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모든 걸 기억하는 천재무사-22화 (22/357)

#<불청객을 맞이하는 삼류무사(3)>

계철영은 금두꺼비가 든 목함을 들고 별채로 들어가려 했다.

“지금은 들어가지 않는 게 좋아요.”

별채 외문 밖에서 안쪽을 향해 고개를 빼꼼 내민 홍사련이 말했다.

“무슨 말이냐?”

“진 사형이 들어갔는데 뭔가 분위기가 심상치가 않아요.”

“진소운 그놈이 왔다고?”

“네. 지금 안에 있어요.”

“근데 분위기가 좋지 않다는 건 무슨 말이냐?”

“몰라요.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달까.”

남궁산이 진소운에게 볼일이 있어 이곳에 왔다는 건 알고 있다.

허나 두 사람 사이의 분위기가 좋지 않을 이유가 무엇일까. 필시 사리분별 부족한 진소운이 실수를 하고 있음이렷다.

그 생각이 들자 계철영은 마음이 급해졌다.

“분위기 안 좋다니까요.”

“그러니 더욱 들어가 봐야지. 혹여 소운이 놈이 실수하면 어쩌려고.”

“아니…….”

사련이 말리기도 전에 계철영이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

나는 무림맹이 싫다.

특히나 무림맹의 주축을 이루는 구파일방과 오대세가가 싫다.

저렇게 자신들이 정의인 양 너무나도 당연하게 무례를 범하는 꼴이 보기 싫다.

그들과 우리는 애초에 같은 선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런 무례한 행동들이 가능한 것이다.

“무엇을 원하는가?”

말없이 한참을 응시하던 남궁산이 긴 생각 끝에 입을 열었고, 난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인간은 없네. 자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모를 뿐.”

“입관패가 대협의 손에 들어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입관패를 남궁산이 쓸 일은 없다. 그는 이미 무림학관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무림맹의 간부. 그것도 용봉지회에 소속되어 있는 정예중에 정예다.

그가 입관패에 이토록 매달리는 건, 아마도 이번에 무림학관에 들어가야 할 자신의 동생 남궁선화 때문일 것이다.

남궁상원등의 방계로 인해 직계의 힘이 유약해지고, 남궁산 자신 때처럼 가문의 힘을 사용해 무림학관에 입학할 수 없는 이 상황이 절박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싫었다.

제 가족들은 끔찍이도 아끼는 모습들이 소름 끼쳐서.

우리의 심장이 뜯겨 나가는 것보다 제들 손바닥에 난 상처에 눈물 흘리는 꼴이 너무나 혐오스러워서.

“그럼…….”

남궁산이 입을 열려는 찰나.

“남궁 대협! 안에 계십니까!”

계철영이 쩌렁하게 외치며 안으로 들어섰다.

“남궁대협! 이 계 모가 문안 드리러 왔습니다.”

“……지금 상황이 별로 좋지 않군. 나중에 이야기하세.”

“하하하! 안 좋을 게 뭐가 있겠습니까? 어떻게 우리 소운이랑은 이야기를 잘 나누셨습니까? 자네! 남궁 대협에게 뭔가 실수한 건 아니겠지?”

계철영에게 꼬리가 달려 있었다면 아마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르게 움직이지 않았을까 싶다.

“잠깐 자리를 비켜주지 않겠나?”

“혹시나 말씀이 안 통하시는 것 같으면 제게 말해주십시오. 제가 아주 혼쭐을 내주겠…….”

“이 보게. 지금 내가 나가달라 하지 않았던가.”

서늘해진 눈빛이 계철영에게 꽂히자, 녀석의 표정이 주인에게 버림받은 개새끼 꼴이 되었다.

“아, 아…… 예. 저, 이, 이건 아버지께서 전달하라…… 하신 겁니다. 나가보겠습니다. 얘기 나누십쇼.”

그 와중에 목합을 열어 금두꺼비를 보여주는 계철영의 모습에 나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저렇게 아부를 떨었는데도 결국 무림맹에게 버림받을 걸 녀석이 알게 되면 어떤 표정일까?

“지금도 보았는가? 계철영에게 이야기할 수도 있었네. 난 이리 자네에게 배려해주고 있어.”

“자신의 약점을 감추는 걸 배려라고 하십니까?”

“…….”

“입관패가 남궁선화의 손에 있다는 걸 아는 순간. 남궁선화 소저 또한 강호의 과녁이 되겠지요. 지금 남궁세가에 입관패를 보호할 만한 여력이 있습니까?”

“!!!”

남궁산의 얼굴에 처음으로 균열이 심히 갔다.

“자네가 어떻게…….”

“더 이상 이야기해야 할 게 있습니까?”

그제가 돼서야 남궁산의 얼굴이 진지해진다.

나는 여유를 가지고 그를 기다렸다.

#

별채를 나온 계철영은 씩씩거리며 분함을 감추지 못했다.

안 봐도 어떤 상황일지 아는 홍사련이 꼬숩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그러게 들어가지 말라 말씀드렸잖아요.”

“……이, 그 진소운 따위가 뭐라고 나를…….”

“에휴.”

분을 못 참은 계철영은 바닥의 돌멩이들을 차다가 번개를 맞은 듯 번쩍 고개를 치켜들었다.

“지금 문주님을 찾아뵈야겠다.”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예요.”

“안에서 돌아가는 일이 심상치 않아. 어쩌면 진소운이 남궁세가에 실수를 범해 태을문이 위기에 빠질지도 모르지 않느냐.”

“진 사형이 그 정도 사리 분별도 못 하는 사람인가요.”

“그럴 때가 아니래도!”

계철영은 갑자기 뭐가 급한지 부리나케 대현전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

“……내가 온 이유와 내가 어떤 상황인 것 까지 모두 알고 있었던 건가?”

“그게 대협에게 중요한 일입니까?”

“……아니지. 내게 중요한 건 입관패지.”

“다시 말씀드리겠지만 입관패를 넘기는 일 따윈 없을 겁니다.”

남궁산은 고개를 절레 젓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이렇게 하는 건 어떤가? 비무를 하세.”

남궁산은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걸까. 설사 무엇이 걸린다 한들 내가 그 내기를 받아들일 거라 생각한 건가?

“자네는 입관패 하나만 걸게. 난 칠채보주에 이 천잠사와…….”

품 안에서 빠져나오던 손이 잠시 멈칫거린다. 그러다 이내 결국 목함 하나를 꺼낸다.

“이 대연신단을 걸지.”

대연신단은 강철호신단처럼 남궁세가의 직계에게만 내려지는 영약이다. 효능은 설매단과 비슷하다. 그만치 귀한 것이었지만 나를 설득할 순 없었다.

“선배가 남궁세가 전체를 건다 한들 내가 이 불합리한 내기를 받아들일 거라 생각하십니까?”

“어떤 조건이냐에 따라 다르겠지.”

“…….”

“자네는 이미 몇 차례나 내 제안을 거절했어. 그럼에도 이 자리에 계속 앉아 있었지. 진짜 거절하려면 나갔어야 하는 것 아닌가?”

“계속 말해보십쇼.”

“난 창궁무애검법만 사용하겠네. 내공도…… 삼성의 내공만 사용한다면 어떻겠나? 자네가 이긴다면 칠채보주는 물론이고 천잠사와 대연신단까지 주겠네.”

남궁산의 내공을 최대로 잡는다면 일갑자 정도가 될 것이다.

유수의 문파 후계자들의 수준이 그 정도일 테니 비슷할 것이었다.

일갑자의 삼성이면 20년 정도.

그리고 사용하는 무공은 창궁무애검법으로 한계 짓는다.

자기 딴에는 아주 먹음직스런 미끼를 던졌다고 생각하겠지.

“이 내기는 비밀로 하시겠지요?”

내 대답이 전혀 의외였는지 토끼눈을 뜬 남궁산.

“비밀이라 한들 자네와 내가 알고 있기에 어기는 일은 없어야 할걸세. 그 대가는 피로 받아낼 테니까.”

지금 나의 내공이 45년, 최근엔 창궁상단의 밀궁대를 통해 창궁무애검법의 파검식이 효과적임을 증명해 냈다.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친다면 그게 더 바보일 테지.

“대답은?”

#

“그게 무슨 소리냐?”

진태산과 홍문기는 갑작스레 대현전에 들이닥쳐 따다다다 말을 내뱉는 계철영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뭔가 진소운이 남궁산의 심기를 건드리고 있고, 잘못하면 생사대적이 일어날지도 모르는데 그리하면 태을문에 손해이니 어서 가서 말려야 한다는 이상한 말.

애당초 진소운이 남궁산의 심기를 건드릴 일이 무에 있으며 두 사람이 생사대적을 펼치긴 왜 펼치나.

진소운이 남궁산에게 일방적으로 줘 터진다면 모를까.

상대는 개벽신룡 남궁산.

용봉지회에 속해있는 무림 신진 고수 중 하나.

진소운 백 명이 와도 상대 자체가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계철영의 성토는 진짜인 듯 절박해 보였다.

“제가 어떻게든 두 사람 사이를 말리려고 해보았습니다. 심지어 아버지께서 전달하라 하신 선물도 드렸습니다만 남궁산 대협은 눈길도 주지 않고 진소운을 죽일 듯 노려보고 계셨습니다. 이러다 큰 사달이 날지도 모릅니다.”

홍문기와 진태산은 서로를 바라보며 이 말을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심히 고민했다.

그냥 넘기기엔 계철영의 말이 하나라도 진실이였다간 태을문에 날벼락이 떨어질 것이오. 무작정 믿기엔 하나에서 열까지 말도 안 되는 말이었으니까.

“회의도 길어졌으니 산책이나 할겸 한번 가보세.”

“그러시죠. 어쨌든 손님으로 왔으니 뭔가 좀 신경 써주긴 해야 하니까 말이죠.”

그렇게 홍문기와 진태산이 앞장서고 계철영이 그 뒤를 졸졸 따라가고 있을 때.

별채 쪽에서 두 사내가 쌩쌩 냉바람을 일으키며 걸어오고 있었다.

계철영의 말대로 심히 분위기가 좋아 보이지 않는 둘.

그 와중에 남궁산은 눈을 마주치고 고개를 까딱하는 반면 진소운은 정중하게 포권지례를 한다.

진태산이 얼른 자신의 아들에게 가 물었다.

“어딜 가는 것이냐?”

“연무장에 갑니다.”

“연무장? 거긴 왜?”

“남궁 선배가 한번 붙어 보자 해서 가는 길입니다.”

진태산과 홍문기는 물론 계철영까지 입을 쩍 벌렸다.

#

연무장에서 개인 연습을 하던 아이들이 가장 먼저 알고 연무장을 비웠다.

연무장에서 내려온 아이들은 저마다 태을문 곳곳으로 뿔뿔이 흩어지며 제 친구들에게 비무의 소식을 알렸고, 그 옆에서 듣고 있던 당주들과 부당주들이 다시금 다른 이에게 말을 전했고, 그 말들이 결국 장로전에 닿아 연무장에 태을문의 사람들이 모두 모이는 데 이각이 걸리지 않았다.

“와-”

“남궁세가의 대공자라 했지?”

“저분이 개벽신룡이란 분이야.”

“그런데 왜 우리 진 사형이랑 비무를 하는 거지?”

사방에서 어린 제자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들에겐 하늘을 나는 영웅과 같은 존재.

평생에 가야 한 번 만날 수 있을까 말까 한 인물을 봤으니 신기하고 궁금한 것이 당연했다.

“태산이 어찌된 거야?”

“비무를 하기로 했다는군요. 남궁산은 창궁무애검법과 내공의 일부만을 쓰는 조건으로.”

“왜?”

“모르겠습니다.”

“이거 이러다 아이들이 크게 실망하는 거 아닌가?”

태을문의 무공이 남궁세가의 무공을 받아낼 수 있을 리 만무하다.

현실의 벽이란 그리 높지만, 그걸 어린아이들이 알게 되면 어른보다 더욱 큰 실망을 하게 되지 않던가.

스르릉.

남궁산의 검이 뽑히자 시끌벅적했던 연무장이 삽시간에 침묵에 빠져든다.

나 또한 그를 따라 검을 뽑고 기수식을 펼쳤다.

“제약을 걸었으니 양보는 필요 없겠지.”

“시작하시죠.”

내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청량한 미풍이 코끝을 간질거린다.

나는 재빨리 고개를 숙여 남궁산의 검을 피했다. 동시에 소천검법을 펼쳤다.

챙!

“““와-!”””

무미건조한 태을문의 검만 보다, 화려함이 가득한 창궁무애검법을 본 아이들의 탄성이 절로 튀어나왔고, 어른들은 그런 아이들을 자중시켰다.

채채챙.

삽시간에 삼초식을 주고받는다.

분명 소천검법이 더 빠를진대 남궁산이 펼치는 창궁무애검법은 파고들 곳이 없다.

“내공은…… 꽤 모은 것 같군. 허나 검법은 그것뿐인가? 내공을 쏟아내기엔 부족한 검법이네.”

“조언을 하실 정도로 여유가 있으신 겁니까?”

다시금 짓쳐 드는 남궁산의 검.

세 갈래로 갈라진 검이 급소만을 노리며 날카롭게 들어온다.

난 재빨리 파검식을 펼쳤다.

챙!

순간, 남궁산의 눈빛이 거세게 흔들리고 초식이 중간에 뚝 하고 끊긴다.

“!!!”

잠시 흘끗 제 검을 바라본 남궁산은 다시금 검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이미 검기를 깨달았는지 검에는 청록색의 미미한 검기가 어렸다.

나는 검기에 밀리지 않기 위해 청강검에 기를 잔뜩 불어넣었다.

챙! 채채채챙!

사방으로 날리는 청강검의 검편.

남궁산의 검은 끄떡도 없었다.

또 다시 십여 합의 나누고 내 허리를 베어 들어오던 검이 파검식에 막혀 그대로 돌아갔다.

“…….”

남궁산은 다시금 의아해하며 걸음을 멈춘 순간.

난 두 걸음 앞으로 내딛고 남궁산을 몰아세우기 시작했다.

채채채챙.

눈에도 잘 보이지 않을 속도로 검을 처 내는 남궁산.

쾌검인 소천검법을 모두 막아냈지만 남궁산은 처음 있던 자리보다 일곱 걸음이나 뒤로 밀려난 상태였다.

“와--!!!”

“와아아!!”

어른들은 비무에 혼이 팔려 아이들을 자중시킬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게 대체…….”

태을문의 어른들과 마찬가지로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을 하고 있는 남궁산.

애당초 해당 무공의 약점을 공략하기 위한 초식이었으니, 남궁산이 창궁무애검법을 자신만의 검법으로 재해석하지 않은 이상 막을 방법 따윈 없었다.

남궁산이 또래에 비해 월등한 성취를 이루긴 했지만 아직 그 정도는 아니었다.

스걱.

처음으로 검을 허용한 것은 남궁산이었다.

그의 소맷자락이 잘려나가며 연무장에 떨어져 내렸다.

“와아아아아---!!”

“와------!!”

창궁무애검법이 통하지 않자 무초식의 공격을 해오는 남궁산.

소천검법이 기초 검법이라 해도 절정도 못 넘어선 이의 무초식에 밀릴 정도는 아니다.

그러다 창궁무애검법을 사용하면 파검식을 펼친다.

정이나 안 되겠는지 내공으로 밀어붙이려 하지만 45년의 내공이 20년의 내공에 밀릴 리가 있을까?

“……대체 무슨 수작을 벌이고 있는 것이냐!”

“선배도 성모현과 똑같은 소리를 하는 겁니까?”

“…….”

“자신의 실력이 부족한 일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겁니까?”

소천검법의 파격식을 펼치기 시작했다.

기세가 강해지고 살기가 넘실거린다.

스슥, 스걱.

드디어 남궁산의 검이 소천검법을 따라오지 못하기 시작했다.

남궁산의 옷자락 이곳저곳이 찢어지고 가지런했던 모습이 흐트러지기 시작한다.

채채채채챙--

순식간에 이십여 합을 주고받자, 남궁산은 연무장의 끝으로 밀려나간 상태였다.

난 마치 전쟁터 한가운데 서서 마인을 상대하는 것처럼 필사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단전에선 쉼 없이 내공을 뿜어 내주었고, 그로 인해 검은 그 어느 때보다 힘차게 휘둘러진다.

탕! 탕!

남궁산의 검과 나의 검이 서로 부딪칠 때마다 망치의 모루를 때리는 것처럼 둔탁한 소리가 울린다.

탕!

그리고 한순간 남궁산의 검이 뒤로 밀려나고 그의 몸이 훤히 열린다.

나는 지체 없이 마인의 목을 베듯 베어 들어갔다.

쾅!

검을 베는 순간. 커다란 충격음과 함께 몸이 붕 떠올라 연무장 한가운데로 떨어졌다.

-------!

----------!!

환호로 가득했던 장내는 찬물을 부은 듯 차갑게 가라앉았다.

남궁산도 자신이 한 행동이 당황스러운지 눈동자가 격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분명 창궁무애검법만 쓴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마지막 일격은 제왕검법.

오직 직계에게만 내려져 오는 남궁세가 최강의 검법.

그것도 삼성의 공력이 아닌 아마도 오 성 이상의 힘이 들어간 일격이었다.

“이, 이겼다!!”

“이겼어!”

누군가 그렇게 외치기 시작했고, 어리둥절하던 아이들도 함께 환호하기 시작했다.

“하하…….”

남궁산이 허탈한 듯 웃음을 내뱉는다.

“내가 졌군.”

남궁산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입관패는 자네의 것이네.”

“천잠사와 대연신단과 칠채보주까지도요.”

허탈한 웃음을 내뱉는 남궁산.

“그래.”

입관패를 미끼로 대연신단에 이어 천잠사와 칠채보주까지 얻었다.

귀하기론 천잠사도 대연신단 못지 않은 기물. 청강검도 수명이 다 되어 가고, 장인 왕노인을 찾아갈 때가 되어 좋은 물건을 얻었다.

내가 미래에 대한 기분 좋은 계획들을 짜고 있는 동안 남궁산이 말했다.

“하지만 비무는 계속하지.”

“네?”

“총군사께서 말씀하셨을 때 알아 차렸어야 했지. 자네가 범상치 않은 인물이란 걸 말야. 내가 이렇게 빼앗긴 것도 우연이 아니겠지?”

남궁산이 당최 뭘 원하는지 알 수 없었다.

“내기에서 졌다 하여도 비무에서 져선 안 되네. 그게 바로 내가 남궁세가인 이유거든.”

고고한 자존심은 그냥 유지되지 않는다.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매달리고 노력해야 유지되는 것이다.

남궁산은 너무나 당연하게 다시금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이제는 내공의 제약 따윈 상관 없다는 듯 더 많은 내공을 쏟아붓는 남궁산.

“이제 보니 내공을 상당히 많이 숨기고 있었군.”

내공이 월등해지자 남궁산의 움직임이 더욱 빨라졌다.

나는 온 힘을 다해 창궁무애검법의 파검식을 펼쳤다.

쐐액-!

퍼펑!

남궁산의 내공이 월등하지만 파검식은 확실히 먹혀들었다.

이번에도 남궁산은 꽤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금방 제왕검법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쾅! 쾅! 쾅!

제왕검법이 휘둘러질 때마다 몸이 바닥에서 붕붕 떠오른다.

철검문에서 받아낸 중검보다 무겁고 날카롭다.

‘제길.’

제갈천기가 변환한 제갈삼식은 마교에 대응하기 위한 무림의 최후의 선택이었지만, 구파일방과 오대세가가 모두 그 생각에 동의한 건 아니었다.

언제든 마교가 사라지고 무림맹이 강호를 지배하는 시기가 오면 제갈삼식은 곧 자신들의 발목을 붙잡으리라 생각했고, 주요 무공 외엔 제왕검법 같은 필살 무공에는 제갈삼식으로서의 변환은 하지 않았다.

“점점 재밌군. 제왕검법은 받아내지 못하는 건가?”

“말 같지 않은 소릴 하십쇼. 내공 제한도 없이 세상에 잘 알려지지도 않은 남궁세가의 오의를 어떻게 막아내라는 겁니까?”

“그런 것치곤 창궁무애검법은 너무나 잘 막아내는군. 혹시 약점을 알고 있나?”

“그걸 알면 제가 이리 당하고만 있겠습니까?”

남궁산은 내 변명에도 쉬이 납득을 하지 못하는 듯 보였다.

뭔가를 시험해 보듯 제왕검법과 창궁무애검법을 번갈아 시험해 보는 것이 이러다 밑천이 드러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으로 다가왔다.

‘빠른 시간 안에 끝내야 한다.’

마침 슬슬 제왕검법도 눈에 익기 시작한다.

내가 바닥을 박차고 그에게 달려들었다.

“--!”

급작스런 기세에 그가 급히 창궁무애검법을 거두고 제왕검법을 펼치려는 그때.

나는 바닥까지 박박 긁은 모든 내공을 왼손에 쏟아부었다. 왼손은 밀려드는 기에 덜덜 떨렸다.

‘요혈을 향해 찔러 들어온 후, 다시금 좌하단으로 복귀.’

머릿속에 기억해 두었던 제왕검법의 초식을 따라 필사적으로 검을 흘린 후,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려는 그의 검날을 손으로 잡아버렸다.

푹! 푸쉬!

남궁산의 검이 순식간에 피로 물든다.

손아귀에서 터진 핏물이 남궁산의 옷과 내 옷을 적신다.

“……미친!”

남궁산이 당황하여 검을 빼지도 못하는 사이, 난 그의 목에 검을 가져다 대었다.

뚝. 뚝.

내 손에서 흐르는 핏물이 남궁산의 검을 타고 바닥에 떨어진다.

“계속 하실 겁니까?”

“…….”

남궁산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얼굴은 처음으로 믿을 수 없다는 듯 하얗게 질려있었다.

대신 어린 제자들이 졸도할 듯 환호성을 질렀다.

이번엔 당주들도 함께였다.

와-----!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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