많아야 한다.
“저 태을문의 아이는 실전 경험이 많나 보군요.”
제갈소명의 말에 드디어 안개가 걷히고, 진소운이란 건방진 아이의 실력을 객관적으로 보기 시작하자 뒤통수를 강타하는 충격을 받았다.
어지간한 낭인을 능가하는 임기응변은, 같은 초식을 전혀 다른 초식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하지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아차린 시점은 너무 늦었다.
“크악.”
금쪽같은 성모현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쓰러졌고 사방엔 피가 비산하고 있었다.
성천월은 생각을 이어갈 겨를이 없었다.
“이놈! 멈추라는 소리를 듣지 못하였더냐!”
이 장이나 물러난 녀석은 아직 끝낼 생각이 없는지 이편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승패가 결정 난 것입니까?”
“감히!”
“성 모 저자는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순순히 패배를 인정했으면 피를 보지도 않았을 겁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한들 비무에서 피를 보는 것이 옳은 일인가?
“그래서 네놈이 잘했단 것이냐?”
“저놈은 패배를 인정하기는커녕 수치를 모르고 사술을 쓴다며 저의 승리를 모욕했고, 끝내 등까지 보이며 도망치려 했죠. 오늘이 문주님 회갑연이 아니었다면 등이 아니라 목을 베었을 겁니다.”
“닥쳐라! 이놈!”
성천월이 어떻게 해서든 그 사술이란 말을 묻어두려 했다.
‘사술’, ‘금공’이 가지는 무게가 있는 만큼, 함부로 남발해서는 안 되는 단어였다.
문제는 그 단어를 자기 손자가 내뱉었다는 것.
“애초에 이 비무를 빙자한 일방적인 망신 주기가 시작된 것은 문주님 손자의 억지 모욕 때문이었습니다. 아직도 자신들이 잘했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이놈이!”
철검문주의 옷자락이 서서히 부풀어 오른다.
어떻게든 위압감을 주어 녀석을 물러나게 하려 했지만 그럴 낌새가 보이지 않는다.
아니, 되려 좋은 꼬투리를 잡았다는 듯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기 시작했다.
“철검문은 정당한 비무의 패배도 인정하지 못하여 문주가 직접 나서서 승부를 무산시키는 옹졸한 문파인가 보군요. 이제 아시겠습니까? 철검문이 백팔봉에 들지 못하는 건 철검문에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겁니다.”
놈이 말을 이어갈 때마다 관중의 분위기가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철검문주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해 있었다.
“사술, 사술이 분명합니다. 할아버님!”
성천월은 당장이라도 성모현의 입을 꿰매고 싶은 심정이었다.
“……조용히 해라!”
“정말입니다. 제가 똑똑히 느꼈습니다! 저놈은 분명 흡성대법을 익힌 것이 분명합니다!”
철검문주는 자신의 손자가 이리 멍청하다는 것을 믿지 못하겠다는 눈으로 바라봤다.
전투 중에야 헛소리로 넘어갈 수 있는 일이지만, 이리 사람들이 똑똑히 듣고 있는 와중에 금공의 존재를 확언하면 안 된다.
결국 금공의 말을 내뱉는 순간 그에 관한 책임도 물게 될 테니까.
더구나 지금은 무림맹의 총군사와 남궁세가의 사람들까지 와있는 상황.
다행히 남궁세가도 제갈소명도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다.
그들에게 막대한 뇌물을 먹인 것이 아깝지 않은 순간이었다.
“사실이냐?”
“그렇지 않고서야 제가 패배할 리가 있겠습니까!”
“이놈이…….”
단순히 제가 진 걸 면피하기 위해서 하는 말이라면 절대 용서받을 수 없다.
설사 철검문의 대가 끊길지라도.
“조부님! 저, 혈랑철검 성모현입니다. 어렸을 적부터 내공과 무공으로 또래에게 진 적이 없는 접니다. 그런 제가 태을문에게 진다는 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본인의 노력도 있었지만 성모현은 어린 시절부터 벌모세수에 각종 영약까지, 온갖 혜택이란 혜택은 다 받았다.
냉정하게 판단해도 성모현이 진소운에게 질 일은 없었다.
“제가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 없는 말을 지어냈겠습니까. 분명 비무 도중 몇 번이나 내기가 끊기고 내공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고,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계속 비무를 해왔던 것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열변을 토하는 성모현.
“분명 내기를 운용하는 중에 끊긴 것이 확실하더냐?”
“물론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마지막엔 운용하던 내공이 갑자기 빠져나가는 느낌까지 받았습니다.”
이렇게까지 이야기하자 다시 의심은 진소운에게로 향했다.
“만약 네 말이 사실이 아니라면…….”
“소자, 아니 철검문의 제자 성모현. 이게 사실이 아니라면 그 죗값을 달게 받겠습니다.”
“좋다.”
성천월은 자신의 손자에게 걸어보기로 했다.
또한 어쩌면 내일 당장 태을문의 기둥뿌리를 뽑아 버릴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에 진소운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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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었느냐? 내 너의 몸을 살펴 보아야겠느니라.”
사안의 중대함에 고민하던 노인네는 결국 악수를 두었다.
한편으로는 그런 금공을 익혔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리라.
그리하면 태을문이 사라진 곳에 철검문의 속가무관을 세우고, 백팔봉에 직위를 얻으며, 합비 일대의 지배력을 확장해 나갈 수 있을 테니.
하지만 그런 꼬락서니는 절대 볼 수 없지.
“무슨 권리로 그렇게 하겠다는 겁니까?”
“강호의 평화를 바라는 무인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이렇게까지 내 사문을 궁지로 몰아넣고 싶소?”
하지만 성천월은 악수를 뒀다.
기본적인 생각이 있는 놈이라면 흡성대법을 익히고 이렇게 많은 이들이 있는 곳에서 쓰는 바보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 곧 자신의 신체를 오체분시해 달라는 신호나 마찬가지니까.
“철검문은 합비, 아니 합비를 넘어 안휘성 전체에 그 위명을 울리고 있소. 근데 백팔봉에 들지 못했다는 이유로 태을문 같은 작은 문파를 좌도방문이라 누명을 씌우고 싶냐는 말이오!”
“그럼 내 손자가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이냐!”
“이미 내 사문은 저 경솔한 인간으로 인해 먹칠을 당했소. 만약 나와 우리 태을문이 무고하다면 그 뒷감당은 어찌하실 것이오!”
“…….”
“이름뿐이긴 하나 우리 또한 백팔봉의 한 봉우리를 맞고 있소. 이는 무림맹을 향한 의심이라 생각해도 되겠소?”
총군사도 온 김에 무림맹도 한 숟갈 얹혀주고.
“닥쳐라! 계속 말이 길어지는 걸 보니 난 더더욱이 의심이 가는구나. 네 말대로 내가 확인을 한 후에 무림맹의 집행각에 연락을 하여 너와 태을문 모두에게 이번 일에 대한 책임을 묻도록 하겠다.”
발을 빼고 싶어 하는 철검문주의 바짓자락을 움켜쥐고 강하게 당겼다.
“나는! 나와 사문의 명예를 걸고, 이번의 불합리하고 비상식적인 철검문의 행태에 끝까지 저항하겠소!”
난 내공 대신 선천진기를 끌어올렸다.
얼굴에 열이 오르고 예의 철검문주가 그랬던 것처럼 옷이 터질 듯 부풀었다.
“이런 미친 새끼…….”
철검문주는 동귀어진까지 각오한 내 모습에 질린 듯 욕지기를 내뱉었다.
난 내공을 가득 실어 쩌렁하게 외쳤다.
“당주님! 만약 제가 이 자리에서 폐인이 되거나 죽는다면! 무림맹의 집행각에서 오기 전까지 그 누구도 제 몸에 손 하나 까딱 못 하게 해주십시오.”
“진소운!”
아버지가 절박하게 나를 불렀다.
“아버지! 불초 소자 결국 모욕 때문에 귀한 신체를 포기하나 제가 목숨과도 같이 여기는 태을문을 위함이니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각오를 끝내자 연무장과 그 주변엔 표현할 수 없는 엄청난 압박감이 생겨나고 있었다.
철검문주와 성모현의 얼굴은 그 압박감에 가득 짓눌린 상황이었다.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는 듯 한 걸음 떼어 철검문주에게 다가갔고, 철검문주는 자신도 모르게 세 걸음 뒷걸음질 쳤다.
“흥! 아직 쾌화당에도 오지 못한 제자가 함부로 신체를 훼손하게 둘 것 같으냐!”
강채석과 홍사련, 아버지까지 연무장 위로 올라왔다.
“세상에 자식을 먼저 보내는 아비란 없다. 내 오늘 철검문에 뼈를 묻겠다.”
태을문은 그야말로 동귀어진이라도 하여 철검문주를 막아낼 기세였다.
“가, 감히…….”
철검문주는 분노를 삭이지 못한 채 씩씩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무력으로 밀어 버릴 수야 있겠지만, 그랬다간 백팔봉의 직위랑은 백 년 정도 멀어질 테니까.
철검문주는 간절한 표정으로 제갈소명을 바라봤다.
관중들의 시선도 모두 제갈소명에게 향했다.
지금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건 그뿐이라는 것을 너무 잘 알았다.
“그만.”
자리에서 일어난 제갈소명의 목소리가 연무장 구석구석 울린다.
높은 목소리가 아님에도 거부할 수 없는 무게감이 느껴진다.
“모두…… 검을 거두시오.”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성모현과 성천월이 검을 거두고 태을문의 사람들이 하나둘 검을 집어넣었다.
“……?”
제갈소명의 의문 가득한 시선이 나에게 향했다.
“그대는 왜 검을 넣지 않는가?”
난 성천월을 바라보던 시선 그대로 제갈소명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껏 방관만 하고 있던 무림맹의 총군사를 믿을 수 없기에 검은 넣지 않겠습니다.”
“!!!”
“!!!”
연무장 위에 선 사람들.
연무장 주변의 사람들.
연무장을 넘어 전각의 창문으로 보고 있던 이들까지 경악을 금치 못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